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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연대〉 신문이 전망하는 2021년 국내외 정세

여전한 불황 속에서 부채 위기, 불균형, 불평등이 커지다

세계경제는 지난해 크게 위축된 상황으로부터 제한적인 반등을 하고 있다. 국내외 경제 기구들의 전망치를 보면 여전히 과거의 성장 추세를 회복하지는 못할 것임을 보여 준다(그림 1). 이미 2008년 이후 장기 불황을 겪어 온 데다 2017~2019년의 성장률도 전혀 높은 수준이 아니었고, 향후 성장률은 더 낮아지는 것이다. 지난해 말 미국 연준(중앙은행)도 미국의 장기 성장률 전망치가 1.8퍼센트일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2008년 이후 10년 평균이 2.3퍼센트였던 것에서 더 낮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이는 미국 지배자들의 경계심을 키우고 미중 갈등을 격화시키는 요인이다. 그러나 중국도 과거 성장 속도를 회복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지난해 2.3퍼센트 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낙관적으로 보면 8~9퍼센트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그렇다면 2020년과 2021년의 연평균 성장률이 5퍼센트가량인 셈인데, 이는 과거보다 낮아진 것이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상당하다. 백신 접종이 제대로 될 것인가 하는 점이나 변이 바이러스가 미칠 불확실성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윤 중심의 백신 생산과 제국주의 국가들의 패권주의 때문에 신흥국들은 2~3년 후에나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다. 그만큼 세계적인 집단 면역이 형성되는 시기는 늦어질 것이고, 이는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채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주요국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부는 기업 파산을 막기 위해 막대한 돈을 시중에 풀고 재정 지원을 했다. 그 결과 주식과 부동산 등의 자산 거품이 크게 늘어났고, 부채가 급증했다.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2차세계대전 직후 수준으로 높아졌다(그림 2). 빚으로 연명하는 부실 기업들도 증가해 기업 부채도 크게 늘었고, 가계 부채도 증가했다.

부채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 주는 사례 하나는 최근의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시장 불안정이다. 가령 미국의 1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1.4퍼센트로, 지난해보다 높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인데도 (백신 접종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감과 투기 수요 등으로) 최근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기후 위기로 인해) 농산물의 가격도 오르는 등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이 때문에 미국의 국채 가격이 떨어져 국채 수익률이 올랐고, 향후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이 때문에 2월 마지막 주에 시중의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고, 신흥국들에서는 돈이 빠져나가며 주식이 떨어지고 환율이 오르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원화도 2월 26일 15원 올라 지난해 2월 이후 하루 최대폭으로 올랐다. 이는 부채 증가로 인해 금리가 오르며 경제가 불안정해질 수 있음을 힐끗 보여 주는 사례이다. 경제가 회복된다 해도 오히려 부채 위기로 인한 금융 불안정이 커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물가가 가파르게 인상될 것 같지는 않다. 물가는 근본적으로 실물경제 회복과 연관돼 있는데, 특히 미국의 고용지표는 여전히 회복되고 있지 못하다. 미국의 1월 실질 실업률은 여전히 10퍼센트에 육박하고, 장기 실업자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또, 일시적인 경기회복에 따라 물가가 조금 오르더라도 부채 위기로 인한 불안감이 실물경제를 위축시켜 물가 상승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의 모순들을 볼 때 우리는 향후 수년간 매우 불안정한 경제 불황기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1930년대 대불황도 한 번의 침체와 회복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10년간 심각한 경기 후퇴와 일시적인 회복이 반복되며 결국 제2차세계대전을 거치며 회복됐다. 낮은 이윤율과 부실기업 문제(충분한 자본 파괴가 이뤄지지 않음)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낮은 이윤율과 부실기업 문제에 더해 1930년대보다 더 심각한 부채 위기도 존재한다. 따라서 지금도 경제가 회복된다 할지라도 그 회복이 불충분하고, 부채 위험과 미중 갈등 등 제국주의 갈등 심화 속에 일시적이 되어 다시금 심각한 침체를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 경제

한국의 수출은 반도체, 무선통신기기 등을 중심으로 성장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서비스업이 위축되며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의 불균형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반도체, 가전 기업 등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큰 수익을 거뒀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36조 원으로, 2019년보다 30퍼센트 증가했다. 또, 택배, 콜센터, 비대면 온라인 사업 등 일부 업종들은 코로나 특수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대면 서비스업과 관광·항공업 등에서는 심각한 고용 위기가 벌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1997년 말 IMF를 불러들인 공황 이후 최악의 상황을 보인 올해 1월 고용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1월에 취업자는 98만 2000명 감소해, 1998년 12월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숙박·음식점업, 도소매업 등 조건이 불리한 서비스업에서 고용 감소가 특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소기업 노동자가 110만 명 줄었고, 임시 일용직 노동자들도 80만 명 줄어 심각한 고용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실업은 모든 연령대에서 늘었지만, 청년실업은 특히 심각하다. 청년 확장실업률은 27.2퍼센트로,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도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축소할 계획이므로 청년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실업난 속에 여성들이 더 고통받기도 했다. 여성의 고용 감소 폭은 5.2퍼센트로 남성(2.5퍼센트 감소)의 두 배였다.

이렇게 실물 경제의 침체가 심각한데도 지난해 풀린 자금이 자산(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흘러들어 집값과 주가가 치솟았다. 심각한 불황기에 주택난까지 더해지며, 자산 불평등과 함께 평범한 노동자·서민층의 울분은 더욱 커졌다. 이는 정부 지지율 하락의 주요 요인이기도 했다. 또, 가계부채가 증가하며 금융 불안의 위험이 커지고 있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과 고용 위기 대처 문제에서도 친시장적이고 친기업적 행보를 보이며 개혁 염원 대중의 반감을 키워 왔다. 부동산 대책은 2·4 대책에서 나타났듯이 친시장적 재개발 확대 방안을 내놓아, 건설 기업주들과 개발 이익을 노리는 토지소유주들과 투기꾼들에게 이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

고용 위기 대처 방안도 기업들에게 고용 보조금을 지급하며 기업주들이 자발적으로 고용을 늘리게 하려 하거나, 저질 단기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한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심각한 고용 위기와 임금 감소로 고통받고 있는데도 정부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단 한 차례만 지급했다. 새로 준비되고 있는 것도 소상공인들에게 미흡한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고, 노동자 대다수는 배제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재난 지원을 두고도 정부 내에서 이견과 갈등이 드러나 왔다. 정부는 지난해 다른 나라 정부에 비해 소극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펴 왔다. 하지만 정부 부채가 커져가는 상황에서 재정 지출을 어디에 얼마만큼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정부 내에서도 갈등이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전 경제 전망 기사(‘심각한 불황 속에 커져가는 부채 위기’, 강동훈·정선영, 〈노동자 연대〉 345호)는 부채 부담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경기 부양책을 둘러싼 정책입안자들 사이의 갈등은 정치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일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는데, 재난 지원을 둘러싸고 기재부 관료들과 다른 정부 인사들 사이의 갈등은 정치 위기가 발전할 단초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심각한 불황에 대처한다며 정부가 낮은 금리로 경기를 부양하는 과정에서 부실 기업의 문제는 더욱 커지고 있다. 기업을 운영해서 이자도 갚지 못하는 부실 기업이 지난해 상반기 37.3퍼센트로 늘었다. 특히, 중소기업은 절반이 이런 한계기업이다.

이 때문에 산업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정부는 올해 산업발전법 전면 개정에 착수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추진한 데 이어, 쌍용차 법정관리도 진행되고 있다. 향후 항공·관광 산업뿐 아니라 조선·기계·석유화학·자동차 등에서도 구조조정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노동자들의 반발을 키울 뿐 아니라) 지배계급 내 쟁투를 격화시킬 수 있고, 이는 정치 위기를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한진해운 부도를 결정하면서 부산·경남지역 지배자들 다수가 이반했고, 이는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한층 심화시키는 요인이 됐듯이 말이다.

이처럼 기업주와 정부 관료 등 체제의 수혜자들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심각한 불황 속에 노동계급을 향한 공격은 커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산업 간 불균형이 큰 상황(앞에서 언급했음)에서 산업별로 노동자들의 처지와 투쟁의 양상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코로나19 불황 속에 위기에 처한 산업과 기업들에서는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 있다. 반면 택배, 콜센터 등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일거리가 늘어난 산업의 노동자들은 기업의 지급능력이 높아진 상황에서 더 자신 있게 투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런 불균등의 시기에 투쟁이 연결되려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려는 지배자들의 이간질에 맞서 운동을 결속시키는 정치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팬데믹 하의 세계 정치 ⬆️

팬데믹은 지난 한 해를 규정한 쟁점이었고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공산이 크다. 예상을 깨고 백신이 신속하게 개발됐지만 빠르게 보급되고 있지 않다. 막대한 공적자금으로 개발된 것인데도 제약회사들이 지적재산권을 쥐고 막대한 이윤을 내려 하기 때문이다. 부유한 선진국들이 앞다퉈 백신을 사재기하는 동안 후진국은 물론 중진국들은 백신을 구경도 못 하게 생겼다. 그러는 사이 감염력과 병독성이 더 높은 변종이 확산돼 백신이 무용지물이 될 위험마저 있다. 자본주의가 낳은 팬데믹이 역시 자본주의의 논리 때문에 쉽게 끝나지 않을 듯하다.

상시적 재난의 근원: 자본주의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말한 인류와 자연의 “신진대사 균열”이 신자유주의와 결합돼 이제 거대한 재난이 잇달아 발생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자본이 야생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자본주의적 농축산업은 더 위험한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는 배양 접시 구실을 하고, 이런 바이러스가 일단 인간에게 감염되기 시작하면 자본주의의 국제적 통합을 따라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텍사스주 정전 사태도 신진대사 균열과 신자유주의의 파괴적인 상호작용을 보여 준다. 이 사태는 이례적 한파를 낳은 기후 혼돈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능력을 약화시킨 신자유주의에서 비롯했다. 미국에서 전력산업 규제 완화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텍사스주 전력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추위에 대비하는 장치를 설치하지 않았고, 예비 전력을 비축할 방안도 마련하지 않았다.(자본주의가 ‘만일의 사태’에 취약해진 것은 이번 팬데믹 하의 병상과 방역 물자 부족으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오랫동안 과학자와 활동가들이 경고해 온 재난들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1~2년을 돌아보면 팬데믹 외에도, 반년 이상 이어진 호주 산불, 세기말적 장면을 연출한 캘리포니아 산불, 아프리카의 대홍수, 레바논의 폭발 사고 등 거대한 재난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재난의 효과를 완화시키기 위한 저항

이런 재난들은 정치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레바논에서는 폭발 사고가 촉발한 항의 시위로 총리가 물러났다. 팬데믹 대처 실패는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선에서 패배하고, 일본에서 총리 아베가 물러나는 데에도 중요한 요인이 됐다.

물론 팬데믹이 정치에 미친 영향은 균등하지 않았고 모순된 효과를 내기도 했다. 모든 정부가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데에서 어느 정도로 노골적인지는 저마다 달랐다. 팬데믹의 피해는 인구 밀도, 인구 구성, 대응의 신속성, 거리두기 수위에 따라 나라마다 달랐다. 방역에 나선 정부들은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오르기도 했다. 방역을 위해 단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여기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방역은 경쟁적 자본 축적과 모순됨을 드러냈다. 많은 선진국들은 록다운을 뒤늦게 도입하고 성급하게 풀었다가 심각한 감염 확산에 직면했다. 방역 실패는 다시 정부 지지율을 갉아먹는 효과를 냈다.

팬데믹은 기존 불평등을 더 극명하게 만들고 심화시켰다. 일부 기업은 팬데믹 특수로 막대한 이윤을 누렸다. 반면 이 사회의 압도다수인 노동자·서민층은 수입이 감소하거나 일자리를 잃었다.

2019년 말 시작된 세계적 저항 물결은 팬데믹 초기에 잠깐 주춤했지만 이내 다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경찰의 흑인 살해를 계기로 미국 역사상 최대 거리 시위와 항의가 벌어졌다. 여기에 연대하는 시위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져 해당 나라의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로 발전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마크롱의 연금 개악에 맞서 지난 10년 이래 최장 기간 파업이 벌어지다가 팬데믹이 왔을 즈음에는 수그러들었지만, 그후 보건 노동자들이 전투적인 시위와 파업을 벌였고, 연말에는 경찰력을 강화하는 보안법에 맞서 5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2020년 미국을 뒤흔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양당 체제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계급 투쟁이 더 고양돼야 한다 ⓒ출처 Robert Bulmahn(플리커)

태국과 벨라루스에서는 민주주의 투쟁이 벌어지고, 나이지리아에서도 강도소탕특수부대(SARS) 폐지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물론 팬데믹과 그로 인한 고통이 이들 시위의 중요한 배경일 때가 많았다.

팬데믹은 노동자들의 작업장 행동을 주춤하게 만드는 효과를 냈지만, 보건이나 운송 같은 ‘필수 부문’의 노동자들은 싸울 자신감이 생기는 효과도 냈다. 한국의 콜센터 노동자들이나 택배 노동자들이 파업과 투쟁에 나선 것도 이런 세계적 추세의 일부다.

중도가 귀환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계속되는 재난과 경제 침체, 심화하는 제국주의적 갈등 속에서 지배자들은 경제 침체와 재난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고 노동자들을 더욱 공격할 것이다. 그런 만큼 노동자들의 고통이 늘어나고 분노가 더 커지고 사회와 정치의 양극화도 더 심해질 것이다. 정치의 양극화는 좌우 갈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중요한 점은 그런 양극화를 누가 주도하느냐이다.

지난해 미국만큼 그런 양극화를 극적으로 보여 준 곳도 없을 것이다. 대규모 거리 시위와 항의가 분출해, “경찰 폐지”나 “교도소 폐지” 등의 급진적 구호들이 대중을 결집시키는 구호가 됐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트럼프의 비호와 고무 속에서 극우와 파시스트가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펼쳐진 드라마는 결국 주류 세력인 바이든과 민주당의 집권으로 귀결됐다. 이 점은 양극화가 착실하게 죽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팬데믹을 계기로 포퓰리즘이 시험대에서 떨어지고 중도가 다시 귀환해 자본주의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가 제기되기도 했다. 유명한 우파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코로나19 감염병은 어쩌면 포퓰리즘이라는 종기를 도려내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중도계 주류 언론들이 이런 주장을 널리 퍼뜨렸다.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식 때도 그들은 이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일제히 내비쳤다.

언뜻 보기에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일들이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인도·브라질의 강경 우파 정부들은 노골적으로 방역을 거부했다가 급격한 코로나19 확산세에 직면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우파적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이 주도하는 연립정부가 붕괴한 뒤, 유럽은행중앙은행 총재였던 마리오 드라기가 초당적 합의 속에서 총리로 취임했다. 영국에서는 당내 좌파이자 당대표였던 코빈이 2019년 총선에서 패배하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노동당이 다시 우경화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는 자신이 예전에 특권적 ‘카스트’의 일부로 지목하고 비난한 중도좌파 사회당이 주도하는 연립정부의 하위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도의 귀환’은 여전히 취약하다. 예컨대, 트럼프는 비록 대선에서 패배했어도 상당한 득표를 했다. 120년 이래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는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낙선 후보였다. 바이든이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불평등과 일자리, 빈곤에 관해 침묵하는 사이에 트럼프는 일자리·경제 후보를 자처할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일부 노동자들의 표까지 가져올 수 있었다. 한편, 1월 6일 파시스트들이 포함된 극우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사건은 극우의 성장과 위협을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미국 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 시위대 바이든의 ‘정상화’는 극우·파시스트의 성장을 막지 못한다 ⓒ출처 Tyler Merbler(플리커)

좌든 우든 중도 세력들은 지금껏 대중의 고통과 불만을 자아낸 신자유주의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장기 불황의 해결책으로 지배자들 사이에서 채택된 신자유주의는 이제 불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난 지 오래이지만, 여전히 정책 결정 과정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중도 정부들의 이런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분노가 그동안 진행된 사회·정치 양극화의 배경에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수혜자는 우익과 극우가 될 때가 많았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보여 줬듯이 이들도 어떤 일관된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중도파가 수행하던 신자유주의적 공격을 고스란히 이어가려 했다.

기능장애를 겪는 개혁주의

물론 ‘중도의 귀환’은 현실의 한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중도의 귀환’은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대선에서 바이든을 찍어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예비경선 시기에 버니 샌더스는 2016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엄청난 기대와 지지를 얻었지만, 그의 대선 도전은 민주당 기득권 세력의 집요한 노력으로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샌더스는 결국 바이든 지지를 선언해 많은 실망감을 자아냈다.

민주당 기득권 세력은 샌더스의 공약을 지지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바이든이 더 ‘현실적인’ 후보임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미국의 가장 큰 좌파인 미국 민주사회당(DSA)도 이런 ‘현실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것은 그들의 다수가 민주당을 통해서 ‘진보’ 의원들을 공직에 진출시키는 전략을 지지하기 때문이다.(물론 이런 전략의 배경에는 미국 양당제의 거대한 압력이 있다.)

2016년에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킨 이후 DSA에는 급진좌파가 대거 합류해서 이른바 ‘클린 브레이크’(깨끗이 손떼기)론이 세를 더 얻었다. 클린 브레이크론은 샌더스가 또다시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하면 좌파가 민주당과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샌더스가 다시 밀려나자 이런 주장은 ‘현실론’의 무게를 이겨 내지 못했다.

샌더스와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민주당에 남아서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그러려면 민주당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은 내려놓아야 했다. 예컨대,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전국민 단일건강보험(‘메디케어 포 올’) 요구를 내려놓아야 했다.

바이든은 취임 한 달 만에 시리아를 폭격하고 이주 아동 구금시설을 만들었다 ⓒ출처 미 국방부

스페인의 포데모스는 사회당 주도 연립정부에 하위 파트너로 참여했다. 포데모스는 스페인의 광장 점거 운동이 대중의 거대한 분노를 보여 줬지만 실제로 성취한 것은 적다는 문제의식에서 세운 정당이었다. 광장 점거 운동의 ‘반(反)정치’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포데모스가 구현한 정치는 계급적 이해관계가 아닌 담론을 둘러싼 투쟁과 선거를 중시하는 민중주의(좌파적 포퓰리즘) 정치였다. 광장 점거 운동이 가라앉자 선거가 그 운동의 유일한 변화 수단이 됐다. 포데모스 지도부는 우파 정당인 국민당을 막아야 한다며 사회당 지지층에 호소하려 했다. 그러면서 운동과 투쟁의 요구들을 삭감하고 공약을 사회당 수준으로 낮췄다. 연정은 그 논리적 귀결이었다. 이 연립정부는 팬데믹에 대처하는 과정에 기업들의 이윤을 우선시하는 다른 유럽 정부들과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 못했다.

영국에서 ‘중도의 귀환’은 코빈주의(좌파적 사회민주주의)의 좌절로 나타났다. 코빈의 부상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좌파 정치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줬고, 전 세계 좌파들을 크게 고무했다. 그러나 2019년 총선에서 코빈이 이끈 노동당은 참패했고, 이제 새 당대표 키어 스타머가 작정하고 코빈과 그 지지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코빈이 집권해 신자유주의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한 기성 정치세력들, 자본가 계급, 노동당 우파가 똘똘 뭉쳐 코빈을 공격하고, 코빈 자신과 노동당 좌파가 이런 공격이나 브렉시트 등의 문제를 놓고 동요하고 후퇴한 것이 코빈주의의 좌절에 일조했다. 물론 더 근저에는 영국의 계급 투쟁 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코빈 열풍에는 모순이 있었다. 코빈이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선거로 이목이 쏠리면서, 코빈이 총리가 되길 기다리는 수동적 분위기가 생겼다. 코빈은 운동을 대변하는 인물이었고, 코빈의 부상은 운동의 부상을 반영한 것이지만, 이는 운동을 한 단계 더 고양시키지 못했다.

이처럼 선거를 통한 국가 권력의 획득을 우선시하는 좌파적 개혁주의의 프로젝트들이 현재 세계 곳곳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중도의 귀환’은 이처럼 좌파적 대안이 부상하고 있지 못하는 것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전통적 기득권 세력이 불안정하게 되돌아온 광경은 이미 재작년 그리스에서도 볼 수 있었다. 대중의 변화 염원을 배신한 시리자가 결국 전통적 기득권 정당인 신민주당에게 정권을 내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 노동계급의 결정적 패배를 뜻하지는 않았다. 신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그리스의 반파시즘 운동은 정부를 압박해 파시스트 정당인 황금새벽당을 불법화하는 승리를 일궈 냈다. 세계 곳곳에서 극우가 부상하는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계급 투쟁과 좌파들이 그리스에서 강력하다는 유리한 조건 덕분만은 아니었다. 혁명적 좌파인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시리자 같은 개혁주의 세력들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함께 행동을 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좌파 개혁주의 프로젝트가 곳곳에서 난관에 부딪히고 있지만, 팬데믹이 내는 모순된 효과 속에서 대중의 급진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물론 나라마다 그 수준은 불균등하고 각 나라의 저항들도 나름의 약점과 한계들이 있다.

좌파

사회주의자들에게는 현 시기의 시험대를 통과하고 부상할 수 있는 좌파를 건설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에 관한 논쟁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만성적인 위기에 시달려 온 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NPA)는 3월 보르도시(市) 지방선거에서 멜랑숑이 이끄는 좌파적 사회민주주의 운동 ‘불복종 프랑스’와 선거 동맹을 맺어 10퍼센트 이상을 득표하고 시의원 3명을 배출하는 성과를 냈다. 다른 한편, NPA 내의 일부 세력들은 노란 조끼 운동, 2018년 철도 파업, 2019년 연금 개악 반대 파업 등 고양 중인 프랑스의 계급 투쟁과 관계를 맺으면서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NPA 내에서는 NPA를 더 공공연하게 혁명적인 당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이들과, 선거를 겨냥해 멜랑숑과의 연합을 추구하는 올리비에 브장스노 등 NPA 지도부 사이에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영국에서는 노동당 새 대표 키어 스타머가 코빈과 당내 좌파를 대대적으로 공격하면서, 많은 당원들이 여기에 항의해 당을 빠져나갔다(2020년 4월부터 11월 사이에 약 5만 7000명이 빠져나갔다. 당원 수가 10퍼센트가량 감소한 것이다). 이에 대응해 영국의 정설파 트로츠키주의 조직인 영국 사회당(SP)은 노동당 왼쪽의 선거적 대안을 건설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코빈 지지자들에게 지금은 노동당을 나올 때라고 호소하며, 왼쪽의 대안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어떠한 것이든 의회 밖 투쟁을 건설하는 데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혁명적 좌파는 시리자, 포데모스, 코빈 등(좌파적 사회민주주의)이 좌절한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런 좌절들을 지도자의 일탈이나 좌파적 압력의 부족으로 설명하며 면밀하게 진단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선거를 통한 정권 장악이라는 “현실” 정치를 우선시하는 노선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아무리 함께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일정 시점에 이르면 그런 투쟁을 전진시키는 것과 충돌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 노선 자체가 요구 수준을 낮추고 지지자들을 자제시키는 압력을 체계적으로 낳는다.

이런 논의들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상황도 세계적 위기와 양극화라는 전체 그림의 일부로서 봐야 한다. 현재 한국은 대중 자신의 행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개혁주의적인 좌경화는 물밑에서 조용히 진행돼 왔다. 노동자들은 현 집권 세력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민주당 정부가 패배하면 우파가 득세할 것을 우려하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확실하게 결별하고 노동계급의 단결과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고무하는 정치가 필요한 이유다.

모든 선거를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지만, 선거적 노력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하는 것에 종속돼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이루지 못한 것을 소위 말하는 ‘정치’로 대체하려고 하기보다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건설하면서 그 운동이 자신의 힘으로 정치적 목표들을 달성하게 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대중 투쟁이 비교적 활발하게 벌어진 나라들에서도 혁명적 좌파는 어느 정도 비슷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예컨대, 미국노동청의 집계에 의하면 2018년, 2019년에 극적으로 늘어나던 파업 건수는 2020년에 50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이 통계는 1000명 이상이 참가한 파업만 집계한다는 허점이 있다. 팬데믹 초기에는 여러 비공인 파업이 벌어진 바 있으며, 안전 소홀에 항의하는 작은 파업들도 적잖이 있었다. 그러나 그 규모와 영향력을 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만 보고 미국이 계급 투쟁의 퇴조기에 들어섰다고 진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열기가 노동자들의 작업장 행동으로 곧바로 전이된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게다가 미국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은 훌륭했지만 정치적으로는 대체로 민주당에 포섭된 상황이다. 양당 체제의 압력을 극복할 좌파적 대안이 부상하려면 근본적으로 더 강력한 계급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얼마 전 노동자연대가 연 온라인 토론회에서 ‘마르크스21’의 야니스 델라톨라스가 그런 대안은 “단지 몇몇 좌파들이 선언만 한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극우와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을 건설하고 계급 투쟁을 더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투쟁이 비교적 활발했던 프랑스에서도 노동자 투쟁은 불균등했다. 2019년 말 마크롱의 연금 개악에 맞서 벌어진 대규모 투쟁의 주축은 파리교통공단(RATP) 노동자들이었다. 이 투쟁은 파리교통공단 바깥으로도 무기한 파업이 충분히 확산되지 못하면서 더 전진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개혁주의가 분명 작용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른 부문 노동자들이 이 지도자들의 개혁주의를 뛰어넘어 파업에 나설 정도로 자신감이 높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었다. RATP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작업장 내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맞서 기층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져 왔었다. 무기한 전면파업의 주도력도 바로 이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문제는 이런 동력이 다른 부문으로는 충분히 “수출”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민간부문 노동자들은 파업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이것은 그들이 연금 개악에 찬성해서라기보다는 그 부문의 주관적 문제를 반영한 것이었다. 특히, 민간부문 노동조합들은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건설하지 못하고 있었다.(저질 일자리 노동자들이 노란 조끼 운동에서 두각을 보인 집단이었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처럼 노란 조끼 운동도 저절로 일터에서의 저항의 물결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는 이런 국제적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낮은 노동자 활동 수준이나 온건한 세계관 속에 둘러싸여 혁명적 확신을 잃고 사기저하돼서는 안 된다. 인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데올로기 투쟁(선전)이 중요하다. 하지만 팬데믹이 가하는 제약이 만만치 않음에도 기회를 보아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을 강화시키는 정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수행할 수 있는 혁명가들의 단단한 중핵을 건설해야 한다.

증대하는 지정학적 불안정 ⬆️

장기 불황과 팬데믹은 지정학적 질서에도 영향을 준다. 이런 위기들이 체제에 내재된 긴장과 적대를 더 날카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제국주의 갈등으로 지정학적 불안정이 증대해 왔다.

2008년 위기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지난해 세계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직면했다. 주요 선진국들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됐으나 팬데믹 종식까지는 갈 길이 여전히 멀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경제 회복은 느리고 불안하다.

현재 이런 불황들은 각국 정부들 간의 협력적인 대처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세계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자본들 간의 경쟁이 더 치열해진 점도 국가들 간의 긴장을 더 첨예하게 만든다.

세계정치의 지정학적 문제 중에 단연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갈등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경제 애국주의를 표방하며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는데, 지난해에는 팬데믹의 책임을 중국에 돌리면서 갈등을 더 키웠다.

트럼프가 물러나고 바이든이 새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의 대외정책에 변화를 예고했다. 그러나 바이든과 그의 외교·안보라인 인사들은 트럼프 정부의 대중국 강경 노선이 기본적으로 옳았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 국무장관 앤터니 블링컨은 인사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 영역에서 걸쳐 트럼프 행정부가 취한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중국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은 올바른 방향이었다.”

바이든 자신도 2월 4일 국무부 연설에서 외교 정책의 기본 방향을 밝히며 중국을 가리켜 “우리의 번영, 안보, 민주적 가치 면에서 가장 커다란 경쟁자”라고 했다.

오산 미 공군기지로 착륙하는 미군 정찰기 이게 바이든이 말하는 미국의 ‘귀환’이다 ⓒ출처 미 공군

최근 바이든은 반도체·배터리·희토류·의약품 등에서 미국의 공급망을 재검토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우리의 이익이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에 [공급망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면서 말이다. 반도체, 5G 네트워크 등의 분야에서 미국 내 생산을 늘리고, 주요 동맹국들과의 연계로 공급망을 재조정해 중국에 대한 우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계속될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국방부는 전담팀을 구성해 아시아에서의 미군 전략과 태세, 대중국 국방 정책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확장을 저지하는 데 효과적인 미군 배치와 운용이 이번 핵심 검토 사항이 될 것이다. 그리고 커트 캠벨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를 맡았는데, 그는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에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안보대화인 쿼드를 확대해 중국에 대한 군사적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중국은 만만찮은 상대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해외 직접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한 나라가 됐다. 팬데믹 와중에도 중국은 플러스 성장으로 미국과의 경제 격차를 줄였다. 시진핑 정부는 무역전쟁에 대응해 내수 진작과 국내 경제를 보호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시진핑 정부는 미국의 견제에 대응하고, 자국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유지·강화하려고 중국 인근 지역에서 단호하게 행동해 왔다. 예컨대, 지난해 중국과 인도 사이에 국경 분쟁이 불거져 양측 군대의 유혈 충돌이 일어난 것도 이 점과 관련 있다.

중국-인도 국경 분쟁뿐 아니라, 인도-태평양 곳곳에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중국과 일본 해경은 모두 센카쿠(댜오위다오) 일대에서 총기 사용 등의 무력 사용을 더 쉽게 하도록 자체 규정을 바꿨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위험이 잠재적으로 큰 곳의 하나다. 바이든은 자신의 취임식에 주미 대만 대표를 초청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하고, 대만 고위급 외교관을 취임식에 앉힌 것이다. 대만은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 공급망 조정 문제에서 미국의 주요 파트너로 대우받고 있다. 바이든 취임식 나흘 후 마침 미군 항공모함이 대만 남부 해역을 지나자, 중국 폭격기들이 그리로 출격해 미군 항모를 미사일로 타격하는 모의훈련을 벌이고 돌아갔다. 이 훈련은 시진핑이 대만 문제를 놓고 바이든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이처럼 바이든 정부 하에서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적 갈등은 더 심화될 것이다. 불안정이 계속 증대될 것이고, 한반도도 그 영향 아래에 있을 것이다.

미·중 갈등이라는 균열과 함께,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간에 다른 문제들도 불거지고 있다. 예컨대, 미국과 유럽연합 간 통상 분쟁 등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무역 갈등이 악화돼 왔다. 그리고 러시아 문제도 있다. 바이든 정부는 러시아의 대유럽 영향력을 견제하려고 독일과 러시아 간의 가스관 공사에 제재 위협을 가했다.

자국의 이해관계를 지키려고 지역 강국들이 갈등을 키우고 충돌을 벌인 일들이 있다. 지난해 지중해 북동부에서 천연가스 쟁탈전이 벌어져 그리스와 터키가 상대방을 향해 전쟁 위협을 했다. 이 갈등에는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등까지 얽히는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국경 분쟁으로 전쟁까지 벌였다. 여기에는 터키와 러시아가 관여해 각각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를 지원했다. 이런 일들은 경제 침체와 팬데믹 속에 군사적 충돌이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중동은 여전히 각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며 갈등을 빚는 화약고다. 중동에서의 다툼은 매우 복잡하고 어지럽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패배한 데 이어 2011년 아랍 혁명이 패배하면서 중동의 혼란은 매우 깊어졌다. 그런 가운데 터키, 사우디, 이란, 이스라엘 등 지역 강국들이 나름의 야심을 갖고 움직이고 있고, 이것이 미국, 러시아, 프랑스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과 복잡하게 얽혀 왔다. 이런 상황 속에 시리아, 예멘 등지에서 끔찍한 내전과 대리전이 지속됐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 견제 등을 위해 자국의 역량을 중동에 덜 쏟으려는 시도, 즉 오바마와 트럼프 정부가 상이한 방식으로 추진한 그 방향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래서 이란과의 핵협정에 복귀할 의사를 밝혔고, 이란과 사우디 간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는 예멘 내전을 중재하려고 예멘 특사도 임명했다.

바이든은 중동 질서가 안정되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이 ‘안정’은 진정한 평화와는 무관하다. 중동의 패권을 내려놓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이든의 중동 정책에는 모순이 내포돼 있다. 이란과 사우디 등 걸프 연안의 수니파 국가들을 중재하는 한편으로, 역내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필요하면 얼마든지 군사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상대방을 협박할 태세도 갖췄다. 바이든 정부가 사우디 홍해 쪽에 새 미군 기지를 건설하고,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를 공습한 일은 이런 측면을 잘 보여 준다. 바이든 정부도 중동의 혼란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며, 외려 그 혼란을 더 부추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주변 정세도 악화될 가능성을 우리는 계속 경계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가 2017년의 트럼프 정부만큼 “화염과 분노”로 북한을 몰아세우지는 않더라도, 자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관철하려고 북한 위협을 과장하고 대북 무력 시위와 제재를 강화할 공산은 꽤 크다. 그리고 대중국 견제를 위해 한반도에 군사력을 전진 배치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노력도 문제다. 요즘에 미군의 오산공군기지 등에서 미군 정찰기가 출동해 남중국해 등지로 날아가는 게 일상이 됐다. 그만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증대해 온 것이고, 바이든 정부는 이를 더 강화할 생각을 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압박, 한·미·일 동맹 강화 등이 예기치 않은 상황과 맞물려, 한반도에서 뜻밖의 긴장 상황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 정치 ⬆️

올해에도 한국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한 채 진보·좌파 정치세력들도 한국 정치의 주변부에 머무를 것 같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공식정치 위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공식정치 동향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먼저 한국 자본주의를 둘러싼 현 상황을 간단히 살펴보자.

길어지는 경제 침체와 팬데믹 위기 대응이 단연 핵심 쟁점이다. 둘은 상호 영향을 미치며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경제와 팬데믹의 복합 위기 때문에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하지만 재정 지출을 마냥 늘릴 수는 없다는 부담과 경제 전반의 부채 증가 문제도 지배자들은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고용보험 확대를 말하는 것도 구조조정과 대량해고가 필요한 상황에서 사회안전망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사회 불안 요인을 최소화하려고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정부 지출을 늘려도 그 목적은 기업 투자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민간 기업의 투자가 늘고 투자 대비 수익이 높아지는 것이 정부와 기업주가 추구하는 경제 회복 목표다. 기업 투자가 늘어야 취업자도 늘어 사회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도 볼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가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자본 축적이 원활하게 돌아가야 하고, 자본 축적이 중단 위기를 겪지 않고 원활히 확대재생산 순환을 반복하려면 사회 안정과 국가의 확고한 보호가 필수적이다.

장기 침체와 저성장 시대에 각국의 정부가 기업 투자 유도와 유치에 여러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열을 올리는 이유다. 그중 핵심은 투자에 관한 규제 완화와 임금 절감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지도자들에게 개혁을 약속하면서도 각종 기업(투자)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는 일관된 이유다. 직무급제 확산 시도도 그 일환이다.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약속과 달리 더딘 것은 약속 자체가 기만적이기도 했지만, 임금과 고용 등 정규직 노동조건도 낮춰야 하는 상황에서 함부로 정규직화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국제질서 불안정도 지배계급의 걱정거리다. 미·중 갈등은 미국이 주도해 중국까지 포함시켰던 자유무역 제국주의의 세계화 질서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는 이 균열에 더 큰 금이 가는 배경이 됐다. 이 자체만으로도 대외의존도가 큰 수출형 경제에는 리스크 요인이 된다.

그러나 위기는 더 복합적이다. 현재의 불안정은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 지위가 위협받는 현실을 반영한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서 큰 이득을 취하며 성장한 한국 자본주의에게는 그 자체로 위기 요인인 것이다. 중국과의 무역 비중이 더 높다고 해도 간단히 줄타기나 친중 노선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20년간 진척돼 온 중국과의 경제 통합을 되돌리기도 쉽지 않다. 한국 경제는 미일 중심의 시장에 통합되면서 성장해 왔으나, 2000년대 이후 중국과의 경제 통합은 증대돼 왔다. 특히, 2008년 공황 이후 중국 시장의 도움을 받았다. 중국은 한국의 투자처이(자 판매처이고 중국도 한국에 대해 마찬가지)다. 우파 정부인 이명박 정부에서는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같은 말이 유행했다.

그런데 이후 갈등은 점차 고조됐고, 지금은 미·중 갈등이 상수가 됐다. 바이든 정부의 갈등 양상은 트럼프 때의 무역 전쟁보다 더 할 것이다. 지금 반도체의 공급망 재편까지 들고 나온다. 이는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욱 높일 것이다.

이런 국제질서 불안정 속에서 한국 스스로 동아시아 군비 경쟁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이런 배경 요인들은 한국 자본주의에 불확실성과 불안정을 높여서 한국 정치에 양극화 압력을 창출하는 요인들이다. 기업주들은 문재인이 포퓰리즘 전략으로 노동자 투쟁을 억제해 온 것 때문에 정부에 여전히 일정 정도의 지지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대가로 노동개악과 규제완화의 속도가 더뎌서 불만도 커지고 있다. 노동개악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비용이 너무 크다면 기업주들은 태도를 달리할 수도 있다.양극화 압착 속에서 중도파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전략은 갈수록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

문재인의 포퓰리즘 전략

문재인 정부가 2019년 조국 국면에서 초래된 위기에서 급추락하지 않았던 것은 지난해 초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반사이익 효과가 있었다. 특히, 우파가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에 사실상 반대한 덕분에 여권이 총선에서 득을 봤다.

결정적인 도움은 진보계 지도자들의 비판적 지지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는 길게 보면, 민주당 정부가 개혁을 배신해 대중이 등을 돌릴 것이기에 결과적으로는 우파의 재기를 돕는 꼴이 된다.

문재인은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온건좌파) 지도부의 협력을 얻기 위해 그들을 배척하고 공격하기보다는 포섭하는 포퓰리즘 전략을 추구해 왔다. 그 목적은 아래와 같다.

첫째, 사회운동 지도자들이 노동자 대중을 (경제 침체의 대가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게 하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를 위한 국민적 통합의 이름으로 말이다. 이런 전략이 통한 것은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 정의당 지도부, 진보당 지도부, NGO 지도자들 등이 모두 문재인과 (비판적으로) 협력해 개혁을 성취하겠다는 노선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이 개혁을 제공해 줄 거라는 바람은 헛된 것이(었)다.

둘째, 포퓰리즘 전략을 통해 문재인은 왼쪽을 이용해 오른쪽에서 오는 위협도 견제하려고 했다. 부패한 한줌의 세력, 전통적 집권세력이자 강성 우파에 맞서는 국민적 연합을 호소하고 이에 대한 호응을 정권의 강화에 이용해 왔다. 조국 임면 국면에서 검찰 개혁 드라이브나 갑을 담론 활용이 대표적이다.

최근 사례는 중대재해법 사례가 있다. 중대재해법 제정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운동과 진보계(온건좌파) 지도자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개혁 염원(요구)에 진지하게 부응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윤석열 제거 실패로 커진 위기(우파의 공세를 포함해)에서 탈출하는 데 그 지도자들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업주들은 중대재해법을 규제 강화로 받아들였다. 결국 문재인의 중대재해법은 국회 본회의 통과 막판에 법안 이름과 내용에서 대폭 후퇴해 실속이 없는 법이 돼 버렸다. 중대재해법 제정 국면에서 문재인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을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양쪽의 압력에 직면해 실체가 새삼 폭로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문재인을 결정적인 위기에서 구출해 줌으로써 결국은 기업주와 우파 좋은 일만 시킨 셈이다. 이런 맥락에 비춰 볼 때, 중대재해법 통과 후 진보진영 일부가 법이 제정된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변호하는 평가를 한 것이 잘못인 이유다.

노동자들은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도 거듭 제외됐다 ⓒ출처 알바노조

셋째, 결국 위기의 시대에 포퓰리즘을 이용해 저항을 억제해, 이윤 회복에 필요한 정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집권 배경을 보면 더 잘 이해된다. 2008년 세계 대공황 직후 선진국들이 모두 어마어마한 구제금융들을 투입했다. 그리고는 그 부담을 해소하려고 급한 불은 끈 2010년대에는 강경한 신자유주의 긴축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런 배경 속에서 대중의 불만이 자라고,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중도 노선이 지배하던 공식정치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이 배경 속에서 2013년부터 유럽에서 좌파적 개혁주의와 우익 포퓰리즘이 급속히 성장했다.

이 시기에 한국에서는 박근혜가 경제 회복에 실패하고 부패 때문에 탄핵되자 민주당 문재인이 선택됐다. 지배계급은 민주당과 문재인을 통해서 이윤 회복에 필요한 정치적 안정을 이루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선 지도부를 포섭해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박근혜의 실패 때문에 지배계급이 질서 안정(현상 유지)을 위해 문재인의 포퓰리즘 전략을 용인한 것이다.

반우파 민주연합을 향한 전략은 우파의 재기를 돕는다

문재인은 4년 동안 개혁을 줬다 뺐거나, 준다고 해 애만 타게 해놓고 안 주거나, 엉뚱한 걸 주는 식으로 해 왔다. 간판은 노동존중을 걸어 놓고, 노사 양쪽 모두에게 개별 법제화를 약속하고는 최종 결과는 기업주들에게 유리하게 했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중대재해법, ILO 협약 비준이 이 모두 그런 식이었다. 즉, 최저임금을 첫해 올리고 산입범위 개악하기, 노동시간 52시간 제한 강화하고는 탄력근로제 도입하기, 박근혜의 성과연봉제를 폐기하고 대신 성과직무급제 추진하기, 핵발전소 하나 폐기하고 나머지는 계속 건설하기, ILO 협약 비준한다면서 노조법 개악도 함께 끼워넣기, 부동산 세금 조금 늘리고 공급 확대를 발표하기 등등.

지키기 힘든 건 아예 처음부터 ‘뻥치기’로 일관했다. 탄소 줄이기, 페미니스트 대통령, 세월호 진상 규명 등.

위기 때 진보계를 우군으로 동원하려고 ‘토착왜구’ 식의 프레임으로 일본에 맞서는 국민적 연합을 호소하고, 검찰을 앞세운 부패한 구 집권세력에 맞선 민주연합 슬로건도 활용했다. 코로나 위기 극복 국민적 통합을 위한 코드네임은 K방역이었다.

이런 사기극이 통한 것은 진보진영 지도자들이 우파의 귀환을 두려워해 문재인 정부의 배신을 (비판하면서도 결정적으로는) 눈감아준 덕분이었다. 지금 진보계 지도자들의 행동을 보며 과거를 돌아보니, 문재인 정부가 취임할 때 “촛불(혁명) 정부”를 참칭한 것을 그들 대부분이 보아넘겼는데, 이것이 우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말이 아니라 실천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우파보다는 덜 나쁘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약간의 개혁이라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정의당은 촛불 개혁 연합을 주장했다. 박근혜 탄핵 공조의 연장선으로 정의당, 민주당, 새누리당 탄핵파 등의 개혁 입법 공조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당시 20대 국회에서 다수파 개혁 연합을 꾸려야 적폐 청산 개혁을 할 수 있다고 봤다. 그 노선은 지난 4년 동안 완전히 파산했다. 새누리당 탈당파는 국민의힘으로 되돌아갔고, 문재인의 개혁 배신은 대중의 심판 위기에 직면해 있다. “촛불 개혁 연합”의 실패가 정의당이 직면한 리더십 위기의 본질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우파는 사기가 회복돼 재기를 꿈꾸고 있다. 우파의 사기 회복은 선거 여론조사만으로 진단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수십 년간 정권을 잡고 유지해 온 노련한 정당이다. 지금은 전통적 지지층이 분열해 있고 지리멸렬해서 우파 통합 리더십을 세우지 못해 선거에서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래서 기만적인 “중도로의 확장성” 논쟁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우파에 적절한 후보가 없다고 해서 민주당의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특히, 정치 양극화 추세와 진보계 지도자들의 헛발질 덕분에 우파의 사기가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임을 봐야 한다. 게다가 지금도 막상 우파가 정부를 줄기차게 때리면 그것이 반영된다. 부동산 공급 문제나 재난지원금 문제도 그렇다. 특히, 우파 비판이 대중에게 먹혀들 분위기이면 진보진영이 문재인 비판에 침묵을 해 버리니 우파는 더 신이 난다.

그렇다고 해서 우파의 사기 회복이 대중의 사기 저하나 우경화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체 행동이 줄면서, 주저하는 지도부를 압박해 대중 투쟁 건설로 밀고 나갈 만큼은 아니고, 진보적 대안 없이 문재인이 약화되는 것 때문에 혼란스럽긴 해도, 계급의식이 후퇴하거나 자신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직 노동계급의 주력 부대는 본격적인 공세를 아직 당하지 않고 있다. 가령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협력 노선을 추진하다가 대의원대회에서 두 번이나 실패해 결국 불명예 사퇴했다.(그런데 좌파는 사회적 대화 문제에서나 중대재해법 같은 입법 캠페인에서도 노조관료에게서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좌파가 문재인과의 깨끗한 결별을 촉구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택배 노동자들, 코로나 팬데믹하에서도 기회를 활용해 싸우고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다 ⓒ조승진

혼탁스러울 올해 공식 정치

올해는 (판이 커진) 재보선부터 정권에 불리한 요인이다. 문재인 레임덕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문제는 여전히 폭탄이고, 가덕도 공항을 둘러싼 국토부의 반발 등 레임덕 조짐은 분명하다. 대선 국면으로 이동하면 문제는 더 악화될 것이다. 문재인의 여권 내 통제력도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년 대선 결과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우파가 선거에서도 충분히 반사이익을 얻을지 아직 불투명하다. 왼쪽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민주당에게 “미워도 다시 한 번” 투표도 다시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4년보다는 양극화 추세가 강해지는 속에서 대선이 치러질 것이다. 객관적 위기가 심각해 노동자도 기업주도 모두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재인의 정치적 위기의 실체다.

각 정치세력 간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진보·좌파의 정치세력들도 분발해야 한다. 이때 혁명적 좌파의 분석과 주장이 매우 중요하다. 현안과 정부 비판, 자본주의 문제를 잘 결합시킬 줄 알아야 한다. 우파 비판과 민주당 비판을 결합시켜야 한다. 개혁주의의 전략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대안을 내놓는 주장과 논쟁이 강화돼야 한다. 객관적 위기만으로 개혁주의에 조종이 울리고 있다거나 단순한 폭로 식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정의당은 선거에서 수백만 표를 얻고 2016년 이후 선거 영역에서는 진보(계)를 대표하는 정당의 위상을 갖게 됐다. 그러나 최근 정의당은 존재감이 매우 약화돼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정권 심판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이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도 내지 못했다.

최근 1~2년간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과 분명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서 지지층에게도 매력적인 진보적 대안의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의 권력형 부패 혐의가 드러났는데, 정의당이 이를 감싸고 편드는 바람에 우파는 손쉽게 진보·좌파를 싸잡아 위선과 내로남불의 집단으로 비난할 수 있었다.

국회 전체 의석에서 지역구 대비 비례대표 비중을 늘리는 선거법 개정에서 민주당의 지지를 얻어 내려고 정의당은 방어해서는 안 될 것까지 방어한 것이다. 선거법 개정에 당시 자유한국당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그렇게까지 했지만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각각 비례 득표를 위한 위성 정당을 만드는 바람에 선거 성적은 현상 유지에 머물러야 했다.

결국 책임을 지고 심상정 대표가 사퇴하고 김종철 새 지도부가 등장했으나 석 달 만에 대표가 성 관련 추문으로 사퇴하고 결국 3월에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 초기 박근혜 탄핵 공조를 촛불 연합의 이름으로 이어가자고 제안한 바 있다. 정의당 지도부는 이명박, 특히 박근혜 정부에게 정치 체제 차원에서도 반민주적 반동의 성격이 있다고 규정했다. 그래서 박근혜 퇴진 운동 초기에 탄핵을 주장하며 당이 거리로 나왔던 것이다. 국회에서 정의당, 민주당, 당시 새누리당 탈당파 등 3자가 연합해 박근혜를 탄핵함으로써 촛불 염원을 반영했으니 새 정부 하에서도 그 연합을 이어 가야 한다는 매우 소박한(그리고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렇게 “촛불 개혁을 위한 연합 정치”가 돼야 개혁(적폐 청산)을 위한 의회 다수파 형성이 가능해지고, 그에 바탕해야 개혁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이런 노선은 정의당이 주류 사회민주주의(더 구체적으로는 좌파적 포퓰리즘 경향의 개혁주의 정당이라는) 성격에서 비롯했다. 개혁을 위한 반우파 국민연합 전략을 추구해 왔는데, 강령과 실천에서는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과 안보를 지지하며 체제 내 개혁을 추구한다. 정의당은 노조 상근간부층 일부도 기반의 일부로 삼고 있지만, 창당 때부터 계급 정치를 껄끄러워해, 매우 온건하고 계급 타협적인 사회연대전략 노선을 고수해 왔다. 정의당의 포퓰리즘 정치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범국민적 단결에 협력하고자 했을 때도 드러났다.

정의당은 의회에서 여당과 사실상 공조를 해 왔다.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그와 협력도 해서 개혁을 성취하자는 노선이었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의 개혁 배신이 환멸과 이반을 낳으면서 우파의 사기가 한껏 오르고 있고, 새누리당 탈당파는 진작에 자유한국당-국민의힘으로 차례차례 복당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우파적 반대파로 복무하고 있다.

결국 정의당 지도부가 문재인 정부 하에서 추구해 온 전략적 실천은 사실상 파산한 것이다. 이것이 정의당이 겪는 리더십 위기의 본질이다. 정의당의 위기는 지지층이 탈정치화되거나 우경화해서가 아니라 전략과 노선 자체가 실패하면서 온 위기다.

정의당의 위기는 장기화된 경제 침체, 팬데믹 위기, 제국주의적 갈등의 고조에 따른 국제 질서의 불안정 격화라는 배경 속에 있다. 물론 객관적 위기 때문에 개혁주의 정치 운동이 약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정의당의 전략과 노선은 객관적 위기에 걸맞은 급진적 대안을 내놓고 과단성 있게 행동하지 않고 점점 소심해진 데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