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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를 물리칠 힘은 유엔과 국제사회에 있지 않다

4월 5일 사가잉에서 열린 군부 타도 시위. 이날 사가잉에서는 교사들과 교육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매일 열리는 거리 시위에 동참했다 ⓒ출처 Myanmar Now

미얀마 군부는 정국을 온전히 장악하려고 갖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581명(4월 6일 현재)의 목숨을 빼앗고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군부는 ‘합법적 선거를 통한 정권 이양’ 시점을 (애초에 공언한 1년 후에서) 2년 후로 슬쩍 미루고는, 거기까지 가는 ‘로드맵’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군부는 강경 대응에 계속 몰두한다. 군경은 거리 시위를 야만적 폭력으로 진압할 뿐 아니라, 시위대 거점인 대학을 침탈하고 거주 구역을 침탈하고, 시위 부상자를 치료하는 병원조차 습격하고 있다. 군부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대중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는 것이다.

군부는 현지 실상이 알려지는 것을 매우 경계하고 있다. 군부는 미얀마 대부분 지역에서 인터넷을 차단했고, CNN 특파원과 인터뷰한 사람들을 모조리 연행했다.(군부는 항의에 밀려 구금된 사람들을 6일 석방했지만, 이 특파원은 자신과 인터뷰한 사람들이 모두 연행되는 것을 보고 심층 취재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대중 저항은 미얀마 전역에서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는 정당방위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철판을 잘라 만든 방패로 무장한 사수대가 거리 행진을 방어하는 한편, 사제 공기총과 사제 수류탄으로 진압 부대와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만달레이주(州) 북쪽의 깔레시(市)에서는 시위대가 점거한 지방도로를 경찰이 침탈하자 “시민군”이 결성되기도 했다.

승려와 주민들로 구성된 자활 기구들이 부상자를 후송하고 시위 참가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식량을 배급하는 곳도 있다. 4월 13일부터 시작되는 미얀마 전통 축제를 준비하던 기구가 그런 구실을 하는 곳도 있다.

청년·학생들이 이런 행동의 주도자들이다. 이들은 친지·동료들이 군부에 살해·구금되는(구금자는 감옥에서 십중팔구 고문을 당한다) 등 최소한의 생명과 안전조차 위협받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파업도 이어지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 투쟁은 군부 자신의 발표로도 참가율이 한때 50~90퍼센트까지 올라갔고, 4월에도 각급 공공기관 2100여 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양곤에서 파업 중인 철도 기관사 코 자우는 한 외신에 이렇게 전했다. “우리 노동자들은 이번 혁명의 엔진 부품입니다. 굶어죽거나 길에서 죽더라도 이 정권 아래로 돌아가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파업의 최전선에는 보건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작업장을 이탈해 군경에 쫓기면서도 다친 시위대를 치료한다. 쿠데타 이전에 수립된 코로나19 백신 배포 계획이 이들의 파업으로 완전히 좌초됐다. 쿠데타로만 사회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던 군부로서는 난처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런 투쟁들은 군부에 실질적 압박이 되고 있다. 심지어 몇몇 자본가들도 군부에 협조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군부를 제외한 모두의 목표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점은 현재 운동이 자신의 힘을 온전히 발휘하는 데에서 중요하다.

정치

4월 1일 민족민주동맹(NLD)이 주도하는 임시 국회 ‘연방의회대표자위원회’(CRPH)는 2008년 개정 헌법을 폐기하고 ‘연방민주주의 헌장’을 발표했다.

이는 아래로부터 투쟁의 압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한데, 거리 시위대 중 상당수는 이번 항쟁 초기부터 군부의 권력을 보장하는 2008년 헌법을 완전 폐기하라고 요구해 왔다.

NLD는 헌장 선포와 그에 대한 소수민족 지도자들의 지지를 통해 미얀마 모든 사회 세력의 대변자를 자처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CRPH는 소수민족 지도자들에게 장관급 이상의 직책을 보장하고 자치권을 대폭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간 NLD의 버마·불교 민족주의 때문에 관계가 좋지 않았던) 카렌족 등 규모가 큰 소수민족 집단들의 지지를 얻어 내려는 것이다.

NLD는 미얀마인들을 두루 아우르는 자신들의 편에서 서서 군부를 압박해 달라고 “국제 사회”에 호소하려고 하고, 대중 운동을 그런 압력의 수단으로만 여긴다. 아웅산 수치와 NLD의 이런 정치 전략은 지난 30여 년 동안 미얀마 군부에 맞선 투쟁이 중대한 패배를 거듭하게 하는 약점으로 작용해 왔다.(관련 기사 본지 357호 ‘미얀마와 민주주의 투쟁’)

미얀마 노동자 대중은 이런 전망과는 독립적으로 자신의 힘을 온전히 발휘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력 정당방위를 꺼리지 말아야 하고, 곳곳의 투쟁들을 연결해야 한다.

그런 투쟁은 노동계급의 힘을 발휘케 해 건설할 수 있다. 양곤대학학생회연합(UYSU) 소속 대표자 아웅 캉 셋은 이렇게 말한다. “미얀마에는 강력한 노학연대의 전통이 있습니다. … 노동계급이 이 혁명의 동력이 된다면 군부의 경제적·정치적 권력에 계속 도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미래 세대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그리고 미얀마 노동계급이 그 세계를 어떻게 만들지 보여 주고 있다.’”

‘인도주의적 개입’의 위선

미얀마 안팎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국제 사회”가 개입해 군부를 압박하기를 바란다. 그런 맥락에서 4월 1일 유엔 안보리가 또다시 공문구 수준의 성명만 낸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는 말로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그 속내는 온갖 이해득실 계산으로 가득 차 있다. 각국은 미얀마 인근에서의 지정학적 이득을 도모하고 자국 자본주의의 이권을 증진시키는 데 골몰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이사국의 면면을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3월과 4월 두 차례 안보리를 주도한 영국은 버마(미얀마)를 식민 점령할 당시부터 이 지역에 적잖은 이해관계가 있다.(영국은 효율적인 식민지 통치를 위해 미얀마 내 민족 갈등을 의식적으로 조장한 책임이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도 영국은 미얀마의 주요 교역국의 하나이고, 영국 석유기업 BP는 미얀마 영해 석유 시추의 큰손이다. 영국이 올해 하반기에 퀸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을 파견하려는 것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한편 아시아에 걸린 자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

프랑스는 냉전 종식 직후부터 미얀마 영해가 속한 벵골만을 기웃거려 왔다. 벵골만에서 벌어지는 대(對)중국 해상 연합 훈련에 몇 년째 개근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프랑스 석유기업 토탈은 미얀마 영해 천연가스 시추 산업의 최대 지분 소유자의 하나고, 프랑스 미디어 기업 비방디는 미얀마 국영 방송국 MRTV의 송출에 관여한다. 프랑스는 미얀마 의복 산업의 주요 수입국이기도 하다.

이런 세력들이 바라는 것은 미얀마 내부 상황이 너무 불안정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 ‘안정’을 누가 이끄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1988년과 2007년 미얀마 군부가 민주주의 시위대를 학살할 때 이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미얀마가 중국과 지나치게 가까워져 ‘인도-태평양 전략’의 구멍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미국이 미얀마 문제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도 그런 전략에 도움 되는 수단이 무엇일지 기회주의적으로 가늠하는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과 함께 ‘쿼드’에 속한 인도·일본·호주의 대응도 제각각이다. 인도는 3월 27일 미얀마 국군의 날 행사에 대표단을 공식 파견했고, 호주·일본은 미얀마 군부와 막후 협상을 벌이고 있다(《포린 폴리시》).

이들 열강의 진정한 관심사는 미얀마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중국에 맞선 파워 게임을 포함해) 자국의 영향력과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미국·프랑스·일본·인도·호주가 미얀마 앞바다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연합 해상 훈련에는 앞다퉈 최신 전함을 끌고 동참했지만, 이번 사태에서는 제각각인 이유이다.

유엔 안보리 성명이 나오는 과정에서 중국이 서방 국가들과 갈등을 빚었다 해서 중국이 미얀마 군부에 일체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중국 역시 자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최우선 이해관계는 중국-미얀마 국경 지역 안전과 인도양으로의 교두보 확보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국경 지역에서 세력이 큰 카친족의 독립 운동을 오랫동안 후원하는 한편, ‘일대일로’ 사업의 일환으로 NLD 정부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 때문에 중국은 미얀마 군부와 관계가 은근히 불편하다. 그러면서도 미얀마 국경에 인접한 신장 위구르 지역을 통제하는 데에서 미얀마 군부의 간접적 도움을 얻기도 했다.

요컨대, 중국은 ‘경주마 모두에 베팅하는 도박사’의 태세다. 자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도움이 된다면 누가 주도하든 새 정부를 편들려 할 것이다.(관련 기사 본지 355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첨예해진 미·중 갈등 속에서 바라본 미얀마 쿠데타’)

이런 배경을 보면 “국제 사회” 지도자들이 설령 미얀마에 합심해 개입할 수 있다 해도, 미얀마인들의 염원에 따라 군부를 압박할 태세가 아닐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자국의 이해관계와 영향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지금껏 말로나마 미얀마 군부를 비난했던 것조차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

유엔에 대한 기대도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실에서 다른 국가에 강제로 개입할 수 있는 힘은 유엔 기구가 아니라 유엔을 좌우하는 안보리 소속 강대국들(특히 미국)에서 나오고, 그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해관계를 언제나 먼저 셈하기 때문이다.(유엔의 역사에 관해서는 본지 웹사이트에 실린 ‘유엔은 왜 침략 전쟁을 막지 못하나?’를 보시오.)

창립 이래 거듭 유엔은 주요 열강이 분열해 있을 때면 마비됐고, 열강의 뜻이 하나로 모였을 때는 제국주의 이익 추구의 ‘깃발’(명분)을 제공해 왔다. 유엔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옹호했고, ‘인도주의적’ 개입으로 소말리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열강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세계 곳곳에서 만행을 저지를 때는 무기력했다.

이런 자들의 ‘인도주의’, ‘보호 책임’, ‘민주주의’ 운운에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한편, 문재인 정부의 행태도 문제다. 예컨대 한국 대기업 포스코가 미얀마 군부의 ‘자금줄’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문재인 외교부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즉각 반박하고 나섰지만, 포스코의 지원 덕분에 한국 조선 기업이 최대 크기의 군함을 미얀마 해군에게 판매했다는 (4월 6일) MBC의 보도가 있었다.

미얀마 항쟁을 지지하는 한국의 선의의 시민들이 “국제 사회”의 외교전에 기대를 거는 것은 목이 마르다고 소금물을 들이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보다는 군부에 맞서 영웅적으로 싸우는 미얀마 대중이 자신의 투쟁과 정당방위 수단을 발전시켜 진정한 민주주의 기구들을 창출하기 시작하기를 응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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