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더 난도질하자는 재계, 호응하는 정부

올해 1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합의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됐다. 노동계가 요구하던 안에 비해 기업주 책임과 처벌 수준이 대폭 후퇴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이 3년이나 유예된 누더기 법안이었다. 그런데 기업주들은 이조차도 못마땅해 하며 내년 1월 이 법 시행 전에 더욱 후퇴시키려 혈안이 돼 있다.

지난 3월 25일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 단체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악안을 정부와 국회에 제안했다.

핵심적으로 중대재해의 기준을 더 까다롭게 바꾸고 범위를 대폭 축소하자는 것이다.

현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1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직업성 질병자가 1년 내 3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한다.

그런데 경영계는 이 규정을 동시에 2명 이상 또는 1년 이내에 2명 이상 사망했을 때로 바꾸고, 직업성 질병자 또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1년 이내에 5명 이상 발생했을 때로 하자고 한다.

이렇게 동시에 2명 이상 사망으로 중대재해 기준을 바꾸면 안전에 더욱 취약한 1인 근무 중에 사망한 고 김용균 씨나 구의역 김군 사고는 중대재해가 아니게 된다.

이에 더해 4월 13일 사용자 단체 6곳이 시행령 제정 건의안을 내놨는데, 직업성 질병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내용을 담았다. 직업성 질병의 경우 대통령령으로 그 범위를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사용자 단체들은 뇌심혈관계질환, 근골격계질환, 직업성 암 등은 직업성 질병에서 제외해 적용 범위를 더욱 후퇴시키자고 한다.

이미 구멍 뚫린 법에 아예 대문을 내자는 재계 1월 4일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기자회견에 참가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이미진

경영계는 가습기 살균제나 세월호 참사 같은 재해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마련된 중대시민재해 규정도 후퇴시키려 한다. 현재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제조·설치·관리 결함 등으로 인해 벌어진 재해를 가리키는데, 경영계는 특정 원료에 의한 재해로만 이를 축소시키려 한다. 가습기 재판에서도 쓰인 원료가 피해의 원인인지 불분명하다고 무죄를 받아내더니, 세월호 참사 7주기 코앞에서 아주 더러운 짓을 하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용자 안전 의무를 축소하고 처벌을 피할 수 있게 하려 한다. 경영책임자를 단 1명으로만 축소하고, 원청의 안전 의무를 대폭 후퇴시키는 등의 내용이다.

이미 현행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주나 경영주가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두어 처벌 대상에서 빠져 나갈 수 있도록 경영책임자 규정에 허점을 만들어 놨다. 그런데 경영책임자를 단 1명으로 명시해 사용자가 더 확실하게 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안전보건 담당자 수준에서 처벌해 실제 기업 경영에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법망을 빠져나가는 지난 관행이 반복될 것이 뻔하다.

도급이나 용역에 대해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 투여 등 원청에게 부과되는 안전 의무를 사실상 아예 없애려 한다. 또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3년의 유예기간 동안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원청의 처벌도 면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책임자 처벌도 더 약하게 만들고 아예 징역 하한선을 삭제하자고 주장하고, 고의가 없었던 “선량한” 경영인의 경우나 “정부인증 안전관리 전문업체에 위탁한 경우”에는 아예 면책하는 규정도 신설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경영인만 처벌하는 것이 부당하다면서 노동자 과실을 물어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고 김용균 씨 참사에 대해 끈질기게 개인 과실로 덮어 씌우려던 서부발전소의 행태를 생각나게 한다.

중대재해는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기업들이 이윤을 우선시하며 작업장 안전과 보건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다. 한국에서는 연간 2000명이 작업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올해도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벌써 147명이 작업장에서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이런 안전 부실이 지속되는 데는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과 관리 부실도 한 몫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미 법 제정에서 대폭 후퇴해 놓고 또 다시 경영계의 요구에 대해 우호적 반응을 내놨다. 4월 11일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노동부 장관 이재갑은 “기업 의견을 수렴해 시행령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명확히 만들겠다”고 연신 강조했다.

이런 움직임은 문재인 정부가 4·7 재보선에서 우파에게 참패한 이후 기업주들의 지지를 묶어 두려 더 노골적으로 친기업 정책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신호다. 기업들이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규제 완화와 기업 지원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는 재계를 순회하며 “기업들과의 소통”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4월 15일 확대경제장관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이 회의에는 경제부총리 등 10여개 관계 부처 장관 등 관료들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의 사장들이 참석한다.

안 그래도 기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대다수 재해를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용자측의 바람대로 더 후퇴한다면 기업주들은 더욱 폭넓게 면죄부를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