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의 이의신청 - 영화감독 켄 로치, 다른 미래를 꿈꾸다 박홍규 지음, 틈새의시간, 368쪽, 16000원

반갑게도 영화감독 켄 로치의 영화 세계에 대한 책 한 권이 나왔다.

《비주류의 이의신청》(박홍규 지음, 틈새의시간, 2021)은 켄 로치의 주요 작품들에 대한 저자의 논평들을 연대순으로 엮었다. 그리고 주요 작품들의 줄거리와 관련 사실들이나 시와 노래 등도 소개했다.
켄 로치는 지난 60년 가까이 60여 편의 영화와 TV 드라마를 만든 영국의 급진좌파 감독이다.
1960년대에 그가 만든 BBC TV 드라마 상당수는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노동자 파업 투쟁 드라마였다.
당시 다른 드라마들은 일반적으로 생방송이거나 아니면 비디오카메라로 스튜디오 안에서만 찍어서 마치 연극 같았다.
이와 달리 켄 로치는 실제 노동자들과 함께 스튜디오 밖에서 필름으로 드라마를 찍곤 했다.
켄 로치는 단지 파업 투쟁의 서사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았다. 기층 조합원들이 결성한 파업위원회와 노조 관료 사이의 대립과 충돌, 조합원들이 벌이는 신랄한 토론과 논쟁, 일부 관료들의 배신까지 모두 보여 줬다. 놀라운 드라마들이었다.
영국의 급진좌파 영화감독 켄 로치
주로 사회주의자 토니 가넷(제작), 트로츠키주의자 짐 앨런(작가)과 함께 만든 그의 TV 드라마들은 기업들의 거부 반응, 방송국의 검열과 방영 불가·보류 시도에 부딪혔고, 온갖 논란과 논쟁에 휩싸였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특히 토니 가넷과 함께 만든 드라마 〈캐시 컴 홈〉(1966)은 영국 사회복지 서비스의 실상을 폭로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영국인 4명 중 1명이 이 드라마를 “본방 사수”했다.
켄 로치와 그의 사회주의자 동료들이 어떤 일들을 벌였는지 그리고 이에 기겁한 BBC와 영국 정부가 어떤 꼼수들을 꾸몄는지 등은 다른 책 《켄 로치 영화와 텔레비전의 정치학》(존 힐, 컬처룩, 2014)에 더 잘 나와 있다.
〈소셜리스트 워커〉와의 인터뷰에서 토니 가넷과 켄 로치 스스로 인정했듯이, 그들의 영리함이나 용의주도함, 사회주의 정치 덕분만은 아니었다. 1960년대라는 시대의 힘, 즉 국제적 저항의 시대 자체가 BBC에 압박을 가한 것이다.

혁명가의 편에서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켄 로치는 거의 12년 동안 별일 없이 지내야 했다.
1990년대 들어 켄 로치는 해외 영화제들에 단골 초청되는 일종의 예술영화감독처럼 생존했다. 덕분에 좌파적인 영화들을 계속 찍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랜드 앤 프리덤〉(1995),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지미스 홀〉(2014)처럼 혁명적 시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주역인 영화들을 내놨다.
이 영화들은 명백하게 혁명가들의 편에서 역사를 재조명했다.
영화 속에서 파시즘과 제국주의에 맞서는 주역들은 단지 ‘민주주의자’나 ‘독립운동가’를 넘어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권력을 위해 헌신하는 혁명가들이었다.
2017년 즈음 켄 로치는 영국 노동당의 좌파 지도자 제러미 코빈을 지지해 다시 노동당 당원이 된 듯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코빈을 바라보고 노동당에 가입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올해 7월에는 켄 로치가 노동당에서 출당 당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우파적인 노동당 지도부가 코빈을 “반유대주의자”라고 마녀사냥 하고 있었을 때 그가 거기에 맞섰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방식으로 켄 로치는 시온주의(이스라엘 국가)에 반대해 왔고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을 지지해 왔다.
이제 그도 86세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이어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는 원래 켄 로치의 은퇴작이었다.
그러나 그 전에도 켄 로치는 이미 한 번 은퇴했고 번복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택배 노동자와 요양 보호사 노동자 가족의 이야기 〈미안해요, 리키〉(2019)로 돌아온 것이다. 현실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의 영화들에는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에 만들어 낸 고통과 울분의 바다가 있다.
그러나 봉준호의 영화들처럼 “가난[의] 사파리”는 아니다. 〈기생충〉은 “진열창 앞 안전한 거리에서 원주민을 잠시 둘러보는 사파리가 끝나고 나면”1 젠체한다.
켄 로치 영화에 등장하는 노동계급 투쟁과 승리와 패배의 기억들은 기꺼이 그리고 찬찬히 다시 꺼내 볼 만하다.
특히, 〈랜드 앤 프리덤〉, 〈칼라 송〉, 〈빵과 장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지미스 홀〉은 국제 노동계급 투쟁의 소중한 기억들과 결합돼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속에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 배경의 영화들에서 그토록 중요하게 나오는 혁명가 제임스 코널리는 누구인가? 부활절 봉기는 무엇인가?
저자 박홍규 씨는 훌륭한 저술가이고 지적으로 성실한 지식인이지만, 트로츠키에 대해서는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눈에 띈다.
또한 박홍규 씨는 〈랜드 앤 프리덤〉이 “아나키즘 영화의 대표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로츠키주의자(짐 앨런)가 쓰고, 트로츠키에 여전히 호의적인 트로츠키주의 조직 출신 인사(켄 로치)가 연출했는데 그럴까?
짐 앨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랜드 앤 프리덤을 통해]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와 다르며 사회주의를 그냥 땅에 묻어 버리고서는 완전히 끝났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2
또, 켄 로치는 이렇게 말했다. “스페인 내전에 관한 신화 중 하나는 파시즘에 대항해 좌파가 단결했다는[즉, 정치적 갈등과 분열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신화는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들도 파시즘에 저항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다.”3
〈랜드 앤 프리덤〉은 스페인 내전과 혁명의 열기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혁명의 목을 조른 스탈린주의에 대한 고발도 돋보인다.
트로츠키가 강조했듯이, 자연도 정치도 역사도 진공을 싫어한다. 만약 이런 기억들에 관한 질문에 우리가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나름대로 답할 것이다.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인정하는 영화

BBC 시절의 TV 드라마들을 제외하면 파업 영화로는 〈빵과 장미〉(2000)가 켄 로치의 유일한 극영화다. 이 영화는 미국 노동자들의 실제 투쟁을 모델로 했다.
세계적으로 파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들은 좀 있지만 극영화는 거의 없다.
그러나 무려 100년 이상 영화는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오락거리였다. 선진 자본주의 세계에서 노동계급이 급속히 늘어나던 시기에 노동자 거주지를 중심으로 극장들이 들어섰다. 정기적인 영화 관람은 곧 도시 노동계급의 생활 패턴이 됐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노동계급의 “영화 열풍”을 경계했다. 처음에 그들이 노동자들의 “스포츠 열풍”을 경계하고 단속하기까지 했던 것과 비슷했다.
실제로 영화 시대의 초기, 즉 무성 영화의 시대에는 파업 영화 제작이 꽤 성행했다.
그러나 영화는 곧 거대 산업으로 변모했다. 제국주의와 세계대전의 시대는 이 과정을 촉진했고 영화의 제작, 배급, 상영에 관여하는 기업의 규모와 비용은 갈수록 증대했다. 사장들은 더는 ‘파업을 고무하는 상품’이라는 파업 영화의 모순을 허용하지 않았다.
요컨대 켄 로치의 영화들은 거의 희귀한 사례들이다.
그는 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소수가 꼭대기에 앉아 다수를 착취하고 억압하며 심지어 지구를 파괴하는 체제를 뒤엎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도움이 될 영화들(과 드라마들)을 만들어 냈다.
“세상이 어떤지 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도 “정치는 필수적이다.”(켄 로치)
그를 조명하고 그가 꺼내든 “노동계급의 기억”을 충분히 복원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미안해요, 리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지미스 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2001년 9월 11일〉, 〈레이닝 스톤〉은 온라인에서 유료로 볼 수 있다.

불후의 명작인 〈케스〉(1969), 그리고 〈가족생활〉(1971), 〈숨겨진 계략〉(1990), 〈하층민들〉(1991), 〈레이드버드 레이드버드〉(1994), 〈토지와 자유(랜드 앤 프리덤)〉(1995), 〈명멸하는 불빛〉(1996), 〈칼라송〉(1996), 〈내 이름은 조〉(1998), 〈빵과 장미〉(2000), 〈네비게이터〉(2001), 〈달콤한 열여섯〉(2002), 〈다정한 입맞춤〉(2004), 〈티켓〉(2005), 〈자유로운 세계〉(2007), 〈룩킹 포 에릭〉(2009), 〈루트 아이리쉬〉(2010), 〈앤젤스 셰어〉(2012), 〈1945년의 시대정신〉(2013)은 DVD로 보거나 한국영상자료원이나 국립중앙도서관에 예약 방문해 현장에서 무료 관람할 수 있다.


1. 《가난 사파리》(대런 맥가비, 돌베개, 2020). 스코틀랜드의 빈민 지역에서 자란 래퍼가 가난과 학대, 중독과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에 대해 쓴 책. 2018년 영국 오웰상 수상작.
2. 《켄 로치 영화와 텔레비전의 정치학》, 존 힐, 컬처룩
3. 《켄 로치 영화와 텔레비전의 정치학》 존 힐, 컬처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