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문정인, 청림출판, 2020)와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새로 읽는 한미관계사》(김준형, 창비, 2020)

얼마 전에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과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각각 쓴 책들이 관심을 받았다. 두 사람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에 조언을 주는 이데올로그들인데, 자신들의 책에서 미·중 갈등 속에서 한미동맹 강화 일변도의 대외 노선은 곤란한다고 제안했다.

김준형은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새로 읽는 한미관계사》(창비)에 이렇게 썼다. “70년의 긴 시간 동안 한미동맹은 신화가 되었고, 한국은 동맹에 중독되어왔다. 이는 … 압도적인 상대에 의한 ‘가스라이팅’ 현상과 닮아 있다.” 대미 “종속성”에서 벗어나 한국의 국익에 맞게 한미동맹을 “재조정”하자는 주장이다.

문정인은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청림출판)에서 한국은 이제 이른바 “초월적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돼 신냉전이 고착되면 한국의 선택지가 좁아지고 위험도 커진다. 그래서 한국이 한미동맹 강화를 선택해 대중국 봉쇄에 협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에 한국은 “연성 균형자”가 돼 모든 주변국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자 협력과 지역 통합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거기서 핵심 변수는 남북관계다. 문정인이 보기에,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한미동맹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가 줄어들고 그만큼 균형외교를 전개할 여지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들은 미·중 갈등 속에 한국의 딜레마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트럼프가 물러나고 바이든 정부가 들어섰지만,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더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양측 모두 한국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쿼드, 중국을 배제한 첨단산업 공급망 등에 참여해 대중국 봉쇄에 협력하라고 한다. 다음 달 하순에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들은 주요 현안이 될 것이다.

반면에 중국 시진핑 정부는 한국이 중국에 불리한 쪽을 선택하지 않도록 요구한다. 최근 중국 정부 관계자들이 문재인 정부에 쿼드 참여 여부를 수차례 물은 것은 그런 사례의 하나다.

바이든 정부는 한국에 쿼드 참여 등 대중국 봉쇄를 위한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3월 18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 장관 회의(2+2회의) ⓒ사진공동취재단

지금은 신냉전인가?

문정인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미국과 중국의 대립을 보면서, 세계가 신냉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과 중국이 냉전 시절에 대결한 당사자들이었기에, 지금의 대결에서 과거의 냉전을 연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돼 이 갈등을 중심으로 국제 질서가 고착되면 적어도 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양 진영 중 어느 한 쪽에 속해야 하고 그만큼 각국이 미·중 갈등 틀 안에서 행동의 자유가 제약될 수 있음을 염려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문정인은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공격하는 데 냉전 당시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하며 미·중 신냉전 구도를 공식화했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 미·중 갈등에는 과거 냉전과는 다른 여러 특징이 있다. 예컨대, 냉전 시절과 다르게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내고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를 이끌어내는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크게 벌어지고 있지는 않다.

무엇보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적이다. 냉전 당시 동·서 양 진영의 경제적 관계는 약했지만, 오늘날에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상호 투자와 교역으로 얽히고설켜 있는 것이다.

냉전 당시 국제 관계는 양대 진영 속으로 욱여넣어졌다. 양대 초강대국 진영으로 세계가 분할된 것은 (일부 예외는 있었지만) 개별 국가들한테 동·서 양대 진영 중 하나의 이해관계에 자신의 행동을 일치시키도록 강제하는 족쇄로 작용했다. 그리고 미국과 소련은 상대방의 세력권을 대체로 인정하고 개입을 자제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서방 국가들을 상대로 냉전 때만큼의 압도적 패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도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고 자국의 의지를 강요할 배타적인 세력권을 형성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제국주의 질서가 신냉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세계가 평화롭고 자유롭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이런 유동적인 자본주의 국제 질서는 미·중 갈등의 다른 특징들과 맞물려 불안정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중국은 경제 면에서 최전성기의 소련보다 미국에 더 위협적인 경쟁자다.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미국 GDP의 70퍼센트선까지 따라 잡았다. 그리고 중국 경제의 부상은 기본적으로 세계경제의 룰을 설정하는 미국의 주도력을 잠식해 왔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 격차는 여전하고, 중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는 아직은 아시아 지역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력은 아시아에서는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고 있고, 이에 맞서 아시아에서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는 미국의 노력이 맞물려 머지않은 미래에 전쟁을 초래할지 모른다.

미국과 중국은 첨단산업의 주도권을 놓고도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이다. 미국 지배자들은 자국이 제국주의 국제 질서의 꼭대기를 계속 지키려면 5G, 양자컴퓨터, 인공지능 등 첨단산업의 주도력을 쥐어야 한다고 본다.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도 중국을 배제한 첨단 기술·공급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까닭이다.

물론 미국, 중국 등에 걸쳐 형성된 세계적 생산 네트워크가 뿌리째 흔들리고 세계화가 역전되기는 쉽지 않다. 지난 2월 미국 상공회의소는 미국과 중국 경제가 완전히 갈라서면(디커플링) 미국 기업들의 충격도 클 것이라고 했다. 즉, 중국의 지적재산권 탈취 등 ‘불법 행위’를 가만 둬서는 안 되지만 디커플링은 안 된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미국-중국 간 첨단산업 주도권 쟁탈전으로 해당 산업 분야들에서 부분적으로 디커플링이 이뤄질 공산은 커졌다. 또한 이 과정에서 양국의 제국주의적 경쟁은 더 첨예해질 것이다.

딜레마

미·중 갈등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국가 지배자들에게 커다란 딜레마를 안겨 줬다.

지난 30년 동안 아시아 경제들의 상호 의존도는 매우 높아져 왔다. 그 과정에서 아시아 각국 지배자들은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 강화로 큰 이윤을 얻었고, 이를 통해 산업 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반면에 중국의 부상은 안보 면에서 중국 주변 국가들의 근심거리이기도 했다. 예컨대 대만에서는 중국에 흡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남중국해를 장악하려는 중국의 해양 확장을 우려하고 이를 견제하기를 원했다. 오바마 정부 이래 미국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어 대중국 봉쇄에 아시아 국가들을 끌어들이려 애써 왔다.

아시아 국가들은 나름의 독자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대개 미국과 중국 어느 한 편에 고착돼 있지 않고 사안별로 다른 선택을 하곤 한다. 그만큼 미국도 자국의 의지를 일방으로 아시아 동맹국들에 관철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 국무장관 앤터니 블링컨은 동맹국들이 중국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그들에게 자국의 요구를 설득하는 게 전보다 어렵다고 인정했다.

예컨대 호주는 쿼드 참여국이다. 그리고 지난해 미국과 손잡고 중국을 겨냥한 코로나 기원 조사를 주장해 중국의 제재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무역 관계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중국 정부도 자국 철광석 수입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호주산 철광석 수입을 중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호주는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최종 서명했다.

한국 지배자들도 미·중 갈등 속에 고심하고 있다. 물론 전통적인 친미적 견지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있지 말고 쿼드와 미국 중심의 첨단산업 네트워크에 즉각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꽤 많다. 미국 정치인들이 중국 봉쇄로 의견 일치를 본 이상 신냉전이 곧 고착될 테니, 더 늦기 전에 한국이 미국을 선택해야만 미국 주도의 동맹 질서 하에서 국익을 계속 도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아직 한국 지배자들 다수가 적극 지지하는 것 같지 않다. 지난 30년 동안 구축된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 의존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에 열을 올리는 와중에도, 지난해 삼성전자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보다 컸고,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의 26퍼센트를 중국에서 거뒀다.

문정인의 지적대로, 한국이 중국을 척지고 한미동맹 강화를 선택하면 중국과의 무역·투자 단절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을 뿐 아니라 “최악의 안보 환경”까지 감수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 지배자들도 중국의 지정학적 부상이 한국에 주는 안보 부담을 의식한다. 한국은 70년 넘게 미국과의 동맹에 묶여 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고 북한과 동맹 관계이다. 그래서 문정인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 속에 한국이 중국의 동북 4성, 5성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한국이 중국에 편승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중 갈등에 대한 한국 지배자들의 모범 답안은 다음과 같았다. “한·미 관계를 외교·안보의 축으로 삼고 … 중국과는 실리에 바탕한 사안별 협력으로 윈-윈을 추구한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중앙일보〉 1월 28일자 사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미·중 갈등이 더 악화되면 한국의 선택지는 점점 더 좁아질 것이다.

한미동맹과 초월 외교

문정인은 한국 외교의 기본 전략을 고수하는 것, 즉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되 중국과는 그보다 낮은 수준의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인정한다. “이는 미중 관계가 좋았을 때 가능한 전략이다.”

문정인은 신냉전이 굳어지기에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 보며 “초월 외교”를 제안한다. “강대국의 전횡을 막고 편가름의 진영 외교에서 탈피하여 더 큰 자율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약소국들이 지구적 차원에서는 다자주의, 지역 수준에서는 협력과 통합의 질서를 추동해 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은 특정 국가(중국)를 배제하는 연합체에 합류해서는 안 되며, 관련국들과 협력해 신냉전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협력 질서 창출에서 여전히 한미동맹 유지는 전제 조건이다. 문정인도 70년 넘게 유지돼 온 세계 최강국과의 동맹에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3월 그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초월 외교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다.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중국과 긴밀히 경제협력을 하는 국가들이 모여 갈등을 중재하고 국제 레짐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다 보니 문정인은 중국에 대한 군사적 봉쇄에 참여하는 데는 반대하면서도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D10(민주주의 10개국 협의체)의 한국 참여를 지지한다. 문재인 정부가 쿼드와 비군사적 분야들에서 사안별 협력이 가능하다고 한 점에 대해서도 그는 반대하지 않았다.

여기서 초월 외교론의 모순이 빚어진다. 미국 중심의 동맹 질서에 발을 담근 가운데, 미국과 중국 등을 아우르는 지역 통합을 추진하는 게 가능할까?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국의 주도권이 약화될 법한 아시아 지역 통합에는 반대해 왔다. 그리고 지역의 협력 질서가 강대국들의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항구적으로 조정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다자 협력의 대상국에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같은 주변의 강대국들이 포함되는데, 이들은 모두 경제적·지정학적 우위를 두고 서로 경쟁하는 열강이다. 경쟁적으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축적하는 이 제국주의 국가들과 함께 항구적 평화와 번영을 도모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자본주의 국제 관계는 경쟁적 자본축적의 논리에 연동돼 있다. 그리고 아시아 지역에서도 세계적 차원에서 제국주의 경쟁을 부른 경제적·지정학적 경쟁 논리는 작동된다. 예컨대,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불안정해지는 지역 상황에 대응해 자국의 이해관계를 지키려고 경쟁적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물론 한국도 군비 증강에 엄청난 열의를 갖고 있다. 한국이 인도네시아와 손잡고 전투기를 자체 개발한 일은 아시아 지역의 군비 증강 양상을 보여 준 사례다. 즉,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 지배자들도 지역의 불안정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사실 초월 외교론은 균형외교의 다른 말이다. 이런 종류의 균형외교론에는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살아남아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많은 한국 지배자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균형외교 전략은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적·지정학적 경쟁이 점증하는 오늘날 그 한계와 모순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런 제안과는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주요국의 제국주의와 한국 지배계급의 친제국주의 외교에 맞선 반제국주의적 대안 말이다. 이 대안은 반자본주의와 분리된 것일 수 없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세계 체제가 도달한 최신 단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열강도 지지하지 않으면서, 제국주의·자본주의 반대를 지향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가스라이팅된 관계인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김준형은 한미관계사를 다룬 새 책에서 한국이 한미동맹에 “중독”돼 있고, 강대국 미국에 “가스라이팅”돼 있다고 주장해 이목을 끌었다. 한국이 한미관계에서 국익에 따라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준형의 이런 주장에는 미국이 대중국 봉쇄에 한미동맹을 동원하려는 상황에서 한국이 일방으로 끌려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반영돼 있다.

그리고 친미 우파 야당을 겨냥한 주장이기도 하다. 우파들이 한미동맹을 맹신하는 바람에 한·미 관계가 예속적으로 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것이고, 이를 “동맹의 객관화, 유연화 및 자율성을 나름 모색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비교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을 ‘가스라이팅’했다는 주장은 한국 지배계급이 독자적 이해관계에 따라 한미동맹을 추구해 왔음을 무시한 것이다. 물론 한미관계는 대등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한국 지배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한미동맹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국익을 도모했고 나름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냉전이 종식된 후 변화된 세계 질서 속에 한미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지금도 세계 최강국과의 동맹은 한국 지배자들에게 필요하다.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국제 금융을 주도하며, 한국의 수출입에 중요한 바닷길을 통제하는 쪽은 여전히 미국이다.

김준형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자주성 제고 노력”이 “보수 세력의 반발과 반미 프레임”에 말려 들어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지적했듯이, 노무현 정부 시절을 미국 정치인들이 후하게 평가할 만큼 한미동맹이 강화됐다. 그저 반미 프레임과 미국의 압력에 밀려 노무현 정부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나름의 국익이라고 생각한 쪽을 선택한 결과였다.

문정인과 더불어, 김준형은 한미관계가 제대로 되려면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김준형은 문재인 정부하의 남·북/북·미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제재 유지 등에서 트럼프 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군비 증강으로 북한의 반발을 산 부분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는다. “한국을 의심하는 미국과 남한을 따돌리는 북한 사이에서” 문재인 정부가 중재를 위해 애썼다는 설명은 2018년의 상황을 정확히, 그리고 정직하게 설명한 게 아니다.

한편, 한미동맹이 ‘가스라이팅’된 관계라는 식의 관점은 좌파 내에도 있어 왔다. 좌파 일부는 흔히 “종속(예속)” 같은 용어를 너무 느슨하게 사용해 왔다. 정치적 독립을 성취한 후발 국가들이 겪는 어려움과 모순의 원인을 특정 제국주의 국가(또는 서방)에 의한 “종속”에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규정의 논리적 귀결로 계급 분단을 흐리고 “자주”를 쟁취하기 위한 (계급을 가로지르는) 민족적 단결을 추구했다.

물론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 국가들의 관계는 대등하지 않고, 세계 체제는 위계적 질서를 이루고 있다. 꼭대기에 미국이 있고, 그다음에 중국과 일본, 유럽 강대국들이 있는 꼴이다. 그리고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의지를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들에 관철시킬 수단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관계를 종속(또는 예속)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늘날 한국은 독자적인 자본 축적의 중심을 구축해 왔다. 즉, 한국 지배계급은 강대국들과는 구별되는 나름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제국주의 국가들에는 못 미치지만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한미 관계를 ‘가스라이팅’에 비유하거나 종속 관계로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런 인식에 기초한 민중주의 전략은 제국주의와 자국 지배자들의 친제국주의·군국주의에 반대해 노동계급이 잠재력을 오롯이 실현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모두 응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한미동맹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4월 28일 성주 사드 기지로 들어가는 기지 건설 장비와 물자들 ⓒ출처 사드 철회 소성리 종합상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