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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어떻게 유력 예비 대선후보가 됐는가

민주당 소속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이하 직함, 존칭 생략)가 7월 1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4년 전 성남시장으로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갔을 때와는 정치적 위상이 확연히 달라졌다.

이제 그는 한국에서 가장 큰 지방정부의 수장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여권 내 독보적 1위로 우파 야권의 대표 주자 윤석열과 양강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재명 측근인 민주당 국회의원 정성호가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할 정도로 캠프 규모도 크다. 노무현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강금실이 후원회장을 맡았다.

문재인 정부는 정치적 위기에 빠져 있고, 민주당 지지율도 4년여 만에 국민의힘에 따라잡혔으며, 정권 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정권 유지 쪽보다 더 크다. 그런데도 이재명의 인기가 유지되는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이재명은 민주당 내 비주류로, 주류인 친문 세력과는 거리를 둬 왔다. 경기도지사 선거 때 친문 실세 전해철(현 행정안전부 장관)과 당내 경선을 치렀는데, 그때 전해철 측이 가족 관련 개인사 문제로 이재명을 고발하기까지 했다. 이재명은 이 문제로 대법원까지 가는 고초를 치렀다. 당시 일부 친문 인사들은 차라리 우파 야당(자유한국당) 남경필이 되는 게 낫다고까지 했다.

또, 이재명은 노동자·서민에 친화적이며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개혁가로 보이려고 애써 왔다. 문재인이 개혁 약속을 배신하고 대중의 염원을 저버린 것과 달리, 이재명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작은 개혁이라도 약속한 것을 실행해 왔다고 강조한다. 이를 자신의 강점으로 부각하려고 이번 대선 출마 선언에서 “약속 준수”를 핵심 키워드로 삼았다(“공정 경쟁”, “억강부약”과 함께).

이런 요인들 덕분에, 문재인 정부에 크게 환멸을 느낀 사람들 사이에서 ‘이재명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는 듯하다.

행적과 기반

이재명은 출마 선언에서 “특권과 반칙에 기반한 강자의 욕망을 절제시키고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의 정치”를 강조했다.

이런 강조는 이재명의 입지전적 인생 스토리와 만나 서민층에 호감을 주는 요인이다. 그는 경북 산촌의 빈농 가정 출신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기도 성남시로 올라와 공장 노동자가 됐다. 그때 산업재해를 당해 장애 6급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이후 검정고시로 법대에 진학해 사법고시를 통과하고는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이재명이 공식 정치에 입문한 계기는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이 함께한 성남시의료원(공공병원) 설립 운동이었다. 그러나 2004년 성남시의회는 주민 발의 조례안을 가뿐히 폐기했다. 이 운동이 패배한 후 이재명은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내가 변해야’ 하고 ‘성남시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해 시장 선거에 출마하게 됐다.

이때 인권변호사·성남시민모임 활동을 하며 노동운동·엔지오 활동가들과 맺었던 관계는 이재명이 공식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도 중요한 정치적 기반이 된 듯하다. 성남시장 시절 ‘사회적 경제’를 강조하면서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지원을 늘린 것이나, 나중에 경기도지사로서 경기도판 사회적 대화를 추진한 것은 이와 관련 있을 것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민주당 내 비주류이자 개혁파로 정치적 입지를 넓혀 왔다 ⓒ출처 이재명 열린캠프

정계 진출 이후 이재명은 주류와 기득권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복지 정책을 실행하며 서민층의 호감을 샀다. 성남시장이 되고서 2013년에는 성남의료원 건립 공사에 착수했는데, 당시 경남도지사 홍준표가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것과 대비되는 일이었다. 청년배당, 무상교복, 무상산후조리원 등도 액수나 규모가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친시장주의 정책들과 대비됐다. 이재명은 박근혜의 노동개악도 비판했는데, 이런 요인들은 조직노동자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줬다.

박근혜 퇴진 운동으로 이재명은 한층 도약했다. 그는 박근혜 퇴진 촛불 첫 집회에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참가해 선명하게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다. 당시에 서울이나 경기 같은 광역단체장이 아닌 기초단체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성 정치인이었으므로 아주 파격적인 행보였다. 촛불 운동의 성장과 함께 일약 대선 후보로 떠올랐고, 박근혜 퇴진 요구 등에 굼떴던 박원순 서울시장 등의 인기를 순식간에 추월해 버렸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는 문재인의 온건함을 비판하면서 급진적 면모를 부각시키려 했다. 스스로 “성공한 샌더스”가 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퇴진 운동이 탄핵안 통과라는 의회 절차로 옮겨가면서 민주당이 정치적 주도권을 쥐게 됐고, 민주당 주류 문재인이 당선하게 된다.

그러나 이재명 바람으로 표현됐던 노동자·서민층의 진보적 개혁 염원의 일부가 대선 본선에서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득표로 일부 표현됐다. 1년 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이재명은 대선 때 문재인이 경기도에서 얻은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득표했다. 노동자·서민층에서 이재명은 정의당과도 득표 기반이 일부 겹치는 것이다.

현재 이재명 대선 캠프에는 그의 기본소득론을 뒷받침해 온 이한주 경기연구원장과 강남훈 교수가 포함돼 있다. 정책 참모격 인사 중에는 한총련 의장 출신 김재용 경기도 정책공약수석과 강위원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장도 있다.

노동계 기반도 있다. 지난 6월 강승규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해 그간 사회적 대화 등을 강조해 온 전현직 민주노총 간부(‘국민파’) 100여 명이 ‘국민과 함께하는 백만노동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는데, 이재명의 노동계 대선 지지 조직으로 보인다. 이재명은 이 단체 결성식에 축사를 보냈다. ‘국민파’가 아닌 다른 계열 노동조합 활동가들도 비슷한 성격의 단체들을 결성했다고 알려졌다.

“약속 준수”

지난해 3월 코로나 위기를 이유로 경총 등 사용자들이 법인세 인하를 요구하자 이재명은 이를 비판하면서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주장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 위기 재악화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다시 하락할 때, 차기 대선 후보로서 이재명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상승했다. 9월 여당이 재난지원금 지급을 놓고 갈팡질팡하던 때 이재명은 경기도에 보편적 ‘재난기본소득’ 1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는 정부·여당의 선별지원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배제에 의한 소외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 ... 백성은 가난보다도 불공정에 분노[한다.]

이재명은 이번 대선에서 복지와 개혁을 여전히 강조한다. 기본소득과 기본주택 등 자신이 주장하거나 추진해 온 정책들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재명 대선 캠프의 싱크탱크 격인 ‘성장과 공정 포럼’의 공동대표 김병욱은 “보편적 복지 실현”이 공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능력주의가 곧 공정’이라는 이준석 등 보수주의자들과 대비된다.

그러나 이재명은 최근 당내 경선 토론회에서 자신의 제1공약은 (경제) 성장이라고 주장했다. 출마선언문에서도 ‘성장’을 11번이나 언급했다. 2017년에는 4번 언급했는데 말이다. 임금 인상, 일자리 확대, 장시간 노동 금지를 명확히 언급하고, 삼성을 포함한 재벌과 사드 배치 등을 비판하는 데 강조점을 뒀던 4년 전 출마 선언과는 조금 달라진 것이다.

이는 그가 경기도지사직을 거치면서, 그리고 차기 대통령직에 가까워지면서 지배계급 내 평판과 기반도 신경 써야 하는 처지가 됐음을 보여 준다. (급진 개혁으로 혼란스럽게 하기보다는) 기존 체제를 안정적으로 잘 관리할 수 있고, 또 그럴 것임을 설득해야 하는 압력 말이다. 사회 상층부와의 타협도 필요해진 것이다.

최근 이재명은 기업을 위한 규제완화를 부쩍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이재명은 자신의 핵심 공약인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 성장하게 할 효과적인 경제 정책”이라고 강조한다. 기본소득 개념이 반영된 보편적 재난기본소득 지원도 경제 정책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은 문재인이 포기한 공공기관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경기도에선 해내겠다고 해 노동자들의 기대를 받았으나, 정작 경기도 콜센터 문제 등에서는 실망을 줬다. 이주민 다수를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한 것도 문제다.

지난 4년 동안 이재명은 민주당 내에서 줄타기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 왔다. 친서민적 개혁 정책을 주장하며 중앙 정부와 날을 세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당 주류에 타협하거나 언행 수위를 낮추는 식으로 말이다.

조국 전 장관 부패 의혹에 침묵한 일도 그가 내건 “공정”, “억강부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재명도 자본가 계급의 정당인 민주당의 정치인으로서 지배계급의 이익을 근본적으로 거스르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진보 포퓰리즘(민중주의)

종합하면, 이재명은 지배계급 정당인 민주당 정치인으로서 친자본주의적 기반도 반영하지만, 개혁주의적 지식인들과 엔지오와 노동조합 지도부층도 상당히 중요한 기반으로 삼고 대표하려 한다.

다계급 결속 전략의 전망 속에서 진보 개혁과 지배계급의 필요를 조화시키려는 진보적 포퓰리즘 정치인인 것이다. 이는 그의 대선 도전에서 강점일 수 있지만, 그의 개혁이 모순에 부딪힐 것임도 보여 준다.

최근에도 이재명은 친노동 개혁을 말하면서도 한국 자본주의를 관리할 안정적 리더로서의 면모를 입증하는 데에 꽤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동자·서민층에서 이재명에게 기대와 지지를 보내는 것은 개혁 염원의 반영이다. 이는 거꾸로 이재명이 진보 염원층을 문재인 정부 시즌2에 대한 기대로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주의자는 노동계급 대중과 차별받는 많은 사람들의 이런 기대와 염원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염원이 객관적 조건들이 부과하는 제약에 부딪힐 것이므로 대중 스스로 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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