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공급이 지연돼도 속수무책인 상황이 계속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코백스 측에서 약속한 백신 물량이 줄고 공급 시기도 늦춰졌다며 2분기 백신 접종 일정이 미뤄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제약사들과 직접 계약한 백신들은 세계적 공급난에 찔끔찔끔 들어오는 수준이고, 미국과 유럽 등 주요 백신 생산국들이 수출 제한 조처를 취해서 추가 물량이 언제 들어올지도 알 수 없게 됐다.

지난해 말 백신 도입에 뒤늦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정부가 부랴부랴 확보했다던 백신 대부분은 아직 정식 계약도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이 직접 통화해 확보했다는 노바백스의 백신은 최근 원료 공급 부족으로 유럽연합과의 계약도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는 백신 공급 실패가 전적으로 세계적 백신 공급난 때문인 것처럼 굴지만, 정부 자신의 무능과 무책임이 더 큰 원인이다.

백신 개발·제조업체들이 이미 개발 단계에서 선주문을 받으며 공장 건설·증설을 시작했으므로 문재인 정부가 일찌감치 구입 계약에만 나섰어도 지금처럼 손가락만 빠는 신세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럽연합 지배자들처럼 문재인도 비싼 값을 치르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며 백신 구매 협상을 미루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그렇다고 달리 대안을 준비해 둔 것도 아니다. 중국과 인도 등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보다 낮은 나라들은 물론이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쿠바도 백신 개발 완료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재인은 G7 회의에 초대받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자화자찬하면서도 백신 개발은 내년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백신 주권” 운운하는 허세와 달리 코로나 백신 개발에 별로 투자하지도 않았다. 정부가 2월 19일 발표한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범정부 지원위원회 제9차 회의’ 결과를 보면,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에 1115억 원을 썼고, 올해에는 1528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그중 별로 기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치료제 개발에 쓴 돈을 제외하면 지난해 실제 백신 개발에 투자된 돈은 400억 원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국방부가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에서 5년 동안 군사비에 301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한 것과 비교해 보라.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부터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강조했지만, 백신 같은 필수재 개발·공급이 아니라 기업 이윤에 도움이 되는 투자와 규제 완화만 해 왔다.

최근 인도 정부는 국내 물량이 부족하다며 인도에서 생산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수출을 중단했는데, 선진국 정부들과의 무역 분쟁을 감수하고서라도 국내 백신 공급을 서두르겠다는 의지를 보여 준 셈이다.(물론 인도 정부의 전반적인 코로나 대응은 낙제점이다.)

이런 의지만 있다면 한국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의 백신을 위탁 생산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의 생산 설비를 크게 늘려 국내외 공급을 늘릴 수도 있다. ‘아시아 최대’의 백신 생산 능력을 갖췄다는 GC녹십자나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동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백신 공급 실패는 열강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세계 무역 질서와 지적재산권을 지키기로 선택한 결과이자 대중의 필요보다 기업 이윤을 앞세운 결과일 뿐이다. 그러면서 자국 노동계급은 팬데믹과 불황의 늪에 허우적거리도록 방치하고 있다.

G7 회의 참석을 위해 백신 접종하는 문재인 정부의 백신 공급 실패로 집단면역 목표는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다 ⓒ출처 청와대

백신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지배자들

유례없이 신속한 백신 개발 소식에 반가워하던 것도 잠시, 백신 생산과 공급을 둘러싸고 각국 지배자들이 빚어낸 혼란상은 팬데믹 종식을 갈수록 멀어지게 하고 있다.

백신은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백신 접종을 완료한 이스라엘에서는 1월 말에 1만 명에 육박하던 일일 확진자 수가 3월 말 100명대로 줄었다.

그러나 이런 부분적인 성과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세계의 나머지에서 확산이 계속되면서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3월 마지막 주에 확진자 수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 영국발 변이의 확산 속도가 백신 접종 속도를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임 대통령 트럼프의 유산도 있지만, 바이든이 도입한 조처들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에는 뒤늦고 충분치 않음을 보여 준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독일 총리 메르켈은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사실상 “새로운 팬데믹에 들어갔다”고 선언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은 이동제한령 등 봉쇄 조처를 다시 강화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사용을 두고 유럽 지배자들이 벌인 소동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의 지배자들은 이 백신이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효과가 없는 것 같다며 사용을 반대하다가, 이제는 60세 미만에게 부작용을 일으킨다며 접종을 제한하고 있다. 접종자 중 극소수에게서 나타난 원인 불명의 질병을 백신 부작용으로 규정해서다. 그러나 동시에 영국에서 생산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유럽에 공급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런 일관성 없는 태도는 비판을 샀다. 이런 혼란은 결국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브라질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하루 확진자 수가 10만 명에 이르고 누적 사망자도 30만 명을 넘겼다. 인도에서도 일일 확진자 수가 6만 명을 넘기며 지난해 여름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도 더 늘어날 것이다. 국제앰네스티, 옥스팜 등이 존스홉킨스 대학 등에서 일하는 연구자 7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3분의 2가 변이 바이러스 출현 때문에 현재 사용하는 백신들이 1년 안에 쓸모없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노바백스

세계적 백신 공급난은 근본에서 백신이 수익성 있는 사업이 못 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각국 정부의 백신 개발 투자가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그 수준은 현 상황에 비춰 최선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 전혀 못 된다.

‘엄청난 속도’로 개발된 백신들은 오히려 그동안 이런 필수재에 얼마나 투자가 부족했는지 보여 준다. 반면 현재의 공급난은 투자가 여전히 부족하고 기업주들과 각국 정부의 경쟁 탓에 거듭 투자가 지연되고 있는 결과다.

코로나19 백신의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아 온 노바백스 백신이 처한 상황이 이를 잘 보여 준다. 노바백스는 기존 독감 백신 제조 기술과 같은 방식을 사용해 안전성을 인정받고 임상시험에서 효과도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증으로의 진행은 100퍼센트 가까이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생산방식을 사용했으므로 생산능력도 탁월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노바백스는 3월 25일 원료 부족 때문에 생산량을 늘리기 어렵다며 유럽연합과의 계약을 보류했다. 자국(미국) 정부의 백신 원료 수출 제한 때문에 노바백스 백신을 생산하기로 한 인도 공장(세럼 인스티튜트)에서 생산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무계획성이 개별 기업의 계획을 의미없게 만든 것이다.

노바백스의 주가는 지난 1년 사이에 2400퍼센트 올랐다가 최근 반토막이 나면서 급락세로 전환됐는데 이는 앞으로 투자 부족을 겪을 수도 있음을 뜻한다. 노바백스는 올해 20억 회 분량의 백신을 생산하기로 했는데, 개당 16달러에 공급하기로 미국 등과 계약을 맺은 3억 개를 제외하면 나머지 백신에서 얼마나 이윤을 남길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11억 개는 빈국들에 공급하기로 약속했는데 여기에서는 충분한 이윤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지불 능력이 있는 선진국들은 이미 다른 경쟁사들과 인구 1명당 2~9개에 이르는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투자자들은 시장이 이미 ‘포화’됐다고 여기는 것이다. 여전히 전 세계 인구의 극히 일부만이 백신을 맞을 수 있지만 자본가들에게는 대중의 필요가 아니라 지불 능력이 있는 ‘유효 수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개발 중인 200여 개의 코로나 백신이 모두 이런 운명에 놓여 있다.

마르크스는 계급으로 나뉜 사회에서 생산관계가 생산력 발전을 가로막는 일이 벌어지고 자본주의도 예외가 아니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지금 우리가 겪는 현실을 이보다 더 적절히 표현할 방법이 또 있을까?

국제기구들은 국가·기업들의 이윤 경쟁과 무질서를 조율할 능력도, 의지도 없음을 거듭 보여 주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도해서 만든 코백스는 올해 안에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가량에게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실제는 그 반의 반도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WHO가 3월 30일 발표한 코로나 기원 조사 결과도 그 무력함을 잘 보여 준다. 이 조사 결과는 그동안 제기되던 여러 가능성을 상식 수준에서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발표 이후에 오히려 논란이 커진 이유다. 이런 식으로는 결국 역학자들의 노력도 쓸모없게 될 뿐이다. 그러면 코로나19가 몇 년에 걸쳐 종식되더라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또 다른 팬데믹이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