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문재인 정부 이주민 정책의 모순이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미등록 이주민은 39만 2000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12월 기준). 전체 이주민 중 미등록자 비율은 19퍼센트를 넘었는데 2007년 이후 가장 높다. 이주민 5명 중 1명은 미등록 상태인 것이다.

40만 명에 가까운 미등록 이주민을 제외한다면, 코로나 방역에 구멍이 생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단속·추방 중심의 정부 정책 때문에 미등록 이주민은 의료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한편, 항공편이 막혀 신규 이주노동자 유입이 급감하면서 중소기업과 농축산업 사용자들은 노동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단기 순환’ 기조의 기존 정책으로는 코로나 팬데믹 하에서 원활한 이주 노동력 공급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를 배경으로 미등록 이주민 합법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2월 2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는 “코로나 방역 대책과 노동력 부족 해소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논의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외노협은 “고용허가제 운영에서 발생한 미등록자만이 아니라 모든 초과 체류자들을 포함한 전면적 합법화”를 요구했다.

선별 진료소 미등록 이주민은 단속에 대한 우려로 진료소 방문조차 어렵다 ⓒ조승진

당사자들의 생명과 안전, 방역을 위해서 미등록 이주민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정부는 백신 도입 물량에 따라 미등록 이주민의 접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설령 미등록 이주민이 접종 대상에 포함돼도 정부가 단속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해소해 주지 않으면 미등록 이주민이 백신 접종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농축산업과 중소기업들이 미등록자를 포함한 이주노동자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이들을 내국인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는 존재로 비난하며 제대로 된 지원을 하는 데는 인색하다.

사용자 프렌들리 합법화

미등록 이주민 합법화 자체가 급진적인 조처는 아니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미등록 이주민을 합법화한 사례가 적지 않다. 1980년대부터 2005년까지 미국과 8개 유럽 국가들은 총 22번 단발적 합법화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한국 정부도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미등록 이주민을 합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주민의 인간적인 삶이 아니라 사용자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려 할 것이다. 가령, 조건부 ‘합법화’를 통해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노동력이 부족한(주로 노동조건이 열악한) 곳에 배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길 수  있다.

법무부는 2월 15일 코로나로 인해 출국하지 못하고 있는 중국동포와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에게 최장 13개월 동안 농어업 ‘계절’근로를 허용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농어업에서 일하는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합법적인 체류와 취업을 허용해 주는 것이다. 미등록 합법화의 사례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사례는 정부가 얼마든지 필요에 따라 합법적 체류·취업 자격을 부여하며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조건 없는 합법화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운동 내 일각에서 나이, 업종, 숙련도 등 노동시장의 요구에 따라 체류기간을 부여하는 합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는 사용자들의 필요에도 부합해야 (주되게는 정부를 상대로)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외노협이 노동력 부족 해소를 합법화 요구의 주요 근거 중 하나로 삼은 것도 이런 관점에서 비롯한 듯하다. 외노협은 성명서에서 정부가 과거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전면적 합법화는 아니더라도 … 미등록자 합법화에 나섰던 것은 합리적 외국인력정책의 수립과 고용허가제의 성공적인 정책[‘정착’의 오기인 듯]을 위한 시도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미등록자 합법화를 요구하는 이주노동자들 합법화는 이주민의 인간적인 삶을 위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조승진

그러나 당시 ‘합법화’는 이주노동자에게 별로 이로운 방식이 아니었다. 정부는 체류기간이 5년 미만인 미등록자만 최대 2년의 체류를 허용했다.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가 충분히 들어올 때까지 인력 부족을 막고자 일부에게 일시적 체류를 허용하고, 오랫동안 미등록 체류하며 한국에 적응하고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려 해 본 미등록 이주 노동자는 쫓아내는 방침을 고수한 것이다. 합법화된 경우에도 “노동부장관이 정하여 공표하는 업종에서 취업”하도록 했다. 이주노동자들의 바람은 무시하고 사용자들의 입맛에 맞게 배치한 것이다.

사실상 합법화라기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일부를 고용허가제 틀 안으로 욱여넣는 정책이었다. 고용허가제가 강요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견디다 못해 미등록이 되는 이주노동자가 적지 않다는 점에 비춰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방안이었다. 이는 외노협 성명서에서 “[미등록 이주민 합법화를] 고용허가제를 대신하는 합리적인 외국인력정책을 시작하는 단초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한 것과도 모순된다.

이런 방식에 타협하면, 이주민의 권리를 온전히 방어하기 어려워진다. 이주민 당사자들의 단결과 저항, 내국인들의 연대를 건설하기 위해 조건 없는 합법화를 요구해야 한다.

국경 통제 반대

귀국은 이주노동자가 처지와 삶의 방향에 맞게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이주민도 적어도 법적으로는 노동력을 누구에게 판매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경은 자본주의가 부상하고 민족국가가 확립되면서 등장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국경 통제는 이주 노동력 공급을 유연하게 조절하고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이주민을 선별해 차등적으로 적용하는 등 이윤 획득에 유리한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또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구실을 하고, 국적에 따라 노동계급을 분열시켜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효과도 낸다.

따라서 국경 통제에 반대하고 이주민의 자유왕래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미등록 이주민 합법화를 요구해야 한다. 미등록 이주민 합법화는 조건 없이 즉각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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