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 포데모스 대표이자 창당 주역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가 지방선거 패배에 책임 지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선거 결과 평가는 본지 367호 ‘스페인 마드리드 지방선거: 사회당-포데모스 정부가 심판받고 우파가 득을 보다’를 보시오.)

창당 8년째를 맞은 포데모스는, 10년 전 5월 15일 분출해 스페인을 뒤흔든 대중적 정치 운동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를 발판 삼아 탄생한 정당이다. ‘분노한 사람들’ 운동 10주년을 맞아, 이 운동을 돌아보고 포데모스의 위기를 짚어 본다.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 운동은 2011년 5월 15일에 마드리드의 푸에르테 델 솔 광장에서 시작돼 스페인을 뒤흔든 정치 운동으로 성장했다. 청년 수십만 명이 운동에 참가했다. 다수는 생전 처음 정치 활동에 참가한 것이었다.

‘분노한 사람들’은 수많은 것을 요구했다. 사회당(PSOE) 정부의 긴축 반대, 금융권 구제 중단, 빈곤 퇴치와 실업 문제 해결, 이민자 공격 중단, “카스트”(정치 엘리트) 척결, 대중의 정치 참여 확대 등. 청년들은 프랑코 독재 종식 후 수립된 ‘1978년 헌법’ 체제를 의문시하며 “진정한 민주주의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운동은 요구와 행동을 모두 ‘총회’에서 토론해 결정했다.

이 운동은 직전에 분출한 ‘아랍의 봄’으로부터 직접 영감을 받았다. 광장 점거라는 형식도 이집트 혁명의 영향이었다. 시위대는 “타흐리르”(이집트 혁명을 상징하는 광장의 이름이자, 아랍어로 ‘해방’이라는 뜻)를 연호했고, 스페인 곳곳에서 이집트 깃발이 나부꼈다.

“체제가 우리를 버렸다”

이 운동은 스페인의 정치·경제·사회 위기가 응축돼 폭발한 것이었다.

스페인은 2000년대 초부터 격동을 겪었다. 2000년대 초 분출한 반(反)신자유주의 운동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운동 덕에 우파 여당 국민당(PP)이 퇴진하고 사회당 정부가 들어섰으며, 스페인은 이라크에서 철군했다.

2007~2008년 경제 위기는 스페인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그전까지 스페인 경제는 신흥공업국의 성장에 기대 호황을 누렸지만, 이제 거품이 완전히 꺼져 버렸다. 그 피해는 노동 대중이 입었다. 약 5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수십만 가구가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집에서 쫓겨났다.

사회당 정부가 은행들은 구제하면서 혹심한 긴축 정책을 추진하자, 불만이 끓어올랐다. 이 때문에 2010년 9월에는, ‘사회적 합의’에 몰두하던 스페인노동총동맹(UGT)도 하루 총파업을 선포해야 했다. 약 1000만 명이 파업에 참가했다. 이 파업은 유럽을 휩쓴 긴축 반대 파업 물결의 일환이었다.

이듬해 분출한 ‘분노한 사람들’ 운동을 통해 수많은 청년들이 정치화했고, 이들이 참가하는 반(反)긴축 운동이 이어졌다. 광장 점거 운동에서 생긴 ‘총회’들이 그런 운동들의 허브 구실을 했다. 노동자들도 2012년과 2014년에 두 차례 대규모 파업을 벌였다.

2014년 3월 벌어진 ‘존엄을 위한 행진’은 그런 운동들이 결집한 것이었다. 200만 명이 수도 마드리드를 행진하며, 긴축 정책을 철회하고 “빵·일자리·집을 모두에게” 달라고 요구했다.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 영감을 받아 몇 달 후 미국에서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이 벌어졌고, 이후 운동은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세계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터진 경제 위기가 ‘아랍의 봄’을 촉발하고, 그 파장이 선진국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는 약점이 있었다. 운동 참가자의 대다수를 이룬 청년들은 정치적 경험이 매우 적었고,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반(反)정치”)을 조직을 일절 거부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래서 좌파 조직들의 광장 점거 참여를 제약했다.

정치적 모호함은 ‘분노한 사람들’ 운동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진정한 민주주의”, “상식의 회복” 같은 추상적 슬로건 아래, 온건 개혁주의부터 체제 변혁을 바라는 이런저런 급진주의까지 온갖 정치가 뒤섞여 있었다. 사회당과 합의에 매달리고 사기도 높지 않았던 스페인 노동운동과 취약한 급진 좌파들은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서 주변적이었다.

한편,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 밀려 사회당 정부가 퇴진하고 국민당이 집권해 긴축을 더한층 밀어붙이자, 정치 전략 문제가 본격 제기됐다.

포데모스는 2011년 스페인을 뒤흔든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서 태어났다 2011년 5월 스페인 ⓒ출처 Mario Munera(플리커)

포데모스

포데모스는 바로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창당됐다.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등 반(反)긴축 주장으로 인기를 끈 지식인들이 창당을 주도했다.

창당 직후 포데모스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창당 4개월 만에 도전한 유럽의회 선거에서 8퍼센트(120만 표)를 득표했고, 같은 해 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28퍼센트)를 기록했다.

포데모스는 전 국민 기본소득 보장, 빈곤 퇴치, 국가 부채 탕감 등 급진적인 개혁 공약들을 제시했고, 나토(NATO) 핵 동맹 탈퇴와 제국주의 전쟁 반대를 입장으로 채택했다.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 참가했던 청년들, 사회 단체들, 급진 좌파들이 대거 포데모스에 입당했다. 광장 점거 때 생긴 지역 ‘총회’가 통째로 포데모스 지부가 되는 일도 다반사였다.

국제적 맥락에서 포데모스는 긴축 반대 염원에 힘입어 부상한 좌파적 개혁주의 물결의 일부였다. 포데모스 창당 이듬해인 2015년에 그리스에서는 시리자가 집권했고, 영국에서는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가 됐으며, 미국에서는 (좌파적 개혁주의는 아니었지만)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이글레시아스 등은 라틴아메리카의 “핑크 물결” 정부들에서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글레시아스와 그 주위 지식인들은 포데모스가 ‘좌파’ 정당으로 비치기를 원치 않았다. 이들은 포데모스의 요구와 공약이 “반체제”적인 것이 아니라 “상식”이라고 규정했고, 포데모스에 “극좌파 정당이라는 고루한 딱지가 붙어 있다”(이글레시아스)고 불평했다.

이는 포데모스가 뿌리를 둔 ‘분노한 사람들’ 운동의 정치적 모호함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매우 의식적인 것이기도 했다.

이글레시아스 등 포데모스 창당 인사들의 이데올로기적 뿌리는 아르헨티나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에 있다. 이글레시아스는 “‘카스트’ 대 민중[이라는] … 새로운 의식”이 기존의 계급 갈등을 대체했다고 줄곧 주장했는데, 이것은 국가가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 벌어지는 “권력층 대 민중”의 갈등이 계급 적대를 대체했다는 라클라우의 주장을 가져온 것이었다.

전략적 문제

그런 정치에서 비롯한 포데모스의 핵심 전략은, 계급적 이해관계보다 담론을 둘러싼 투쟁을, 대중 운동보다 선거를 중시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포데모스는 폭발적 성장기가 지나자마자 공약을 “상식적” 수준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전 국민 기본소득 보장, 주 35시간 노동, 연금 삭감 없는 정년 단축 등 대표적 공약들을 철회했고, “국민 대부분을 배제하지 않기” 위해 애초의 공화정 지지 입장을 거두고 스페인 왕가에 충성을 서약했다.

이런 후퇴는 포데모스의 진정한 기반이었던 반(反)긴축 대중 운동의 염원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당내 긴장과 논쟁이 불거졌다.(관련 기사 본지 181호 ‘스페인 포데모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민중주의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도 포데모스는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는데, 2015년 11월 총선에서 21퍼센트를 득표했다.

이는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적 반감에서 득을 본 것이었다. 이를 의식한 포데모스는 당시 사회당의 연정 제안을 “‘카스트’와 손잡지 않겠다”며 거부했다.

하지만 이후 포데모스는 선거 성적과 의회 정치에 더 몰두하고 대중 운동과는 거리를 두게 됐다. 2016년에 이글레시아스는 “제도 정치가 아니라 거리에서 변화를 쟁취할 수 있다는, 우리가 급진 좌파이던 시절 주장하곤 했던 멍청한 소리는 심지어 사실도 아니었다” 하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분노한 사람들’ 운동에서 기원한 당내 민주주의도 후퇴했다. 이글레시아스 등 중앙 지도부의 권한을 확대하고 기층의 좌파들을 제약하는 일련의 당규가 제정됐다. 급진 좌파들은 제명되거나 탈당했다.

이후 포데모스는 그다지 좌파적이지 않은 정당들과 선거 동맹을 맺었고, 2019년에는 (이전에는 거부했던) 사회당과의 연정에 찬성했다. 이 과정에서 포데모스는 중요한 쟁점들에서 후퇴를 거듭했는데, 카탈루냐의 자결권 옹호를 회피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관련 기사 본지 233호 ‘카탈루냐 독립 찬반을 둘러싼 날카로운 양극화’)

이글레시아스는 자신이 '카스트'라고 부른 자들과 손을 잡았다 총리 페드로 산체스(왼쪽)와 포데모스 대표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오른쪽) ⓒ출처 La Moncloa

그 사이 스페인은 정부 구성에 거듭 실패할 만큼 심각한 정치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포데모스가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을 왼쪽에서 대변하지 못하게 되면서, 오른쪽이 득을 봤다. 우익 포퓰리즘 정당 ‘시우다다노스’(시민당), 파시스트가 포함된 극우 정당 ‘복스’(Vox)가 위협적으로 성장했다.

코로나19가 스페인에 상륙할 무렵, 우여곡절 끝에 사회당-포데모스 연정이 출범했다. 이글레시아스는 부총리가 됐다. 이 정부는 작은 개혁 조처 몇몇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코로나19·경제 위기에서 대중의 생명과 복리보다 대기업의 이익을 우선했다.

연정의 성적표는 참담했다. 스페인은 유럽 나라들 중 가장 먼저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고, 현재 확진자 수는 360만 명에 이른다(세계 9위).

대중의 경제적 어려움도 심각하다. 실업률은 공식 통계로도 15.3퍼센트나 돼 유럽에서 두 번째고, 25세 이하 청년실업률은 37.7퍼센트를 기록해 공식 통계가 집계된 나라를 통틀어 세계 2위다(모두 유엔 추산).

사회당-포데모스 연정이 5월 4일 마드리드 지방선거에서 심판을 받은 것도 예견된 일이었다. 포데모스는 ‘복스’보다 더 득표하겠다는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5위를 기록했다. 이글레시아스 자신이 출마했는데도 말이다.

지금 포데모스가 위기를 겪는 것은, 주요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부상했던 좌파적 개혁주의 프로젝트들이 좌초하는 흐름의 끝부분에 해당된다. 좌파 개혁주의는 체제의 위기가 중첩된 상황에서 대중의 염원을 거스르거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어려움에 처했다.

지방선거 후 포데모스는 심각한 내홍에 빠져 있다. 반면 극우의 부상은 여전히 우려스런 수준이다. 스페인의 정치 위기는 여전히 심각하다.

지금이 ‘분노한 사람들’ 운동의 진정한 교훈을 되새길 때다.

진정한 변화를 쟁취할 힘은 의회나 국가 기구가 아니라 거리와 작업장의 투쟁에 있다. 이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집권해 체제를 개혁하겠다는 전략을 추구한 포데모스는 난관에 부딪혔다.


이 글은 영국의 혁명적 좌파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2754호에 실린 샘 오드의 ‘Podemos — trapped by the system’을 참고해 썼다.

📱 스마트폰 앱으로 〈노동자 연대〉를 만나 보세요!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아이폰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