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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종사자 보호법 — 사용자들의 책임 회피를 정당화하는 법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법 테두리에서 밀어내지 말라 지난해 정부의 플랫폼 종사자법 규탄 기자회견 ⓒ출처 〈노동과세계〉

3월 18일 민주당 장철민 의원이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위원회에서 발표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대책’과 맥을 같이 한다.

문재인 정부는 플랫폼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하고 사회적 보호를 제공한다면서 정작 노동자성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또 사회안전망 제공도 매우 미흡한 수준에 그치려 한다.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플랫폼 종사자 보호 입법’을 추진한다고 밝혀 노동계는 크게 반발했다.

요컨대 정부는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라고 보면서 최대한 노동법 적용에서 배제하려는 것이다.

이번 장철민 의원 안도 마찬가지다.

첫째,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관계법 전반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와 다른 범주로 규정하기 위해 “플랫폼 종사자”라고 규정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일감을 구하므로 특정 사용자에게 고용되는 기존의 노동자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2020년 정부 조사에 따르더라도 플랫폼을 통해 고객이나 일감을 구하는 사람이 179만 명에 이른다.

이런 플랫폼 노동자들은 결코 개인 사업을 영위하는 자영업자가 아니다. 이들은 사용자의 지휘·감독·통제를 받는 다른 노동자들과 비슷한 조건에 놓여 있다. 예컨대, 우버나 한국의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앱에 자주 접속하지 않거나, 할당 업무를 채우지 못하면 업무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또한 보통의 자영업자와 달리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기가 판매하는 상품(즉, 노동력)의 가격에 대해 결정 권한이 없다. 플랫폼 기업들은 알고리듬을 이용해 노동자들에게 주는 수수료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즉,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 과정이나 결과물도 통제할 수 없고 노동력의 대가를 지급받아 살아가는 다른 노동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 법안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법적 다툼을 해서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의 적용을 인정받는 경우에 해당법을 우선 적용하겠다고 명시해 놨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자가 재판에서 이기는 경우는 드문데다 시간도 매우 오래 걸린다. 심지어 일부 법률의 적용을 인정 받은 경우에조차 플랫폼 기업들은 법원 판결을 수용하지 않고 소송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 종사자법이 도입되면 기업주들이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데나 도움을 줄 공산이 크다.

둘째, 플랫폼 기업주들의 사용자 책임을 부과하지 않고 있다.

장철민 의원 안은 플랫폼 기업을 기본적으로 사용자가 아니라 플랫폼 종사자의 노무 제공을 “중개 또는 알선”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플랫폼 기업들이 자신들은 ‘중개업’ 또는 ‘프로그램 업체’일 뿐이라며 사용자가 아니라고 변명해 온 것을 사실상 수용한 것이다. 지난해 중앙노동위원회가 대리운전노조의 사용자로서 카카오모빌리티가 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고지했지만, 카카오모빌리티는 자신들은 “중개 플랫폼”이라며 교섭을 거부해 온 바 있다.

플랫폼 기업 중 일부에 대해서는 사실상 노무제공 방식이나 보수를 통제하는 “플랫폼 이용 사업자”로 규정하지만 이 때도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부과되지 않는다. 고작 서면 계약서 체결, 부당한 업무 요구 금지, 계약 변경 또는 해지 시 10~15일 전 공지 의무 수준이다.

셋째, 플랫폼 종사자 권익 보호 조항들도 실효성이 없다. 대체로 차별하거나 불이익을 주지 말라는 추상적인 말들을 나열하고 있을 뿐이어서 구체적 강제력을 가지기도 어렵다.

문재인 정부가 그나마 가장 강조했던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보험, 고용보험 적용은 “관계법령에 따라” 적용한다고 명시했지만, 최근 개정된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법령들은 대다수 플랫폼 노동자를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한참 뒤로 미뤄 두었다.

게다가 이번 플랫폼 종사자법에는 정부가 사회보험제도 등을 적용하기 위해 플랫폼 기업에게 정보를 요구해도 “경영상 영업상 비밀”을 이유로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까지 만들어 놨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에게 사회보험 가입 의무를 강제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플랫폼 종사자법을 어길 경우 플랫폼 기업에게 부과되는 과태료가 고작 최고 500만 원 수준이라서, 기업들에겐 부담도 되지 않을 것이 뻔하다.

정부와 여당은 이것이 플랫폼 노동자에게 일정한 보호를 제공하는 최선책인 양 하지만, 이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은 즉각 폐기돼야 한다.

무엇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여느 노동자들처럼 스스로 조직하고 투쟁을 벌여 더 나은 조건을 쟁취할 잠재력이 있다. 여러 나라들에서 우버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여 노동자성을 일부나마 인정을 받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리운전기사, 배달 노동자 등이 노조를 만들고 시위와 파업을 벌이는 등 이런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투쟁을 더 키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