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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의 “트럼프 지우기,” 실질적인가?

바이든이 취임 직후부터 잇따라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트럼프 4년이 끝나고 새 바람이 분다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요란한 상찬을 걷어내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더 그럴듯하다.

바이든 정부의 ‘허니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1월 20일 취임 직후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바이든 ⓒ출처 백악관

바이든은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을 철회했고, ‘이주 아동 추방 유예 행정명령’(DACA)의 효력을 되살렸고, 트랜스젠더의 군입대를 허용했다.

이런 쟁점들은 트럼프와의 차별성을 부각하려고 주의 깊게 고른 것들이다. 하지만 대개 일시적 조처에 불과하고 그조차도 부족하다. 게다가 행정명령이기 때문에 이후 사법부 등이 얼마든지 뒤집을 수도 있다.

예컨대 바이든은 흑인 차별 철폐 염원을 의식해 민영 교도소 재계약을 유보했다. 하지만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주요 요구인 경찰 재정 삭감, 인종차별 범죄 기소·처벌은 외면했다. 그리고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를 사살한 카일 리튼하우스, 흑인 제이컵 블레이크를 쏜 경찰들이 보석으로 석방되거나 불기소 처분될 때 바이든은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 사상 최대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파장 속에서 집권했는데도 말이다.

또, 바이든은 악명 높은 이민세관단속국(ICE)을 해체하기는커녕 건드리지도 않는다. 이민세관단속국은 조지 W. 부시 정부 때 도입된 기구인데 오바마 정부 하에서 이민자 단속·추방 전담 병력으로 개편됐다. 이민세관단속국의 단속으로 강제 수용된 이주 아동들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해체 요구가 강력하게 제기됐다.

한편, 바이든이 트랜스젠더의 군복무를 허용하고 복무 기간 중 의료보험을 보장한 것은 나름의 정치적 의미가 있다. 트럼프 정부가 2017년에 트랜스젠더 군복무를 금지한 후 몬타나·노스다코다·사우스다코다 등 여러 주에서 트랜스젠더 권리 침해 법안이 통과됐다.

미국에서 트랜스젠더의 군복무가 공식 허용된 것은 오바마 정부 때였다.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의 영향이 컸지만, 다가올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과 차별성을 부각하려는 정략적 의도도 있었다(미국 민주당은 차별받는 사람들의 권리 문제를 선거에 이용해 온 오랜 역사가 있다).

오바마 정부의 조처는 그전 수십 년 동안 트랜스젠더 약 15만 명(2014년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추산)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군복무한 현실을 시인한 것이었다. 이런 현실 때문에, 트럼프가 트랜스젠더 군복무를 금지했을 때 군 일각에서도 이견이 나왔다.

바이든의 이번 조처는 트럼프의 반동을 되돌려서 오바마 때로 돌아간 수준이다. 바이든이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그 이상으로 보장해 줄지는 미지수다.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제약하는 제도에 대해 바이든이 앞으로 취할 입장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등교 재개

바이든은 트럼프의 코로나19 대응을 극력 규탄했지만, 그가 내놓은 대책도 형편없거나 미흡하다.

1월 22일에 바이든은 전국 초중등학교 등교 재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가 막히게도 바이든은 같은 날 “향후 몇 달간 이어질 감염병 대유행 확산세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처가 없다. … [코로나19] 사망자가 40만, 심지어 60만 명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확진자의 4분의 1이 나온 미국에서 등교 재개는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게다가 이는 트럼프가 관철시키려 했던 ‘경제 재가동’을 상징하는 조처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피해 지원에서도 획기적 개선은 없었다. 바이든은 재난지원금을 2000달러[약 220만 원]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그 덕에 민주당은 상원 다수당이 됐다), 나중에는 1400달러[약 150만 원]로 낮췄다. 수급자 입장에서는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약속한 액수를 감액한 것은 공약 사기다. 또, 이런 일회성 지급은 트럼프도 했던 일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미 수천만 명이 실업 상태인 데다 매주 100만 명 가까이가 실업 급여를 신청하는 상황에서 바이든의 대책이 대중의 고통을 완화하기에는 매우 미흡하다는 점이다.

바이든이 연방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한다고 했으나 “노동자들의 존엄을 지키기”에는 부족하다. 시급 15달러는 약 10년 전에 제기된 요구로, 트럼프 정부의 2020년 빈곤선 기준(시급 12.5달러, 4인 가족 기준)보다 약간 높은 정도다.

또, 미국 지배자들은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데에 최저임금 인상 카드를 이용해 온 역사가 있다(관련 기사: 본지 157호 ‘최저임금 38퍼센트 올리고, 노조 가입 권하는 대통령? ─ 오바마는 미국 노동자들의 친구가 아니다’).

요컨대, 칭찬이 무성한 바이든 1주일의 조처들은, 위기를 낳고 키우던 때로 되돌아가거나 심지어 문제를 키우는 것이다. 바이든이 “신자유주의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일각의 평가는 과장이다. 무엇보다, 바이든이 적극 대변하려는 미국 지배계급 주류가 지금 위기를 낳고 키웠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상원 예산위 의장에 새로 위촉된 버니 샌더스가 “진정한 변화[를 위해] … 의장 권한을 적극 활용해 대통령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불길하다. 샌더스는 자신의 권한으로 노동자·서민을 위한 진보적 의제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바이든의 (때로 노동계급 공격도 포함할) 미봉책들에 진보적 칠을 해 주다 보면 그의 ‘민주적 사회주의’에 기대를 걸었던 수많은 지지자들에게 잘못된 환상을 부추길 수 있다.

진정한 희망은 대중 투쟁의 고삐를 다시 죄는 데 있다.

고무적 징후가 있다. 바이든 취임을 전후해, 뉴욕 지역 최대 식품도매 기업 헌츠포인트 노동자들이 1주일 동안 직장이탈 파업을 벌여 승리했다. 이 노동자들은 ‘필수 부문’이라, 작업장 내 감염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업무를 계속해야 할 만큼 노동조건이 열악했는데, 강력한 파업으로 코로나19 방역 조처 확충, 임금 인상, 유급 병가 등을 쟁취한 것이다.

이런 투쟁의 확산이 노동계급의 삶을 지킬 진정한 수단이 될 것이다.(그런 점에서 유명한 진보파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바이든 취임식에 불참하고 지역 단체들을 조직해 헌츠포인트 파업에 연대한 것은 잘한 일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초부터 1000건 넘는 비공인 파업을 벌인 미국 노동자들은 그런 잠재력이 있다. 그런 투쟁이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참가했던 수천만 대중과 만나야 함은 물론이다.

초장부터 강경한 대(對)중국 압박

바이든은 트럼프와 차별성을 부각하려 애쓰지만, 대(對)중국 강경 기조는 변함없었다.

바이든은 취임 첫날 ‘미국산 구입’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또, 바이든 취임 첫 주말에 미국 항공모함 전단이 남중국해를 항행했다. 같은 날 미 국무부는 중국의 대만 압박을 규탄했다. 모두 트럼프 정부 하에서도 있었던 일들이다.

트럼프는 여러 면에서 미국 지배계급 주류와 충돌했지만,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자는 데에는 미국 지배계급과 의견이 일치했다. 바이든 정부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은 21세기[의 미국 패권]를 규정하는 요소”(백악관 대변인 젠 샤키)라고 꼽은 이유다.(관련 기사: 본지 345호 ‘바이든의 대외정책, 무엇이 달라질까?’)

바이든 정부가 초장부터 대중 강경 기조를 분명히 한 것은 그런 인식의 반영이다.

중국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26일 중국 외교부는 바이든 정부에 트럼프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촉구했고, 같은 날 시진핑은 문재인에 전화해 “양국 간 교류 협력”을 강조했다. 바이든의 강경 기조와 동맹 규합을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바이든의 대중 정책은 동아시아와 세계에서 제국주의 긴장을 심화시킬 것이다.

트럼프 탄핵 ─ 악몽의 끝?

1월 25일 트럼프 탄핵안이 미국 상원에 상정됐다. 논의는 2월 둘째 주부터 시작된다.

재임 기간에 온갖 차별과 극우 세력의 결집을 부추긴 트럼프는 증오의 대상이다.

하지만 미국 민주당과 권력층이 트럼프를 탄핵하려는 것은 대중의 트럼프 증오 정서에 공감해서가 아니다. 트럼프가 미국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지배 질서를 교란했다는 점 때문에 ‘부관참시’를 하려는 것이다.

공화당은 내홍에 빠져 있다. 탄핵안이 상정되는 자리에 공화당 의원은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 포함 단 3명만이 출석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당의 전통적 계급 기반인 대자본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하려 한다. 하지만 트럼프 시기를 거치며 “공화당이 대자본의 믿을 만한 도구로 기능하는 능력”이 약화됐다(관련 기사: 본지 342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미국 대선과, 트럼프가 일으킨 정치적 지각 변동’). 트럼프 탄핵을 계기로 “당을 정화하겠다”(매코널)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그런 “정화”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 탄핵을 지지했다가는, 공화당 안팎에 무시 못할 만큼 형성된 극우 세력과 그 토양인 우익적 중간계급 유권자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그런 층에 기반한 ‘진정한 트럼프주의’ 성향의 의원들은 “사실상 제3당”처럼 움직이면서 공화당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관련 기사: 본지 353호 ‘마이크 데이비스 논평: 트럼프 이후, 악몽의 끝?’)

이는 낯선 현상이 아니다. 지난 10년 동안 유럽 주요국들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인 ‘극단적 중도’에 대한 반감이 극우를 성장시키고, 그것이 다시 주류 정치로 되먹임돼 정치 위기가 심화됐다.(관련 기사 본지 234호 ‘유럽 우익의 위험’) 트럼프는 4년 동안 미국에서 그런 과정을 촉진했다.

트럼프 탄핵 과정에서 공화당과 미국 주류 정치의 불안정은 더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 트럼프를 탄핵한다고 트럼프가 키운 극우 운동이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

극우·파시즘 운동은 거리에서 분쇄돼야 한다.

고무적이게도, 미국 노동조합·종교단체·학생단체·좌파 등이 ‘증오에 맞서 단결하라’ 라는 연대체를 띄우고 반(反)파시즘 운동 건설에 착수했다. 이들은 노동운동과 극우·파시즘 반대 운동을 연결시키려 애쓰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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