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서울경찰청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세기와 더불어》를 출간한 김승균 도서출판 민족사랑방 대표(1939년생)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세기와 더불어》는 김일성(1912~1994)의 회고록이다.

지금 경찰은 단지 북한 도서를 출판했다는 이유만으로 고령의 출판업자에게 국가보안법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이는 명백히 출판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다. 헌법보다 강하다는 국가보안법답다.

김승균 대표가 북한에서 들여온 《세기와 더불어》를 국내에서 출판하자마자 논란은 시작됐다. 김일성이라는 인물이나 이 책에 대한 역사적 평가 등에 대한 토론이 아니었다. 우파가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이므로 출판 자체가 문제라고 시비를 건 것이다. 결국 교보문고, 알라딘을 비롯한 주요 서점들이 책 판매를 중단했다.

그러나 5월 13일 법원은 우파 단체가 제기한 판매·배포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이제는 학술과 남북교류의 목적을 위해 북한 관련 책들이 학계와 시민사회에 자유롭게 개방되어야 할 때다” 하며 법원 결정을 환영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전격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이다. 경찰은 《세기와 더불어》를 비롯한 북한 책의 자유로운 출판 제안에 찬물을 끼얹었다.

김일성 회고록의 출판을 금지하는 논리는 처음부터 궁색하고 자가당착이다. 홀로코스트 살인마 히틀러의 회고록까지 자유롭게 출판되는 마당이니 말이다.

출판을 반대하는 자들은 순전히 국가보안법의 논리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어떤 행위에 담긴 내면의 의도를 처벌하는 양심 탄압법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북한 출판물이 금지된 것도 아니다. 학술 연구 등의 목적으로 정부의 인가를 받은 사람들은 북한의 출판물과 각종 매체를 접할 수 있다.

누구는 김일성 회고록을 봐도 되고, 누구는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는 김일성(김정은) 일가를 만나서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사업 거래를 해도 되고, 누구는 그에 관한 책도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배계급의 이러한 이중잣대는 피억압 대중의 사상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자 경멸이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5월 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 당국의 출판사 민족사랑방 압수수색 규탄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조승진

7조

지금 김승균 대표는 국가보안법상 7조(찬양·고무, 이적표현물 제작 등)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 문재인은 2017년 대선 후보 시절에 국가보안법 7조는 폐지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남북관계가 엄중해 국가보안법 전체 폐지는 어렵지만 7조 폐지는 일전에 여야가 합의한 수준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여태껏 청와대와 여당 지도부는 국가보안법 7조 폐지를 위해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남북 정상회담을 수차례 하는 와중에도 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기는커녕 계속 희생자들을 양산했다. 2018~2019년 2년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은 사람이 583명에 이르렀다.

또, 이 정부하에서 교사 4명이 고작 북한 서적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교단을 떠나야 했다. 민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민중당(지금의 진보당) 당원들은 국가보안법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중 1명은 시의원 자격을 잃었다.

최근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은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동의청원을 제안해 10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래서 이 청원은 국회에서 정식으로 논의돼야 한다.

그런데 청원 동의가 10만 명을 넘기자마자 경찰 안보수사대와 국가정보원은 이정훈 4·27연구원 연구위원을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혐의로 구속했고, 김승균 대표를 압수수색했다. 경찰 안보수사대는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이양받으려고 협업 중이다. 문재인은 이를 “국정원 개혁”이라고 부른다. 현실을 보면, (본지가 지적했듯이) 이런 일들은 민주 개혁과 완전히 무관하다.

이게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보안 기구들과 우파는 대선을 앞두고 다용도 목적으로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음을 보여 주려는 듯하다. 경제·안보 위기 때문에 지배계급에게는 국내 단속의 필요가 크다.

임기가 이제 1년도 안 남은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더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다. 한미동맹 강화를 선택하고 친기업 기조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 최근 국가보안법 적용 사건이 잦아진 것도 정부의 이런 방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