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증시 호황에 힘입어 주식 시장에 뛰어든 ‘동학개미’가 900만 명이 넘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중 300만 명이 지난해 처음 투자를 시작했다. 주식 열풍이 대단하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기사를 재게재한다. 애초 1월 하순에 ‘자본주의 모순의 반영: 경제는 불황인데도 주식은 최고치 경신 - 금융과 실물경제’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표됐다.(2021.4.30)


현재 세계경제는 1930년대 이후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다. 1월 5일 세계은행(WB)이 발표한 세계경제 성장률은 -4.3퍼센트로,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악이라고 WB는 예상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인 2009년 공황 때 -0.1퍼센트를 기록했던 것보다도 훨씬 큰 하락 폭이다.

중국 경제는 지난해 2.3퍼센트 성장했지만, 신흥국 경제 성장률은 -2.6퍼센트를 기록할 것이라고 WB는 전망했다. 다른 신흥국들의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날 기미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백신 배포가 잘된다면 올해 세계경제가 3.8퍼센트 성장할 수 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으면 성장률은 1.6퍼센트에 불과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내놨다.

여전히 매일 60만 명이 코로나에 걸리는 상황에다 경제 전망도 결코 밝지 않은 것이다. 백신 보급으로 코로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변이 바이러스의 발견 등은 백신의 효과를 의심하게도 만든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실업, 임금·소득 감소로 고통받고 있고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그들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

거품의 위험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경기 침체를 멈추려고 쏟아부은 엄청난 돈이 주식시장을 끌어 올렸다 ⓒ이미진

실물경제와 따로 가는 듯한 금융

이처럼 실물경제는 여전히 극심한 불황인데도 국채·금·주식·부동산·가상화폐 등 자산 가격은 대략 지난해 4월부터 동시다발적으로 급등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3월 31일 온스당 1596달러를 기록한 금 가격은 2000달러를 넘기도 했고,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해 3월 말 5000달러에서 4만 달러로까지 뛰기도 했다. 최근에는 조금 하락했지만 말이다.

2020년 전 세계 증시 시가총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조 달러(약 11경 원)를 넘었다. 그간 세계 증시 시총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에 약간 못 미쳤는데, 최근 전 세계 시총은 지난해 세계 GDP 예상치(83조 달러)보다 20퍼센트 이상 많아 사상 최고 수준이 됐다.

넘쳐나는 돈들이 한국의 부동산과 주식 시장도 밀어 올리고 있다. 지난해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평당 4033만 원으로, 1년 사이에 20퍼센트 넘게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코스피도 30.8퍼센트나 올라, 주요 20개국(G20) 중 상승률 1위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1400대까지 떨어졌던 증시는 계속 올라, 최근에는 3200을 넘었다.

이는 세계 주요국의 중앙은행들이 코로나19 확산과 지속되는 경기 침체를 멈추려고 어마어마한 돈을 풀었기 때문이다. 2020년 미국, 중국, 유로존, 일본 등 주요 8개국이 시중에 공급한 돈만 14조 달러(약 1경 5000조 원)나 된다.

그러나 이처럼 막대한 돈들이 생산적인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시장으로 몰려,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증시를 비롯한 자산 가격이 ‘거품’ 상태냐를 놓고 주류 논평가들은 의견이 분분하다. 예를 들어, 지난해 12월 15일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이렇게 주장했다. “초저금리 여건을 생각해 보면 주식시장은 거품이 아니다.” 실질이자율이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주식 투자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생각하면 여전히 주가는 높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주가 거품을 우려하는 주장들이 나오는가 하면, 반대로 기업들의 순이익과 비교한 주가는 여전히 다른 나라들보다 낮으므로 거품을 걱정할 상황은 아니라는 주장들도 나온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국내 주식 순매수 금액은 78조억 원, 해외 주식은 24조 원으로, 합쳐서 10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2021년이 시작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16조 7000억 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빚 내어 투자하는 ‘빚투’ 급증으로 신용거래 융자 잔액이 지난해 3월 6조 원 남짓에서 최근 21조 원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기도 했다.

이처럼, 실물경제 침체가 계속되고 있어 기업들의 이윤이 크게 회복되기 어려운데도 엄청난 돈이 주식 시장 등으로 쏠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고, 이는 거품의 위험을 높이고 있다.

최근의 자산 가격 급등은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여 준다. 경기 부양을 위해 풀어놓은 돈이 생산적 투자에 이용되지는 않고, 따라서 경제를 성장시키지도 못할 뿐 아니라 자산 시장의 거품을 키워 금융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동산 시장에서 주택 가격을 끌어올려 노동계급을 비롯한 서민층의 주거 여건도 악화시키고 있다.

거품 붕괴로 엄청난 공황이 다시 발생한다면, 빚을 내어 주식 시장 등에 뛰어든 사람들은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될 것이고, 실물경제의 침체를 더욱 심화시켜 실업 증대, 임금·소득 감소 등으로 노동자와 서민의 삶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남구로역 새벽 인력시장 노동자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실업난을 겪고 있다 ⓒ조승진

실물경제와 금융의 연관

그러나 경기 침체를 더욱 심화시킬 위험성을 높이는 거품의 형성과 금융 혼란은 그저 금융부문이나 금융자본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금융은 실물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으며, 실물 부문의 자본 축적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을 ‘스스로 증식하는 가치’라고 규정했다. 이 가치는 화폐로 표현된다. 따라서 어느 자본가든 화폐의 증식이 투자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며, 이를 위해 맨 먼저 필요한 일은 투자할 수 있는 만큼의 화폐를 모으는 것이다.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실물경제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에서 말하는 산업 자본에 대체로 해당한다. 산업 자본가는 원자재와 생산설비를 사들이고 노동자를 고용해서 상품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든 상품의 가치는 애초에 원자재, 생산설비, 노동력을 살 때 든 가치보다 더 크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받는 임금보다 더 큰 가치를 생산에서 추가하고, 바로 이렇게 추가된 가치가 바로 잉여가치인 것이다.(이 잉여가치가 이윤의 원천인 것이다.)

그러나 산업 자본가들도 투자를 위해서는 화폐를 마련해야 한다. 이 화폐는 자신이 벌어들인 이윤(의 일부)일 수도 있고, 은행 대출이나 주식 발행 등으로 마련한 것일 수도 있다. 자본가들이 사업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자기가 가진 돈만으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의 돈을 끌어와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초기 투자 자본이 더욱 커졌기 때문에 이 필요성은 더 커진다.

이때, 금융은 이윤이 남아도는 데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자본가와, 투자처는 있는데 당장 돈이 없는 자본가들을 이어 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렇다. 일부 자본가는 나중에 투자할 목적으로 은행에 돈을 예금한다. 그러면 은행은 당장 투자하기를 원하는 다른 자본가에게 이 돈을 빌려준다. 은행들은 또한 자본가들의 이윤뿐 아니라 노동자의 예금, 토지 소유자의 지대 등 가능한 모든 원천에서 돈을 모아 이를 자본으로 이용한다. 이처럼, 은행 시스템 덕분에 자본의 순환은 더 빨라지고 효율적이 되며, 체제가 원활하게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자본가들은 주식을 발행해 돈을 모을 수도 있다. 이윤의 일부를 배당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이 점에서, 주식 시장의 강세는 때로 실물경제에서의 이윤 증가를 반영할 수도 있다.

이처럼, 금융은 사회의 화폐를 모아 이 화폐가 원활하게 자본으로 이용되도록 함으로써 자본 축적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런 구실의 대가로, 생산 과정에서 만들어진 잉여가치는 생산을 조직한 자본가의 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가지 않고, 이자, 배당금, 지대 등의 형태로 나머지 자본가들에게도 돌아간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금융 부문의 수익은 모두 실제로 부를 생산하는 노동자의 착취에 달려 있는 것이다. 생산에 직접 투자하지 않아도 금융 시스템을 통해 이자 등을 취득해 이윤을 챙길 수 있는 길이 열린다.(이 때문에 마치 돈이 돈을 낳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 낸다.)

한편, 역사를 보면 흔히 금융 시장은 흔히 실물 부문의 이윤율 증가가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팽창해 왔다. 오늘날 주식 시장은 자금을 조달하는 구실보다는 기존 주식의 가치를 둘러싼 투기 시장 구실을 한다. 즉, 흔히 투기꾼들은 주가가 더 오르기를 기대하며 주식에 투자하고, 그 기대 자체가 주식에 대한 수요를 늘리면서 주가를 또 올리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수 있다. 은행들도 이윤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우량 고객의 대출이 고갈되면 더 위험한 대출 상품으로 눈을 돌린다.

그래서 실물 부문의 이윤율이 정체하거나 심지어 떨어지는 시기에도 금융은 더 팽창할 수 있다. 이윤율이 떨어질 때는, 금융 투기에서 나오는 수익이 실물경제에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나아 보이기 때문에, 금융권에 모이는 돈들이 자산 시장으로 쏠리면서 자산 가격이 폭등하고 투기 거품이 형성된다.

주식 시장은 비교적 작은 투기판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튤립, 배추, 돼지고기, 날씨 등 무엇이든 투기의 대상이 된다. 세계 전체 생산량의 몇 배가 넘는 돈이 1년 동안 외환 시장에서 거래된다. 사실 자본주의가 원활하게 돌아갈 때는 외환, 배추, 돼지고기를 사고 판다는 약속을 둘러싼(선물이라고 한다) 거래가 각 상품의 가격을 안정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산업 자본가들은 생산 외적 요인으로 가격이 급격히 변화해 손실을 보는 상황을 피하면서, 안정적으로 상품을 생산할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체제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윤율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시장이 신뢰를 상실하면, 모든 투자자들이 채권을 회수하려고 발버둥치면서 혼란이 체제 전체로 급속히 확산되는 것이다.

이처럼 금융은 자본주의의 전 과정의 속도를 높인다. 자본주의를 더 역동적으로, 그리고 더 파괴적으로 만들어 위기에 더 쉽게 빠지도록 만든다. 신용은 체제에 작동하는 강력한 윤활유로서, 체제를 더 좋게도 더 나쁘게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자본가뿐 아니라 노동자도 금융과 관련된 혼란에 직접 노출된다.

금융 시장이 무한정 치솟을 수 없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투기자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투기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은행가들은 대출할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녀야 하고, 주식 투자자들은 주가가 떨어질 때 주식을 사 줄 멍청이들을 기대하면서 주가가 오르는 때는 끝까지 주식을 보유해야 한다.

이 상황에 대해 씨티그룹 CEO 척 프린스는 2008~2009년 경제 공황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 “음악이 멈추고 나면 상황은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나 음악이 계속 연주되는 한 우리는 일어나 춤을 춰야만 한다. 우리는 아직도 춤을 추고 있다.”

이처럼 실물 부문의 잉여가치 생산을 넘어서는 금융의 ‘과도한’ 팽창은, 금융 자본가들도 자신의 이윤 확대를 위해 경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금융의 팽창과 거품 형성은 단지 금융 자본가들의 탓만은 아니다. 금융 자본가들에게 자금을 대는 주요 원천이 바로 실물 부문의 자본가들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이윤율이 높지 않을 때는 산업 자본가들도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 줄 것처럼 보이는 자산 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금융 시장과 실물경제의 밀접한 연관은 최근의 거품을 보더라도 나타난다. 앞서 지적했듯이, 최근의 거품 형성은 정부·중앙은행의 막대한 자금 투입과 관련 있다.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들이 이렇게 막대한 돈을 금융권에 쏟아붓는 것은 결국 산업 기업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코로나19 대확산 이전부터 기업들의 이윤이 빠르게 줄면서, 대출금의 이자도 제대로 갚기 힘든 ‘좀비 기업’이 급증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각국 정부들이 막대한 자금 지원으로 비금융권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은 좋아졌다. 예컨대, 미국의 S&P500 기업들의 법인세 부과 이전 이익은 2020년 상반기에 2019년 상반기보다 26퍼센트나 감소했다. 하지만 〈파이낸셜 타임스〉가 조사한 재무 안정성 평가에서 긍정적인 점수를 받은 기업들의 비중은 같은 기간 3퍼센트포인트 늘어나, 59퍼센트에 이르렀다. 실제로 이들 기업들은 이익 감소에도 불구하고 보유 현금은 늘었다. 지난해 6월 S&P500 기업들 중 비금융 회사들의 현금 보유고는 1조 3500억 달러로, 2019년 연말보다 39퍼센트 증가했다. 이는 앞서 지적한 정부와 중앙은행의 유동성(자금) 공급 정책 때문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회사채를 직접 매입해 주기로 한 지난 3월 이래 1조 2500억 달러를 관련 시장에 풀었다.

따라서 단순히 체제를 금융과 생산 부문으로 예리하게 분리시킨 뒤 체제의 불안정성을 금융 부문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산업 부문의 자본가들도 투기를 하고, 투기꾼들도 생산에 투자를 한다. 기업주들 전부가 이윤을 좇아 어디에든 달려들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무계획적 경쟁이 노동계급·서민층을 고통에 빠뜨리는 것이다.

또한 같은 이유에서, 개혁주의자들이나 많은 정책 제안자들이 금융 위기 때 금융 규제를 위한 방안들을 내놓지만, 이를 통해 체제의 불안정성을 없앨 수는 없다.

물론 노동자·서민 생활의 불안정성을 더욱 키우는 금융 규제 완화에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불안정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대중의 삶을 고통으로 빠뜨리는 체제 자체를 반대해 싸워야 한다.

현대화폐론(MMT)은 대안이 될까?

최근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막대한 돈을 풀자, 급진적 포스트케인스주의자와 현대화폐론(MMT) 지지자들은 이것이 계속돼 상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가 세금을 걷거나 돈을 빌리지 않아도 돈을 새로 찍어 내기만 하면, 그 나라의 경제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스스로 조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렇게 찍어 낸 돈으로 정부가 지출하고 또 지출하면 가계도 더 많이 지출을 하게 되고, 결국 자본가들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회의 경제 구조를 총제적으로 바꾸지 않고도 완전고용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화폐론은 다른 개혁주의적 주장과 마찬가지로, 금융을 적절히 통제함으로써 체제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에 대해 무지하다. 현대화폐론은 국가가 화폐를 창출한다는 생각을 주류 경제학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일찍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하에서 화폐가 신용 체계를 통해 창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은행들이 돈을 모아 대출을 하면 대출된 돈들이 다시 은행으로 모이고, 은행이 이 돈을 또다시 대출하면서 화폐가 창출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은행들의 대출이 줄어들면 화폐 창출은 억제된다.

이 점은 국가는 결코 화폐 창출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예컨대, 1980년대 영국의 마거릿 대처 보수당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화폐 공급을 통제하려 애썼지만 인플레이션 통제에 완전히 실패했다. 최근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실시한 양적완화 정책도 국가가 화폐 공급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줬다. 양적완화 정책으로 신규 발행한 막대한 화폐를 은행들에 투하했지만 지난 10년간 보았듯이 경제 성장의 시동을 걸지 못했고, 일각의 신자유주의적 우려와 달리 인플레이션을 촉발시키지도 않았다. 은행들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투하된 막대한 화폐를 쌓아둘 수밖에 없었다. 기업들이 투자할 생각이 없다면, 국가가 화폐를 투하하더라도, 없던 투자 의지가 생기지는 않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현대화폐론이 적용된 정책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라는 핵심적인 요인을 무시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과 투자는 대중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윤은 투자 대비 노동계급을 충분히 착취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가 아무리 ‘유효수요’를 만들어 내려 해도 이윤율이 높지 않다면 충분한 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이는 다시 ‘유효수요’ 부족과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