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이다. [ ] 안의 말은 번역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첨가한 말이다.


100년 전 급진적 지식인들이 창당한 중국공산당은 오늘날 세계 2위 경제 대국의 집권당이 돼 있다 ⓒ출처 전국인민대표대회(웹사이트)

얼마 전 주영 중국 대사 정쩌광이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있는 마르크스의 묘를 참배한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을 기렸다. 중국공산당이 걸어온 역사는 누가 봐도 놀랍다. 반(半)식민지 상황의 상하이에서 박해받던 한줌의 급진적 지식인 집단이 세계 제2 경제 대국의 집권당으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중국공산당이 승리한 정치적 동학은 비교적 분명하다. 창당 몇 년 만에 중국공산당은 영국령 홍콩 경찰의 유혈 진압이 촉발한 거대하고 전투적인 노동자 투쟁의 핵심이 됐다. 이후 공산당은 민족주의 운동의 핵심 세력인 장제스의 국민당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1927년 장제스는 공산당을 공격해 공산당 활동가들을 학살했다.

도시 밖으로 피신한 공산당은 1930년대 중반 마오쩌둥이 이끄는 농촌 게릴라군으로 서서히 재부상했다. 마오쩌둥은 1937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재앙적인 중국 정복 시도[중일전쟁]에 대항하면서 수완을 발휘해 장제스를 갈수록 수세로 몰아넣었다. 마오쩌둥은 자신을 통제하려 들던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신흥 초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책략을 부렸다.

1949년 10월 중국공산당은 권력을 장악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마오쩌둥은 “중국 인민이 들고 일어섰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최우선 목표는, 19세기부터 중국을 분할 점령했던 제국주의 열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경제적 자립을 성취하려 했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토니 클리프는 1957년 이렇게 썼다. “마오쩌둥 치하 중국의 경제적·정치적 변화를 관통하는 핵심은 낙후하고 자원이 빈약한 농업 기반 위에서 대중을 들들 볶아서 장엄한 경제·군사 기구를 수립하려는 지배층의 노력이다.”

비슷하게 이사벨라 웨버는 중요한 신간 도서 《중국은 어떻게 충격 요법을 피해갔나》에서 이렇게 썼다. “마오쩌둥 시대에 가격 체계는 도시 산업화에 필요한 자원을 농촌에서 쥐어짜는 핵심 메커니즘이었다. … 농산물 가격과 공산품 가격은 부등가 교환이 이루어지게끔 책정됐다. 농산물 가격은 가치 이하로 억제됐다. 농민은 도시 노동자와 같은 시간을 일했지만 물질적 생활수준은 훨씬 열악했다.”

여러 격변이 있었지만 이런 국가자본주의 건설 노력 덕분에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할 즈음에는 현대적 제조업 경제의 토대가 마련됐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중국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고, 1949년 혁명 이래로 세계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늘지 않았다. 그래서 마오쩌둥 사후 최종적으로 권력을 이어받은 덩샤오핑은 시장 메커니즘에 더 기대어서 농업 생산을 늘리고, 중국을 세계 자본주의에 개방하기로 했다.

덩사오핑 하에서 두 가지 중대한 결정이 내려졌다. 첫째, 웨버가 보여 주듯이, 중국 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환멸에 빠진 많은 동유럽과 중부 유럽 공산당 출신자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고삐 풀린 시장 가격 체계로 하루아침에 전환하는 이른바 “충격 요법”을 채택하지 않았다. 이는 정치와 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통제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결의를 반영했다.

둘째, 중국 정부는 서방 다국적기업들이 중국을 세계 시장을 위한 저비용 생산 기지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중국은 결국 제조업 강국이자 세계 최대 수출국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서구 정치인들과 이데올로그들에게는 분하게도 중국공산당은 여전히 지배력을 장악하고 있다. 오히려 현 국가주석 시진핑 하에서 중국 정부는 이데올로기적으로 더 강경해지고, 지정학적으로 더 적극적이 됐다. 국내에서는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했다. 덩샤오핑은 주저했던 일들이다.

더 중요한 점은 공산당·국가 관료들이 국유 기업을 통해 직접적으로든, 명목상 민간 기업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든 중국 경제를 계속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자본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축에 들지만, 여전히 노골적으로든 은밀하게든 중국공산당과 얽혀 있다. 게다가 중국이 미국의 최대 경쟁자라는 사실은 갈수록 명백해지고 있다.

그래서 바이든이 시진핑의 “독재”로부터 21세기를 쟁취해 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월가[미국 재계]는 중국공산당의 계속되는 지배력에 괘념치 않는 듯하다. 미국 대형 은행들은 중국의 어마어마한 저축에 접근하려고 중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중국 “공산주의”와 서구 자본주의의 밀월은 끝나지 않았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7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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