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지난해 정부가 입법 예고한 ‘가사근로자법’(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이 약간 수정돼 환노위를 통과했다. 여야가 합의한 법안이라 5월 말 국회 통과가 점쳐지고 있다.

정부는 ‘가사근로자법’이 “가사근로자들의 근로조건 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주류 언론의 상당수도 가사노동자들이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치켜세웠다.

일부 가사노동자와 관련 단체들은 “드디어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며 환영했다. 오랜 세월 노동법 적용을 전혀 받지 못했던 가사노동자들이 ‘가사노동’ 관련 첫 법안 제정에 기대를 거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열악한 조건에서 일했던 가사노동자는 코로나19로 처지가 더 나빠졌다. 월 평균 수입이 112만 원에서 64만 원으로 43퍼센트나 급감하는 등 직격탄을 맞았지만,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어 상당수가 정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코로나 이후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여성노동자 위기 현황과 정책과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하지만 가사근로자법이 통과돼도 가사노동자의 처지는 크게 개선되기 힘들다. 일부 가사노동자의 처지는 약간 개선될 수 있지만, 대다수 가사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 법은 일부 가사노동자에게 노동법의 일부만 적용하기 때문이다.

구멍 숭숭

가사근로자법은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에 고용된 가사노동자들에게만 노동법의 일부를 적용한다.

많은 가사노동자들이 이용하는 직업소개소와 플랫폼 업체는 턱없이 미흡한 ‘가사근로자법’마저 적용받지 않는다. 그래서 이 법안을 적극 추진한 민주당 이수진 의원조차 “약 3300개 정도의 전체 가사서비스 소개 기관 중 약 10퍼센트 정도만 인증을 받게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법은 또한 “가사근로자의 명시적인 의사가 있는 경우 또는 경영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주15시간 미만 근무를 허용한다. 이 경우, 유급휴일·연차 유급휴가가 적용되지 않는다.

몇 년 새 늘어난 가사서비스 플랫폼 업체들이 최대 15.5퍼센트까지 수수료를 떼거나 4시간짜리 업무를 한두 시간짜리로 전환시켜 노동강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가사근로자법에는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전혀 없다.

진정한 목적

‘가사근로자법’이 이토록 부실한 이유는, 이 법안의 진정한 목적이 가사노동자 처우 개선이 아니라 가사서비스 시장 활성화와 기업의 이익 보호에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가사근로자법은 시장 활성화를 위한 박근혜 정부의 ‘가사서비스 이용 및 종사자 고용촉진을 위한 제도화 방안’을 이어받고 있다.

그 핵심 내용은 가사노동자들의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조항(11조)을 유지하고, 가사서비스를 파견금지업종으로 규정한 파견법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도록 ‘특별법’ 형태의 꼼수 법안을 제정하는 것이다.

이는 인력 중개앱 등을 이용한 플랫폼 시장이 ‘불법 파견’ 논란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재계의 오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조처다.

올해 1월, 민주당은 “신산업 육성과 규제 혁신” 방안을 내놓으며, ‘가사서비스산업육성법’을 친기업 정책의 핵심 과제로 선정했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재계를 위한 “선물”이라며 ‘가사근로자법’의 조속한 제정을 약속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민주당에 전달한 재계 요구 입법 리스트 중 첫 항목이 가사서비스 중개앱 규제 철폐를 골자로 한 ‘가사서비스법’이었다.

따라서 가사근로자법은 노동자들을 위한 개혁이 아니다. 가사서비스 산업 육성과 기업 이익 보호를 위해 노동법 적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일부 NGO와 노동단체들이 가사근로자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환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가사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크게 도움이 안 되는 이 법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친시장적 본질을 가려주며 노동계급과 진보 염원 대중에게 혼란을 조장한다. 또, 다른 플랫폼 업체들이 노동법을 피해갈 수 있는 선례를 남겨줄 수도 있다.

일부 NGO와 노동단체들이 가사근로자법 통과를 위해 기업과 연대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4월 29일, 이들은 가사서비스 기업인 ‘홈스토리생활’과 함께 ‘가사근로자법’ 환영 기자회견을 열었다.

4월 29일 국회 앞에서 열린 ‘가사노동자 고용개선법’ 통과 관련 기자회견 ⓒ출처 한국노총

플랫폼 ‘대리주부’를 운영하는 ‘홈스토리생활’은 지난해 11월에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제품과 서비스를 시험·검증하는 동안 규제를 면제해 주는 조치)를 부여받아, 근로기준법 등 각종 노동법을 적용받지 않고 있다. ‘홈스토리생활’ 같은 기업들은 ‘가사근로자법’의 정부 인증 제도를 디딤돌 삼아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고 서비스 차별화를 통해 시장을 장악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 노동자 권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한편,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자신이 발의한 ‘가사노동자법’을 폐기하고 정부 법안을 지지한 것은 유감이다. 자신의 법안(소정 근로시간이 기준, 주 15시간 의무조항 포함)보다 더 못한 정부안으로 후퇴한 것인데다, 정부안 지지로 정부 법안의 문제점을 가리는 효과를 내고 있다.

가사서비스 시장 활성화 방안은 돌봄과 가사를 공공서비스로 확충하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노동계급과 서민층에게 계속 부담을 준다. 이것은 가사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도 유지시킨다.

근로기준법의 ‘가사사용인 예외조항’을 삭제해 모든 가사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돌봄‧가사 서비스를 공공복지로 확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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