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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 비판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비판

이정구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테러 이후 “문명의 충돌”이라는 말이 유명해졌다. 부시는 테러에 대한 보복 전쟁을 약속하면서, 비록 나중에 철회하기는 했지만 “십자군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문명 세계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다. 비문명 세계에 속한 사람들조차 자신들이 잘못된 편에 속해 있지나 않은지 재고해 보기 시작했다.” 하고 말했다.

이런 주장들의 핵심은 간단하다. 이 세계는 문명 사회와 비문명 사회로 나뉘어 있으며, 자유, 관용, 번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문명 사회가 공격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노골적이고 분명하게 펼친 책이 이번 테러 사태를 계기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바로 새뮤얼 헌팅턴이 쓴 《문명의 충돌》이 그 책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 촌락들에 폭탄을 대량 투하하는 근거를 만들어 낸 인물이다. 헌팅턴은 수천 톤의 폭탄과 화학 무기 사용을 핵심 골자로 한 ‘정착촌’ 전략을 수립한 장본인이다.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 전사들이 농촌에서 광범한 지지를 얻자 헌팅턴은 농촌을 초토화시켜 그 주민들을 도시로 내몰면 NLF가 지지 기반을 잃게 돼, 결국 미국이 ‘베트콩’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하지만 헌팅턴은 베트남 촌락에 대한 융단 폭격, 네이탐탄, 고엽제 등을 “문명”이라는 말로 정당화했다.

왜곡

새뮤얼 헌팅턴은 냉전 종식 뒤 등장한 신세계 갈등의 근본 원인은 이데올로기적인 것도 경제적인 것도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세계 정치의 주된 갈등은 상이한 문명 집단들 사이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론으로 그는 문명의 충돌이 전 세계 정치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명 충돌론은 냉전 해체 이후 제국주의 전쟁의 본질을 은폐하는 구실을 한다. 그래서 냉전의 전사이자 전범인 헨리 키신저는 헌팅턴의 책을 두고 “21세기 세계 정치의 현실을 포착하는 강력한 해석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문명 충돌론은 서방과 자국 지배자들에 대한 제3세계 민중의 들끓는 분노와 그들의 일부가 자살 테러를 감행하게 만드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또, 문명 충돌론은 중앙 아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조지 W 부시가 벌이는 추악한 전쟁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무엇보다, 문명 충돌론은 모든 문명에서 갈등의 근본 원인인 계급 간의 투쟁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헌팅턴의 책을 읽어 보면 그가 “문명”이라는 단어를 매우 혼란스럽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때는 그는 문명을 ‘아프리카 문명’처럼 지역적인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이슬람’이나 ‘서구 그리스도교’나 ‘동방 정교’와 같은 종교적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일본’처럼 국민국가를 지칭하기도 한다.

문명에 대한 이런 혼란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 왜곡을 밥 먹듯 한다는 점이다.

헌팅턴은 “이슬람의 피묻은 경계선”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뉴욕 타임스〉가 1990년대 초반에 지목한 31개 상이한 문명 간의 갈등 가운데 3분의 2인 21개가 이슬람교도와 연관돼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31개의 상이한 문명 간의 갈등은 각각 상대편이 존재한다. 그러면 62개의 문명 중에서 이슬람이 개입된 경우는 21개뿐이다. 이것은 이슬람 문명이 세계를 가로지르는 가장 긴 육로 국경선을 가졌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결코 높은 수치가 아니다. 육로 국경선을 사이에 둔 국가들이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갈등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헌팅턴은 사실들을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해석해, “이슬람 교도의 호전성과 폭력성은 이슬람 교도도 비이슬람 교도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20세기 후반의 엄연한 사실”이라고 결론내린다. 헌팅턴은 그 근거로 1980년대 이슬람 국가들의 군사화를 떠벌인다.

하지만 헌팅턴은 서구, 특히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집트, 이라크 등의 국가들에 판매한 엄청난 액수의 무기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이슬람 국가들이 1980년대에 군비 지출을 비약적으로 늘린 것은 서구, 특히 미국 지배자들이 석유를 지배하기 위해 아랍의 부패한 지배자들의 군사력 증강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헌팅턴은 유교권의 핵심 국가인 중국의 부상을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본다. 헌팅턴은 중국과 북한이 이슬람 국가들(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언급하면서, “이슬람-유교 동맹”을 서방의 잠재적인 적대 문명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이슬람 국가에 판매하는 무기의 질과 액수는 중국이나 북한의 10배가 넘는다. 헌팅턴의 논리대로라면 서구와 이슬람의 동맹이 더 맞는 그림일 것이다.

《문명의 충돌》 말미에서 헌팅턴은 중국이 시작하는 제3차세계대전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물론 중국도 자국 내 소수 민족을 억압하고 국경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제국주의 국가다. 하지만 미국 군사력의 8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군사력을 갖고 있는 중국이 미국의 위협 세력이라는 주장은 과장도 이만저만한 과장이 아니다.

폭력성

헌팅턴은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극찬하는 신보수주의자다. 그는 “서구가 다른 문명들과 차이나는 점은 문명의 전개 과정이 아니라 남다른 가치관과 제도이다. … 서구는 이런 자산을 활용하여 근대성을 창안하고 전 세계로 팽창하면서 다른 문명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런 특성들의 조화는 서구만의 것이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서구 사회가 자신의 독특한 가치관과 제도를 다른 문명에 강요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서구 지배자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가장 큰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 사이의 갈등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헌팅턴에 따르면 서구 문명의 가치라는 민주주의, 자유, 다원주의, 법치주의 등이 비서구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비서구 사회가 서구의 정신적 가치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비서방 국가들에서 수많은 친서방 정권들이 쿠데타나 혁명 또는 선거로 밀려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비서구 지역에서는 서구적 가치가 정착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메스꺼우리만큼 심각한 왜곡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아옌데 정권을 피노체트 쿠데타로 전복했던 것이 미국 아니었던가? 1979년 이란 민중에 의해 추방당했던 부패한 국왕 팔레비를 수십년 동안 정치적·군사적으로 후원해 줬던 게 미국과 영국 아니었던가?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했고 지금 전쟁광 아리엘 샤론을 지원하는 장본인이 바로 미국 아닌가? 서방 문명, 특히 그 중에서도 미국은 비서방 국가들에 개입하여, 헌팅턴이 서방의 가치라고 자랑하던 민주주의, 다원주의, 법치주의를 무참하게 짓밟았다.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이 비서방 국가들을 침략하여, 그 지역의 문명과 제도를 파괴하고 부를 약탈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된 아프리카의 농담은 서방 문명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를 말해 준다. “백인이 다가와 자신들은 성경을 갖고 있고 우리들은 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보니 우리는 성경을 갖게 됐고 백인은 땅을 갖게 됐다.”

서구 문명

헌팅턴은 예닐곱 개의 문명이 서로 조화하거나 화합하기보다는 서로 갈등을 일으킨다고 본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 이론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다원주의조차 부정하는 꼴이다. 그는 “아무리 경제적 결속이 강화된다 하더라도 아시아와 미국은 근본적인 문화적 차이 때문에 한 살림을 차릴 수가 없다. … 다원 문화주의자들은 이 관계를 훼손하고 심지어는 파괴하려고까지 하지만 그것은 부인 못할 엄연한 사실이다.” 하고 말한다.

기독교가 중심이 된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신봉하고 있는 헌팅턴은 지난 역사에서 기독교 문명이 저지른 만행들, 가령 중세의 마녀사냥과 십자군 전쟁 그리고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사실을 잊고 싶을 것이다. 서방 국가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빨리 자본주의를 도입하고 발전시켰다. 그리고 비서방 국가들로부터 엄청난 부를 빼앗아 문명과 제도를 발전시키고 경제를 부흥시켰다. 하지만 헌팅턴이 칭송하는 서구 문명의 이면에는 앞서 지적한 야만도 함께 존재한다. 헌팅턴은 이 세계를 문명끼리의 충돌이라는 한 가지 논리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1991년 제2차 걸프전, 1999년 나토의 발칸 전쟁 같은 1990년대의 국제 분쟁은 물론이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조지 W 부시의 전쟁조차 설명하지 못한다. 서방 지배자들의 입맛에나 맞을 그의 책은 사물을 왜곡시키는 오목렌즈와 비슷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역겹도록 혐오스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