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6월 4일 노동자연대가 연 온라인 토론회 ‘오늘날의 극우와 파시즘(영상 보기)’에서 필자가 발제한 내용이다.


파시즘의 독특함

본론에 앞서 다른 종류의 극우와 구별되는 파시즘의 독특함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만큼 개념에 혼란이 많기 때문이다. 파시즘은 극우의 일종이지만 그것과 구별되는 특수한 종류의 극우로 중하층 중간계급에 기반한 반동적 대중 운동이다.

첫째, 파시즘 운동은 통상의 극우와 사회적 기반 면에서 차이가 있다. 파시즘은 중간계급을, 즉 영세 상공인이나 전문직 등을 기반으로 하는 운동이다. 이런 사회적 기반 때문에 파시즘의 이데올로기는 극도로 모순된다.

둘째, 실천과 사회적 효과 면에서 차이가 있다. (군부독재를 제외하면) 여느 극우 정치인들이 의회제 안에서 극우 정책 채택을 목표로 한다면, 파시즘은 의회제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고 노동계급의 운동과 조직을 모조리 분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파시즘은 이를 통해 노동계급을 원자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한다.

셋째, 형태 면에서 차이가 있다. 가령 극우 정치인들은 우파 엘리트 정당을 통해 활동하고 우익 군사 쿠데타의 경우에도 군 장성들만이 관여하는(사병을 명령으로 동원하는) 것과는 달리 파시즘은 집권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는 반동적 대중 운동이다. 파시스트 지도자도 그런 운동에서 생겨난다.

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 트럼프는 떠났지만 극우와 파시스트들은 계속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출처 Tyler Merbler(플리커)

최근 10년의 궤적

국제 정치에서 극우 부상의 위협이 일대 경각을 가져 온 최근 사례는 2010년대 초중반에 있었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 파시스트 아네르스 브레이비크가 폭탄 공격과 총기 난사로 70여 명을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오늘날 극우와 파시즘이 부상하게 된 배경은 2008년 미국에서 시작한 세계경제 위기다.

2008년 금융 공황은 그전 수십 년 동안 득세해 온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보여 줬는데, 각국 지배자들은 막대한 돈을 퍼부어 위기에 책임이 있는 은행과 기업들은 살리고 그 대가를 서민과 노동계급에게 떠넘겼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낳은 결과와 경제 위기로 평범한 사람들은 삶이 망가지는 고통을 겪었는데, 각국 지배자들은 계속해서 신자유주의적 긴축을 추진했고, 이는 대중의 분노를 자극했다.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부터 이때까지 수십 년 동안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지배계급은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공식정치를 지배하도록 하며 정치 안정을 누리려 했다. 그러나 2008년 이후에는 누가 집권하든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며 노동계급을 공격해 중도파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쳤다. 그래서 정치적 양극화와 불안정이 커졌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처럼 대자본자들과 지배계급의 상당수가 바라지 않는 정치적 이변이 바로 이런 배경에서 벌어졌다.

이 광범한 불만과 분노는 2008년 위기 이후 처음에는 극우보다는 좌파적 저항으로 이어졌다.(아랍 혁명, 스페인 ‘분노한 사람들’ 운동과 포데모스의 탄생, 그리스 총파업 물결과 시리자의 집권, 미국 버니 샌더스의 인기)

2011년 초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혁명이 일어나 중동 전역으로 확산했다. 중동의 독재자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거나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중동의 대중 반란 열기는 서구로 수출돼, 스페인에서는 ‘분노한 사람들’의 (이집트 혁명처럼) 광장 점거 운동이 벌어지고 미국에서는 ‘점거하라’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스페인 운동은 얼마 뒤 포데모스라는 좌파 포퓰리즘 정당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경제 위기의 타격이 특히 심각했던 그리스에서는 긴축에 반대하는 파업 물결이 일어났다. 대중적 투쟁이 촉발한 좌경화로 지지율이 3퍼센트 정도이던 좌파 정당 시리자가 급부상했다. 2015년에 마침내 집권했다. 영국에서는 2015년 9월에 제러미 코빈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노동당 당대표로 선출됐다. 그 직후에 미국에선 버니 샌더스가 부상했다. 그 즈음 한 조사에서 미국 청년들의 절반가량이 사회주의를 지지한다는 조사가 나왔다.

각각 차이도 있지만, 각자의 나라에서 좌파적 개혁주의라고 할 수 있는 시리자, 포데모스, 코빈 그리고 샌더스(는 좌파적 개혁주의라고 부를 수 없지만 말이다) 등이 부상한 것은 당시 전 세계 좌파를 고무했다. 그러나 이 실험들은 실패로 끝났다. 그리스의 시리자는 집권 6개월 만에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 지배자들에게 굴복했다. 스스로 긴축을 추진하는 정부가 된 것이다. 결국 우파에게 정권을 내줬다.

EU집행위원장 장 클로드 융거와 악수하는 치프라스 그리스 시리자 당대표 ⓒ출처 유럽연합

극우와 파시즘이 주류 중도 정치와 개혁주의의 배신이 야기한 환멸을 교활하게 이용하며 성장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극우·파시즘 정당들이 득표율을 크게 끌어올리며 약진하기 시작했고, 몇몇 나라에서는 정부에 입각하기도 했다.

나라마다 구체적 양상은 다르지만, 10년의 궤적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위기의 발생 → 중도 좌우파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긴축 추진 → 저항과 반란의 분출 → 정치적 급진화와 양극화 → 좌파 개혁주의가 성장하거나 우파가 집권하던 곳에서는 중도좌파가 반사이익을 얻음 → 운동의 패배, 좌파 개혁주의나 중도좌파의 실패(또는 배신) → 극우와 파시즘의 성장.

트럼프와 브라질 대통령 보우소나루 ⓒ출처 Alan Santos(플리커)

정치적 양극화

그럼에도 극우와 파시즘의 성장은 사회 전반의 우경화를 뜻하기보다는 정치적 양극화로 봐야 할 듯하다. 좌파적 개혁주의 세력이 떠올랐다가 가라앉고 극우가 이를 이용해 성장하는 와중에도 수단 항쟁, 홍콩 민주 항쟁, 칠레 시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미얀마 쿠데타 반대 투쟁, 팔레스타인 저항 등 꽤 강력한 저항이 벌어졌다.

프랑스의 경험이 유용할 듯하다. 2009~2010년 프랑스에서는 수백만 명 규모의 총파업 등 우파 정부에 대한 저항이 강력하게 일어났다. 그 여파로 2012년 대선에서 사회당이 17년 만에 집권했다.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이라는 혁명적 좌파가 중심이 돼 창당한 반자본주의신당(NPA)도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사회당 정부는 긴축을 추진하며 실망을 줬고, 2017년 대선에서는 겨우 6퍼센트를 득표하며 5위로 주저앉았다. 바로 이 대선에서 파시스트인 마린 르펜이 100만 표를 득표했다. 사회당에서 떨어져 나온 중도파 정치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통령이 됐는데, 그도 계속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이 때문에 노란 조끼 운동과 노동자 파업 등 저항이 계속됐다. 이 고비를 넘기고 마크롱 정부가 경찰력과 보안법 강화 등 권위주의적 조처를 강화했지만 정치적 불안정은 지속되고 있다. 올해 4월 퇴역 장성 등 극우는 정부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제대로 누르지 않으면 쿠데타를 벌일 수 있다고 위협했고, 파시스트 마린 르펜은 지지율 1위를 차지했다.

경제의 장기 침체와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극우의 성장은 세계적 현상이 됐다. 미국 트럼프, 프랑스 마린 르펜, 독일을위한대안당, 이탈리아 오성운동과 북부동맹, 인도국민당, 필리핀 두테르테, 브라질 보우소나루 등.

2016년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은 극우의 성장이 이례적이거나 일시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줬다. 이듬해인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파시스트인 마린 르펜이 100만 표 이상을 득표하며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같은 해 독일 총선에서는 독일을위한대안당이 창당 4년 만에 3위를 차지하면서 연방의회 의석 709석 중 90석 이상을 차지했다. 독일을위한대안당 안에는 파시스트 분파가 만만찮게 존재한다. 2018년 이탈리아에서는 우파적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이 주도하고 지독한 이민 반대 정당인 북부동맹이 포함된 연립정부가 들어섰다.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2014년 인도 총선에서 인도국민당이 승리했다. 인도국민당은 국민자원군(RSS)이라고 하는 파시스트 조직을 포함한 극우 정당이다. 2016년 필리핀 대선에서는 두테르테가 승리했다. 두테르테는 집권하자마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수천 명을 살해했다. 2018년 브라질 대선에서는 극우 정치인 보우소나루가 당선됐다.

이들은 기성 중도파 정치인들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헌신을 비난하면서 대중의 불만을 우파적으로 흡수하고 공식정치의 지형을 더 우경화시켰다.

예를 들어, 2010년대 초중반에 난민 위기가 심각해졌다. 서구 강대국과 그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의 권위주의 정권들은 아랍 혁명에 반혁명적으로 개입했다. 여기에 다시 힘을 키우고 있던 러시아와 중동 지역의 강국들도 끼어들면서, 특히 시리아에서 일어난 혁명은 끔찍한 내전으로 이어졌다. 강대국들은 매우 반동적인 세력이었던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아이시스)를 핑계로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했다. 그런데 아이시스 같은 세력이 등장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초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그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 낳은 부산물이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난민이 대거 발생했고, 이들이 유럽으로 향하면서 난민 위기가 발생했다. 유럽의 지배자들은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 때 서구 사회에서 굳어진 이슬람혐오를 더욱 부추기면서 난민을 배척했다. 여기에는 2008년 경제 위기의 책임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분열시키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렇게 인종차별이 강해졌는데, 유럽의 극우와 파시스트들은 이슬람혐오적 인종차별을 더욱 강경하게 주장했다. 이것은 다시 지배자들의 인종차별 선동을 강화하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미국의 트럼프는 중남미에서 오는 난민을 막으려고 장벽을 세우고 극우 자경단을 부추겼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빈민. 경제 침체는 파시스트들이 성장하는데 좋은 환경이 된다 ⓒ출처 Yannis Youlountas

중도의 귀환?

2020년에는 중도파가 다시 힘을 얻는 듯한 형국이 펼쳐졌다. 미국의 트럼프가 대선에서 패배했다. 프랑스의 마크롱은 노란 조끼 운동과 노동자 파업을 가까스로 넘겼다. 이탈리아에서는 연립정부가 무너지고 유럽 각국에서 긴축을 강요한 유럽중앙은행의 총재였던 자가 총리가 됐다. 영국의 코빈은 대표직에서 쫓겨나고 영국 노동당은 다시 우경화했다. 스페인 포데모스는 바로 몇 년 전에는 특권층(정치 카스트)이라고 지목했던 중도좌파 사회당과 연립정부를 맺었다가 최근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바이든의 경제 부양책 발표 등과 함께 경제 사정도 나아지는 듯하고 백신도 보급되면서, 중도로의 귀환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런 관측은 근시안적이다.

첫째, 좀더 진중한 분석들을 보면, 그런 회복은 일시적이고 취약하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항구적 재난 상태”에 빠져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상대적 힘이 줄어들면서 중국과의 경쟁과 마찰이 심각해지고 있고, 경제는 주로 정부들의 막대한 재정 투입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는데 팬데믹 위기로 더욱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본주의가 낳은 생태적 위기도 있다. 계속되는 기상이변, 호주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불, 코로나19 팬데믹 등이 그 심각성을 계속 확인시켜 주고 있다.

둘째, 1월 6일 극우가 미국 의사당을 점거하며 난동을 부린 사건은 자본주의의 중심지에서 극우와 파시즘이 만만찮게 성장하고 있음을 충격적으로 보여 줬다.

셋째, 미국 바이든은 경기 부양책을 제시하고 백신 공급을 강조하는 면에서는 트럼프와 차이가 있지만, 중국과의 경쟁을 심화시키는 데서는 마찬가지다. 즉, 극우 성장의 토양이 되는 체제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바이든 정부의 행보에 힘을 실어 주면서, 동북아시아 군비 경쟁을 더 자극할 미사일 사거리 제한 해제를 약속받았다.

넷째,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여러 나라에서 불평등, 억압과 차별, 권위주의적 조처가 강화됐다. 이는 극우의 성장에 유리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다섯째, 고전적 파시즘이 성장했던 1920년대와 1930년대에도 경제가 계속 곤두박질만 친 것은 아니다. 등락이 있었고, 파시즘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근저의 위기는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에는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야만으로 이어졌다.

단기적 시각으로 헛된 희망을 품으며 중도의 귀환에 기대를 걸 게 아니다. 더 긴 시야와 냉정한 분석으로 구조적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난민 보트. 유럽 지배자들의 인종 차별과 난민 정책은 우파의 기세를 높여 왔다 ⓒ출처 Georgios Giannopoulos

오늘날 극우의 특징: 고전적 파시즘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지금까지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체제는 극심한 위기에 빠졌고 그로 말미암아 기성 정치인들은 불신받고 있다. 인상적인 운동과 반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계급투쟁으로 충분히 발전하지 못하고 그로 말미암아 좌파의 성장이 제약되고 있다. 이런 조건을 활용해 극우가 득세하고 있다.

이 점들은 고전적 파시즘이 성공했던 때와 오늘날 극우 성장 현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다 보여 준다.

즉, 자본주의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그 때문에 생겨난 대중적 울분과 좌절감을 먹고 자라고 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또, 그렇게 자라면서 공식정치의 지형을 더욱 오른쪽으로 옮기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1920~1930년대와 달리 지금은 계급투쟁이 강력하지 않고, 그래서 좌파 일반과 혁명적 좌파가 약한 상황에서 극우가 성장한다는 점은 차이점이다. 이 때문인지 오늘날의 극우와 파시즘은 이데올로기 면에서 노동계급의 저항과 혁명 그리고 좌파에 반대하는 반(反)혁명적 요소를 자신들의 이데올로기 선전에서 부각시키지는 않는다. 이것이 둘째 차이점이다.

1920~1930년대에는 제1차세계대전과 노동자 혁명 물결을 겪은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고 제2차세계대전으로 향하는 시기였으므로, 고전적 파시즘은 노동계급 운동과 좌파에 맞서는 성격이 강했다. 이와 달리 오늘날의 극우와 파시스트들은, 특히 서구 선진국들에서는 인종차별, 그중에서도 이슬람혐오를 핵심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물론 고전적 파시즘의 이데올로기와 목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셋째 차이점은 오늘날 극우와 파시즘 세력들 사이에서는 그 선조들과 비교해 선거에 출마해 지지를 얻는 방식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물론 히틀러도 ‘우리는 선거로 집권한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치당은 수십만 명 규모의 돌격대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숨기지 않았고 그 힘을 거리에서 사용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당시는 제1차세계대전과 뒤이은 혁명 물결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고, 여러 나라에서 정치 폭력이 난무했다. 특히 참전 경험 때문에 폭력 사용이 익숙한 인자들이 많았다. 고전적 파시즘 운동은 바로 그런 인자들에서 초기 간부를 구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장기호황을 겪으며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더 안착하고 발전했던 경험이 오늘날의 극우와 파시스트들이 선거 대응을 더 중시하는 배경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만 보면, 이들의 본성에 가림막을 쳐주는 것이다. 선거 득표를 올리고 그 덕에 영향력도 커지는 것도 위험하고, 위기 상황에서 극우와 파시즘의 정치가 선거 정치보다 더 극우화할 가능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오늘날의 파시스트들도 대체로는 이런저런 폭력 조직들을 갖고 있다.

넷째 차이점은 오늘날의 극우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의 불만에서 수혜를 입고 있지만 뚜렷한 경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자본주의 생산이 상당히 국제화돼 있는 상황을 반영하는 듯하다. 물론 유럽의 극우는 유럽연합에 대한 회의론을 주장하고, 미국의 트럼프는 주로는 중국과, 그리고 심지어는 동맹들과도 관세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 외에는 불신받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무솔리니는 집권 후 국가자본주의로 선회했고, 히틀러도 그렇게 했다. 그 과정에서 히틀러는 자신을 오랫동안 후원했던 기업을 몰수해서 국유화해 버리기도 했다.

셋째 차이점과 넷째 차이점 때문에 오늘날에는 주류 우파와 극우, 파시즘 간 차이가 별로 두드러지지 않고 흐려 보인다.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겉으로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거리를 두려 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러나 주류 우파의 우선회가 극우·파시즘에게 성장의 토양을 제공하는 식의 상호작용, 극우·파시즘의 지도자들과 기층 운동의 상호작용은 진정한 파시즘의 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다.

미국의 트럼프가 파시스트가 아닌데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극우와 파시스트를 한껏 고무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트럼프의 지지 기반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미국의 백인 하층 노동계급이 트럼프의 지지 기반이라는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공화당 주류와 달리 미국의 대자본가들과는 관계가 껄끄러웠다. 감세 등으로 혜택을 주기도 했지만 말이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트럼프의 계급적 기반은 미국의 “룸펜 자본가들”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미국의 다국적기업들과 달리 주로 미국 국내 시장에서 영업하는 자본가들이다. 지난해 중반에 미국 코로나19 사망자의 25퍼센트가 요양병원에서 나왔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미국 요양병원 체인 기업이 대표적인 트럼프 지지 세력이었다.

1월 6일 의사당을 습격했던 무리들도 대체로는 유복한 전문직들이었다. 그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그들의 40퍼센트는 기업 경영주이거나 화이트칼라 노동자였고, 60퍼센트는 수백만 원에서 수억 원을 탈세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 한 명은 텍사스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사람으로 개인 소유 비행기를 타고 시위에 참가했다.

선거에서 표를 던지는 것은 수동적 지지이고 상대 후보가 너무 별볼일없는 등의 매개 요소들이 많이 작용한다. 트럼프가 많은 표를 얻은 것은 경계할 일이지만, 수동적 투표 행위와 능동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회세력에 기반을 두고 반트럼프주의 운동(그리고 반파시즘 운동)을 구축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엉뚱한 결론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국민정선의 당대표 마린 르펜. 오늘날의 파시스트들은 (아직) 선거를 적극 활용하려 한다 ⓒ출처 Ernest Morales(플리커)

어떻게 맞설 것인가?

극우와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주장한 공동전선이다. 극우와 파시즘에 맞서 광범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서구의 극우가 인종차별과 이슬람혐오를 주력으로 이용하고 있으니, 서구에서는 그에 맞서는 게 중요할 것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며 대중의 삶을 파괴해 극우와 파시즘이 성장할 토양을 마련해 온 중도파와는 단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도파와 연계하는 것이 선거에서는 단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어도(심지어 입각을 할 수도 있지만), 계급투쟁을 활성화하는 데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둘째는 혁명적 좌파를 건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좌파 개혁주의의 성장과 실패 경험에서 배우자는 것이다. 선거와 투쟁의 관계 문제다. 모든 선거를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선거적 노력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하는 것에 종속돼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른바 ‘정치’로 대체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심을 가지고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건설하면서 노동계급 운동이 자신의 힘으로 정치적 목표들을 달성하게 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 좌파가 있어야 공동전선도 효과적일 수 있다. 갈수록 혁명적 좌파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있다.

그리스의 파시스트 정당인 황금새벽당의 범죄조직 운영 유죄판결을 환영하는 반파시스트 시위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중요한 구실을 해 왔다

트럼프와 보우소나루 등의 집권은 그 나라 국민의 우경화를 보여 주는가?

올해 4월 한국의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했다. 그러나 이는 유권자들이 우경화한 결과가 아니었다. 정부와 민주당의 개혁 배신이 불러 온 환멸과 분노가 굴절되게 표현된 결과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트럼프가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가 집권한 것도 그 사회가 우경화한 결과가 아니었다. 트럼프 집권 직후에 성차별에 반대하는 대중적 시위가 벌어졌고, 2020년에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크게 벌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트럼프와 보우소나루는 전임 정권에 대한 심판 여론에 반사이익을 얻어 집권했다.

이 선거 결과들을 두고 그 사회의 우경화를 말하는 견해들에는 흔히 우파나 극우에 반대해 중도파와 좌파가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은근히 깔려 있다. 또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중도파 정부를 위태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현재 안타깝게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은 대체로 미국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세월호 운동이 문재인 정부 하에서 밟아 온 궤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런 방식은 운동을 더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중도파나 심지어는 진보파라고도 오해되는 한국의 민주당과 미국의 민주당은 계급 기반으로 보자면 자본가 계급의 정당이다.

극우의 성장과 집권이 그 사회 전반의 우경화를 보여 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런 성공으로 말미암아 극우가 오른쪽으로 더 급진화하고 공식정치의 지형이 더 우경화하면서 진정한 파시즘이 성장하기 유리한 조건이 조성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는 극우의 성장에 경계하며 그에 맞설 대중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운동을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서 중도파와의 단결 추구는 나쁜 효과를 낼 것이다.


프랑스는 좌파가 꽤 강력한데도 파시즘이 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상황의 불가피성보다는 좌파의 주관적 약점이 더 두드러진다. 첫째는 프랑스 좌파들의 종파적 태도와 공동전선 전통의 부재다. 예를 들어, 2009년 반자본주의신당(NPA)의 창당은 큰 성공을 거뒀다. NPA는 혁명적 좌파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이 중심이 돼, 활동적인 반자본주의자들을 끌어들이며 탄생했다. 기존에 LCR의 당원이 2000명이었는데, 반자본주의신당의 창당대회 때 당원은 9000명이었다.

한편, 사회당에서 좌파적으로 이탈한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자 장뤽 멜랑숑과 공산당이 중심이 된 좌파전선도 비슷한 시기에 성장하고 있었다. 좌파전선의 정치는 전체로 보아 좌파적 개혁주의였다. NPA는 좌파전선과의 협력이나 공동 활동을 거부했다. 사회당 정부의 긴축과 마린 르펜의 성장에 맞서 공동으로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NPA는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적 대응의 중요성을 필요보다 과하게 설정했고, 선거 결과가 좋지 못하자 사기가 떨어졌다. 대신 멜랑숑의 선거 성적이 더 좋게 나오자, NPA의 지도적 당원 일부가 탈당하고 멜랑숑에게 향하는 등 분열을 겪으며 지금은 상당히 약화돼 있다.

그밖에도 프랑스 좌파와 노동조합들은 노동절 집회도 따로 개최하는 등 협력을 잘 안 하기로 유명하다.

둘째는 이슬람혐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정부가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법률로 금지하는 인종차별적 공격을 할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슬람혐오가 인종차별의 일종이고 이에 강력히 저항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어리석은 결과인데, 이는 세속주의(라이시테)와 이슬람에 대한 오해가 작용한 결과였다. 그래도 소수이지만 이런 약점을 극복하려는 혁명적 좌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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