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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모욕죄 고소·취하 소동과 우파의 위선

우파가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건 견강부회이지만, 그게 먹히는 건 문재인 정부의 위선 때문이다. 2017년 2월 JTBC <썰전> ⓒ출처 JTBC 〈썰전〉

문재인이 자신을 비난한 우파 청년을 모욕죄로 고소했다가 여론이 나쁘자 5월 4일 결국 취하했다.

2019년 7월 한 우파 청년은 국회 분수대 주변에서 문재인을 비롯한 민주당 인사들을 비난하는 전단 수백 장을 살포했다. 그는 그해 12월 모욕죄로 입건돼 경찰 수사를 받다가 올해 4월 모욕죄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우파 언론들에 의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파 언론들은 일제히 문재인 정부 하에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상황을 호도했다. 청와대는 모욕죄 고소 취하를 거부하다가 참여연대와 청년정의당까지 비판에 나서자 결국 취하했다.

청와대는 “남북관계, 국민 명예, 국격에 미치는 해악에 대응한 것”이라고 고소를 정당화했고, 앞으로도 “개별 사안을 신중히 판단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혀 모욕죄 활용의 여지를 남겼다.

우파 청년의 문재인 비판 내용은 전혀 옹호할 가치가 없는 비방이자 흑색선전이었다. 그 전단은 “북조선의 개, 한국 대통령 문재인의 새빨간 정체”를 폭로한다는 문구가 실린 일본 극우파 정치 잡지를 복사한 것으로, 다른 면에는 박원순, 유시민 등이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중상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우파 청년은 지난해 중국이 남한을 식민지화하고 있고 문재인은 시진핑의 꼭두각시라는 터무니없는 내용의 대자보를 대학가에 붙인 단체(신 전대협)의 대변인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청년정책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2020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신청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사실 사람들에게 별 호응도 못 일으킬 터무니없는 주장에 대해 문재인 자신이 나서서 모욕죄로 고소한 것은 우파에게 명분만 준 정치적 오판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정부가 “남북관계” 운운하며 모욕죄 고소 시도를 정당화한 것은 진보 진영에 동의를 구하는 제스처로 보인다. 그러나 어쭙잖은 변명일 뿐이었다. 수준 낮은 우파 지라시와, 문재인 정부가 지속한 한미연합훈련과 전략적 무기 배치를 포함한 역대 최대 규모 군비 증강, 이 중 무엇이 남북관계에 더 해악을 미쳤을까.

대통령이 되기 전인 2017년 2월 문재인은 JTBC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욕과 비판을 관용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는 “국민들은 얼마든지 비판할 자유가 있다”고 답했다. 이번 모욕죄 고소가 진행되고 있던 2020년 8월에도 한국 교회 지도자 초청 간담회에서 “대통령을 모욕하는 정도는 표현의 자유 범주로 허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앞에서는 짐짓 관용적인 체하고는 뒤에서는 완전히 딴판이었던 것이다.

모욕죄는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모욕당했다는 감정에 기반해 처벌할 수 있는 법으로, 그 적용이 모호해서 권력자 비판을 가로막고 표현의 자유를 억누른다는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 내에서조차 비판이 있었고, 강성 친문 인사인 열린민주당 최강욱조차 모욕죄 폐지 법안도 발의했다. (비록 대통령의 체면과 위신을 고려한 입장이었겠지만 말이다.)

한편, 청와대가 모욕죄 고수 이유로 “정부 신뢰를 의도적으로 훼손”함을 든 것은 좌파에게도 그 칼날이 겨눠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우파의 위선

요즘 세계적으로 우파들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자신들의 우파적이고 반동적인 주장을 정당화하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됐다.

최근 영국 보수당 정부 교육부 장관 개빈 윌리엄슨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대학들에만 지원금을 주겠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이는 인종차별적 주장을 하는 우파 학생들에게 말할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위선적이게도 개빈 윌리엄슨은 코로나19 팬데믹 유행 시기에 내린 교육 지침에서, 학생들에게 “극단주의적 사상”을 가르치면 안 된다며 좌파적 교사들을 압박했다.

우파들은 대통령의 이번 고소가 전례없는 일이라며 호들갑 떨지만 참말이 아니다. 2012년 20대 육군 대위가 이명박의 민영화 정책, BBK 의혹 등을 비판하며 트위터에 ‘가카새끼’라고 쓴 일, 2013년 30대 특전사 중사가 트위터에 ‘MB 쥐새끼’라고 쓴 일이 모두 “상관모욕죄”로 유죄 선고됐다. 2012년 당시 〈조선일보〉는 ‘장교가 군통수권자에게 욕설하는 나라’라고 개탄하며 20대 육군 대위를 비난했다.

2008년 ‘미네르바’ 박대성 씨가 이명박 정부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구속된 일이나 박근혜 정부가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도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시도였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박근혜가 직접 지시해,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을 지원금 배정과 공연 기회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도록 한 사건이다. 그 명단이 무려 9473명에 이른다. 그 ‘죄목’들은 박근혜를 풍자한 것부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한 것까지 다양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군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이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유명인들과 언론사 등을 비방하는 온라인 게시물들을 유포한 일도 나중에 들통났다. 이명박의 경찰은 용산 참사, 쌍용차 점거파업 진압 건을 수호하려고 ‘사이버 심리전’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표현의 자유의 중요한 요소 하나(사실 가장 중요한 요소다)인 노동계급의 자주적 조직도 공격받았다. 박근혜 정부 때 전교조가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

우파들이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 건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청년들의 정치의식을 교란해 그 일부를 우파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진정한 표현의 자유

참여연대나 청년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의 위선을 잘 비판하고 모욕죄 고소를 취하하라며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혼란스러운 이해의 반영이다.

역사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권력층과 지배 질서에 대한 비판을 신체 안위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하기 위해 쟁취하려 해 온 권리였다. 위대한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표현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요구의 하나였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표현의 자유를 법적·형식적으로는 인정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피지배자들의 표현의 자유는 제약된다.

자본가들인 지배계급은 학교, 연구소, 언론, 예술, 출판, 교회 같은 이데올로기 생산수단을 소유하거나 지배한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에게 미디어가 집중돼 있고, 그들이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지배계급의 사상은 거의 무제한으로 표현될 수 있는 반면, 차별받고 착취받는 사람들의 표현은 실질적으로 제약된다. 자본가 지배계급에게 표현의 자유는 이미 도래한 권리인 반면 돈 없고 힘 없는 노동자 개개인들은 기성 언론을 자기 의사대로 이용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추상적 권리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누구의 표현의 자유이고, 무엇을 말할 자유인지 물어야 한다.

천대받는 대중에게 해로운 주장과 비방까지 표현의 자유라고 감쌀 수는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우파 전단지도 남한 사회에서 가장 우파적이고 반동적인 주장을 재생산한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표현의 자유란 노동자와 천대받는 사람들의 의견과 주장의 자유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위선

우파의 위선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위선 덕분이다.

이번 소동은 우파 정부 하에서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민주당이 정작 권력을 잡으면 그들도 권위주의적 수단을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자본주의 지배계급의 일부이자 자본주의 국가 기구들을 운영하는 권력자로서 대중의 표현을 다소간에 제약하는 것이 득이 된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좌파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 악법인 국가보안법에 의한 억압이 이어지고 있다. 김일성 회고록 출판 논란은 가장 최신 사례다. 평화적 토론을 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여전히 감옥에 수감돼 있다. 2018년 국경없는기자회는 한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했고, 국제인권단체인 미국의 프리덤하우스도 2019년과 2020년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처벌 가능성을 이유로 한국을 ‘부분적 자유국’으로 분류했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을 비판한 지식인의 표현 자유를 공격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둔 2019년 말 “민주당만 빼고 다”라는 칼럼을 〈경향신문〉에 쓴 임미리 교수를 고소하려다가 비난이 커져 철회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노동자 집회를 사실상 금지하고 일부 농성장을 강제로 철거하는 것도 노동계급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다.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데도 되도록 집회를 허용하지 않으려 애쓴다.

최근 웹사이트에 이용자의 아이디를 공개할 의무를 부여하는 인터넷 준실명제 법안이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위헌 판결을 받은 인터넷 실명제를 일부 우회하는 법이다.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도 인터넷 표현 단속에서 득을 보려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전에도 문재인 정부는 우파의 막말을 빌미로 대북전단금지법이나 5.18 망언 규제법, “가짜뉴스” 단속과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진했다. 이 법제화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러나 우파적 주장을 막겠다며 무엇이 허용되는 표현인지 판단 여부를 국가에게 맡기는 것은 억압받는 대중의 표현의 자유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수단들은 우파뿐 아니라 좌파의 주장들을 억제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필요한 이유가 노동계급이 세계를 더 잘 이해해서 그 세계에 맞서 싸울 자신감을 더 많이 갖게 하기 위함이라고 지적했다.

즉, 표현의 자유는 국가기구의 핵심적 일부인 자유주의 정부가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반자본주의자들이 저항 속에서 쟁취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대중적 투쟁 경험과 정치적 토론이 결합되면 대중은 체제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싸울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