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 - 역사가 지운 한인 최초 여성 사회주의자의 일대기》 정철훈 지음, 시대의창, 2021년, 592쪽, 19800원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시대의 창)은 최초의 한인 볼셰비키였던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이다. 저자는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의 생애를 다룬 소설과 평전을 냈던 정철훈 씨다. 지난해 봄에 나온 김금숙 씨의 만화책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서해문집)의 원작자이다. 정철훈은 자신이 쓴 책, 편지, 알렉산드라와 함께 활동했던 이인섭과 러시아인들의 증언 등을 다시 정리하고, 추가로 나온 자료와 연구를 집대성해 이 책을 완성했다.

이 책은 제정 러시아의 차르와 1917년 케렌스키 정부의 탄압 등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착취와 차별로 고통받는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해 헌신한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의 삶을 생생하게 잘 보여 준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볼셰비키 세력이 미약한 극동 지역에서 볼셰비키를 성장시키고 노동자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정치 활동은 매우 감동적이다.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는 1885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한인 2세로 태어났다. 러시아에 살던 조선인·중국인 이주민의 권익을 위해 일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러시아의 기나긴 동청철도 건설 현장 등을 다니며 노동자들의 고통스런 삶을 보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살았다. 이런 삶의 경험과 러시아 노동계급의 투쟁 속에서 부상한 혁명적 사상에 매료돼 평생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일했다.

알렉산드라는 우랄 지역에서 중국인·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해 한국어, 중국어, 러시아어 통역을 도맡아 하면서 항만과 철도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지원했다. 관리자들의 눈엣가시였던 그녀는 결국 통역에서 해고됐다. 이후 노동자 사무실에서 서기 일을 하면서 벌목장 노동자들을 규합해 우랄노동자동맹을 조직하는 데 앞장섰다.

암살 위기도 겪으면서 노동자들을 조직한 알렉산드라는 항상 볼셰비키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활동했는데, 볼셰비키 활동가들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숨을 곳을 마련해 줬다. 이런 활동이 알려져 볼셰비키의 뛰어난 조직가인 스베르들로프가 알렉산드라를 만났고, 알렉산드라는 1916년 볼셰비키 당원이 된다.

알렉산드라는 하바롭스크 시 볼셰비키 당 서기와 극동소비에트 외무위원을 맡아 활동을 정력적으로 펼친다. 하지만 1918년 내전 시기에 반혁명 세력인 백군에게 붙잡혀 34살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총살당한다. 알렉산드라는 모진 고문을 받았지만 전향을 거부해, 혁명가로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국제사회주의

이 책은 러시아 제국에 살던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들의 끔찍한 처지와 현실을 잘 다루고 있다. 1860년대부터 중국인과 조선인 등이 먹고 살기 위해 러시아로 물밀듯이 이주했다. 이들 노동자들은 임금을 체불당하기 일쑤였고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장애인이 되거나 목숨을 잃는 일도 다반사였다. 중국인과 조선인들은 소수 민족 차별로도 천대받았다. 알렉산드라는 통역을 하며, 고통스런 삶을 사는 노동자들의 입이 돼 주었고, 그들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서 동분서주 일했다.

알렉산드라는 국제주의 사상과 실천으로 무장된 혁명가였다. 소수 민족 차별을 통해 노동자를 분열시켜 지배하던 차르와 케렌스키의 지배 전략에 맞서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을 강조했다. 조선인, 중국인, 러시아인, 포로병으로 붙잡혀 일하는 각국의 노동자들을 조직할 때마다 국제 노동계급은 하나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라는 1918년에 창당한 조선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의 활동에도 관여했는데, 조선 독립이라는 민족 해방과 사회주의 혁명의 과제를 결합시키려 노력했다. 독립 국가 건설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사회주의 혁명을 먼 미래의 일로 남겨두는 민족주의적인 입장이 아니라, 국제사회주의의 관점에서 민족 해방을 지지했다. 제국주의 세력이 약화되고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이 강화되기 위해 민족 해방 투쟁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환하기를 바랐다.

이 책은 볼셰비키가 멘셰비키와 달리 차별과 노동자 착취에 진지하게 맞서고 식민지 해방 운동에도 진지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말해 준다. 또, 러시아 극동 지방과 중국 접경 지역에서 활동했던 독립 투사와 사회주의자들의 활동도 엿볼 수 있다. 러시아에 사는 조선인들이라 할지라도 계급 기반에 따라 조선 독립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태도가 달랐다는 점도 보여 준다. 원호인들이라 불리던 부자들의 조직인 전로한족회는 일본에 저항하는 실천을 하지 않았고, 볼셰비키에 반대했다. 반면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의 조직인 한족중앙총회는 볼셰비키와 러시아 혁명을 지지했다.

알렉산드라의 혁명적인 삶과 투쟁은 노동자들을 감화시켰을 뿐 아니라 신부였던 자신의 두 번째 남편까지 투사로 만든다. 혁명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알렉산드라의 생애는 우리에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혁명가의 삶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책은 소책자 판형으로 600페이지 가까이 되지만 읽기를 두려워하거나 망설일 필요는 없다. 워낙 쉽고 재미있게 쓰인 책이라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시대적 배경도 적절하고 친절하게 서술돼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