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든 정부는 코로나19 백신과 백신 원료 수출을 금지할 정도로 미국 우선주의를 분명히 해 왔다.

그런데 최근 미국 내 백신 물량 일부를 다른 나라에 제공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백신 특허권(지적재산권) 면제를 지지하겠다고 발표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특허권 보호는 미국이 수십 년 동안 주도해 온 ‘자유 무역 질서’의 핵심 부분이다. 이를 통해 거대 제약기업들은 20년 동안 독점권을 보장받고, 엄청난 이윤을 거둬 왔다. 그야말로 사람들의 피를 빨아 얻은 이윤이라고 할 만하다.

HIV/에이즈 치료제는 이미 1990년대에 개발됐지만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는 약값을 낼 돈이 없어 한 세대가 속절없이 죽어 갔다. 백혈병 같은 치명적 질병을 완화시키는 약들이 개발됐지만 엄청나게 비싼 가격 때문에 선진국의 서민들도 고통받아 왔다. 2000년대 내내 거대 제약회사들의 횡포를 규탄하고 특허권 폐지를 요구하는 운동이 계속돼 온 이유다.

그럼에도 인도 등이 일시적으로 특허권을 무시하는 조처들을 쓴 것을 제외하면 특허권과 세계무역질서에 도전하는 국가는 없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무역 보복으로 빈국들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김대중 정부의 이태복 복지부 장관이 약값 인하를 시도했다가 국내외 제약회사들의 로비로 쫓겨나기도 했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자 인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 정부들은 세계무역기구에 특허권 면제를 요구하는 안건을 제출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경제에 끼친 충격에 놀란 일부 선진국 지배자들도 이 요구를 지지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백신 원료 수출을 제한해 미국 제약회사인 노바백스의 해외 공장 백신 생산도 차질을 빚을 정도였다.

그런데 5월 초에 바이든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팬데믹 기간에는 특허권 면제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화이자 같은 미국 제약기업들은 물론이고 독일 메르켈 정부도 즉각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국내외에서 충분히 조율을 거치지 않은 입장 발표였던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태세 전환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백신 공급을 제한하는 동안 중국은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에 백신을 지원하며 영향력을 강화해 왔다. 50여 개국에 자국산 백신을 수출한 데 이어,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등 10여 개 나라에는 기술도 이전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중국 시노팜 사의 백신이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긴급 사용 허가까지 받았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의 특허권 면제 지지 발표가 실제로 다른 나라들에 도움이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보다 미국 패권 강화에 골몰하기는 마찬가지 메릴랜드 육군 병원에서 백신 접종 준비 과정을 살펴보는 바이든 ⓒ출처 백악관

특허는 기술을 공개하는 대신 다른 기업이나 정부가 함부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조처다. 그런데 화이자 등 엠알엔에이(mRNA) 백신을 개발한 제약기업들은 백신 기술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지질나노입자 기술’의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즉, 특허를 신청하지 않아 기술을 ‘도난’당할 위험을 감수할지언정 기술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경쟁 기업이나 정부들이 이 기술을 쉽게 따라잡기 어려우리라는 계산을 한 것일 테다.

바이든이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지만, 전 세계가 백신 공급난에 허덕이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특허권 면제 요구에 계속 침묵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긴 듯하다. 그동안 자신이 ‘미국의 귀환’, 즉 동맹 강화를 통해 미국의 ‘지도적’ 지위를 복원하겠다고 한 것과도 모순되게 보일 테니 말이다. 한편에서는 미국이 특허권 면제를 지지해도, 거대 제약기업들과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의 반발 때문에 WTO에서 안건이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순전히 말로만 생색을 낸다면 백신 보급을 통한 중국의 영향력 차단이라는 목적을 이룰 수 없으므로, 미국 내에서 생산된 백신 8000만 회분을 다른 나라들에 공급하겠다고 한 듯하다. 한미정상회담을 전후로 그 중 일부가 한국에 공급된다면 문재인은 이를 자신의 성과로 자랑하려 애쓸 것이다.

한편, 바이든 정부가 백신을 다른 나라에 공급하기로 한 데에는 미국 내 백신 접종이 한 고비를 넘겼다는 인식도 깔려 있는 듯하다. 최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백신 접종자들의 실내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바이든이 마스크를 벗고 기자회견에 나서면서 보낸 메시지는 이제 모두 일터와 학교 등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신 접종자가 인구의 절반이 채 안 되는 상황에서 이런 조처는 재확산을 낳을 위험이 다분하다. 바이든은 재확산이 몇 차례 더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이 조처를 강행했다. 영국과 스웨덴 지배자들이 팬데믹 초기에 밀어붙이려 한 집단면역 실험과 근본에서 다르지 않은 시도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터널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기사 내용 중 바이든의 백신 특허 면제 지지 입장이 단순히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표현을 삭제하고 일부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바이든은 오늘날 미국이 단지 립서비스만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세계 다른 나라들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을만큼 강력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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