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의 “돌아갈 권리”를 상징하는 열쇠 ⓒ출처 Montecruz Foto

동(東)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이 벌인 강제 퇴거 시도와 가자지구 폭격 등 최근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일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가 어떤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동시에 팔레스타인인들의 새로운 대중 항쟁은 희망을 보여 줬다. 지난 5월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일어난 대중 시위는 최근 10년 사이 가장 큰 규모였고, 팔레스타인인들을 갈라치기 하려는 이스라엘의 시도가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 줬다.

새로이 부활한 이 대중 저항은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과 다른 아랍 지역에서 일어나는 저항은 서로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 속에서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은 어떤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답하려면 이스라엘 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의 결합·발전을 봐야 한다.

정착민 식민 국가

첫째, 이스라엘은 정착민 식민 국가다. 즉, 기존에 살던 사람들을 몰아내고 특권적인 외부인들을 정착시키는 형태의 식민 점령으로 건설됐다. 1948년 나크바* 이래 이스라엘의 모든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서 빼앗은 땅에 살고 있다.

한때 이스라엘의 참모총장·국방장관을 지낸 모셰 다얀은 이렇게 말했다. “유대인 마을은 아랍인 마을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 ⋯ 아랍인 마을은 이제 거기에 없다. ⋯ 이 나라에는 아랍인들이 살지 않던 곳에 건설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

나크바는 결코 지나간 옛일이 아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고, 쫓겨난 팔레스타인인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올 권리”를 부정함으로써 계속 유지되고 있다.

유대인 정착민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이 시온주의 프로젝트에 매여 있다. 이스라엘 내 유대인들 사이에도 불평등과 계급 격차는 존재하지만 이들은 모두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한 강탈과 배제에서는 단결한다. 이스라엘 정치에서는 소위 좌파라는 세력도 시온주의에 충성한다. 이스라엘 정치가 갈수록 우경화하는 것도 이스라엘이 정착민 식민 국가로서 존속·발전하는 과정의 정치적 표현이다.

부자유 노동

둘째, 그러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모조리 쫓아낼 수 없었다. 1960년대부터는 일부 부문에서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을 고용하기 시작했고, 1967년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한 후에는 점령지의 팔레스타인인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끌어다 썼다.

돌아올 권리를 박탈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이주’ 노동력으로 취급됐다. 국제인권연맹(FIDH)의 한 보고서는 고용주가 이주노동자의 합법성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이주 노동’ 체제를 “현대판 노예제”에 비유한 바 있다. 점령지를 잠식해 들어오는 유대인 정착민들의 위협, 일터에 가기 위해 매일같이 드나들어야 하는 장벽과 검문소는 이 노동자들에게 일상이 됐다.

이스라엘 국경 내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도 거주 이전의 자유 등을 제약하는 인종차별적 법률과 강제 퇴거 위협 등에 시달려 왔다.

이런 측면은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과 닮은 점이 있다. 당시 남아공은 흑인 주민들의 부자유 노동을 착취한 또 다른 정착민 식민 사회였다. 다만, 남아공 경제에서는 흑인 노동계급 착취가 핵심이었던 것과 달리, 이스라엘 지배자들은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을 경제의 핵심 부문에서 배제했다. 1987년 제1차 인티파다 이후에는 팔레스타인 노동력 유입을 줄이고 이들을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로 일부 대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의 부자유 노동에 대한 이스라엘의 의존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지난 5월 18일 팔레스타인인들의 총파업으로 이스라엘의 건설 부문이 타격을 입은 데에서도 드러났다.

군사화된 경제

셋째,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정치·경제를 떠받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은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원조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제국주의의 힘을 빌려 강탈에 따른 반발을 짓밟고 경쟁국 사이에서 살아남으려 했다. 제국주의 지배자들도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동을 다스리는 데서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유용한 구실에 주목했다. 애초에 시온주의 프로젝트를 배양한 것은 영국 제국주의였지만, 이스라엘 건국 후에는 미국 제국주의가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주요 후원자가 됐다.

이스라엘은 1973년 이집트·시리아와의 전쟁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과 군비 지출 급증에 직면했다. 이때부터 미국의 원조는 급격하게 늘어났고 지금까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1990년대 초 미국이 중재한 “평화 프로세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점령지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 확대하고 허울뿐인 팔레스타인 국가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스라엘을 말리는 데에 열의가 없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군사력의 질적 우위”를 약속하고 막대한 자금·무기·기술을 계속 제공했다.

이러한 원조를 바탕으로 1990년대 이후 무기 개발과 첨단기술 산업이 이스라엘 경제의 핵심 부문으로 성장했다.

현재 이스라엘은 인구 대비 국방비 지출이 가장 큰 나라다.  노동력의 10퍼센트 가까이가 첨단기술 부문에 고용돼 있다. 이스라엘의 사이버 보안 산업은 전 세계 관련 투자의 약 13퍼센트를 끌어들이고 있다. 한편, 점령지에 건설된 정착촌에는 군사 부문뿐 아니라 그곳에 필요한 온갖 서비스업이 성장했다. 전반적으로 전쟁과 점령, 무기 생산을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중동에는 이와 비슷하게 군사화된 경제를 여러 국가에서 볼 수 있다. 그런 국가들은 미국의 후원 속에서 미국 패권 유지에 협조하고 자국 인민의 저항을 짓밟으며, 군부가 국가 기구와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이란 같은 미국의 적성국들도 그 거울상을 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지위가 대등하지는 않다. 이스라엘이 첨단 전투기인 F-35를 도입하고 사이버 보안 산업의 최전선을 달리는 반면, 이집트의 엘시시 독재 정권은 축산 공장과 주유소를 운영하고 부동산 투기에 몰두한다. 그러나 엘시시 역시 미국에게서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저항을 짓밟고 가자지구의 국경을 지키는 교도관 노릇을 한다.

이스라엘은 “안보”를 이유로 이런 부문에서 팔레스타인 노동력을 철저히 배제해 왔다. 덕분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이 경제의 핵심 부문을 위협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잠재력

팔레스타인인들은 어떻게 해방을 쟁취할 수 있을까? 앞서 살펴본 상황들이 상당한 어려움을 안겨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억누르려는 시도가 부분적으로만 성공했음을 보여 준다.

또,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은 팔레스타인 안에서만 형성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살던 곳에서 쫓겨나 다른 중동 나라들로 흩어진 팔레스타인인들은 그 나라에서 일어난 충돌과 격변을 그 나라 대중과 함께 경험해 왔다. 이들의 곤궁과 저항은 그 나라 계급 투쟁과 밀접하게 얽혀 왔고 그 투쟁의 자극제가 됐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아랍 지배자들의 무대응은 금세 광범한 공분으로 번질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연대하는 문제는 중동 지역의 제국주의 질서와 거기에 협조하는 아랍 지배자들에게 도전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었고 그래서 혁명적 함의가 있었다.

중동 국가의 지배계급들은 바로 그런 잠재력 때문에 자국 대중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 장벽을 세우고 이들을 억압해 왔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의 힘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객관적·주관적 장애물들이 산적해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압도적 무력을 갖춘 이스라엘의 거대한 억압 기구가 존재한다.

또,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처지는 나라별로 불균등하다. 모두가 노동계급인 것도 아니며 일부는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의 요람 속에서 ‘나라 없는 부르주아지’로 성장했다. 이런 조건 속에서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은 상당히 파편화돼 있다.

한편,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이끈 세력들은 중동 질서 내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받는 것을 우선시한 나머지, 자신들의 투쟁을 중동 전역에 걸친 더 광범한 투쟁과 연결하려 하지 않았다. 아래로부터의 저항에서 압력을 받기도 했지만, 그 저항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하기보다는 그 저항을 협상 카드로 쓰려 했다.

혁명적 투쟁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이 파편화된 처지를 극복하고 혁명적 잠재력을 실현하려면 다른 중동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이는 중요한 물음을 제기한다. 2010년 이래 중동 곳곳에서 혁명과 대중 항쟁들이 일어났음에도 이스라엘의 억압이 흔들리거나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이 크게 전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팔레스타인 문제는 이런 저항에도 영향을 줬다. 예컨대 2000년 제2차 인티파다는 10년 후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혁명을 이끈 한 세대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2011년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팔레스타인 연대를 외치고 이스라엘 대사관을 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내내 팔레스타인 문제는 그 자체로 혁명적 위기를 심화시키는 매개가 되지는 못했다.

이집트 혁명은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제약하는 장애물들이 무너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 혁명은 국가에 도전하는 데에 실패했다. 혁명으로 집권한 무슬림형제단은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정’이나, 미국이 이집트 군대에 지불하는 막대한 지원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새로 부흥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의 압력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집트 혁명에서 빠진 고리는 노동계급에 뿌리내린 혁명적 당이었다. 노동계급이 발휘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 더 광범위한 차별과 억압, 국가 권력에 맞서는 데 동원되도록 이끌 정치적 지도력 말이다.

더 광범한 해방의 정치를 추구하는 단단한 활동가들의 중핵이 필요하다. 그런 조직을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는 중동 전역의 해방을 위한 투쟁과 결합돼야 한다.


이 기사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웹사이트에 실린 앤 알렉산더의 글 ‘Revolutionary struggle — lessons from the Palestinian revolt’을 많이 참고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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