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이다.


총리직 부지하고 있는 보리스 존슨 ⓒ출처 Number10(플리커)

“악의 평범성”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다룰 때 만들어 낸 표현이다.

꼭 괴물 같은 인간이 아니어도 꽤나 평범한 사람이 복합적인 동기에 의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뜻에서였다. 출세주의, 체제 순응, 공포, 탐욕, 관료적 편의주의 등이 그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종주의 같은 더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도 동기가 될 수 있다.

[지난해까지 총리 수석 보좌관이었던] 도미닉 커밍스가 2020년 3월 영국 총리 관저에서 촬영한 악명 높은 화이트보드 사진에 필자의 페이스북 친구 하나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화이트보드에는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 전망이 적혀 있었고, 아래에 이런 질문이 휘갈겨 씌어 있었다. “누구를 구하지 말까?”

[5월 26일에 영국 하원 과학보건위원회에 출석해] 7시간에 걸쳐 증언을 한 커밍스는 관성·인색함·거짓말·책임전가가 지배하는 영국 정부 기구의 처참한 천태만상을 폭로했다.

하지만 보리스 존슨이 록다운에 줄기차게 저항한 데에는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도 있었다. 신실한 대처주의자인 존슨은 경제를 위해 “시체가 쌓이게” 내버려 뒀다. 이윤을 생명보다 우선한 것이다.

놀라운 점은 두어 주가 지나자 커밍스의 고발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흐지부지됐다는 것이다. 이 증언은 말 그대로 역사, 즉 역사가와 조사관 같은 사람들이나 참고할 사료가 돼 버렸다. 정치적으로 커밍스는 존슨에 털끝만큼도 해를 끼치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이유는 허다할 것이다. 커밍스 자신이 일단 평판이 땅에 떨어진 인물이다. 커밍스는 지난해 [코로나19 증상이 있었음에도] 록다운 조처를 어기고 잉글랜드 북부를 여행했던 바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중요한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첫째, 영국 정부는 기업과 가계의 록다운 피해를 완화하려고 막대한 차입과 지출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실로 곤경에 처해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 체제 핵심부에 있는 영국 등의 나라들에서는 산출이 대폭 줄어들지만 소득은 그만큼 줄지 않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둘째, 신속한 백신 접종은 존슨 정부가 제대로 한 유일한 일이었다. 유럽연합의 서투른 대응에 견주면 대비가 뚜렷하다. 셋째, 존슨은 야당의 취약함에서 득을 보고 있다. 유약하지만 고약한 키어 스타머가 이끄는 노동당은 보수당에 맞서기보다 자기 당원들을 공격하는 데에 더 골몰하고 있다.

침체

이런 사정은 바뀔 수도 있다. 스타머가 보수당에 맞서 줏대를 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임시 보조금이 끊기면서, 브렉시트 때문에 가뜩이나 심각하게 불안정한 영국 경제는 마치 사람이 죽기 직전 잠깐 제정신이 돌아오는 것과 같은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산출이 일시적으로 급격히 회복됐다가 전통적인 경기 후퇴로 빠져들 수 있다.

무엇보다, 팬데믹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백신과 새 코로나19 변종의 레이스에서 백신이 이기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세계 인구 대부분이 여전히 백신 접종을 받지 못했다. 어리석은 자만이 앞날을 낙관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섣부른 경제 재가동을 서두르는 움직임이 있는 마당에 말이다.

그러나 존슨이 총리직을 유지한다면 1930년대 영국 같은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당시 세계 다른 곳에서는 극우나 극좌가 급부상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보수당이 정치를 지배했다. 당시 보수당 총리 스탠리 볼드윈과 네빌 체임벌린은 “국민 정부”를 운영하며 국내에서는 긴축 정책을 추진하고 대외적으로는 독재자들에게 유화 정책을 폈다. 노동당은 정치적으로 주변화돼 있었고, 노동조합들은 1926년 총파업 패배의 여파에서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세대의 대변자였던 시인 W H 오든이 보수당 정부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는 파시즘을 두고 말한 “저열하고 부정직한 시대”에 대한 혐오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급진화했다. 공산당은 학생들 사이에서 청중을 대거 확보했고, ‘레프트 북 클럽’ 등을 통해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키웠다.

이런 기류에 자극받아, 조지 오웰 같은 사람들과 많은 노동계급 투사들이 스페인으로 건너가 공화국 편에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1945년 총선에서 노동당 압승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지금도 급진화가 시작되고 있다. 급진화는 팬데믹 이전에 ‘멸종 반란’ 운동으로 시작됐다. 이런 급진화 기류는 최근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과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으로 더 커졌다. 존슨은 커밍스나 스타머 같은 자들을 상대로 한 정쟁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서 훨씬 더 강력한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자양분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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