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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재·보선 코앞에 두고 계속 심화되는 문재인 정부 위기

설 전후의 정치 풍경에서 두드러진 것은 문재인 정부의 떨어진 위상이었다. 가뜩이나 민주당이 4월 7일 재·보선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서 위기가 더 커 보인다.

전 환경부 장관이 정치적 관행을 따른 문제로 구속되고, 2월 초 검찰 인사로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표를 낸 것이 여권의 현 상태를 보여 준다. 문재인이 갈등을 수습하려 해도 검찰의 현 정부 수사 때문에 청와대-검찰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문재인이 지명한 대법원장이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나 사퇴 압력을 받고 있고, 현 정부에 불리한 판결들이 잇따라 난 것도 심상찮다.

문재인이 위기 속에서 왼쪽 깜빡이를 또 켜지만, 진짜 발걸음은 기업주들을 향해 있다 ⓒ출처 청와대

이 때문에 문재인은 다급하게 왼쪽 깜빡이를 켜고 있다. 2월 17일 문재인은 고(故) 백기완 선생의 빈소에 직접 조문을 갔다. 진보계의 추모 분위기에 은근슬쩍 끼어들어 진보연하는 이미지를 연출하고 진보계 지도자들에게도 도와 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정보원을 동원한 이명박 정부의 정치 사찰을 폭로해 진보계의 위기감도 자극하려 했다. 이는 또한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었던 현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박형준을 겨냥한 면이 있다.

그리고 문재인이 정부가 나서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직접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대선 당시 공공부문 일자리를 수십만 개 창출하겠다던 공약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질 정도로 흐지부지돼 있었다.

또한 4차 재난지원금을 2~3차보다는 액수와 범위를 늘려서 재·보선 선거 운동이 한창일 3월 중에 지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4월 재·보선

문재인의 위기로 우파가 반사이익을 얻을지 모른다고 걱정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렸던 사람들의 일부가 4월 재·보선에서 민주당 후보들에게 다시 표를 던질 수 있다. 한국의 제1, 2 도시인 서울과 부산의 시장을 뽑는 선거이므로 내년 대선의 전초전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파 야당들이 대선 주자급들을 서울시장 선거에 내보낸 이유이다. 차기 대선 지지율을 보면, 문재인 정부에 실망해 등을 돌린 사람들도 대체로 우파의 재집권은 반기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실제로 추진하는 정책들을 보면, 재·보선 선거 결과가 어떻든 개혁 배신에 대한 대중의 실망과 환멸은 지속될 것이다. 가령 정권의 명운을 걸었다는 부동산 문제는 겉만 공공 공급이고 속은 시장주의적 공급인 대책이다. “노동 존중”을 표방해 놓고 각종 노동개악을 추진했고, 중대재해법은 기업주들을 실질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법(따라서 예방 효과가 없는 법)으로 만들어 버렸다.

안타깝게도 노동계 대표 조직들(민주노총·정의당·진보당)의 지도부들은 이런 실체를 폭로하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을 진보 쪽으로 가져오려는 좌파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어 정치적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17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정의당을 비판했다. “[정의당이] 외연 확장을 의식해 진보적 목소리를 안 내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니 콘크리트 지지층이 되어야 할 노동자, 농민, 빈민이 떨어져 나간다.”

정의당은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지만 선거 판세에 아무 영향도 없다.

진보당도 문재인 정부 비판을 삼가거나 절제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번 재·보선에서 정부에 대한 실망이나 우파에 대한 반감은 정치적으로 표현되기가 더 어렵게 됐다. 이 틈을 타, 반(反)문재인과 중도를 표방한 안철수가 (불안정한) 서울시장 선거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근본적으로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 정의당(과 진보당)의 정치적 존재감을 미미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그 당 자신이 온건한 노선을 채택한 것도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하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위기를 보여 주는 법원·검찰과의 갈등

최근 정부의 위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은 아마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이 이른바 블랙리스트 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일일 것이다. 정권이 바뀐 뒤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명직들을 친정부 인사들로 교체하려고 한 사건이었다. 그 과정의 일부 행위들이 위법으로 판결난 것이다.

대체로 이런 인사 교체는 정권이 바뀌면 서로 인정해 주는 것이 정치적 관행이었다. 사임 압력을 받는 정부 기관, 공기업, 공공기관 임명직 인사들도 (몇몇 예외를 빼고는) 대부분 알아서 물러났다. 주류 언론들도 정권 초 ‘허니문’ 기간에는 웬만하면 이를 비판하지 않는다.

이명박 측근인 박영준이 훗날 회고하길, 대통령이 이렇게 직접·간접으로 임명하는 자리가 2000여 개이고, 대선에 도움을 줘서 챙겨야 할 인사는 5000명 정도 된다. 그래서 5년 임기 동안 적어도 2번은 교체를 해 줘야 논공행상 인사가 소화된다는 것이다.

기소된 지 햇수로 3년 된 사건인데, 이제야 1심 선고가 내려진 것은 ‘관행’이라는 사안의 성격 때문에 법원이 난처해서였을 것이다. 최근 판결에는 여당이 국회에서 사법농단 연루 판사 임성근을 탄핵소추한 것이 영향을 줬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이번 판결이 주목을 받은 것인데, 판결 의도가 무엇이든 정치적 관행을 이행한 김은경의 행위를 진보 측이 변호할 이유는 없다.

사실 임성근 국회 탄핵도 위기에 몰린 민주당이 진보계를 향해 포퓰리즘적 제스처를 취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법 농단과 재판 거래가 드러난 지난 3년간 개혁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다가 이제 와서 겨우 한 명 탄핵으로 생색낸 것이다.

여권이 기대한 효과는 거의 없었다. 조국 사태 이후 문재인 정부 인사들은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거나 유죄 판결을 받을 때마다 마치 자신들이 개혁가라서 모함을 받는 척해 왔다. 이런 속임수는 일부 지지자들에게는 효과를 발휘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역겨운 위선으로 받아들여졌고 이제 냉소와 조롱거리가 됐다.

이런 환멸을 감지한 보수적인 판사들이 보복 판결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칼끝은 단지 청와대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15일 세월호 참사 당시 김석균 해경청장 등 해경 지휘부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기업주 신문 〈문화일보〉에 따르면, “[법원 안에서] 진보진영의 여론을 등에 업은 이른바 ‘민주적 통제’에 맞선 판결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판사 탄핵

임성근 국회 탄핵의 또다른 후폭풍은 김명수 대법원장 사퇴 압력이다. 김명수가 지난해 사표를 내려는 임성근을 말리면서 국회에서 탄핵할 수도 있으니 사표를 내지 마라고 종용한 일을 임성근이 폭로한 것이다. 고위직 판사가 대법원장과 대화하는 걸 몰래 녹음해 폭로한 것은 법원 안에서도 권력 투쟁이 벌어져 왔다는 방증일 것이다. 녹음된 대화는 지난해 총선 직후의 대화였다. 당시 사법 농단 피해자를 자처한 판사 출신 이수진과 이탄희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된 직후 판사 국회 탄핵을 운운할 때였다.

우파 야당은 즉각 김명수와 여당의 사전 교감설을 제기하며 김명수 사퇴 공세를 벌이고 있다. 셈법은 복잡하지만 그들은 밑져야 본전으로 여기는 듯하다. 대법원장 국회 탄핵은 국회 내 세력상 불가능하고, 김명수가 사퇴해도 새 대법원장을 다시 문재인이 지명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명수가 자진 사퇴하면 문재인 정부의 위신이 더 추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 정부도 전 정부나 다를 바 없다는 점을 드러내어 우파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희석시키고, 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재판에도 영향이 미치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사실 사법 농단에는 양승태와 그 수하인 임종헌 등이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 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사찰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김명수는 두 곳 모두에서 회장을 지냈고, 특히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이었다. 그리고 대법관이 아닌 상태에서 대법원장이 된 최초 인물이다. 이런 인사가 대통령 지명으로 대법원장이 된 이후 세력 교체를 시도하다가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이 위안부·강제징용 소송, 전교조, 이재용 등에서 몇 가지 괜찮은 판결을 내리기도 했지만, 특별히 개혁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결국 지금 사법부 내 보수파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문재인 정부가 개혁을 안/못 했기 때문이다. 물론 법원의 체제 수호 기능에 헌신해야 유능한 판사가 되고 고위직 판사가 되는 시스템 속에서 사법부 개혁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파의 부상을 막고 싶으면 민주당과 일부 판사들을 응원할 것이 아니라 계급 세력 균형에 영향을 미칠 독립적인 노동자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한편, 1년여를 끌어 온 청와대-검찰 갈등도 여전하다. 문재인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은 우리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흰소리를 했지만, 신임 법무부 장관 박범계의 검찰 인사도 정권에 대한 수사 방해 성격의 것이었다.

결국 2월 16일, 청와대 민정수석 신현수가 이번 검찰 인사 때문에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문재인이 반려했는데도 또 사표를 냈다. 신현수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첫 검찰 출신 민정수석인데, 그는 대선 이전부터 문재인을 도운 친문 인사였다. 그런데도 검찰 인사와 관련해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이는 정부의 레임덕 대처 방향을 두고 여권 중심부 안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듯하다.

사실 신현수 이전의 민정수석들은 조국 말고는 모두 감사원 출신이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월성 핵발전소 건 등으로 감사원과도 갈등을 빚고 있었다. 사정기관들을 총괄하며 (전통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민정수석 자리를 갈등을 빚은 국가기관들을 억누르고 달래어 통제할 의도로 이용했지만,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청-검 갈등이나 법원 내 쟁투가 보여 주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위기가 단순히 관료들의 반발 때문이 아니라 개혁 배신에 따른 환멸과 이반에서 온 것이고, 우파와 관료들은 이를 이용해 세를 회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운동이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환멸감과 분노를 적극 표현하며 문재인 정부에 저항해야만 우파의 부상에 맞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