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5월 21일 노동자연대 공개 온라인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영상 보기)이다. 박이랑은 현재  중동 전문 잡지 《미들이스트 솔리대리티》 공동편집자이고,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대학(SOAS)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다. 강연을 녹취해 글로 표기해 준 나유정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 ] 안의 말은 〈노동자 연대〉 신문 편집팀이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첨언한 것이다.


5월 22일(한국 시각)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휴전이 발표됐다. 먼저 이에 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이 휴전은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의 성과이기도 하다. ‘테러의 뿌리를 뽑겠다’, ‘지상군을 투입하겠다’ 운운하던 네타냐후 정부가 갑자기 무조건적 휴전을 합의한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과 그에 대한 국제 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일시적 상황일 것이라고 본다. “전투는 이겼을지 몰라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앞으로도 계속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학살할 것이다. 따라서 그에 맞선 저항도 여전히 중요하다.

휴전 선언 직후 알아크사 사원 앞에서 환호하는 팔레스타인인들 ⓒ출처 Activestills

이스라엘 지배자들은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을 두고 “잔디는 주기적으로 깎아 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5~6년마다 가자지구를 폭격하고 지상군을 투입해 거기서 자라나는 저항 운동을 짓밟아야 더 큰 후환이 없으리라는 인식을 표현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잔혹함이 잘 드러나는 말이다.

잔혹

이제 가자지구의 현 상황을 몇 가지 수치를 들어 살펴보겠다.

11일간의 폭격 동안 232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다쳤다고 집계됐다. 사망자 중 65명이 어린아이였는데, 그중 11명은 이전의 폭격·전쟁으로 입은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번 폭격은 전례 없는 대규모 폭격이었다. 이스라엘은 2014년에도 이번과 비슷한 폭격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규모만 보면 이번이 2014년의 3배 정도 되는 역대 최대였다. 가옥이 수천 채 파괴됐고, 수만 채가 파손돼서 사람이 살 수가 없는 상태가 됐다.

가자지구는 한국의 진도보다 약간 좁은 땅이다. 거기에 약 200만 명이 산다. 인구가 얼마나 밀집한 지역일지 대략 가늠이 될 것이다.

이런 곳을 이스라엘은 정말 악랄하게 폭격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이 생활하는 데에 필수적인 병원·도로·수도·전기 등 인프라 시설들을 노렸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최대 병원 건물은 폭격하지 않았지만 그 병원으로 이어지는 주변 도로를 모두 폭격해 구급차가 부상자를 후송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산업 시설도 폭격했다. 공장이 파괴되면 노동자들과 그들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가족들의 삶이 위태로워진다. 이스라엘 측 인사 한 명은 가자지구를 “석기 시대로 되돌려 버리겠다”고 했는데, 이를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내 유일한 코로나19 검사 시설도 폭격했다. 그래서 아무도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가자지구 내 코로나19 방역 책임자도 폭격으로 사망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코로나19 피해가 심한 가자지구에 백신 반입을 막고 있었는데, 이번 폭격으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은 더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됐다.

인종 청소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대체 왜 가자지구를 폭격한 것일까?

다음 사진(5면)은 예루살렘 내 ‘셰이크 자라’라는 동네다. 이스라엘은 원래 이곳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유대인 정착민들을 채워넣는 인종 청소, 이른바 ‘유대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셰이크 자라의 주택 이스라엘은 이 집에 살던 팔레스타인 가족을 쫓아내고 이스라엘인들이 살게 했다 ⓒ출처 Activestills

사실 이런 ‘유대화’ 작업은 팔레스타인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사진에 보이는 이스라엘 국기가 걸린 집은 원래 팔레스타인 가족들이 평생 살아 온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 너희는 이 집에서 살 권리가 없어’ 하며 경찰이 이 가족을 쫓아내고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그 집을 내어 준 것이다. 짐도 못 챙기고 쫓겨난 이 팔레스타인 가족들은, 자신들이 평생 살던 집을 바라만 보면서 거리에서 지낼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셰이크 자라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강제 퇴거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이스라엘 경찰이 이를 탄압하며 폭력을 휘두른 것이 대규모 저항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라마단’(이슬람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1년 중 한 달로, 올해 라마단은 5월 12일에 끝났다) 기간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규탄 시위에 나섰다. 이스라엘 경찰이 그 시위를 탄압하면서, 이슬람의 3대 성소 중 하나인 알아크사 모스크를 침입하는 일이 있었다. 경찰은 모스크 경내에서 최루탄을 터뜨리고 평화롭게 예배를 보던 사람들을 공격했다.

이 일이 알려지면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분노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였다. 이렇게 저항이 시작된 것이다.

이스라엘  — 인종차별적 식민 국가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이후부터 팔레스타인 전역이 셰이크 자라였다고 말한다. 이번 셰이크 자라 강제 퇴거는 팔레스타인인들이 70년 넘게 일상적으로 겪어 왔던 과정의 일부인 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수립된 과정을 보자. 이스라엘은 결코 일반적인 국가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식민 정착자 국가”라고 불린다. 이는 (마치 지난 세기 일제와 조선처럼) 식민 국가가 식민지를 점령하는 것과 달리,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의 일부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그곳을 식민 점령(정착)했다는 뜻이다.

대체 왜 일부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했을까? 시온주의라는 정치 운동이 그 출발점이었다. 시온주의는 유대 ‘민족’만으로 이뤄진 단일 민족 국가를 건설한다는 정치 운동으로, 19세기 말부터 시작됐다.

시온주의는 18~19세기에 러시아·폴란드 등 동유럽을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벌어진 유대인 대량 학살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학살을 피하기 위해 유럽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안전한 국가를 건설하는 운동이었다. 시온주의 운동은 민족주의 운동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억압받는 민족의 해방 운동은 지지하지만, 시온주의는 지지할 수 없다. 시온주의 운동은 제국주의와 결탁해 타민족을 억압하는 반동적 정치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온주의 운동으로 수립된 이스라엘 국가는 태생부터 인종 차별과 억압에 기반한, 존재해서는 안 되는 국가이다. 그렇기에 모든 유대인이 시온주의와 이스라엘을 지지한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본지 234호, ‘이스라엘 반대가 유대인 배척일까?’를 보시오.]

지금 이스라엘의 현실만 봐도 이스라엘 국가의 성격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가자지구나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시민권이 있고 이스라엘 국경 안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도 2등 시민으로 취급받고 있다.

이것은 단지 현 네타냐후 정부가 우파 정부라서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누가 집권하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존재 자체, 근본 자체가 인종차별과 타민족 말살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다. 따라서 누가 집권하든 이 점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제국주의의 후원과 이스라엘

이스라엘 국가의 수립과 존속의 배경에 제국주의의 후원이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제국주의는 이스라엘의 탄생부터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시온주의자들의 계획이 처음 서방측 제국주의의 승인을 받은 것은 1917년이다. 당시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도록 지원하겠다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했다.

이것이 시발점이 돼, 영국은 유럽 거주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할 수 있게 지원하고 무기도 제공했다. 1900년대 초부터 수많은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원래 그 지방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유대인들이 학살과 억압을 피해서 이주한다고 보고 이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대인 정착민들이 그저 이주민·난민이 아니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종 청소하고 그 자리에 유대 민족만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임이 드러났다.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나크바

이후, 영국이 지원한 무기로 무장한 시온주의 테러 조직과 민병대들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하고, 어린이와 여성을 죽이고, 인종 청소를 하고, 마을 자체를 지도에서 지워 버리는 일들을 몇 년 동안 계속했다.

1948년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이라는 뜻)가 벌어져 엄청난 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공포에 떨면서 학살을 피해 피난길에 오르게 됐다. 팔레스타인인의 약 80퍼센트가 살던 마을을 버리고 인근 지역으로, 요르단·시리아·레바논 등 인근 국가로 이주했다.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은 ‘나크바’가 시작된 날을 이스라엘 건국 기념일로 삼았다.

건국 이후 이스라엘은 전쟁을 계속 치렀다. 제국주의자들이 지원한 무기로 아랍 국가들을 침공하며 영토를 계속 확장했다. 그 과정은 [지도1]을 보면 잘 드러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영토의 변천사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팔레스타인 영토에 유대인 정착촌을 속속 건설하며 팔레스타인인들에 할당된 지역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셰이크 자라도 그런 정착촌 건설, 즉 팔레스타인인들을 모두 죽이든 추방하든 ‘청소’하고 그 자리를 유대인들로 채워넣으며 팔레스타인 영토를 완전히 잠식하는 이른바 ‘유대화’ 작업의 일부로서 벌어진 일이다.

이런 이스라엘의 확장을 뒷받침한 핵심 제국주의 국가는 애초에는 영국이었다. 이후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는 과정과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들의 전쟁이 맞물리면서, 이스라엘의 최대 후원국 자리는 점차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

결정적인 사건은 1979년 이란 혁명이었다. 혁명으로 친미 성향의 파흘라비 왕조가 타도되자, 미국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경비견”이자 첨병으로 이스라엘을 택하게 된다. 그후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지원이 크게 늘어, 현재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손꼽히게 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이스라엘 자신은 인정하지 않지만,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기도 하다.

두 가지 저항

이스라엘에 맞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역사적으로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저항해 왔다. 바로 무장 단체 등 조직적 대응과, 평범한 사람들의 아래로부터 저항이다.

첫째 방식의 대표적 사례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하마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등이다. PLO는 이스라엘에 맞서 무장 투쟁하기 위해 1960년대에 건설된 팔레스타인인들의 조직인데, 1980년대에 탄압을 피해 국외로 망명해 있으면서 팔레스타인에서 존재감이 줄었고, 많이 우경화하고 온건해졌다.

이를 비판하며 등장한 것이 하마스다. 하마스는 1987년 1차 ‘인티파다’ 이후 이스라엘에 맞선 무장 투쟁을 통해 부상했다. 하지만 이제 하마스도 많이 온건해져, 이스라엘을 부정하던 데서 입장을 바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데까지 후퇴해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어느 정도 지지를 받고 있다.

1993년 PLO와 PLO를 계승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오슬로 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에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로 인정하되, 나머지 영토 전체를 이스라엘로 인정하는 이른바 ‘두 국가 해법’ 분할안이 나왔다.

이 협정을 계기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도자들은 급격하게 온건화·우경화하기 시작했다. 오슬로 협정으로 사실상 자신들의 지위를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통치하는 서안지구 안 정부에서 월급도 받고, 심지어 부를 축적하기도 하면서, 평범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삶과는 격차가 커지게 됐다.

이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그저 단속하는 수준이 아니라 탄압하기까지 한다. 이번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이 연대 시위에 나섰을 때 가장 먼저 이 운동을 공격한 것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자치경찰이었다. 과거에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사실상 이스라엘을 대리해 활동가들을 투옥하고 고문하기도 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신뢰를 거의 받지 못한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팔레스타인 보건부 청사.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하나밖에 없는 코로나19 검사 시설을 파괴했다 ⓒ출처 Mohammed Zaanoun/Activestills

진정한 희망은 둘째 방식, 즉 평범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에 있다.

1987년 1차 ‘인티파다’, 2000년 2차 ‘인티파다’, 그리고 올해 대규모 저항 모두 아래로부터 벌어진 저항이다.(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하마스 그 누구도 이 운동을 조직하지 않았다.) 그런 저항들이 일어날 때면 국제적 연대도 크게 벌어졌다. [지난 5월 18일 팔레스타인인 30여 명과 함께한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 집회도 이런 국제적 운동의 일부였다.]

특히, 이번 저항에는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그중 하나는 참가자들이 매우 젊다는 것이다.

현재 팔레스타인 인구 절반 정도가 23~24세 미만이다. 이 세대는 기존에 있던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등 정파들 간의 갈등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바로 그런 젊은 세대가 이번 저항의 주축이었다.

또 다른 주목할 점은, 가자지구뿐 아니라 서안지구에서도, 심지어 이스라엘 국경 안에서도 팔레스타인인들이 연대 시위를 벌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팔레스타인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아래로부터의 저항은 2차 ‘인티파다’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스라엘은 2006년, 2008년, 2014년에 거듭 가자지구를 폭격했는데, 그때는 가자지구를 제외한 다른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가자지구 폭격 반대 시위가 이 정도까지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이를 두고 [시오니즘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 저항을 지지하는 저명한 유대인 학자] 일란 파페는 “팔레스타인의 젊은 세대가 정치적 부족주의를 극복했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전략

팔레스타인 해방은 어떻게 가능할까? 팔레스타인인들의 힘으로만 가능할까?

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이 엄청난 영감과 용기를 전 세계, 특히 아랍 민중들에게 주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의 저항만으로는 해방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성격 때문에 그렇다. 이스라엘 자체의 힘도 힘이지만,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제국주의 동맹 세력들이 엄청나게 많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막대한 후원을 쏟아붓는 것이 대표적이지만, 영국·프랑스 등 주요 서방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한다.

한국도 이스라엘 지원국이다. 며칠 전 〈경향신문〉이 문재인 정부 들어 300억 원 넘는 무기를 이스라엘에 판매했다고 폭로했다. 놀랍게도 이는 박근혜 정부 시절보다 갑절로 많은 것이다. 그렇게 판매한 무기는 대부분 발사 무기류, 폭탄, 수류탄, 미사일 등이다. 한국에서 만든 무기들이 가자지구에서 탄압과 살해에 사용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스라엘과 FTA를 체결한 것도 폭로하고 비판받아야 한다.

이렇게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과 그 동맹들이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지원이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힘의 일부다. 바로 이 때문에, 미국·영국·한국의 대중이 자국 정부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아랍 지배자들도 이스라엘이 존속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다. 아랍 지배자들은 말로는 ‘팔레스타인인들에 연대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우리 형제들이다’ 하고 말하지만, 뒤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과 군사·안보 교류를 비밀리에 해 왔다. 이것이 지난 트럼프 정부 들어서 공식화된 셈이다.

이집트

트럼프는 이란을 공공의 적으로 삼고, 친미 아랍국들과 이스라엘을 동맹으로 끌어당기려 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던 아랍에미리트공화국(UAE)·오만·수단·바레인·모로코 등 많은 아랍 정부들이 이스라엘과 외교를 ‘정상화’해, 대놓고 이스라엘과 동침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아래로부터의 아랍 민중의 저항·반란·혁명적 투쟁들이 벌어져, 이스라엘을 후원하는 아랍 지배자들에게 맞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아랍 민중의 저항과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아랍의 지배자들도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극도로 경계한다. 최근 알제리, 이집트 등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집회에서 사용하면 체포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지난 18일 이스라엘 대사관 앞 집회 때 한 이집트 출신 난민은 “팔레스타인 깃발이 매우 중요하다”며 꼭 준비해 달라고 주최 측인 노동자연대에 부탁하기도 했다.]

2011년 아랍 혁명 당시 그런 희망을 흘낏 볼 수 있었다. 당시 이집트에서 혁명이 일어나, 아랍 지배자들 중 가장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지원한 호스니 무바라크가 퇴진하고 무슬림형제단 정부가 집권했다. 그때 이스라엘에 대한 가스 수출도 중단되고, 가자지구와 마주한 이집트 국경이 개방돼 구호 물자가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갔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이런 점을 보면, 우리가 아랍 민중의 저항에 연대하고 그런 저항이 확장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일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또, 한국을 비롯한 친서방 지배자들이 더는 이스라엘을 지원하지 못할 정도로 끊임없이 폭로·항의하고 연대를 건설하는 일이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중요한 일이다.

질의에 대한 응답

엄청나게 많은 질문을 몇 가지 질문씩 묶어 답변하겠다.

첫째, 이스라엘 국가에 관해 다시 말해 보겠다. 이스라엘은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첨병이고 경비견이라고 했다. 그러나 또한 이스라엘 지배자들, 시온주의자들 고유의 의제도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에 원래 살던 사람들을 인종 청소하고 이른바 유대 ‘민족’으로 채워넣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살인이든 학살이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것이 시온주의자들의 프로젝트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폭격의 배경을 설명하겠다. 앞서 말했듯, 유대 단일 민족 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위한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노력이 이번 공격의 배경 중 일부다.

이에 더해, 미국의 중동 개입, 미국과 중동 지배자들의 동맹 관계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트럼프 정부 들어 미국은 이란이라는 ‘대적(大敵)’에 맞서 이스라엘과 아랍 지역의 친미·친서방 국가들을 화해시키려 노력했다. 트럼프가 직접 아랍 지역을 돌며 외교 정상화의 브로커 노릇을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이 이전보다 자신감 있게 팔레스타인을 공격한 듯하다. 이전 같으면 아랍 지배자들은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의식해 말로라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규탄해야 했지만, 이제는 외교 관계도 ‘정상화’됐으니 과거처럼 이스라엘을 규탄·적대하지 않으리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네타냐후 정부를 비롯한 장관들의 말을 보면, 이 때문에 이스라엘이 전보다 자신감을 가졌음이 감지된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미국 등 다른 동맹들이 간과한 것은 바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엄청난 저항이었다. 아마 이들은 예전처럼 ‘어느 정도 시위하고 말겠지’ 하고 과소평가했을지 모르겠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지구를 넘어 서안지구와 이스라엘 국경 안에서까지 단결된 대규모 운동을 벌일 줄은 예상 못 했던 듯하다.

20퍼센트

둘째,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질문이 있었다. 이스라엘 인구의 약 20퍼센트 정도 된다. 이스라엘 인구가 900만 명이니 200만 명이 조금 못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20퍼센트라는 숫자도 이스라엘의 잔혹함을 잘 보여 준다. 이스라엘의 전 총리 이츠하크 라빈은 ‘이스라엘에서 유대 ‘민족’이 우위를 유지하려면 아랍인 인구가 전체의 20퍼센트 미만이어야 한다’ 하고 말한 바 있는데, 바로 그 수치에 맞춰 수십 년 동안 계속 인종 청소를 해 온 증거다.

이런 인종차별 때문에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들은 경제적으로 영향력이 크지 못하다. 5월 18일 팔레스타인에서는 총파업이 있었다. 하지만 그 총파업이 이스라엘 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이스라엘 경제는 벤처·IT 부문에서 발생하는 이윤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이 많이 종사하는 1·2차 산업이 멈춰도 이윤에 타격이 크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 총파업의 의미를 볼 때 단순히 경제적 측면만 봐서는 안 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단결해서 전례 없는 규모로 저항했다는 정치적·상징적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셋째, 팔레스타인 공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이스라엘 안에서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없지는 않지만 거의 존재감이 없고 기껏해야 별종 취급받는 정도에 불과하다. 나는 앞에서 이스라엘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국가라고 했는데, 이는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 목적 자체가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종 청소하고 학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가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인종분리) 정책에 뿌리를 뒀고, 이런 프로파간다에 동의하는 유대인들을 전 세계에서 끌어모으며 인구를 불려 가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안에는 공격에 반대하는 이스라엘인들이 적은 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인종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사라지고, 유대인이든 팔레스타인인이든 차별 없이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하나의 세속주의적 민주적 국가가 수립되는 것이 대안이다.

국제 연대

넷째, 영국 노동당 전 대표 제러미 코빈이 유대인 혐오자라고 하는 거짓 비방이 있었는데, 이번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제 연대가 그런 비방에 맞선 반박이 됐는지를 물은 분이 있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유럽뿐 아니라 미국 등 여러 곳에서 좌파를 (이스라엘 국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유대인 혐오자라고 낙인 찍는 공격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스라엘이 저지른 만행은 도저히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범죄였다. 그래서 그간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꾸준히 운동을 건설해 온 좌파들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

이번에 벌어진 국제 연대에서 또 다른 놀라운 점은, 미국 각지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의 성과이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으로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경찰과 국가의 폭력에 대한 분노가 커진 덕에,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더 확대될 공간이 열렸다.

이런 점이 일부 반영돼, 버니 샌더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같은 진보파 의원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 중지를 요구하는 법안을 제출한 것이다. 이런 의정 활동 역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이런 것들이 억압받는 팔레스타인 민족의 해방 운동이 거둔 소중한 성과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을 맺고자 한다. 이스라엘을 지지·지원·후원하는 한국 등 여러 나라 정부들에 맞서는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팔레스타인인들은 1948년 이후 70년 넘게 끊임없이 실로 영웅적인 투쟁을 벌여 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피난민·난민이 발생하고,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영웅적인 투쟁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국제 연대, 평범한 사람들의 아래로부터의 연대가 정말 중요하다.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한국 정부와 각국 정부들에 맞선 투쟁을 건설하는 것은 핵심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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