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3월 19일 노동자연대 주최 온라인 토론회 “변희수·김기홍 씨의 비극적 죽음: 트랜스젠더 차별 없는 세상은 가능한가?”에서 발표한 내용을 일부 수정·보충한 것이다.


트랜스젠더 차별이 사라지는 세상을 만들려면 트랜스젠더 차별의 근원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 차별이나 동성애 혐오, 성차별, 인종 차별 등 다양한 차별을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간주한다. 차별이 후진적 사상에서 비롯한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인류학·고고학 등 여러 연구를 보면, 경제적 불평등과 체계적인 차별이 없는 무계급 사회가 있었다. 이런 사회는 인류 역사의 95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트랜스젠더 차별도 인류 역사에서 늘 있지 않았다. 여러 성별의 존재와 표현, 성적 지향이 인정되는 사회들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연구가 많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매우 많은 사회에 성별 다양성을 표현하고 그 성별에 따라 산 사람들이 상당히 있었다는 상세한 기록이 있다.

사실, 출생시의 성을 바꾸고 싶어한 사람은 인류 역사 내내 매우 많았다. 이런 것은 이성의 복장으로 여겨지는 것을 착용하거나 외모를 그렇게 바꾸거나 혹은 반대 성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급이 없는 사회에선 이런 성역할 바꾸기가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130개가 넘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에서 타고난 성과 상관없이 성역할을 하는 남성과 여성이 존재했다는 조사가 있다. 성이 남녀 두 개가 아니라 세 개, 네 개 혹은 그 이상이라고 인정하는 부족도 많았다.

라코타족에 ‘윙트’, 샤이엔족에는 ‘히맨히’, 크로족에 ‘바드’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절반 남성, 절반 여성” 같은 뜻을 나타낸다. 일부 북미 원주민은 이런 사람들을 ‘두 영혼의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상담사, 이야기꾼, 교사, 치료사 등 사회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트랜스젠더 차별의 근원

트랜스젠더 차별은 역사의 특정 시기인 계급 사회에서 생겨났고 자본주의에서 강화됐다.

계급 사회에서 성역할을 규정하고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주요 제도는 가족이다. 계급 사회에서 가족은 지배계급에게는 재산을 물려주는 제도이고, 피지배계급의 가족은 다음 세대 노동인구를 기르는 구실을 한다. 배타적이고 남성이 우위인 가족 제도는 계급 사회의 등장과 함께 발전했고, 계급 사회에서도 사회의 생산 방식에 따라 그 형태가 다르다.

역사에서 감춰진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찾아내며 트랜스젠더 차별의 기원을 밝힌 《트랜스젠더 투사》라는 책이 있다(원제는 《Transgender Warriors》로 한국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책의 저자인 레슬리 파인버그는 2014년에 사망한 미국의 트랜스젠더 활동가이자 레즈비언, 마르크스주의자였다. 1996년에 나온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트랜스젠더 차별을 분석한 선구적인 저작이다.

파인버그는 이 책에서 계급 사회가 등장해 남성 우위의 가족 제도가 발전하면서 성역할이 더 엄격해지고 성별 범주가 더 협소화되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비난도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이런 분석은 엥겔스가 여성 차별의 기원을 밝힌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1884)에서 사용한 역사유물론적 방법을 따른 것이다. 계급 사회 이전엔 성별 분업이 있어도 이것이 사회적 지위나 권력 차이로 이어지지 않았다. 엥겔스는 인류학자 루이스 헨리 모건의 최신 연구를 토대로 계급 사회가 등장하면서 남성 우위의 일부일처제가 생겨났고 그 결과 여성의 지위가 하락했다고 설명했다(자세한 내용은 본지 344호 기사 “엥겔스가 파헤친 여성 차별의 기원” 참조).

계급 사회가 등장해 성역할 구분이 엄격해지면서 크로스드레싱(이성 복장 착용) 등 성별 구별을 흐리는 행동이 비난받고 금지되기 시작했다. 레위기와 신명기 등 일부 성경에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신의 뜻이 아니라 소수의 지배계급(남성)이 자신의 부를 보호하고 대다수 사람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자 만든 것이다.

변화는 여러 고대 사회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났다. 기원전 11세기에서 기원전 7세기에 무역과 정복으로 상당한 잉여생산물이 축적됐다. 이제 여성의 성을 엄격하게 통제했고 결혼 관계 안에서만 성관계하고 아이를 낳도록 했다. 이와 함께 젠더 다양성을 표현하는 행동이 더 배척되기 시작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한동안 트렌스젠더 표현이 지배계급에게 허용됐다. 그것이 귀족에게 위협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배계급 내에서 파벌 싸움이 일어나자, 성별 규범을 벗어난 표현은 때때로 편리한 정치적 비난 대상이 됐다.

342년에 로마의 법은 “남자가 여자의 방식으로 결혼”하는 것을 강하게 처벌받는 범죄로 규정했다. 390년에는 “천하게 자신의 성을 포기하는 남성”을 “최고 형벌”(화형)에 처한다는 황제의 칙령이 발표됐다.

지배계급의 일부인 중세 교회는 트랜스젠더를 악마화하면서 박해했고, 크로스드레싱과 트랜스젠더 행동을 농민 예식과 축하 행사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중세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종종 트랜스젠더에 대한 체계적인 박해가 있었다. 영국은 인도와 여러 아프리카 나라들을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그곳의 다양한 성별 표현과 성적 행동을 범죄시하며 탄압했다.

자본주의와 핵가족

오늘날의 트랜스젠더 차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 근원을 두고 있다.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가족은 큰 변화를 겪는다. 공장 제도가 등장하면서 생산과 노동력 재생산이 분리됐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처음에는 노동계급 가족이 해체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지배계급은 자본을 계속 축적하려면 노동력 재생산이 안정적으로 이뤄져야 함을 깨닫게 된다. 19세기 중엽 이후 노동계급 가족이 다시 확립됐는데, 지배자들은 이성애적 핵가족 모델을 찬양했고 여러 법을 만들어 성 행동을 강력히 규제했다.

자본주의에서 가족의 핵심 기능은 노동력 재생산이다. 나날의 노동력 재생산과 미래 세대의 노동력 재생산이 개별 가족 단위에 맡겨져 있다. 개별 가정에서 양육, 간병, 노인 돌봄 등이 주로 여성에게 맡겨져 있는데, 이런 여성의 무보수 노동을 통해 지배계급은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가족 제도는 지배계급에게 비용 절감뿐 아니라 보수적인 생각을 불어넣어 노동계급과 사회를 통제하는 데서도 중요하다. 그래서 지배계급은 고정된 성 역할이 마치 남성과 여성의 본성인 것처럼 설파한다.

이렇게 가족 제도에 기반을 둔 엄격한 성역할과 규범 강요는 트랜스젠더뿐 아니라 여성, 동성애자 등 다양한 차별을 낳고 성적 자유를 억압한다.

그러나 양육과 돌봄이 개별 가정 단위로 이뤄져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고 얼마든지 사회 전체가 책임질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이전 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력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문제는 소수의 지배계급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런 잠재력을 사용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트랜스젠더 해방을 이루려면

김기홍 씨와 변희수 하사의 죽음은 매우 안타깝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기보다는 트렌스젠더 차별에 반대하는 행동에 다시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리는 이런 항의를 지지하면서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옹호하는 주장을 더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

국방부 앞에서 열린 변희수 하사 추모 촛불 행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남긴 메모 ⓒ이미진

트랜스젠더는 유난히 천대받는 사람들인데, 사회운동 내에서도 트랜스젠더 차별적인 태도가 종종 나타난다. 그래서 트랜스젠더 차별에 효과적으로 반대하려면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과 보수적 시각에 반대해서 논쟁을 잘 하는 게 중요하다.

페미니즘 일각에서는 트랜스젠더 차별에 맞선 투쟁을 여성 차별에 맞선 투쟁과 분리시킨다. 그러나 트랜스젠더와 여성 차별의 근원은 모두 자본주의 체제에 있고, 트랜스젠더 차별이 강화되면 보수적인 성역할과 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화돼 대다수 여성에게도 해롭다. 차별은 우리 편을 갈라놓고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약화시키기에 모든 차별에 반대해 함께 싸워야 한다.

우리는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면서, 동시에 트랜스젠더 차별의 근원인 자본주의에도 맞서야 한다. 투쟁을 통해 개혁을 성취할 수 있지만,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해방이 자본주의 안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자본주의에서 가족 제도는 중요한 경제적·이데올로기적 구실을 하기에 지배계급은 가족 제도를 지키려 하면서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차별을 계속 부추긴다.

자본주의를 뒤엎고,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운영되는 사회주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람들에게 성별 이분법이 강요되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성별과 섹슈얼리티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계급의 중요성

자본주의를 폐지하는 혁명적인 변화를 이루려면 노동계급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사회 집단이 지니지 못한 특별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들의 이윤은 일터(공장, 사무실, 병원, 학교 등)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데서 나온다. 노동자들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만, 자신이 만든 가치의 극히 일부만 가져간다.

이런 착취 때문에 노동자들의 삶은 고달프다. 하지만 착취 때문에 노동자들이 지배계급에 도전할 수 있는 잠재력도 생긴다.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단하면 이윤 생산이 중단된다. 파업 등의 방식으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투쟁하면 개별 자본가나 지배계급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동계급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의식이 다 진보적이기 때문이 아니다(노동자들의 의식은 불균등하다). 노동자들이 각종 차별의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를 파괴할 수 있는 객관적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지배계급은 소수이고, 대다수가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이 단결된 투쟁을 벌이면 지배계급은 위협받는다. 그 때문에 지배계급은 언제나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자 중요하지 않은 차이들(성별, 성적 지향, 민족, 피부색, 종교 등)을 부각하며 이간질한다.

그래서 차별에 맞선 투쟁은 노동계급의 단결을 이루는 데서도 매우 중요하다.

혁명적 변화뿐 아니라 자본주의 내에서 실질적인 개혁을 성취하기 위해서도 노동계급의 힘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장기 불황의 시기에 지배계급은 대중에게 이로운 개혁을 주지 않으려 할 뿐 아니라 기존의 성과조차 공격한다.

이런 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서고 개혁을 성취하려면 노동계급의 대중 투쟁이 중요하다. 대중 투쟁만이 실질적 개혁을 성취할 수 있고, 대중의 자신감을 높이고 의식도 바꾼다.

역사적으로 성소수자의 권리가 가장 크게 향상됐던 때는 노동계급의 정치 투쟁이 고양될 때였다. 러시아 혁명이 그 점을 가장 잘 보여 준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과 성소수자 해방

러시아 혁명을 이끈 볼셰비키 정당은 차별에 맞선 투쟁을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필수적인 일부로 여겼다. 볼셰비키의 지도자 레닌은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조합의 서기가 아니라 인민의 호민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으로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뒤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볼셰비키가 이끄는 혁명 정부는 결혼과 성행위에 관한 낡은 법률을 폐기했다. 동성애는 합법이 됐다. 당시 독일은 동성애를 5년형, 영국은 종신형에 처하던 상황이었다. (당시 트랜스젠더와 동성애 사이의 개념적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소비에트 정부는 동성애자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대한 제한을 없애, 동성애자들을 국가 기관에 고용했다. 공공연하게 게이로 알려진 게오르기 치체린은 1918년에 외무인민위원(지금의 외무장관)으로 임명됐다.

이혼도 쉬워졌다. 복잡한 절차 없이, 한쪽의 요구만으로도 이혼이 가능해졌다. 1920년에는 낙태도 합법화했다. 볼셰비키는 진정한 평등이 가능해질 수 있도록 개별 가족이 짊어진 양육과 가사를 사회화하려고 노력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성 해방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1921년 페트로그라드에서 열린 게이 결혼식에 크로스드레싱을 하고 온 사람들 ⓒ출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도서관

1923년에 지도적 볼셰비키인 그리고리 바트키스는 〈러시아에서의 성 혁명〉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여기에 새로운 사회의 접근법이 잘 나타난다.

“소비에트 법률은 …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사회와 국가가 성 문제를 절대 간섭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

“유럽의 법률이 사회 도덕에 어긋난다고 규정했던 동성애, 소도미 등 성적 만족을 위한 다양한 행위를 소비에트 법률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

안타깝게도, 러시아의 성 혁명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자 14개 외국 군대가 러시아를 침략하고 국내의 반혁명 세력들이 내전을 일으키면서 혁명은 궁지에 빠졌다. 다른 나라에서 노동자 혁명이 패배하면서 러시아 혁명은 고립돼 쇠퇴했고 결국 패배했다. 1920년대 말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은 서방과 경쟁하며 국가자본주의적 축적을 급속히 추진하며 자본주의 가족 제도를 다시 확립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 스탈린은 아이를 많이 낳은 여성에게 상을 줬고, 낙태와 동성애를 다시 불법화했다. 이것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잃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직후 일어난 급속한 진보는 노동계급 혁명이 성 해방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 준다.

트랜스젠더 차별에 맞선 연대와 혁명적 조직의 필요성

차별받는 집단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다. 이런 투쟁이 성공하려면 연대가 필수적이다. 그런 연대를 특정 차별을 받는 사람들로 제한하는 것은 비효과적이다. 노동계급의 광범한 대중에게 지지를 호소해 강력한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지배자들에게서 양보를 얻어내고 보수적 편견에 효과적으로 도전할 수 있다.

지난 대중 반란과 혁명이 남긴 교훈을 살펴보면,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유지하고 마침내 승리하려면, 혁명적 조직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혁명적 조직은 투쟁을 건설하고 각각의 투쟁을 연결하며 혁명적 사회주의의 전망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배워 오늘의 투쟁에 적용하고 미래의 투쟁에 대비한다.

우리는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혁명적 조직도 건설해야 한다.

트랜스젠더 또는 성소수자의 투쟁은 계급투쟁과 별개가 아니다. 트랜스젠더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벌이는 투쟁과 분리할 수 없다. 트랜스젠더의 대다수가 노동계급의 일원이기에 노동계급이 겪는 다양한 문제(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 장시간 노동, 주택 부족, 연금 부족 등)를 겪는다.

장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문재인 정부와 여당, 보수 야당들은 모두 노동계급의 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지배자들은 착취를 강화하면서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자 보수적인 생각을 부추기며 차별도 강화한다.

트랜스젠더 차별이 사라지는 사회는 가능하다. 차별에 맞선 투쟁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의 일부로 여기며, 단결된 투쟁과 혁명적 조직을 함께 건설해 나가자. 노동계급의 투쟁이 발전해 자본주의를 전복한다면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