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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미얀마에서 열린 쿠데타 규탄 시위 ⓒ출처 MgHla/위키미디어

미얀마(버마) 군부의 반동적 쿠데타에 맞서 미얀마인들의 저항이 분출했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을 비롯해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흘 넘게 이어졌다.

청년·학생들이 가장 많았지만, 노동자들도 동참했다.

미얀마 각지의 병원 약 70곳에서 의료 노동자들이 조업을 중단하고, 일부는 전면 파업을 촉구하며 대열을 지어 시위에 참가했다. 양곤에서 시위에 참가한 국영 병원 간호사 아예 미산은 외신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보건 노동자들은 모든 공무원과 공공 노동자들에게 파업과 시위 동참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군부 정권을 완전히 타도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얀마 제2도시 만달레이에서는 철도 노동자들이 조업을 중단하고 시위에 참가했고, 교사, 광원, 제조업 노동자들도 쿠데타 규탄 행동을 벌였다.

지난 수십 년간 군부에 탄압받던 로힝야족 등 소수민족들도 시위에 나섰다.

군부는 강경 탄압으로 대응했다. 시위 진압 부대가 연일 곤봉을 휘두르고 새총과 고무탄을 쐈다. 군부는 장갑차와 탱크를 동원해 시위대를 위협했다. 야음에 인터넷이 차단되고 경찰이 시위 조직자들을 급습하는 일이 속출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탄압 때문에 2월 16일 현재 최소 9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이 다쳤다.

군부는 시위대 폭력을 빌미로 민주적 권리를 전면 공격하고 있다. 16일에 군부 대변인은 시위대 폭력으로 경찰 1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며(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영장 없이 혐의만으로 개인과 사유지를 수색·압수·체포하고 통신 정보를 열람·파기할 수 있도록 한 조처를 정당화했다.

군부는 그나마의 민주적 권리조차 파괴하고 사회 통제력을 강화하려 한다.(관련 기사 본지 355호 ‘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반동적 군사 반란’)

그런 점에서 군부 쿠데타에 맞선 미얀마인들의 운동은, 볼리비아에서 반동적 쿠데타에 맞서 벌어진 대중 저항, 타이에서 군부와 왕가에 맞서 벌어진 반독재 투쟁과 공통점이 있다.

2월 9일 양곤에서 열린 쿠데타 규탄 시위 ⓒ출처 VOA Burmese

미얀마인들이 그런 투쟁들에서 영감과 교훈을 얻어 대중 항쟁을 계속하기를 바란다. 타이 사회주의자 자일스 자이 웅파콘의 지적처럼, “미얀마 민주주의의 진정한 희망은 새 세대 청년들이 타이·홍콩 대중 운동에서 영감을 받아 투쟁하는 데에 있다. 흥미롭게도,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반대 시위대는 타이 민주주의 운동의 ‘세 손가락 경례’를 차용했다.”

미얀마 투쟁은 이웃한 타이의 반독재 투쟁에서 힘을 얻고, 또 타이에도 힘을 주고 있다. 2월 14일에 타이 수도 방콕에서, 타이의 반독재 운동가들과 타이 거주 미얀마인들이 양국 군부를 같이 규탄하는 수천 명 규모의 집회를 벌였다.(타이에 이주한 미얀마인은 150만 명이 넘는데, 그중 상당수가 방콕 인근에 이주노동자로 있다.)

웅파콘은 이렇게 지적한다. “군사 정권 타도는 미얀마 노동계급이 투쟁에 동참하는 데에 달려 있다. 여기에는 미얀마 국내 노동자들뿐 아니라 타이로 이주한 미얀마 노동자들도 포함된다.”

역사 속에서 봐도, 미얀마 군부를 떨게 할 힘은 미얀마 노동자들의 강력한 대중 행동에 있었다.

1988년 군부 독재에 맞섰던 ‘8888’ 항쟁 당시에도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잇달아 벌어져 군부를 한 발 물러서게 했다.

하지만 당시에 아웅산 수치는 자유 선거 보장을 약속한 군부를 믿자며 대중 행동을 자제시켰다. 일단 파업과 시위가 잦아들자 군부는 선거 결과를 무효화시켰고 아웅산 수치는 연금됐다.

이번 쿠데타 직후에도 민족민주동맹(NLD)은 “군부에 탄압 명분이 될 수 있다”며 시위 자제를 촉구했고, 운동이 커진 후에도 리본 달기 등 “평화적” 캠페인 방식으로만 행동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가 아니라 대중 저항이 희망이다

민족민주동맹(NLD)을 비롯한 쿠데타 반대 운동 내 일부는 미국 바이든 정부 등에 공개 서한을 보내, “국제사회”가 미얀마 민주주의를 회복해 달라고 촉구했다.

미국과 유럽의 몇몇 정부가 미얀마 군 장성 일부에게 제재를 가했지만, 그 지배자들의 진정한 관심사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아니라 미얀마를 둘러싼 지정학적·제국주의적 이해관계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는 공문구를 들먹이지만, 사실은 현상 유지와 ‘정상 상태 회복’에만 관심 있다.”(웅파콘)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족을 탄압하고 아웅산 수치가 이를 두둔할 때, ‘국제사회’의 말잔치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문재인처럼 이를 사실상 두둔한 경우도 있었다.

웅파콘의 지적처럼,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는 ‘국제사회’의 개입 덕분이 아니라, 남아공 청년들의 대규모 항쟁과 흑인 노동자들의 전투적 파업 덕에 종식됐다.

“진정한 희망은, 미얀마 노동계급이 군부를 박살 낼 자신들의 잠재력을 사용하고, 아웅산 수치식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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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묶음]
미얀마 쿠데타와 저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