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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국가 부채, 노동자 책임 아니다

국가 부채 증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불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가 부채가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4월 6일 정부가 발표한 2020년 국가채무 결산 자료를 보면, 정부의 국가채무(D1)는 1년 새 124조 7000억 원이 늘어 2020년 말 846조 9000억 원(GDP 대비 44퍼센트)을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4월 7일 발표한 재정 모니터 보고서에서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D2)는 앞으로도 계속 상승해 2020년 GDP 대비 48.7퍼센트에서, 2021년 53.2퍼센트, 2023년 60퍼센트, 2026년 69.7퍼센트까지 오를 것이라고 했다. 현재 한국의 정부 부채 규모는 세계 주요국의 국가 부채 평균(GDP의 97.6퍼센트)의 절반 수준이지만 향후 수년간 그 증가 속도는 상당히 빠를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배자들 내에서 국가 부채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우파 지배자들도 심각한 불황에 대처하기 위한 재정 지원책이 불가피함을 인정한다. 그래서 지난해 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국민의힘은 기업 지원에 강조점을 둔 확장 재정적 예산안을 큰 논란 없이 통과시켰다. 2008년 세계 공황 이후 각국 정부가 지나치게 빠르게 긴축으로 전환한 것이 경제 회복에 악영향을 줬다는 평가도 많고, IMF 등도 여력이 있는 국가들은 경기부양책을 쓰라고 권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두 해 경기 부양책으로 경기 침체를 끝낼 수 없는 게 분명해지자, 지배자들 내에서 부채 증가를 무제한 감당할 수는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향후 경제 성장률이 더욱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과 관계가 있다. 부채가 늘더라도 경제 성장률이 부채 증가율보다 높으면 부채 부담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제2차세계대전 직후 주요 참전국들의 부채 수준은 GDP의 120퍼센트로 지금과 비슷했다. 그 후 20여 년간 부채의 절대 액수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전후 장기 호황 덕분에 경제가 크게 성장하면서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40퍼센트가량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호황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올해에는 (기저 효과로) 일시적으로 반등한다 해도 장기적으로 성장률은 과거보다 떨어지는 장기 불황에 처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지난해 말 미국 연준(중앙은행)은 미국의 장기 성장률 전망치가 1.8퍼센트일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2008년 이후 10년 평균(2.3퍼센트)보다 낮다.

책임 전가

이 때문에 향후 부채 부담은 경제에 상당히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부채 부담을 누가 질 것인지를 둘러싼 계급 간 갈등이 더욱 첨예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우파들도 복지와 재난 지원 등을 줄이라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선심 정책”, “퍼주기” 등을 비판하며 말이다. 노동계급에게 부채 부담을 전가하려는 공세의 고삐를 죄려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가 노동자 고용 지원에 쓴 돈은 기업 지원액의 20분의 1에 불과했다 ⓒ출처 청와대

최근에 우파 언론들과 경제지들은 국가 부채가 GDP보다 많은 1985조 원에 달한다는 보도를 일제히 쏟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실제 국가 채무에다가 미래에 지급해야 할 공무원·군인 연금 등을 모두 포함해 추산한 것이다. 또, 실제 연금 급여액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이자율이 낮아지면서 미래에 지급해야 할 연금 총액의 현재 가치가 늘어났기 때문에 액수가 늘어난 것으로 표시된 것이다. 이렇게 자료를 과장·왜곡하는 것은 차제에 공무원연금 등을 공격하려는 포석을 까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파들의 주장과는 달리 문재인 정부는 기업 지원을 우선하고 노동자·서민 지원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정부는 최근에도 재정운용전략협의회를 개최해, 경제 성장을 위해 기업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늘렸던 한시지출사업을 줄이고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정부는 올해 교육재정을 2퍼센트 삭감했고 공무원 실질임금도 줄였는데, 이런 공격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말이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재정적자의 폭을 제한하는 재정준칙을 발표해 향후 긴축 공격을 강화할 근거를 마련한 바 있다.

최근 민주노총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문재인 정부는 지난 1년간 기업 금융지원에는 91조 2000억 원을 썼지만 고용·실업 대책에 쓴 돈은 불과 4.7조 원(GDP 대비 0.2퍼센트)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해 기업 지원책의 20분의 1밖에 쓰지 않은 것이다. 부채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이 짊어져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이유다.

진보·좌파 중에는 정부의 재정 지출을 확대하면 자본주의 경제도 살리고 노동자들의 삶도 지킬 수 있다는 주장들도 유행하고 있다. 우파의 긴축론에 맞서려는 좋은 의도에서 비롯한 주장일 테지만, 정부의 지출 확대로 심각한 구조적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실현되기 힘든 환상이다. 1930년대 대불황 때에도 미국의 뉴딜 정책은 큰 효과를 내지 못했고, 재정 지출을 줄이려 한 1937년에는 더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보다는 심화하는 부채 위기와 경기 침체 속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우선해야 한다. 부채 위기는 장기적으로 이윤율 하락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문제에서 비롯한 것이고,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기업주와 부자들의 이윤을 보장해 주느라 부채 문제를 더욱 키워 왔기 때문이다.

위기의 책임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기업과 부자들이 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부동산과 주식 등의 가격이 올라 부가 더욱 늘어난 부자와 기업들의 세금을 인상하고,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복지·일자리·임금을 늘리라고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부채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진정으로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급투쟁의 전진을 도모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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