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바이든이 “루스벨트 이후 가장 친노조 대통령”이라는 평이 있다.

트럼프에 견줘 바이든 정부가 몇몇 변화를 추진한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바이든은 취임 첫날 반(反)노조 인사로 악명 높은 전미노사관계위원회 위원장 피터 롭을 해임했고, 3월에는 조직권보호법(PRO Act)을 발의해 하원에서 통과시켰다. 바이든은 아마존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지지한다고 공공연히 말했다(실질적 조처를 취한 것은 없었지만).

바이든은 “양질의 일자리는 노동조합 있는 일자리”라고 거듭 주장한다.

하지만 취임 초기의 제스처 때문에 실체를 못 본 채 넘기면 안 된다. 그리고 노동조합 친화적인 것이 곧 노동자 친화적인(노동자들의 처지 개선을 위하는) 것이라고 동일시해서도 안 된다. 상원의원 시절 바이든은, 노동자 조건 공격으로 악명 높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을 주도했고, 6선 임기 내내 거듭 복지 삭감에 찬성했다.

미국 자본주의 효율 제고

사실 바이든의 정책들은 트럼프의 가장 악명 높은 조처 몇몇을 되돌리거나(롭 해임이 그 사례다) 생색내기 수준이다. 선진국을 통틀어 손꼽히게 열악한 미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감안하면 매우 부족한 개혁 조처다.

예컨대 바이든은 트럼프 시절 제정된 아마존·우버 등 플랫폼 노동자들을 “독립 계약자”로만 규정해야 한다는 조항을 없앴다. 이를 두고 〈한겨레〉 신문은 바이든 정부가 “플랫폼 기업 배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 조처는 플랫폼 기업이 피고용인을 노동자로 규정해야 한다고 강제한 것이 아니었다. 계약 조건이나 규정을 바꿔야 하는 기업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이 조처가 플랫폼 기업들의 고용 유연화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ABC〉).

바이든을 미화하는 것은 사회 변화의 진정한 동력인 투쟁 건설에 도움되지 않는다 ⓒ출처 백악관

바이든의 대표적 일자리 창출 정책인 ‘미국 일자리 계획’도 잘 살펴봐야 한다. 이 계획은 2조 달러 넘는 대규모 투자로 수백만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으로, 매우 야심 차 보인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 계획이 시행되면 미국의 일자리가 매년 약 190만 개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이 숫자는 미국에 불황이 닥치고 해고가 기승을 부렸던 레이건 정부 때의 연간 일자리 증가분(204만 개)보다 적은 수치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 일자리 계획’에 따라 개별 자본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사회기반시설 정비를 국가 재정으로 처리하려 한다. 이 계획의 진정한 목적은 노동자 조건 개선이 아니라 미국 자본주의의 효율과 생산성 개선이다.

물론 바이든은 “국가가 부자들만 구제한다”는 불만과 그에 따른 정치 불안정을 피하고자 한다. 그래서 경제·감염병 위기의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모양새를 취하려는 것이다.(관련 기사 본지 366호 ‘바이든 정부 100일: 뜻밖의 변화도 있었지만 진정한 우선순위는 패권과 이윤 회복’)

그렇게라도 일자리가 생기면 좋은 것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바이든도 그렇게 창출되는 일자리들이 “노동조합 있는 일자리”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친노조?

앞서 언급한 조직권보호법은 바이든의 대표적 “친노조”법으로 꼽힌다. 이 법은 기업의 노조 설립 방해 시도 일부를 문제 삼고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해 사측과 교섭할 (당연한) 권리를 재확인한다.

하지만 기업이 조직권보호법을 어겼을 때 받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게다가 이 법은 노동자들의 쟁의에 매우 까다로운 제약을 가하는 현행법 조항들을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

요컨대 바이든은 노동조합을 전보다 더 쉽게 설립할 수 있게 했지만, 그 노동조합으로 투쟁을 건설하는 것은 어렵게 해 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바이든이 “노동조합 친화적”이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바로 미국노총 노동조합 관료들과 친하다는 뜻이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시절부터 미국 노총 AFL-CIO 관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고, 취임 후 노동조합 관료 출신 인사들을 몇몇 부처의 실무진에 들이기도 했다. 예컨대 AFL-CIO의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 소장 테아 리를 노동부 산하 국제노동관계국(ILAB) 국장에 임명했다.

이는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일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노동자들에게 통제력을 행사하려고 미국 노동조합 관료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어 왔다. 실리주의에 찌든 AFL-CIO 노동조합 관료들은 반 세기 넘게 민주당에 의존해 왔다.

그 역사는 1930년대 노동자 투쟁 물결 말미에 산별노조협의회(CIO) 지도부가 루스벨트와 제휴하려 했던 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관련 기사 본지 343호 ‘왜 미국에는 노동자 대중 정당이 없을까?’)

이는 오랫동안 미국 노동자들의 조건 방어에 독으로 작용해 왔고, 지금도 그렇다.

바이든이 “미국 구제 계획”에서 법정 최저시급 기준을 15달러로 인상하는 내용을 삭제할 때, AFL-CIO 관료들은 바이든과 면담하고 “바이든은 뭘 좀 아는 사람”(AFL-CIO 위원장 리처드 트럼카)이라고 감싸고 돌았다.

또, 바이든이 취임 직후 백신 접종 계획도 마련하지 않은 채 등교 재개를 추진할 때, 교원노조 관료들은 바이든을 지지했다. 트럼프 정부 시절에는 방역 없는 등교 재개에 반대했었는데도 말이다. 주요 대도시들에서 등교 재개를 미뤄 노동자와 학생들의 안전을 지킨 것은 아래로부터 교원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오바마

한편, 바이든의 한계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실용적으로 바이든의 “친노조성”이 노동조합 조직률 향상에 득이 된다고 여길 수 있다. 예컨대, 1930년대 루스벨트의 전국산업부흥법(NRA)도 노동3권 중 단결권만 허용했지만 이후 노동운동에 기회를 제공했던 것을 떠올리며 말이다.

물론 매우 제한적인 개혁으로도 때로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얻어 더 큰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려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바로 그런 제한적인 조처를 “뉴딜 이후 최고의 친노조” 운운하며 포장하는 것이다. 개혁파 지배자들에게 전혀 환상을 갖지 않게 하면서 대중 스스로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하려 애써야 한다.

1930년대 초 미국에서 노동자 투쟁이 분출한 것은 ‘국가가 허락한 노동쟁의’에 안주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제약에 구애되지 않고, 자본주의 역사상 최악의 경제 불황에서도 아래로부터 투쟁을 건설했기 때문이었다.(트로츠키주의자들을 비롯한 혁명가·급진좌파들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관련 기사 본지 325호 ‘뉴딜과 1930년대 미국 노동운동의 교훈’)

노동계급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에는 이런 투쟁이 중요하다. 바이든에게 “친노조”라는 꽃을 달아 주는 것은 그런 투쟁을 건설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

심상정 의원의 바이든 칭찬, 착각이다

김지윤

바이든이 “친노조”라는 호평은 미국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나온다.

5월 14일 〈한겨레〉 정의길 선임기자가 이런 취지의 기사를 썼다.

같은 날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이 기사를 인용해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친노조 대통령[이] … 될 가능성이 높다”고 썼다.

말만 ‘노동존중’이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간접적 비판이었을 것이다. 심 의원은 바이든 칭찬에 덧붙여 대한민국 정부도 바이든처럼 친노조 정책들을 채택해 “노동존중 사회”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그간 자신과 정의당의 ‘노동’ 강조를 부각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정의당이 노동 친화성을 부각하는 것은 어쨌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방식이 중요하다.

바이든에 앞서 이미 오바마가 “친노조”, “중산층 회복’을 강조했었다. 오바마가 2015년 노동절 연설에서 노조 가입을 권한 것에 진보 내 일부가 매우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 공황 직후 집권한 오바마 정부는 “[경제] 위기라는 기회를 허비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유지·강화했다. 이 때문에 실질임금·복지가 삭감되고 실업률·빈곤율도 높아지는 등 미국 노동계급의 삶은 더 나빠졌다.

오바마 당선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불러일으켰지만, 집권 8년 동안 오바마 정부는 노동 대중의 진보적 변화 염원을 거듭 저버렸다. 그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트럼프 당선에 밑거름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미국 민주당의 말은 믿을 만한 것이 전혀 못 된다. 한국 민주당 정부에 대한 간접적 비판으로도 효과적이지 않다. 당장 문재인이 바이든과 정상회담을 하고 받아 온 보따리에 기업주 언론들이 환영 논평들을 내는 것을 보라.

오바마 정부 시절 공공부문·월마트·패스트푸드 노동자 투쟁 등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오랫동안 사기 저하된 미국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힐끗 보여 준 투쟁들이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도 그때 시작됐다. 이 운동은 지난해 트럼프 정부와 미국을 뒤흔들며 분출했었다.

오바마의 미국에서 희망이 있었다면 이런 투쟁들이었다. 이 투쟁들은 오바마 정부에 환상을 덜 가졌다. 사실 오바마 정부 하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시작됐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그간 심상정 의원은 개혁입법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국회 바깥의 대중 투쟁에 대해서는 별로 강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혁 쟁취에는 기층의 자체 투쟁이 가장 중요하다. 바이든의 사탕발림보다 더 주목해야 할 진정한 교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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