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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해방 운동과 전략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과 팔레스타인인 공격이 연일 신문 지면에 오르고 있다. 폭격의 잔해 속에서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어린이·여성들, 예루살렘 알아크사 모스크 앞에 모인 팔레스타인인들을 최루탄으로 해산시키는 이스라엘 경찰들의 모습을 담은 참혹한 사진·영상 등은 눈 뜨고 보기 어렵다.

이런 보도들은 대개 폭력의 참혹함을 부각하는데,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일관되게 지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앞세우며 둘 모두 잘못이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무장 투쟁과 대중 운동 등을 포함한) 그들의 모든 저항 수단을 비타협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인종 청소

이번 저항은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밀집 거주하는 셰이크 자라 구역에서 시작됐다. 이스라엘 법원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현재 거주 중인 가옥에서 퇴거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 그 시발점이었다. 법원 명령 이후 몇 주 동안 이스라엘 경찰은 셰이크 자라 구역을 침탈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이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고향에서 내쫓고 그 자리를 유대인 정착민들로 채워 온 ‘인종 청소’ 역사의 일부다.

이스라엘은 제국주의 침략 야욕과 인종 청소, 폭력으로 점철된 끔찍한 과정을 거쳐 1948년에 건국됐다. 이스라엘 건국은 당대 세계 최강국인 영국의 중동 패권 유지 전략과,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대 민족 국가를 건설하려는 시온주의자들의 야욕이 맞물린 결과였다.

1917년, 당시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유대 민족을 위한 국가 수립”을 지지한다고 명시한 ‘밸푸어 선언’을 발표했다. 시온주의자들이 벌인 끈질긴 로비의 성과이자 영국 제국주의의 이해관계가 작용한 결과였다.

이 선언은 유대인들이 영국의 제1차세계대전 수행을 지원하면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을 위한 모국을 세우는 …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그 장소로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이 낙점됐고(여기에는 페르시아만 유전 지대에 대한 영국의 지배력을 보존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제1차세계대전과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거치며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드는 유대인 이주민들의 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났다. 원래 유대인들이 가장 선호한 목적지는 영국이었지만 시온주의자들의 강요와 서방 국가들의 공모 속에 중동으로 간 것이다.

팔레스타인 지방에 간 시온주의자들은 그곳에 사는 아랍인들의 집과 땅을 폭력적으로 빼앗았다. 시온주의 조직 ‘히스타드루트’는 아랍인 상품 불매 운동, 아랍인 노동자 일터에서 추방하기 등 인종차별 캠페인을 벌였다. 시온주의 민병대 테러 조직 ‘하가나’·‘이르군’ 등은 아랍인 마을을 습격하고 학살·방화·약탈·강간을 벌였다. 영국은 이 테러 조직들에 무기를 제공했다.

바로 이것이 1948년의 ‘나크바(대재앙)’다. 당시 팔레스타인에 살던 아랍인의 80퍼센트에 이르는 최소 75만 명이 학살과 공포를 피해 레바논·시리아·요르단 등지로 피신했다.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의 시작이었다.

팔레스타인 영토 변화 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고 내쫓으며 이스라엘을 건국한 시온주의자들. 이런 지독한 만행은 미국 등 제국주의의 막대한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출처 팔레스타인이스라엘행동그룹(PIAG)

이 모든 과정에서 제국주의와의 유착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나크바’를 일으키고 이스라엘을 세운 시온주의자들은 아랍인들을 감시하는 대가로 영국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고자 했고, 건국 이후에는 미국의 막대한 지원으로 국가를 유지했다.

제국주의의 지원에 힘입어 이스라엘은 1967년, 1973년 등 여러 차례 전쟁을 벌여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점령하고 영토를 확장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은 인구에 견줘 턱없이 좁아졌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대인 시온주의자들과 이들을 후원하는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했다.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촌에 정착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런 저항의 중심이었다.

1959년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아랍 민족주의 저항 조직 ‘파타’를 결성했다. 파타는 이후 팔레스타인의 대표 기구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최대 분파가 돼 저항을 주도했다. 그런데 파타는 이스라엘의 군사력에 맞선 무장 투쟁을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아래로부터 저항을 조직하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1987년에는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대중 항쟁 ‘인티파다’를 일으켰다.(관련 기사 본지 233호 ‘1차 ‘인티파다’: 30년 전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에 맞서 봉기했다’) 팔레스타인인 모두가 항쟁에 동참했고, 이집트·터키·시리아 등지로 연대 시위가 확산됐다.

하지만 PLO 지도부는 운동을 단속하는 데에 급급했고, 1993년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포섭돼 오슬로에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오슬로 협정). 이 협정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1967년 전쟁 당시 국경을 기준으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수립한다는, 이른바 ‘두 국가 해법’을 골자로 했다.

이 협정으로 PLO 지도부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에서 비교적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PLO는 독립된 경찰기구를 운영할 수 있게 됐고 PLO 지도자들은 부를 축적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팔레스타인자치기구(PA)는 이스라엘에 저항하기는커녕 PA의 지배에 도전하는 팔레스타인인 활동가들을 자체 보안 부대를 동원해 투옥·고문했다.

하마스(‘이슬람저항운동’의 약자)는 PA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불만에 힘입어 성장했다. 하마스는 2000년 ‘2차 인티파다’ 당시 크게 성장했다. 2차 인티파다는 오슬로 협정 이후에도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과 이를 사실상 옹호하는 PA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일어난 항쟁이었다.

하마스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이스라엘과 파타가 서방의 후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켜 서안지구에서 하마스를 쫓아냈다. 그래서 현재는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파타가 서안지구를 통치한다.

하지만 오늘날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와 그에 따른 고립 속에서 애초의 핵심 원칙을 저버렸다. 예컨대, ‘두 국가 해법’을 받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됐다.

한편, 이스라엘이 (오슬로 협정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영토인) 서안지구에 정착촌을 건설해 7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을 이주시켰는데도,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PA는 이를 묵인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 정착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정착촌 주변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수시로 공격한다.

현재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제외한 팔레스타인 영토 거의 전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점령하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대계 이스라엘인들과는 아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상시적 차별과 천대, 약탈에 시달리고, 이에 못 이겨 살던 곳에서 쫓겨나 난민이 되기 십상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아랍인·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인종 청소를 시도하는 체계적 인종차별 국가,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다.

해방의 전략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

먼저, 팔레스타인인들의 적은 누구인가?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살던 땅을 무력으로 뺏고, 애초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을 말살하려 계획했던 시온주의자들, 그리고 그런 목적으로 수립된 국가 이스라엘이 그 적이다.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도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경비견”(이스라엘 자신의 표현이다!) 삼아 지역 패권을 유지하려고 이스라엘에 막대한 군사적·경제적·정치적 지원을 쏟아붓는다. 그런 지원은 이스라엘의 존속에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번 공습에서 (역대 미국 정부들처럼) 이스라엘을 강력히 옹호한 바이든은 5월 17일에 이스라엘에 7억 3500만 달러 규모의 무기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제국주의 열강에도 반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의 한국-이스라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도 규탄받아야 한다.

아랍 국가들의 지배자들은 팔레스타인의 편일까? 이들은 말로는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과 군사·안보 교류를 매우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정부 시절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아랍에미리트·수단·모로코·이집트 등은 지금 말로도 이스라엘을 규탄하지 않는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안정’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생명과 안전은 관심 밖이다. 이들은 언제나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두려워했고 지금도 그렇다.

아랍 지배자들은 팔레스타인 저항이 자국으로 번질까 봐 편집증적으로 군다. 이집트 정부는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었다는 이유로 기자 한 명을 체포했고(이 기자는 행방불명됐다), 알제리 정부는 시위에서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드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아랍 세계에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서방 제국주의에 맞선 저항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두 번의 인티파다는 수많은 아랍인들을 급진화시켰고, 끊임없이 이어진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아랍인들이 자국 지배자들에 맞서 저항하도록 고무하는 구실을 해 왔다.

지금도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에 고무돼 터키·레바논·요르단·이라크·카타르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분출했다. 이런 저항은 아랍 지역에서 자국 지배자들에 맞선 저항으로 발전할 수 있다.

아랍 세계의 저항은 팔레스타인 해방에서 핵심으로 중요하다. 작고한 팔레스타인 출신 영국 사회주의자 토니 클리프(1917~2000)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은 카이로를 통한다”고 했다.

2011년과 2019년 중동을 흔들었던 두 저항 물결들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었다. 아랍 혁명의 현장에는 언제나 팔레스타인 깃발이 나부꼈고,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는 이스라엘 대사관을 두 차례나 점거했다. 이런 저항들은 그 나라 지배계급이 이스라엘, 제국주의 열강과 결탁해 있음을 가차 없이 폭로했다.

2011년 이집트 혁명은 그런 해방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힐끗 보여 줬다. 이집트 가스 노동자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천연가스 수출 중단을 요구하며 파업했고, 이집트 혁명가들은 가자지구와 접한 국경을 허물어 이스라엘의 봉쇄에 신음하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구호 물품을 전달했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아랍의 해방에 필수 요소라는 점도 중요하다. 아랍 민중이 해방되려면 팔레스타인을 짓누르고 아랍 각국 지배자들과 때로 유착하고 때로 갈등하는 이스라엘, 그리고 그 이스라엘을 경비견으로 삼는 제국주의와 대결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존속을 인정하는 ‘두 국가 해법’은 바로 그런 이스라엘과 제국주의자들의 해법이지 팔레스타인과 아랍 민중을 위한 해법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제국주의의 “경비견”이자 강탈 국가, 인종차별 테러 국가 이스라엘은 사라져야 한다.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제국주의 세력들, 아랍 지배자들 모두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연대만이 진정으로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