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소련이 붕괴한 지 딱 30년이 되는 해다. 30년 전 서방 정치인과 언론은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기고만장했다. 물론, 오늘날 자본주의가 팬데믹·불황·기후 위기의 3중 위기를 겪고 있는 시대에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라는 주장은 완전히 빛이 바랬지만 말이다.

《다시 보는 러시아 현대사 ― 혁명부터 스탈린 체제를 거쳐 푸틴까지》 마이크 헤인스 지음, 책갈피, 520쪽, 22,000원

이런 위기와 혼돈의 시대에 더 나은 세계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가능한가, 사회주의는 여전히 인류의 희망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물음이다. 따라서 (소련 국가가 사라졌어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체제의 성격을 따져 보는 일도 여전히 피할 수 없다.

사회주의라는 대의에 공감한다 해도 개혁주의 운동의 실패와 부패 경험에 따른 ‘혁명은 부패하기 마련 아닌가?’ 하는 물음, ‘중앙집권적 정당이 통제하는 혁명이 어떻게 되는지를 소련이 보여 주지 않는가?’ 등의 물음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아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 북한 등이 지금도 건재하다.

《다시 보는 러시아 현대사》 저자인 마이크 헤인스는 소련(러시아)의 역사를 살펴보며,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았으나, 이후 반혁명이 일어났음을 풍부한 근거를 통해 보여 준다. 소련이 자본주의의 한 변형태인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였음을 여러 역사적 사실과 분석으로 입증한다는 점은 이 책의 주요한 장점이다.

혁명의 변질

1917년 2월에 혁명으로 러시아 차르 체제가 붕괴했다. 곳곳에서 노동조합, 공장위원회, 적위대 같은 노동자 조직이 생겨 났다. 농민과 병사들도 행동에 나섰다. 무엇보다 소비에트, 즉 평의회들이 등장해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됐다.

혁명 후 임시정부가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 민중주의자들로 구성됐는데, 혁명의 요구를 실현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러시아에서 자본주의로는 나라의 근본적 문제들을 해결할 현실적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 오히려 [공장]위원회와 소비에트라는 새로운 기관들 위에 대안적 권력의 토대가 세워져야 했다.(69쪽)” 9월 이후로 소비에트는 볼셰비키를 지지하는 쪽으로 쏠렸고, 10월에 무장 봉기로 소비에트가 임시정부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1917~1923년에 국제 혁명이 실패해, 혁명 러시아는 국제적으로 고립됐다. 설상가상으로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후원을 받은 반혁명 세력이 궐기하면서 국내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혁명 러시아는 분투했지만, 사회적·경제적 붕괴를 피할 도리가 없었다.

볼셰비키(공산당) 정부는 국내에서도 고립되기 시작했다. “[내전과 봉쇄로 인한] 끔찍한 사회적·경제적 붕괴가 혁명의 주역인 노동계급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이제 조직자, 행정관리, 적군 군인 등의 당이 돼 버렸다.(120쪽)”

고립된 소련은 장기적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경제적·군사적 압력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한 가지 해결책은 군사적 준비를 하는 동시에 혁명의 확산을 계속 지원하며 국제 혁명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 그러나 국제 혁명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을 포기한다면, … 소련은 전통적인 군사적 위협에 전통적 방식으로 대응하는 전통적 국가처럼 행동해야 할 것이었다.(124~125쪽)”

이런 가운데 스탈린을 비롯한 관료층이 성장했다. 관료층 부상으로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전망도 더 확실히 바뀌었다.” 1925년에는 소련 공산당 협의회가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의 승리는 한 나라에서 무조건 가능하다”는 내용의 일국사회주의 전략을 결의했다. 관료층에게는 ‘위험한’ 국제 혁명보다는 관료들의 기량과 능력에 진보가 달려 있다는 (즉 국가·당 관료들의 이니셔티브를 정당화하는) 일국사회주의론이 더 매력적이었다.

곧 결정적인 전환점이 왔다. 1927년 영국 등과 전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소련에서 고조됐다. 관료들에게 중요한 것은 군사적 방어를 위해 중공업 기반을 빠르게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느린 경제 발전으로는 도무지 그 과제를 이룰 수 없었다.

반혁명

그래서 1928년부터 본격적으로 위로부터 반혁명이 일어났다. 스탈린은 군사력 증강을 위해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했다. 공업 투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중공업에 집중됐다. 사람들이 먹고 입을 소비수단의 생산이 생산수단 생산에 체계적으로 종속된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경쟁에 따라 우선순위가 정해졌기에,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계획 자체가 없었다. 기껏해야 어설픈 중앙집권적 지령이 있었을 뿐이다.(173쪽)”

1928~1929년에 진행된 변화로 분명 소련 경제는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혁명의 유산은 모두 파괴됐다. 즉, 스탈린이 주도한 ‘사회 혁명’은 소련의 사회관계를 크게 바꿨다. 공산당 상층과 기층 모두에서 스탈린에 반대할 사람들이 모두 제거됐다. 무엇보다 노동자·농민·소수민족 등 대중이 스탈린 반혁명에 희생됐다.

1929년에 시작된 강제 집산화로 농민들이 대거 희생됐다. 노동자들도 스탈린의 ‘사회 혁명’에 종속됐다. 경영자의 권력이 강화되고 노동법이 노동자들에게 가혹하게 바뀌었다. 성과급 도입, 스타하노프 운동 등으로 착취가 강화됐다.

소련의 노동생산성 향상 캠페인에 이용된 스타하노프

1928년 이후의 소련은 극단적 억압에 의존했다. 억압기구가 강화됐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는 사람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흔적마저 없애고 권력을 장악해 과거와 체계적·인적으로 단절하는 과정을 통해 수립됐기 때문에 그 방식은 공포정치일 수밖에 없었다. 즉, 스탈린 시대의 공포 정치는 1917년 혁명의 전통에서 비롯한 게 전혀 아니다. 도리어 자본축적을 위해 (제도와 정신, 사람 모두에서) 혁명적 전통을 파괴하는 구실을 했다.

당시 공포정치 수준은 처형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다. “정권이 규정한 명백한 정치범죄 혐의로 처형당한 사람은 79만 명이고 대부분 1937~1938년에 집중돼 있다(237쪽).”

이처럼 1928년 이후의 소련 사회는 1917년 혁명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였다. 노동자 민주주의는 껍데기조차 사라졌고, 서방 자본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가 됐다.

1917년 혁명의 성과를 남김없이 파괴한 스탈린 체제가 공포정치에 의존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36년 모스크바. 앞 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이오시프 스탈린)

계급

옛 소련은 계급으로 분단된 사회였다. 이 책에는 소련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에 대한 풍부한 설명이 있다.

일부 좌파는 옛 소련 사회에 특권과 엘리트층이 존재했음을 부인하지는 않으나, 서방과 같은 지배계급이 존재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사적 소유와 상속이 없었다는 것을 주된 근거로 든다.

그러나 법률적 상속 절차가 없다고 해서, 계급 지배와 착취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28년 이후 소련 지배계급의 윤곽을 추적할 때는 생산수단이 어떻게 통제됐는가 하는 이런 일반적 의미에서 출발해야 한다.(278쪽)” 관료들은 국가자본가로서 생산수단을 지배하며 권력과 특권을 누린 반면, 노동자와 농민은 생산수단에 종속된 채 가차 없는 축적 압력에 놓여야 했다. 이런 구조적 관계가 소련 지배계급 권력의 토대였다.

소련 지배계급의 계급 대물림은 직접적인 상속보다는 더 광범한 공식·비공식 제도에 의지했다. 예컨대, 특권적 교육 기회가 상류층 자녀들에게 유리하게 주어졌다. 요컨대, 상류층 자녀들은 부모와 비슷한 사회적 지위에 오르는 데서 훨씬 유리했다. 부모가 숙청을 당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소련에서 “계급 간 소득 격차나 소비의 격차는 다른 나라들과 매우 비슷했다.(292쪽)”

노동계급의 실질임금은 상당히 억제됐다. 최저임금은 공식 빈곤선보다 낮았는데, 10퍼센트의 노동자들은 이조차도 받지 못했다. 산업재해율과 산재 사망률은 너무 높아서 오랫동안 비밀이었다.

‘노동자 국가’ 소련은 신화에 불과했다.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올린 소련에서 노동자들은 화장지, 비누, 생리대 같은 생필품 부족에 시달렸다.

전환

한때 잘 나가던 소련 경제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모순에 봉착해 점차 위기에 빠지게 됐다. 1970년대에 세계 경제는 이윤율 저하로 침체에 빠졌는데, 소련도 예외가 아니었다. 게다가 소련은 구조조정을 추진하거나, 더 큰 서방 제국주의 진영의 시장으로 깊숙이 통합될 때의 이점을 활용하기도 어려웠다.

위기감 속에 1980년대 소련 지배자들은 위로부터의 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위기는 가라앉지 않았고 지배계급 내 보수파와 개혁파 사이에 갈수록 틈이 더 벌어졌다. 1989년 광원 대파업 같은 저항이 아래로부터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체제의 위기를 심화시켰다.

결국 1991년 소련 체제는 붕괴했다. 일당국가는 무너졌고, 민족 억압에 기반했던 연방의 해체는 여러 민족 공화국의 건설로 이어졌다. 만약 소련이 모종의 사회주의였다면, 노동자들은 이 체제를 방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1991년 소련 체제의 종말이 찾아왔을 때 미래에 관한 온갖 혼란이 있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구체제를 방어하려는 열정이 사람들에게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324쪽)”

러시아 경제는 세계 시장에 급격히 개방됐고, 국내에서는 급진적인 시장 ‘개혁’이 추진됐다. 이는 시장 자본주의로의 전환, 즉 옆으로 가는 게걸음질일 뿐이었다. 지배계급 구성의 변동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노동계급을 비롯한 대중은 이 전환의 부담과 혼란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오늘날 러시아의 빈부 격차를 보여 주는 장면(명품 백화점 앞 노숙자) ⓒ출처 Sarah Leo(플리커)

옛 지배계급 성원 대다수는 살아남았다. “공산당 노멘클라투라의 80퍼센트가 새로운 러시아에서 최고위급이나 그 바로 아래 자리로 이동했다(410쪽).” 소련 해체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퇴보였다면, 기존 지배층도 새로운 세력으로 교체됐을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러시아에서는 옛 지배계급과 새 지배계급의 연속성이 뚜렷했다. 이는 1991년 전후로 사회의 성격이 근본에서 바뀌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국가자본주의론의 중요성

끝으로 한국어판을 위해 저자인 마이크 헤인스가 새로 써 준 논문 수준의 후기가 포함돼 있다. 이 글은  최근 20년 동안 푸틴 체제 아래서 일어난 주요 변화들을 다루고 있다. 국내 주류의 러시아 현대사 관련 도서들에도 없는 내용이다.

저자는 오늘날에도 러시아뿐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 체제를 이해하는 데서 국가자본주의론이 유용하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의 세계이고, 오늘날 경제에서 국가 부문은 상당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신문 지면에 다 소개할 수는 없었지만, 이 책은 소련 국가자본주의의 역사를 풍부한 자료와 근거로 다루고 있다. 위기의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인류가 해방된 새로운 세계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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