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빈곤을 어떻게 역사의 유물로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주제의 성동·광진사회포럼에 참여한 한 생태주의자의 문제제기에 답해보고자 한다. 그는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에 빈곤이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인류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던 멜더스의 ‘과잉인구’론은 2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남아있지만 동시에 이를 반박할 근거도 수없이 축적됐다. 

절망적인 빈곤에 허덕이는 제3세계 나라들, 예컨대 차드, 콩고, 수단, 소말리아, 파라과이, 볼리비아 같은 나라들은 모두 인구밀도가 1평방 킬로미터당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한국 1평방킬로미터당 4백24명).

1997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영양실조에 걸린 5세 이하의 어린이 중 78퍼센트가 식량이 남아도는 나라에 살고 있다. 지금의 곡물 생산량은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하루 3천5백 칼로리를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쓰고 먹어서가 아니라, 자원이 소수에게 집중돼 있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런 점에서 “자급자족”이나 “적게 쓰고 적게 먹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부를 독점하고 있는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는다.

소수가 부와 식량 생산을 독점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건설할 때 빈곤을 뿌리뽑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