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표로 이준석의 당선은 ‘청년 정치’의 새바람을 알리는 걸까?
이준석은 예나 지금이나 엘리트주의와 무한 경쟁을 옹호하고, 일반 청년들의 박탈감을 이용만 할 뿐 그 고통을 해결하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차별과 불평등을 노골적으로 정당화하는 보수 반동자일 뿐이다. 그는 10년 전 본지 김지윤 기자와의 ‘맞짱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년들이 재도전을 너무 고려하지 않는다[.] …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도] 양질의 인재들이 오지 않는다 … 너무 다수에게 혜택을 주려 하다 보니 양질의 일자리가 나오지 않는 것 … [청년들이] 재도전의 기회[를 잡기 위해] 심각하게 노력해야 한다.”
이준석은 당선 전에 ‘안티 페미니즘’으로 젠더 갈등을 부추기며 20대 남성 전체(사실은 일부인데도)를 대변하는 행세를 했다. 인상에 좌우되길 잘 하는 사람들은 그의 부상이 일각의 안티 페미니즘 정서를 넘어 20대 남성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준석은 보수적인 일부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고, 그의 당선은 이들을 더 고무할 것이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은 20대 남성들은 남성 개인들을 공격하는 데 열심인 일부 페미니스트들에게 거부감이나 불편함을 느끼긴 해도, 성평등 가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관련 기사: 본지 366호 ‘20대 남성, 안티 페미니즘인가’)
이준석이 청년들의 실제 정서를 대변한다고 보기도 어렵고, 청년들이 이준석을 안티페미니즘을 이유로 지지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보수 반동 엘리트주의자 이준석은 일반 청년들의 박탈감을 이용만 할 뿐 그 고통을 해결하는 데 전혀 관심 없다 ⓒ출처 국민의힘
이준석의 등장은 대선에서 승리해 보겠다는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의 집권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새로운 간판을 달아 “돈과 권력을 중시하는 엘리트주의를 가지고 있는 50대 후반 ~ 70대 꼰대 남성”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것이다.
이제 두루 인정되다시피 이준석을 앞세워 우파가 떠오르고 있는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분노와 환멸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분노는 지난 재보선에서 굴절돼 표현됐다.(관련 기사: 본지 363호 ‘민주당 재·보선 참패: 개혁 배신이 불러 온 환멸과 분노의 굴절된 표현’) ‘이준석 현상’도 그 연장선 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역차별?

이준석은 여성 차별의 현실을 사실상 부정하며 오히려 남성이 ‘역차별’당하는 현실인 양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근거 없는 피해의식”으로 시대착오적 페미니즘을 강요한다고 공격해 왔다.(당대표가 된 뒤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열려 있다는 언급을 하며 이런 편협함을 덮어 보려는 듯하지만 말이다.)
과거에 견줘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제한적으로 상승한 것은 맞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 경제와 사회에 여성의 기여가 늘어났기 때문이지, 기존 사회의 여성 차별 구조가 사라져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일부 중간계급 여성은 일정한 성공을 거뒀지만, 노동자·서민층인 보통 여성의 삶은 여전히 곤고하다.
평균적으로 여성은 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또는 시간제 일자리로 일할 가능성이 남성보다 더 크다. 성별 임금 격차는 10년 넘게 OECD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크다. 특히, 육아와 가사의 주된 책임도 여전히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다. 이것은 여성들이 일생에 걸쳐 겪는 각종 차별의 원인이 되고 있다.
여성이 겪는 차별이 단지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다. 여성의 몸에 대한 광범한 비하가 벌어지며 여성들은 성폭력, 성적 괴롭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다수 여성의 삶과 마찬가지로 대다수 남성의 삶도 고달프다. 노동계급 남성의 처지는 자본가 계급과 상층 중간계급의 여성보다 더 열악하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남녀 노동계급 모두에 얼마나 가혹한지를 보여 주는 것이자 여성 차별이 남성 노동계급 탓이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지, 여성 차별이 없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우파 영향력 키우기

이준석을 앞세운 우파는 체계적인 여성 차별의 현실을 부정하므로 페미니즘에 적대적이다. 그런데 이들의 페미니즘 공격은 특히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고 불만을 품은 청년들을 포섭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남성 개인들 공격에 열을 올리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반감을 이용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사상은 급진적인 대부분의 경우, 사회의 근본 분단선이 계급이 아니라 젠더에 있다고 보며 남성 일반을 여성 일반에 대한 지배자·권력자로 여긴다.
그래서 흔히 남성 개인들을 공격하거나, 일상의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에 몰두하는 실천을 해 왔다.
편견 섞인 말과 표현, 행동들을 도덕주의적으로 규탄하는 것도 이런 실천의 일부였다. 심지어 성차별적 함의가 없는데도 여성 혐오로 낙인 찍기도 했다.
그래서 이준석 같은 우파는 페미니즘의 이러한 일부 측면을 페미니즘 전체로 확대해석하고, 페미니즘을 할당제 같은 정책 하나로 환원한다.
우파의 페미니즘 비판에는 문재인 정부에 참여한 여성운동 지도자들의 개량주의적 무기력도 활용된다. 이는 이들이 서민층 남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이용해 진보·좌파 전체를 약화시키려는 것이 목적임을 보여 준다. 그렇게 해서 우파에 유리한 지형을 만들고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우파들이 평범한 여성들의 삶의 개선에는 무관심하면서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것은 순전한 위선일 뿐이다.
3년 전 남성잡지 <맥심> 표지 모델로 나온 이준석 2015년에 이 잡지는 여성 납치·살해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연출한 화보를 표지로 내보내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출처 맥심코리아
우파가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청년들을 포섭하려 애쓰는 상황은 문재인 정부 왼쪽의 대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최근 들어 정부 비판이 더 강화되긴 했으나, 문재인 정부 집권 4년 동안 정의당·진보당 같은 진보정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좌파적 대안을 제공하지 못했다. 특히, 단결된 대중 저항을 건설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문재인 정부가 커다란 위기를 겪는 와중에도 정치적 존재감이 크지 못한 실정이다.
만성적 경제 불황 속에서 청년들에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한 번 낙오한 결과도 더 안 좋아졌다.
그리고 소외와 파편화가 심화되는 조건 하에서 오늘날 젊은 세대는 집단적 투쟁과 조직 경험의 부족, 피상적 인간관계, 개인주의·능력주의라는 압박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대중 투쟁이 더 확대되고, 급진적이 되고, 좌파적이 되지 않는다면 이런 특징이 정부에 대한 불만과 좌절감과 결합돼 우파에 대한 지지로 연결될 수도 있다.

여혐 vs 남혐 그만

여성 평등을 향한 사상과 실천으로서 페미니즘은 차별 현실을 개선하려는 진보적 운동이다. 이 운동 안에는 여러 조류가 있고 강조점과 방법도 다양하다.
한국에서 현재 우세한 급진 페미니즘 경향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천대에 맞서고자 하는 좋은 의도의 사상과 운동이지만, 이론적·정치적으로 결함이 많아 잘못된 분석과 전략·전술을 제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실 보수 남성 청년들의 ‘남혐’ 제기는 일부 여성주의자들이 사용해 온 방식의 거울 이미지다.
최근 어느 페미니스트는 이준석과 논쟁하면서, ‘남혐’ 제기를 하는 이들을 두고 ‘남혐 제기가 확증편향이고, 동기를 봐야 하며, 젠더갈등을 부추기지 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얘기다. 그동안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종파주의적 실천을 동기를 근거로 정당화해 왔는데, 그런 실천의 효과도 성찰해 봐야 한다. 여성운동 일각의 여성혐오 낙인찍기와 개별 남성 규탄은 충격 요법을 통해서라도 대중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극소수에게는 각성 효과를 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에 비춰 보면 이런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았다. 도덕주의적으로 평범한 남성(청년)들에게 여성혐오 낙인을 찍는 방식은 불가피하게 반감을 키웠고, 불필요한 분란과 소모적 논쟁, 쓰라림을 낳았다.
이런 점들을 발본적으로 돌아봐야 우파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맞서고 효과적인 대안 제시도 할 수 있다.

이간질에 맞서기

실업과 구조조정, 임금 삭감,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보육 지원 등 오늘날 구직 청년을 포함해 노동계급을 괴롭히는 문제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이런 구조적 차별에 진정으로 책임이 있는 것은 어느 한 성이 아니라 지배계급과 그 정부이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이다. 불황 때문에 지배자들의 고통 전가 시도가 강화되는 가운데 노동계급 남녀 모두의 삶이 더 팍팍해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돌봄과 양육 부담 등을 개별 가정에 떠넘기며 여성들에게 더한층의 희생을 강요한다.

노동계급이야말로 그 남녀 구성원이 단결해야 유리한 사회 세력이다. 그러려면 노동계급 운동은 여성 차별에 효과적으로 맞서야 한다. 노동계급의 여성과 남성이 지배자들에 맞서 단결하고 각종 성소수자도 포함된 단결 투쟁이 전개될 때 의식 변화도 가능해진다.

물론 현실에서 노동계급은 여러 차별적 관념이나 경쟁으로 말미암아 종종 분열하고, 단결이 요원해 보이기도 한다.

노동조합 상층의 지도자들은 급진적이고 좌파적이고 전투적으로 기층 노동자들을 조직해 효과적인 투쟁을 건설하는 데는 소심한 편이다. 대부분, 집회에서 연설 기회를 얻고, 연대체에 재정 지원을 하고, 진보정당들의 입법 캠페인을 지원하는 등의 공중전과 형식적 대응에 그친다.

심지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할 때조차 정규직으로부터의 연대를 건설하는 데 관심이 없거나 수동성과 무능력을 드러낸다. 대놓고 부문의 이익만 옹호하기도 한다. 전교조 지도부가 비정규직인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외면한 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규직 노조 지도부가 콜센터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반대하는 일 등이 그런 사례다.

이는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이 저절로 이뤄지지 않고, 이를 위해서는 의식적인 개입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잠재력을 현실로 만드는 데서는 단결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운동에 개입하려는 의지를 가진 혁명적 좌파의 구실이 중요하다.

몇 년 전 가톨릭 교회의 영향이 강한 아일랜드에서 낙태가 합법화됐는데, 급진좌파들(특히, ‘이윤보다 인간이 우선이다’ 연합)이 낙태권 운동에서 중심적 구실을 했다. 이들은 수년에 걸쳐 노동계급의 반긴축 투쟁에 관여하며 대중 시위를 조직하고 좌파적인 정치적 주장을 폈다.(관련 기사: 본지 250호, ‘현지 여성 사회주의자 기고: 아일랜드 국민투표, 낙태는 여성의 권리임을 천명하다’)

좌파라면 차별에 맞서는 운동에 노동계급 기층 사람들이 더 많이 참가하고 노동계급이 자신의 고유한 힘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고무해야 한다. 그저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인권운동 지도자들, 개혁주의 정치인들을 응원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최근 고려대불평등과민주주의연구센터와 한국리서치가 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준석의 국민의힘 당대표 당선이 20대가 아니라 60대가 밀어준 결과이며 안티 페미니즘 덕도 아님을 보여 준다.
이는 이준석 당선이 안티 페미니즘적 20대 남성이 결속한 결과가 아니라 윤석열을 통해 정권 교체 가능성이 생기자 이제 이미지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 우파 지지층의 결집 효과라는 본지 기사의 분석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한다.(6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