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결혼하지 않고 사는 비혼이나 동거 등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추진 중이다. 변화하는 가족의 현실을 국가 정책에도 일부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성인 남성과 여성, 자녀로 이뤄진 가족만이 ‘정상가족’이라고 여겨져 왔지만, 이런 가족은 한국에서도 더는 지배적인 형태가 아니다.

(이성) 부부와 미혼의 자녀로 구성된 가구는 2000년 전체 가구의 48.2퍼센트를 차지했지만, 2020년 현재에는 3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부부만으로 이뤄진 가구, 한부모 가구, 1인가구가 증가해 2019년 현재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60퍼센트가량을 차지한다.

1980년대에 결혼은 한 해 40만 건에 이르렀지만, 2019년 그 수는 24만 건에 그쳤다. 반면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지지 않은 동거 커플이 증가해 왔는데, 동성 커플도 그중 하나다.

결혼과 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함께 변했다. 결혼이 필수적이라는 태도는 감소해 온 반면 비혼 동거에 대한 태도는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20대와 30대 등 젊은층은 전통적 견해에서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이처럼 지난 수십 년 사이에 한국에서도 결혼과 성이 분리되는 현상이 늘었고, 결혼과 출산이 분리되는 현상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혼인율과 출산율의 하락에는 만성적 경제 위기로 말미암은 대중의 경제적 어려움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변화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와 교육 기회가 증가하면서 전보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성과 자의식이 커진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피임과 낙태 기술의 발달로 여성이 임신 두려움 없이 성을 즐길 수 있게 된 것과도 관련 있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는데도 한국의 법과 제도는 현실에 크게 뒤처져 있다.

예를 들어, 헌법 제36조는 혼인과 가족생활을 이렇게 규정한다.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혼인과 가족의 기초를 “양성”으로 두고 그밖의 가족에 대해서는 법적인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연금, 보험, 의료, 사회복지, 주택, 상속, 세금, 대출 등 한국의 여러 제도가 결혼한 커플을 전제해 설계돼 있다. 가령 혼인과 출산을 장려하려고 신혼부부를 중심으로 지원이 집중돼 있는 주택 정책은 비혼·동거·1인 가구들에게 불만의 초점이 돼 왔다. 지난해 5월 코로나19 1차 재난지원금 지급도 가구별로 지급돼 불만을 샀다.

국가가 나서서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일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몇 년 전부터 몇몇 지자체들은 초저출산을 극복하겠다며 결혼장려금을 도입하는가 하면, 지자체가 직접 미팅을 주선하는 것도 흔한 풍경이 됐다. 대구 달서구청은 2016년부터 ‘결혼장려팀’을 신설해 배우자를 찾아주는 업무를 하고 심지어 구청 직원들이 이어준 커플이 잘 지내는지도 틈틈이 연락해 확인한다.

불과 6년 전까지, 혼외 관계에 국가가 개입해 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간통죄가 있었다.

노동력 재생산

지배자들에게 대중의 결혼이 왜 이렇게 중요한 문제인 걸까?

이것은 계급사회의 중심부에 있는 핵가족제도가 자본주의 체제의 이익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이혼에 대한 편견이 줄긴 했지만, 결혼은 사람들이 가족제도에서 벗어나기 더 어렵게 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가족은 더는 생산의 단위가 아니다. 가족이 시장에 내다 팔 상품을 만들지 않게 된 지는 오래이지만, 가족은 매우 중요한 상품 하나를 재생산하는 데서 여전히 중대한 책임을 맡고 있다. 바로 노동력이다. 노동계급 가족은 현 세대의 노동자를 돌보고, 무엇보다 다음 세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드러냈듯이, 양육·부양 등이 개별 가정에 떠맡겨져 있기 때문에 가족은 이런 부담에 짓눌려 있다. 이것은 개별 기업들과 국가,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에는 상당한 이득을 안겨 준다.

2014년 통계청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연간 360조 700억 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명목 GDP의 24퍼센트에 달하는 액수다. 물론 각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가사노동을 정확하게 추산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수치는 지배자들이 가족에 기대면서 사회서비스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특히 양육 등 가사노동은 개별 가정의 여성에게 주로 떠맡겨져 있다. 이런 가족의 구실은 여성의 경력 단절, 저임금 등으로 이어지며 각종 여성 차별의 원인이 된다.

물론 결혼식장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입장하는 신부들 중에 자신이 자본의 이익을 위해 혹은 다음 세대 노동자들의 재생산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려서 자신의 삶에서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으로 결혼한다.

그렇더라도 가족이 자본주의 내에서 극히 중요한 경제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여러 경제적 제약과 사회적 압력들이 끊임없이 가정의 문을 두드린다. 그래서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한 가정을 만들겠다는 소망은 종종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되고 가족은 폭력, 학대와 방임으로 얼룩진 끔찍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가족 가족은 개인들에게 사랑과 충만함을 주는 안식처가 될 수 있지만, 개인들의 선택은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의 제약을 받는다 ⓒ출처 abbamouse(플리커)

물론 자본주의 하에서도 가족의 모습은 변해 왔고, 나라마다도 다소 다르다.

유럽 등지에서는 결혼하는 커플이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혼외 출산도 많다. 오늘날 EU 국가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43퍼센트는 혼외 출산이다.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에서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결혼하지 않은 커플 사이에서의 출산이 유력한 사회 현상이었다.

이런 현실의 변화 속에서 동거 커플에도 법률혼과 유사한 혜택을 주는 입법이 해외의 여러 나라들에 도입돼 있다.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들도 있다. 이런 제도가 도입된 것은 진보이고, 한국에도 도입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에서조차 한 사람에게 정착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특히 여성에게)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아이의 아버지와 함께 아이를 기르며 사는 경우가 많다.

결혼 관계 내에 있든 아니든 자본주의 지배자들은 사람들이 이런 관계에 머무르기를 원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데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혼인 관계에 있든 아니든 개별 여성과 남성에게 후대의 노동계급을 양육할 책임이 떠넘겨져 있다.

또한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늘면서 양육과 돌봄에 대한 자본주의 국가의 지원이 늘어 왔지만, 이른바 복지국가로 알려진 선진국에서조차 기본적인 양육과 돌봄의 책임은 개별 가정에 있다. 국가가 제공한 일부 지원조차 긴축으로 말미암아 공격받고 있다.

즉, 많은 변화가 있음에도 이런 변화가 노동력 재생산의 기본적 책임을 떠안고 있는 개별화된 가족 단위를 근본에서 바꾼 것은 아니다. 겉모습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자본주의의 필요는 개인들의 성적 관계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 성적 관계를 맺을지는 순전히 개인이 선택할 문제가 돼야 한다.

선택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들이 개선돼야 한다. 가령, 현재 민주당 정춘숙, 남인순 의원 등은 ‘가족’의 개념에 혼인·혈연·입양으로 형성되는 경우만이 아니라 사실혼 등으로 형성되는 경우도 포함하는 내용의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한 상태다. 이 개정안들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명시하고 있지도 않은데도 기독교 우파들이 이를 “동성결혼 합법화 시도”라며 반발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민주당이 이 개정을 진지하게 추진할지도 지켜볼 문제다. 동성결혼도 허용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

또한 결혼제도로 묶이지 않은 가구가 복지, 연금, 주거 혜택 등에서 제외되는 일이 없게끔 제도를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육에 대한 국가의 대대적인 투자와 장애인, 노인 등에 대한 공적 돌봄, 질 좋은 공공주택 등 노동계급 가족의 부담을 줄이고 생활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조처들을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자본주의 정부는 출산율이 너무 저하하자 양육 등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한부모 가정이나 비혼인 가구에 대한 지원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그럼에도 이런 지원은 대중의 필요에 한참 못미치고 근본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자본주의 이윤의 일부를 사용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동력 재생산 부담을 개별 가족에 의존하는 자본주의에서 지배자들은 대중에게 끊임없이 결혼과 출산을 하라는 압력을 가한다. 돌봄과 양육, 가사 부담이 전면적으로 사회화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자신들의 관계와 삶을 선택할 자유에는 실질적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염병과 경제 위기로 기업주들과 자본주의 국가가 이윤 지키기에 더더욱 혈안이 돼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급 대중과 여성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조처를 성취하려면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에 맞서고 자본주의 자체에도 도전해야 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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