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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하태경의 여가부 폐지 공약:
성별 이간질을 중단하라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유승민과 하태경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 대표 이준석이 이를 거들면서 여가부 폐지 논란이 뜨겁다. 이들의 여가부 폐지 주장에 여성단체들과 정의당, 진보당 등 여러 단체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여가부 폐지가 국민의힘 당론은 아니다. 그들 안에서도 반대가 여럿 나왔다. 하지만 유승민, 하태경, 이준석은 여가부 폐지를 거듭 주장하며 대선 쟁점으로 띄우려 한다.

유승민은 “정부의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가 있”으니 여가부를 따로 둘 필요가 없다며, 여가부 대신 대통령 직속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여가부 폐지가 곧 성평등 반대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정부 부처가 아닌 위원회는 예산과 인력을 보장받기 어려워 독자적인 정책 집행이 힘들다. 가뜩이나 부족한 성평등 정책이 더 후퇴할 게 뻔하다.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가 여성 정책을 맡다가 법률의 발의권과 준사법권을 갖춘 여성부가 만들어진 것이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이었다. 그 뒤 명칭과 권한·예산 등에서 변화가 있었지만, 여가부는 여성 정책의 주무부처가 됐다. 그러니 유승민의 말은 김대중 정부의 초기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셈이다.

7월 9일 오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규탄 기자회견 ⓒ출처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여가부의 활동에는 한계가 컸지만, 그 부서가 없는 것보다는 열악한 처지의 여성을 돕는 데 이점이 있다. 국가가 여성 차별 현실을 인정한(단편적이고 부분적이나마)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성부가 생길 때 부서의 목적으로 “남녀 차별의 금지 등”이 제시됐다.

그동안 여가부는 한부모 가족의 양육(여가부 예산의 65퍼센트), 위기·학교 밖 청소년,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경력 단절 여성 등을 지원해 왔다.

2018년 4월부터는 산하 기관을 통해 경찰 등과 협조해 불법촬영물 삭제 서비스를 지원해 왔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피해 건수 30만 5996건을 지원했다. 2007년에 시작된 ‘아이돌보미’ 사업의 경우, 2011년부터 2020년까지 누적 이용가구가 56만 6033가구에 이른다.

지자체의 성평등 관련 정책도 여가부가 관리하고 지원한다. 노동부와 보건복지부 등 다른 부처에서는 ‘성평등’이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가부의 진정한 문제는 특별히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라, 권한과 예산이 매우 적어 성평등 정책 추진이 미흡하다는 데 있다.

2021년 여가부의 예산은 1조 2325억 원으로 정부 전체 예산의 0.2퍼센트 수준이다. 서울 강남구 한 해 예산(1조 1278억 원)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이조차 박근혜 정부 때보다 늘어난 예산이다. 인원도 267명으로 미니 부서다. 성차별 해소와 여성 복지를 위한 지원은 양과 질 모두에서 미흡했고, 이 일에 고용된 여성 노동자들의 조건도 열악했다.

그런데도 우파 정치인들은 여가부가 하는 미약한 성평등 정책조차 못마땅해 그들 일부는 걸핏하면 여가부 폐지를 주장했다. 유승민은 2017년 대선 때도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2008년 이명박이 당선됐을 때는 그가 여가부를 실제로 폐지하려고 했다. 이명박은 인수위 시절 여가부 폐지를 시도했다가 여성계 등의 반발에 부딪히자, 명칭을 여성부로 바꾸고 예산과 인력을 대폭 축소하고 가족 업무를 보건복지부로 이관했다.

그러나 저출산 현상 심화, 가족 해체 등 가족 문제에 집중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높아지자 이명박은 가족과 청소년 관련 업무를 이관해 여성부를 다시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했다.

여가부 폐지론자들은 오늘날 여성이 더는 차별받지 않기에 여가부가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여성 차별이 갖가지 형태로 온존한다는 것은 명백한 현실이다. 여전한 성별 임금격차 등 노동시장에서의 열악한 지위, 여성에게 편중된 가사와 돌봄 부담, 대중매체에 만연한 성 상품화와 여성 비하 등등.

한국의 성별 격차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매우 크다.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세계경제포럼 조사로 153개국 중 108위이고, 2019년 성별임금격차는 32.5퍼센트로 OECD 가입 이래 계속 1위다.

더욱이 코로나 19로 여성들의 고통은 더 커졌다. 노동계급 등 서민층의 여성은 가정 내 돌봄 부담 증가와 실업과 일자리 불안정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관련 기사: 〈노동자 연대〉 358호, ‘코로나 위기로 악화된 여성의 삶’).

여가부 폐지 같은 퇴행이 아니라, 더 많은 여성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오히려 성평등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 여가부가 집행할 복지 예산 증대뿐 아니라 낙태권 보장, 공공돌봄서비스, 양질의 일자리 등이 대폭 확충돼야 한다.

이간질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우파 정치인들은 여성 차별이 사회 구조 문제라는 점을 무시하며 젠더 갈등을 크게 과장한다. 실업과 저질 일자리, 빈곤, 주택난 등으로 고통받고 좌절하는 청년층의 불만을 여가부와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면서 대중을 성별로 이간질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젠더이분법적 과도함과 정치적 약점을 의식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관련 기사: 〈노동자 연대〉 373호, ‘이준석의 안티 페미니즘 백래시’).

유승민이 여가부 예산을 의무복무를 마친 청년을 위한 지원책(민간주택 청약 시 가산점 5점을 부여하는 등의 ‘한국형 G.I.Bill’)에 쓰겠다는 데서 이 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청년 대중의 고통에 주된 책임이 있고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혜택과 득을 보는 자들이 이런 이간질을 통해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를 보호하려 한다.

우파가 부상하면서 성평등 정책에 대한 공격이 앞으로 계속될 수 있다. 이런 반동적인 공세에 반대하려면 문재인 정부의 부족함에 대해 침묵해선 안 된다.

민주당 대선 주자 이낙연은 여가부 폐지 논란이 벌어지자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고, 여가부의 기능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며 성평등의 옹호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이낙연이 총리까지 지낸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 정책은 약간의 진전이 있었다 해도, 약속한 것이나 대중의 기대에는 훨씬 못 미쳤다. 여성 대중의 염원이던 낙태죄는 폐지하지 않고 유지하려고 했고, 낙태죄의 법적 효력 정지 뒤에도 여전히 낙태를 법적 권리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 퇴진 이후 오랫동안 꾀죄죄하던 우파가 최근에 성장한 것도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과 위선에 대한 대중의 환멸 때문이다.

따라서 우파의 공세에 맞서며 성평등을 진전시키려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개혁 배신을 규탄하고, 기층에서 대중 투쟁을 건설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의 권리와 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에 노동계급 대중의 동참을 이끌어 내고 여성과 남성이 단결해 함께 싸우도록 애써야 한다. 그리고 성평등을 위한 투쟁을 더 강력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급적 정치가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