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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대책:
피해 아동 지원에조차 여전히 인색한 정부

1월 19일, 정부가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 방안’(이하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양천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이른바 ‘정인이 사건’)에 대한 공분이 커지고, 입양아를 상품 취급한 문재인의 망언 논란까지 겹치자, 정부가 부랴부랴 수습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미미한 개선책만 있고 알맹이가 없다. 특히 아동학대 예방에 중요한 가정·아동 복지 확충 계획은 쏙 빠져 있다.

1월 22일, 진보 시민·사회 단체 91곳이 ‘대응 방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이유다. 성명서는 문재인 정부가 “당장의 여론을 달래기 위해 급히 내놓은 정책”을 나열할 뿐, “아동보호체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또한 “예산과 인력 확충” 등 “실질적 방안”이 없는 점도 날카롭게 꼬집었다.

미미한

정부는 “피해 아동 관점”에서 “세밀한 대응 체계”를 마련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가령, 아동학대 대응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필요한 추가 인력 보강”을 언급만 할 뿐 구체적인 인력과 예산 확충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3월부터 시행되는 ‘분리 조치 강화 방안’ 보완 계획도 부실하다. 특히 분리된 피해 아동 지원 방안은 너무 빈약해서 문제가 심각하다.

전국의 모든 쉼터(2019년 기준 73곳) 대부분이 정원 초과 상태다. 쉼터에 자리가 없어 형제·자매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지내야 하거나, 피해 아동이 타지의 양육시설로 배치돼 낯선 곳으로 이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부 지원 부족으로 피해 아동이 또 다른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학대 피해 아동 수에 견줘 쉼터 수가 너무 부족한데도 정부는 양질의 쉼터를 대폭 늘리는 데 인색하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꾀죄죄한 쉼터 신설 방안을 내놓았다. 올해 설립 예정인 쉼터 15곳 외에, 지자체 추가 수요를 반영해 최대 14곳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쉼터 1곳당 아동 정원이 7명임을 고려하면, 고작 203명(올해 최대 29곳 신설 시)을 더 수용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피해 아동 보호 공백 최소화”인가! 기가 찰 노릇이다.

“지자체 추가 수요” 운운하는 것도 기만적이다. 지난해 7월, 문재인 정부는 아동학대 방지 대책으로 “피해 아동 쉼터의 과감한 확충”을 약속했다. 곧이어 정부는 쉼터 재정을 분담하는 지자체의 신규 신청을 독려했고 지난해 9월에 지자체 20곳이 신청을 냈다.

그런데 정부는 예산이 없다며 돌연 10곳의 신청을 취소했다. 신규 쉼터 10곳에 투여되는 중앙 정부 재정은 고작 17억 5200만 원이었다. 기업 지원에는 수백조 원을 퍼부으면서 학대 피해 아동 지원조차 인색한 문재인 정부의 위선이 역겨운 이유다.

양질의 쉼터 대량 확보는 피해 아동을 위한 최소한의 조처다. 예산을 투입해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또한 장애 아동, 영아 전담, 특수 치료 시설 등 다양한 피해 아동의 특성을 고려한 시설도 증설돼야 한다.

‘아동보호시설’의 열악한 환경

원가정으로 돌아가지 않는 피해 아동에 대한 지원이 전무한 것도 문제다.

분리 조처가 지속되면, 피해 아동은 성인이 될 때까지(만 18세) ‘아동보호시설’에 머물게 된다. ‘아동보호시설’ 종류는 양육시설(30~40명 규모의 ‘보육원’), 공동생활가정(5~7명의 ‘그룹 홈’), 가정위탁 등이 있다.

그런데 양육시설은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돌봄 환경이 열악하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조사 결과, 양육 시설 종사자 한 명이 0~2세 영아를 평균 4.2명 돌보고 있다. 이는 아동보호법 배치 기준(0~2세 아동 2명당 보육사 1명)을 훌쩍 초과한다.(‘아동보호시설 영·유아 양육실태 및 지원방안’, 2020)

공동생활가정 시설은 더 열악하다. 운영비가 기재부의 복권기금과 불안정한 지자체 지원비로 충당되다 보니, 항상 부족하다. 소수의 사회복지사가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으면서 연령대가 다양한 아이들을 24시간 책임져야 한다. 당연히 돌봄 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피해 아동이 양질의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아동보호시설’의 충분한 확충·개선, 인력 충원, 노동자 처우 개선이 꼭 이뤄져야 한다.

가혹한 ‘보호종료’ 제도도 뜯어고쳐야 한다. ‘보호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정착금 500만 원만 받고 험한 세상에 내보내진다. 미성년자라서 부동산 계약, 핸드폰 개통도 쉽지 않고 취직도 어렵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보호종료’ 아이들은 노숙 생활로 버티거나, 학대받았던 원가정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보호종료’로 자살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며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문재인 정부는 2019년에 자립수당 지급 제도(3년 동안 월 30만 원 지급)를 도입했다. 위기에 처한 ‘보호종료’ 아이들이 약간이나마 숨통을 트일 수 있지만, 여전히 한참 부족하다. 피해 아동의 안정된 자립 생활을 위해 지원금을 늘리고 공공주택과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입양제도 개선, 실질적일까?

정부는 입양제도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조만간 “입양 체계의 공적 책임을 강화”하는 법률 개정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입양이 아동학대의 원인은 아니지만, 현재 민간 입양기관이 중심이 된 입양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필요하다. 주요 민간 입양기관은 수익성을 우선시해 아동을 위한 책임성 있는 입양 과정을 담보하지 못했고, 여러 폐단을 양산해 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입양제도 공공화” 정책을 진지하게 추진할지는 의심스럽다. 이번 ‘대응 방안’에 나온 “공적 책임” 조처는 주로 민간 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등 미약한 수준에 그쳤다.

정부가 민간 입양기관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침해하는 법 개정안을 낼지도 미지수다.

2018년에 민주당이 입양 과정의 국가 개입을 강화하는 법안(입양특례법 전면 개정안)을 발의한 적 있다. 미흡한 점은 있었지만, 입양 업무를 공공기관으로 이관하는 등 개선된 법안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민간 입양기관 등이 반발하자 법안 처리를 포기했다.

아동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다면, 말로만 “공공성 강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국가가 입양 과정 전반을 직접 책임져야 한다.

피해 아동 보호, 실효성 있는 아동학대 예방 정책, 입양제도의 공공성 강화 등은 아동 보호를 위한 필수적 조처다. 노동계급은 문재인 정부에게 면피용 대책만 남발하지 말고 아동과 대중의 복지를 위해 돈을 쓰라고 압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