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비정규직 연대가 중요한 이유혁명적 좌파의 구실에 대한 논지를 보강했다. 링크를 누르면 해당 부분으로 이동한다(6월 12일).


6월 1일 〈경향신문〉 1면 헤드라인은 “‘연대보다 내 것 먼저’, 현실에 무릎 꿇은 정규직”이라는 기사였다(이하 정대연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 사측은 치사하게도 기존 정규직 직원들의 반대를 명분으로 외주화된 상담업무 직영화를 거부해 왔다. 정대연 기자는 최근 파업에 나선 국민건강보험공단 비정규직 상담원들의 직접고용을 반대하는 정규직 노동조합을 화두로 삼았다.

정대연 기자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나누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반대 여론이 팽배한 것이라고 묘사한다. 그리고 이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타파하는 데 노동조합이 적극 나서야 한다며, 개별 사업장을 넘어 구조적 대안을 논의할 수 있는 ‘사회적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책임의 소재

그러나 정대연 기자는 잘못된 전제와 주장에 근거해 있고, 그 대안(사회적 대화)도 결국 비정규직에게 이롭지 않다.

우선, 정규직 ‘기득권’이 노동자의 단결과 상향 평준화에 진정한 걸림돌이라는 주장은 사용자들의 책임을 흐리고 면제해 주는 것이다. 비정규직 상담원들의 직접고용을 외면하는 주체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정부와 공단 측이다.

특히, 건강보험 고객센터는 다른 4대보험 공단 고객센터와 달리 민간위탁(3단계 전환 대상)으로 분류됐는데, 문재인 정부는 민간위탁 부문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이미 사실상 포기했다.

애초에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간질하는 요인을 포함하고 있었다. 정부가 정규직 전환을 위한 추가적 재원은 거의 투여하지 않고 어떻게든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부 정책 방향 속에서 건강보험공단 측도 더 손쉽게 직접고용 책임을 회피하고, 그간 처우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더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로를 탓하게 유도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다른가?

정대연 기자는 건보공단 사례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쪼개진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적나라한 단면을 보여 준다”며 정규직 기득권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정규직과 마찬가지로 고용 안정과 연공급을 적용받는 게 상담사들의 꿈이다. 하지만 정규직은 여기에 냉담하다 못해 대놓고 반대한다. 자신의 ‘파이’(기득권)를 뺏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대연 기자가 받아들이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은 한편에는 고용 안정, 고임금, 승진 등을 누리는 노동시장이 존재하고, 다른 한편에는 고용 불안, 저임금, 승진 기회가 없는 노동시장이 존재함을 가정한다. 이런 가정의 함의는 서로 다른 노동조건 속에 놓인 노동자들은 단결하기 어렵다(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득권을 갖고 있어 보수적이 됐기 때문에 단결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수적인 것은 정대연 기자의 관점이다. 그런 관점은 사용자의 양보를 강제할 수 없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한다. 그러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조건을 제로섬 관계로 여긴다.

그러나 임금과 노동조건이 결정되는 방식은 기계적이지 않다. 경제 상황과 단결된 투쟁, 그리고 이 두 요인의 상호작용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일반으로 말해, 정규직 노동자들처럼 비교적 잘 조직된 부분이 조건 개선을 쟁취하면 열악한 부분 노동자에게도 상승 효과가 있다. 가령 완성차 기업 정규직들의 임금 협상 결과가 하청 부품업체 노동자들의 가이드라인이 돼 온 경험이 이런 역학을 잘 보여준다.

반면 정규직 노동자의 조건이 공격받으면, 비정규직도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정규직 노동조건이 후퇴하면 비정규직의 차별 반대 요구의 기준점 자체가 낮아지는 효과를 낸다.

지난 수년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은 함께 등락해 왔다. 특히, 경기 침체와 코로나19 위기가 결합된 지난해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모두 임금이 감소했다.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은 6.6퍼센트 감소했고 비정규직도 3.0퍼센트 줄었다(5월 25일 고용노동부).

비록 격차가 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은 함께 등락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자본은 착취 대상인 노동자 모두를 공격할 전략에 따라 전술을 조정해 왔지, 정규직은 보호하고 비정규직에게는 고통을 주는 전략을 추구해 오지 않았다. 더 큰 이익을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를 이간질해 왔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한다는 분석을 어떤 방식으로든 받아들이면, 사용자들의 공세에 노동자들이 대처하기 어렵게 만든다.

따라서 잘 조직된 부분의 노동자들은 전술적으로든 전략적으로든 자신의 노동조건을 지키면서 비정규직에 연대해야 한다. 그것이 사용자들의 공세에 맞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의 조건을 방어 또는 개선할 수 있는 길이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조건은 정규직 노동자의 조건 개선에도 하향 압력으로 작용하기 쉽다.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가능성은 정규직의 조건 개선 시도를 위축시킬 수 있다.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차별을 방치하면 자신들의 투쟁 명분도 약화되고 특히 노동자들의 단결과 계급의식이 약화된다. 결국 전체 노동자의 처지를 악화시킬 수 있다.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잘 조직된 부분의 노동조합 지도자들(건강보험공단의 경우 정규직 노조 지도부)이 자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직접고용에 반대하는 나쁜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정규직 의식은 단일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추진 과정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흔히 경제주의와 부문주의로 노동계급 연대를 훼손하는 잘못된 방침을 취하기도 했다. 조건 하락의 불안을 느끼는 정규직 조합원들을 설득해 단결된 투쟁으로 나아가게 하기 보다는, 파이가 제한돼 있다(‘제로섬’)고 느끼며 부문주의를 강화한 것이다.

그것의 나쁜 효과 하나가, 일부 후진적 노동자가 ‘공정성’의 이름으로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반대하는 개인주의적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지 않을 잠재력이 있다. 건강보험 상담원 노동자들은 지난 2월 파업에 나섰는데, 그때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은 직접고용을 응원했다. 당시 파업 기간에는 고객센터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조금이나마 늘어나는 변화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관념이 모두 똑같거나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당시 김숙영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 지부장도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전화방’이라고 해서 공단에서 상담 일을 하셨던 [정규직]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분들 중에는 [고객센터가] ‘우리 업무지’ 그렇게 얘기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러므로 정규직노조 지도부와 기층 노동자들을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정규직이 모두 직접고용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도매금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정규직 노동자들 내부의 이런 차이를 누가 어느 방향으로 이끌 것이냐다.

만약 직접고용을 지지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결집됐다면 노동조합 내 의견분포도 바뀌었을 수 있다. 부문주의를 뛰어넘어 계급적 단결을 추구하는 혁명적 좌파가 노동조합 내부에 응집력 있게 존재할 때 이런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을 뭉치게 하기도 하지만 분열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노동자 사이의 근본적 이해관계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장에서 서로 다른 처지에 있더라도 노동자들은 잉여노동을 착취당한다는 공통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사용자들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단결할 잠재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잠재력을 과연 어떻게 현실화할 것이냐이다.

도덕주의

한편, 정대연 기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호봉제를 도입하는 것도 민간 노동시장과의 “격차”를 넓힐 수 있다며 반대한다.

노동계급의 내부 이해관계가 다르고,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조건 방어를 쟁취할 수 없으며, 상대적으로 조금 더 나은 노동자들의 투항(양보라는 이름의)만이 답이라는 설교의 귀결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까지 ‘당신들도 누군가에 대면 기득권자인 셈’이라고 함축하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계급 일부의 조건 개선이 다른 부분의 악조건을 방치 또는 조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비정규직의 조건 개선을 발목 잡을 수 있는 논리로도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가들에게는 이윤이 도덕이다. 정규직이 임금을 양보한다고 그들이 그것을 비정규직에게 넘겨 준다는 보장이 전혀 없는 것이다.

정규직 양보론은 이런 냉정한 계급 ‘도덕’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박한 도덕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소박하고 공상적인 도덕은 계급의식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특히  ‘사회적 대화’라는 정치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 결여 때문이다.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는 사회적 대화?

정대연 기자는 민주노총이 “투쟁 고수 태도”에서 벗어나 “국가 정책 형성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사회적 대화 경험은 결코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이롭지 않음을 보여 줬다. 경사노위와 노사정합의 참가 논란 때도 정부와 친자본주의 언론은 민주노총이 취약 계층을 대변하고자 한다면 대화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러나 정작 문재인 정부가 거듭 테이블에 꺼내놓은 것은 비정규직, 미조직, 영세사업장 등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는 개악안이었다.

정대연 기자가 비판하는 건보공단 정규직노조 전 위원장이 지난해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대표자회의’와 거기서 이뤄진 노사정 잠정합의안(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된)을 적극 찬성한 장본인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이런 사실은 사회적 대화를 통한 양보론이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에 도움되는 방향이 아님을 시사한다.

게다가 레임덕 문재인 정부는 이재용 사면설을 흘리며 기업인들에게 아부하고 있다. 노동계 지도부들에게 기후변화와 산업전환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노동전환’을 강조하는 것은 대선을 앞두고 노동계 지도부들을 포섭할 새로운 의제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 분위기 조성은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제동을 거는 구실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많은 노동자들의 처지가 악화된 상황에서, 그간 참았던 조건 악화를 다시 원상회복해야 한다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대규모로 강력하게 싸우지 않으면 경제 침체 상황에서 조건을 지키기 어렵다. 좋은 조짐은 택배, 건강보험 상담원 등이 파업에 나서려고 하는 것인데 이런 투쟁을 지지·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리한 대화라는 공상을 버리고 말이다.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을 강화하는 속에서만 노동자들의 연대도 되살아나고 확대될 수 있다. 투쟁에 나섰을 때 노동자들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서 소속감과 자신감을 얻고, 노동계급의 힘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이에 맞선 단결과 연대가 사활적으로 필수적임도 배울 수 있다.

노동조합 상급 지도부의 경제주의와 부문주의를 극복하려면, 현장에서 그런 보수적 사상과 관행에 맞서 싸우며 기층 노동자의 의식과 단결, 급진성을 고무할 진정한 좌파적 정치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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