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이 최근 보궐선거에서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닉 클라크가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지지율이 하락해 온 패턴을 살펴본다.


영국 노동당의 위기는 모든 유럽 사민당들이 겪고 있는 위기의 일부다. 현 노동당 대표 스타머(왼쪽)와 2020년 초까지 당을 이끈 좌파 인사 코빈(가운데) ⓒ출처 제러미 코빈(플리커)

영국 노동당 정치인들조차 자기네 정당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최근에 열린 보궐선거를 앞두고 노동당 의원들이 초조해하자 익명의 “노동당 인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기자들을 불러 당 대표 키어 스타머가 아무런 전략이 없다고 불평했다.

스타머가 물러나길 내심 바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타머나 그 측근들의 실패를 비난한다. 그래서 이 “논쟁”은 스타머를 누구로 대체할지 또는 어떤 정책을 바꿔야 할지를 둘러싸고 이뤄진다.

좌파 의원들은 이미 좌파에게 등을 돌린 부대표 안젤라 레이너의 당대표 선거 도전을 지지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우파들은 스타머가 계속 당대표로 남는 것을 마지못해 지지한다.

문제는 당내 좌파든 우파든 어느 쪽도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당의 위기는 단지 당대표의 위기가 아니다. 노동당 내의 불안은 유럽의 모든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앓고 있는 병의 증상일 뿐이다.

영국 노동당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는 훨씬 오래 전부터 약화돼 왔다. 하틀리풀, 배틀리, 스펜 보궐선거에서 노동당이 표를 잃은 것은 이런 과정의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다.

노동당이 총선에서 얻은 표는 1987년 이래 2015년과 2017년을 제외하고 줄곧 감소했다.

이에 대해 노동당 좌파 활동가들은 토니 블레어 지도부 하에서 당이 급격히 우경화해, 그의 정부가 미국과 함께 이라크를 침공하고 [신자유주의로] 노동계급을 저버린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옳게 지적한다.

하지만 의미심장한 것은 유럽 전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이런 몰락을 동시에 겪었다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과 비슷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쇠락하거나, 붕괴하거나, 전멸 직전에 이르렀다.

이런 정당들은 노동계급을 대표한다고 할 만한 실제 근거가 있는 정당들이다. 그 근거는 흔히 노동조합 지도부와의 연계에서 비롯한다. 이런 정당들은 많은 경우 말로라도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천으로는 전혀 다르게 행동했다. 즉, 노동계급에게 개혁을 약속하고는 체제를 관리하려 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설립하거나 지지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업장에서 하는 구실을 정치에서도 하기 위해서다. 즉, 파업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노동자들과 사용자들을 중재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심지어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대부분의 시기에 상당수 노동계급 사람들이 지지를 보내 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정당들은 사회주의와 거리가 멀었다.

정부에 참여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흔히 개혁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기업들이 요구하면 심지어 자신을 찍어 준 노동계급을 배신하기도 했다.

그들은 기업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체제를 관리하면서도, 노동계급에게 이롭게 그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압력 사이에서 항상 진퇴양난에 처했다.

그러나 언제나 우선순위는 체제 관리였다. 물론 그러면서도 적어도 보수 정당들과는 다르게 체제를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오늘날 체제를 관리한다는 것은 고삐 풀린 자유 시장 정책, 즉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자본주의 운영 방식을 충실히 따른다는 것을 뜻한다. “신자유주의 컨센서스”는 모든 나라 정부의 거의 모든 주류 정당 사이에 이 체제를 어떻게 운영할지를 놓고 의견이 합치돼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다른 보수 정당들과 차별점을 보이지 못하게 됐다.

신자유주의

이런 과정은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경제 위기에 대응해 기업주들은 민영화, 저임금, 정부 지출 최소화를 요구했다. 이는 노동조합을 공격하면서 추진됐다.

영국에서는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개척했다. 대처가 도입한 주민세에 분노한 노동계급이 소요를 일으켜 대처를 물러나게 한 뒤에도, 기업주들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지속하라고 요구했다.

토니 블레어는 이에 화답해 노동당을 완전히 노골적인 친기업 정당으로 재편했다.

1997년부터 줄곧 노동당 정부는 민영화를 강행하고, 공공부문 임금과 일자리를 삭감했다. 블레어는 미국과 함께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였다.

이 때문에 노동당은 많은 표와 당원들을 잃었다.

유럽 전역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경우 거의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사회민주당 정부는 영국에서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후에 선출됐다.

슈뢰더 정부의 “아겐다 2010” 정책은 실업수당을 대폭 삭감하고 [무상으로 제공하던] 의료 서비스에 요금을 부과했다. 그 결과 독일 사회민주당은 적어도 13만 명이 탈당했고, 득표가 1998~2010년 사이에 반토막 났다.

다른 나라들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몰락은 훨씬 더 극적이었다. 많은 경우 2007년 금융 붕괴가 분수령이 됐다.

그리스 사회당(파소크 PASOK)의 운명이 아마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 심지어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추락하는 과정을 일컫는 ‘파소크화(化)’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유럽 은행들의 노골적인 요구에 굴복한 그리스 사회당 정부는 유럽에서 가장 혹독한 긴축을 단행했다.

수많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연금이 대폭 삭감됐다. 실업률이 거의 25퍼센트에 달했다.

그리스 사회당은 완전히 파산했다. 2009년 선거에서는 42퍼센트 득표했지만, 2012년에는 겨우 12퍼센트 득표해 정부에서 물러났다.

사회당은 한때 그리스 주요 정당의 하나였다. 그러나 현재 사회당은 도합 22석을 보유한, 고전하는 중도좌파 정당들로 이루어진 오합지졸 연합체를 이끄는 신세로 전락했다.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프랑수아 올랑드가 이끈 프랑스 사회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했다. 올랑드는 미움받고 부패한 [우파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와는 다르게 정부를 운영할 것이며 “더 유연”하고 “공정”한 긴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올랑드는 금세 약속을 폐기했고, 2014년 대대적인 공공지출 삭감과 기업 감세에 착수했다. 올랑드는 뒤이어 노동법 전면 개악을 추진했다. 이는 대규모 파업과 거리 시위를 촉발했다.

노동자들과의 이런 충돌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위기에 또 다른 양상을 보탰다.

충돌

노동계급뿐 아니라 노동조합 지도자들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환멸을 느끼고 결국 그 당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세우고 지지한 정당이 도리어 그들을 공격했던 것이다. 조합원들을, 그리고 자신들의 지위를 지켜야 한다는 압력 때문에 노조 지도자들은 때때로 사회민주주의 정부에 맞서 파업을 조직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노동당 정부가 노동자들을 공격하거나, 보수당 정부에 맞선 파업을 노동당이 지지하지 않아, 노동조합의 온건파 지도자들조차 이를 공공연히 비판하기도 했다.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과의 결별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실제로 결별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최종적인 결별이나 정면 대립을 피했고, 협상에 무게를 실은 채 파업을 억제하려 했으며 그러는 데 대체로 성공했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이들의 가장 중요한 지지자들[노동조합 지도자들] 간의 관계 악화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지지를 깎아 먹는 요인이 된다.

좌·우를 불문하고 주류 정당에 대한 지지가 붕괴하자 다른 정당들이 부상할 기회가 생겨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기서 두각을 보인 것은 우익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정당들이었다.

물론 좌파가 전진한 사례도 있었다. 가장 분명한 사례는 한때 급진적이었던 그리스의 좌파 정당 시리자였을 것이다. 시리자는 2015년 선거로 집권했다.

연립 정부에 참가한 스페인의 포데모스도 그런 사례다.

둘 다 기존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대안을 자처하며 성장했다. 영국 노동당에서 [좌파 인사인] 제러미 코빈이 당대표로 선출된 것도 기존 지도부에 대한 분노와 더 나은 정치에 대한 염원을 반영했다.

좌파 개혁주의도 위기

하지만 그리스의 시리자와 달리, 코빈은 영국판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사회주의자들과 코빈 지지자들은 흔히 코빈 지도부가 노동당의 쇠퇴를 (일시적으로) 역전시켰다고 지적한다. 코빈의 2017년 총선 선거운동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노동당 득표율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뒤집어서 보면, 코빈 지도부는 노동당의 위기를 그저 지연시켰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코빈은 자신이 정부를 운영할 만한 사람임을 노동당 의원들과 기업인들에게 납득시켜야 한다는 압력을 결코 극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을 설득하려는 시도가 코빈의 추락을 낳았다.

시리자와 포데모스도 결코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했다. 시리자 정부는 사회당 정부가 했던 일을 되풀이했고  [국내외] 은행들이 요구하는 긴축을 시행했다. 포데모스는 한때 자신이 교체 대상으로 지목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파트너로 연립 정부에 참가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그들의 좌파적 대안이라는 정당 모두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 끊임없이 노동계급을 공격하라고 요구하는 체제 내에서 약속한 개혁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도부를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체제 내 개혁이 아니라, 체제 자체에 맞서기를 추구하는 조직과 투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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