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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 100일:
뜻밖의 변화도 있었지만 진정한 우선순위는 패권과 이윤 회복

4월 28일(현지 시각) 바이든이 취임 100일 기념 연설에서 밝힌 내용을 반영해 5월 3일에 기사를 약간 개정했다.

4월 29일은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지 100일 되는 날이다.

바이든은 7선 상원의원에 부통령까지 지낸 미국 기성 정치의 ‘화신’ 같은 인물이다. 취임 후 바이든은 트럼프의 가장 악명 높던 몇몇 정책을 되돌렸고, 클린턴·오바마 등 전임자보다 야심찬 정책들도 일부 추진했다. 하지만 트럼프와 다를 바 없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 100일은 미국 자본주의·제국주의를 “구제”하려 애쓴 시간이었다 ⓒ출처 백악관

바이든의 우선순위

바이든은 4년 전 백악관을 떠날 때보다 위기가 더 악화된 상황에서 취임했다. 미국 경제는 2007~2008년 이후 장기 불황을 겪어 왔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덮쳐 한 세기 만에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다.

제국주의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헤게모니는 여전히 미국에 있지만, 세계 주요 경제 블록들(미국/유럽연합/중국) 간 갈등은 훨씬 커졌다.

또, 이런 요인들이 정치적 불안정을 키워, 좌우 양쪽에서 주목할 만한 운동이 형성됐다. 한편에서는 중첩된 위기의 피해를 불평등하게 겪는 데 대한 거대한 분노가 대규모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으로 분출했다. 그 반대편에서는 위험한 극우 운동이 성장해, 바이든이 취임하기 고작 2주 전에 바이든 대선 승리를 부정하며 국회의사당에 난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은 미국을 “구제”해야 하는 과제를 맡았다.

바이든은 청정 에너지 계획에 4년 동안 약 2조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1조 9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구제 계획”을 통과시켰으며, 바로 뒤이어 2조 달러 규모의 “미국 일자리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1960년대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 건설 계획 이래 가장 야심찬 계획으로 주목받았다.

“미국 구제 계획”에는 백신 개발 지원, 기업 지원 등뿐 아니라 재난지원금 1400달러 지급, 실업급여 예산 확충도 포함돼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대중의 거대한 울분을 의식한 것이기도 하다.

2008년 위기 때 오바마 정부가 부자들만 구제한 것 때문에 “1퍼센트”에 저항하는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이 벌어졌고, 이는 이후 몇 년 동안 일련의 대중 운동을 촉발하는 불씨가 됐다.(버니 샌더스 돌풍도 그런 운동들 덕분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를 틈타 극우 운동이 성장했다.(트럼프가 이를 부추겼다.)

이 때문에 미국 지배계급의 주류는 아래로부터의 반발을 사지 않으면서 자기 필요를 충족하려면 경제·전염병 위기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사람들을 어느 정도 지원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 “구제 계획”이 진정으로 구제하려는 것은 미국 자본주의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미국에서 금융 부문뿐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국가의 개입과 지원에 의존하게 됐다. 대기업들도 연준의 저금리 정책과 막대한 정부 재정 지출에서 득을 봤다.(관련 기사 본지 351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코로나19도 멈추지 못한 자본주의의 변화’)

바이든은 특히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 자본의 우위를 보장하려면 막대한 국가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여긴 듯하다. 그래서 ‘작은 정부’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집착을 일부 내려놓아야 했다. 막대한 재정 지출뿐 아니라, 그 재원을 (차입뿐 아니라) 자본수익세 등을 증세해 충당한다는 계획도 신자유주의 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기후 변화 대응도 중요한 요인이다. 기후 재앙에 대처해 “안정”을 되찾으려면 인프라를 재편·개선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국가 재정을 대규모로 투입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바이든의 정책들이 마음에 쏙 들지는 않을 법한데도 미국 대자본들이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까닭이다. 미국 대기업 고위 이사 150여 명이 바이든의 “미국 구제 계획”을 통과시키라고 의회에 촉구했다. 대선 기간에 〈파이낸셜 타임스〉가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바이든노믹스가 자본주의에 대한 지지를 지킬 수 있다”고 봐서였다.

“구제”?

하지만 보수 성향의 미국 역사가 로버트 만이 지적하듯, “바이든은 진보파를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지만, 진보파가 정부 정책 방향을 좌지우지하게 용인할 수도 없는 처지다.” 바이든의 진정한 우선순위는 자본주의 구제에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구제”는 대중적 울분의 근원인 불평등을 해소하거나 빈곤을 근절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 구제 계획”은 연소득 7만 5000달러(2020년 미국 가계 중위소득에 조금 못 미친다) 이하 성인에게 재난지원금 1400달러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한다. 이는 성인 모두에 2000달러를 즉시 지급하겠다는 선거 공약에서 후퇴한 것인데, 이 후퇴 때문에 성인 약 1200만 명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게다가 이런 일시금 지급은 트럼프 때도 있었던 일이다.

바이든은 “미국 구제 계획”에서 법정(연방) 최저임금 기준을 15달러로 인상하는 내용을 삭제했다.(실망스럽게도 상원 예산위 의장이 된 버니 샌더스가 이 철회를 적극 변호했다.)

대중의 실망을 의식한 바이든은 4월 27일 연방정부 계약직 노동자들의 최저시급 기준을 15달러로 인상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또, 취임 100일 의회 연설에서 법정 최저임금 기준 15달러를 위해 다시 노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공약을 한 번 쉽게 철회한 것이 추진 과정에 영향을 줄 것이다.

사실 15달러 최저임금 기준은 이미 10여 년 전에 제기된 것으로 이제는 빈곤선 기준과 엇비슷한 정도고, 그조차 (이미 인상 제안을 한 번 거절한) 의회에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도 만만찮을 것이다. 이미 정권 4년 동안 서서히 올리자는 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 악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 바이든은 대자본의 이해관계를 지속적으로 침해할 정책들은 한사코 피했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전국민 단일건강보험(‘메디케어 포 올’) 공약을 거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바이든은 민간 보험회사들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의료보험을 개선하겠다고 했다.(‘오바마케어’의 부활이다.) 이 정책 때문에 비교적 가난한 계층에서 보험 가입자가 조금 늘 수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 다수는 비싼 의료비를 부담해야 할 것이고, 민간 보험회사들의 이윤은 보장될 것이다.

이런 정책들을 추진하는 바이든 정부의 내각도 “진보”, “다양성” 운운하는 상찬에 걸맞지 않다. 외려 친기업·친제국주의자들의 소굴이라는 말에 더 걸맞다.(관련 기사 본지 347호 ‘바이든 내각은 친기업-반노동 소굴’)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는 물론이고, 엘리자베스 워런 같은 ‘진보적 자유주의’ 인사들조차 배제됐다.

“미국이 돌아왔고, 세계를 주도할 준비가 돼 있다”?

대선 당시 바이든 캠프의 핵심 참모 한 명은 바이든의 대외 정책 기조를 이렇게 요약했다. “중국, 중국, 중국, 러시아.” 이는 미국의 도전자인 중국의 부상이 두드러지는 현실을 의식한 것이다.

바이든은 취임 후 이에 대응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국의 헤게모니를 수호하려 하고 있다. 4월에 바이든이 아프가니스탄 점령 종식을 선언한 것도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에 대처하려면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이에 관해서는 이번 호에 실린 닉 클라크의 기사를 보시오.)

바이든은 초장부터 강경한 대중(對中) 기조를 드러냈다. 취임 첫 주말에 미국 항공모함 전단이 남중국해를 항행했고, 취임 후 첫 미·중 고위급 외교 회담에서는 가시 돋친 설전이 벌어졌다. 바이든은 취임 첫날 트럼프의 정책으로 유명한 ‘미국산 구입’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미국 단독으로가 아니라 동맹국들을 결집시켜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려 한다. 대선 때부터 바이든은 “국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해 ‘권위주의’의 부상에 맞서자고 했다.(하지만 그 ‘민주주의’ 정상들 중에는 권위주의적 조처를 동원해 대중을 억압하는 자들도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실질적 의미가 없고 반(反)중국 이데올로기 수사다.)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도 바이든의 카드에서 빼놓을 수 없다. 바이든은 이미 막강한 미국의 군사력을 더한층 강화하려고 700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국방비 증액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가 갈등이 불거지는 장이 되고 있다. 바이든은 취임 직후 남중국해에 항모전단 2개를 파견해 모의 전투 훈련을 시행하는 등, 초장부터 트럼프 정부 말기 수준의 도발적 군사 행동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에 해역 통제력을 넘기지 않겠다는 무력 시위인 것이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당장 전면전으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중 지배계급이 축적된 갈등의 해결책으로 군사력을 최종 고려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안정”으로 회귀?

중동에서도 바이든은 “안정”으로 회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중동에서 이 말은 제재·위협·전쟁으로 미국의 뜻을 관철한다는 뜻이다.(관련 기사 본지 345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끝없는 전쟁들”의 회귀 예고하는 바이든’)

바이든 취임 1주일 만에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페르시아만 상공을 비행했고, 취임 1개월 만에 “중동에서 [미국의] 국익을 보호”(국방부 대변인 존 커비)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백악관 대변인 젠 샤키) 시리아를 폭격했다. 이란에 대해서도 핵 합의 복귀를 말하는 동시에 고강도 제재를 들먹였다.

그러면서 바이든은 미국 제국주의의 ‘경비견’ 이스라엘과의 굳은 관계를 재확인했다. 바이든은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트럼프의 결정을 뒤집지 않겠다고 못 박았고, 이스라엘에 연간 38억 달러의 군비를 무조건적으로 지원하는 협정을 계속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NBC 뉴스〉도 “팔레스타인인들 입장에서는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평했다.

또, 바이든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 다른 역내 동맹국들과의 군사 협력도 더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미군 기지가 건설되고 있고, 아랍에미리트에는 전투기를 판매했다.

이런 일련의 행동으로 바이든은 중동의 “안정”을 도모하고, 거기서 생긴 여력으로 중국(과 러시아) 등 경쟁 강대국들을 상대하는 데에 집중하고자 한다.

하지만 상황이 바이든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 이후 중동의 세력 구도가 변했고, 러시아·터키·프랑스 등 열강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이 이 상황을 관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굳히려는 바이든의 시도들 때문에 세계가 점점 더 불안정해지리라는 것이다.

코로나19·기후 재앙 대응 … 나은 듯하지만 과연?

바이든이 취임 전부터 트럼프와 가장 확실히 선을 긋고자 한 부분은 코로나19 대응이었다.

바이든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팬데믹에 대처하겠다고 해 (이를 사실상 사보타주했던) 트럼프에 견줘 낫다고 여겨졌다. 백신 접종 실행을 코앞에 둔 시점에 취임했다는 점도 바이든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하지만 바이든의 대응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이든은 전국적 공공의료 체계 수립 권고에 모르쇠로 대응했고, 과로에 시달리는 의료 인력을 충원하게끔 하지도 않았다. 일터에서의 코로나19 방역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이를 어긴 기업에 어떤 조처를 취할지는 정하지 않았다. 이런 조처들이 있었다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이든은 전체 교사에 대한 백신 접종 계획이 수립되기도 전부터 등교 재개를 앞장서서 밀어붙이기도 했는데, 이는 전염병 대응보다 학부모인 노동자들을 일터로 돌려 보내는 것을 우선한 것이다.(바이든은 교사들의 아래로부터 투쟁에 부딪히고서야 교직원들을 등교 재개 전 백신 우선 접종 대상으로 지명했다.)

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보면, 바이든은 요양원 산업의 수익성 원리는 건드리지 않는다. 미국 자본주의의 이윤율 회복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양원들이 이윤 때문에 기본적 방역 절차조차 지키지 않았던 탓에 수많은 노인들이 감염에 노출된 바 있다.(관련 기사 본지 315호 ‘마이크 데이비스 논평: 코로나19: 기어이 괴물이 오고야 말았다’)

바이든 정부의 공공 의료 지원책도 미미한 수준이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수석 부국장 앤 슈챗조차 “공중 보건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전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각종 감염병을 양산하는 미국의 대규모 농축산업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하지 않는다.

이런 근본적 문제들을 방치하는 한 미국에서 팬데믹은 언제든 다시 유행할 수 있다.

재앙

바이든이 트럼프와 선을 긋고자 한 또 다른 부문은 기후 위기에 관한 것이다.

트럼프는 기후 위기 자체를 부정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했고, 환경운동과 원주민 운동의 오랜 요구를 받아들여 키스톤 XL 송유관 매립 사업*을 중단시켰다. 또, 트럼프 시절 완화된 환경 관련 규제 100여 개를 되돌리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이런 조처들은 상징적인 수준이고, 많이 부족하다.

파리기후협약도 그 사례다. 이 협약은 현재 위기에 대처하기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구속력도 없다.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있던 오바마 정부가 앞장서서 이 협약을 종이 조각으로 만들었다.(관련 기사 본지 184호 ‘파리 기후변화협약 발효: 기후 위기 해결은커녕 심화시키는 체제의 무정부성을 보여 주다’)

바이든은 상징성이 큰 키스톤 XL 사업은 중단시켰지만, 비슷한 규모의 다른 송유관 매립 사업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또, 바이든은 연방 소유 부지를 천연가스 시추를 위해 신규 불하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미국 내 천연가스 중 연방 소유 부지에서 시추되는 것은 10퍼센트에 불과하다. 게다가 바이든은 기존에 불하된 연방 소유 부지에서 시추하는 것은 전혀 문제 삼지 않았고, 외려 그런 곳들에서 신규 시추를 31건이나 승인했다.

바이든은 기후 위기 대응에 2조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액수지만, 비영리 단체 ‘생물다양성센터’의 브렛 하틀이 지적하듯 이는 “기후 비상사태에 맞설 최후의, 그리고 절호의 기회를 허비하는 … 친기업적 계획”이다.

바이든의 기후 특사 존 케리는 기후 위기 대응을 민간 기업이 주도해야 하고, 정부는 “보조적” 구실만 해야 한다고 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이고, 이윤 추구를 환경보다 우선한 것 때문에 오늘날 기후 위기가 심각해졌다.

기후 위기에 제때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국가 주도의 대응이 필수적이다. 교통 문제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는데, 자가용 중심으로 형성된 미국 교통 체계를 친환경적 대중교통 중심 체제로 제때 전면 전환하는 것은 국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급진적인 기후 위기 운동은 국가가 대대적인 환경 대응에 나서라고 요구하며 행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저명한 미국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가 지적했듯, 바이든의 “청정 에너지 ‘혁명’은 … 민간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지 공적 영역을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든은 자동차 대기업 GM에 전기차 생산을 위한 보조금을 기꺼이 지급하겠지만, 미국 자본주의의 중요한 뿌리 중 하나인 자동차 산업에는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이 [환경 문제에 대한] 기업의 통제력이라는 난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 기후 재앙에서 미국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생물다양성센터’ 소장 키어런 서클링)

점점 악화되는 기후 재앙에 대응하려면 바이든의 상징적 조처로는 부족하다. 지난 2월 텍사스 한파 ⓒ출처 The National Guard

변화를 이룰 힘은 어디에 있는가

바이든 취임 후 미국의 극심한 정치 불안정은 일시 수면 아래로 내려간 듯 보인다. 하지만 바이든의 “구제” 방책들은 그 정치 불안정의 근원, 즉 위기와 그에 대한 대중의 쓰라림을 해소하지 못할 것이다.

인종차별 문제를 봐도 그렇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정서에 기대 당선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은 조지 플로이드 살인범 데릭 쇼빈 유죄 평결이 “정의 구현”이라고 찬양했지만, 평결 얼마 전 돈테 라이트 사망으로 촉발된 경찰의 흑인 살해 규탄 시위는 비난했다. 인종차별적 경찰도 그대로다. 쇼빈이 유죄 평결을 받은 지 고작 몇 분 후 오하이오주(州)에서 흑인 청소년이 경찰의 손에 죽었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이민자 단속·추방과 강제 수용 정책을 짐짓 비판하고 이민자들을 위한 8년에 걸친 시민권 획득 절차를 제시했지만(이는 미국 농축산업 등 대자본에 저임금·이주 노동력이 필요한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취임 한 달도 안 돼 악명 높은 이주민 강제수용소를 재개장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진보파 하원의원들 “스쿼드”는 이런 문제들에서 종종 바이든의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해 인기를 얻고 있다. 버니 샌더스는 바이든 정부가 “루스벨트 이래 가장 진보적”이라며 상원 예산위 의장으로서 정부·여당을 적극 돕지만, 노동계급 대중을 위하는 입장에서 정부 정책에 가끔 쓴소리도 한다.

하지만 이들 모두 그런 비판을 운동으로 연결하지는 않고 있다. 변화를 이룰 힘이 의회에 있다고 믿는 전략 때문이다.

아래로부터

하지만 진정한 힘은 의회 바깥에 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은 이를 잘 보여 줬다. 최근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경찰 데릭 쇼빈이 유죄 평결을 받은 것은 대중 운동의 파장이 재판정을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바이든이 “미국 구제 계획”에서 법정 최저임금 15달러 인상 계획을 삭제한 후, 노동자들이 거리 시위로 (불충분하나마) 압력을 형성한 덕에 몇몇 주에서 최저임금이 인상된 사례도, 진정한 변화는 아래로부터 대중 행동으로 이룰 수 있음을 흘낏 보여 준다.(바이든이 4월 27일에 연방정부 계약직 노동자들의 최저시급 기준을 15달러로 인상하는 행정명령을 낸 것도 그런 압력이 표현하는 대중적 반감을 의식해서다.)

게다가 샌더스와 “스쿼드” 의원들이 몸담고 활용하려는 민주당은 자본의 이해관계에 도전하는 노동계급의 요구를 제약하기 위해 작동하는 정당이다. 이런 정당의 힘을 이용해 노동계급 대중을 위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여기면 한계에 부딪히기 십상일 것이다.(관련 기사 본지 315호 ‘미국 민주당은 어떻게 진보 염원을 좌절시켜 왔는가’)

미국 대중이 바이든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거리와 작업장에서 계속 투쟁해야 할 이유다. 그런 운동으로 위기에서 자신들만 구제하려는 지배자들에 도전해야 하고, 트럼프 시기를 거치며 위험하게 커진 극우·파시즘에도 맞서야 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위기의 근원을 설명하고 그에 맞서 반자본주의적 투쟁을 건설하는 혁명적 운동이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 글은 미국의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 ‘마르크스21’ 회원 에릭 프레츠가 쓴 ‘바이든 100일’을 참고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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