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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의 집권과 미래

이 글은 〈소셜리스트 워커〉 기자 찰리 킴버가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선거 직후 쓴 글을 번역한 것으로, 〈노동자 연대〉 1994년 6월호에 실렸던 것을 약간 교정한 것이다.

지난 달 말(1994년 4월 말)에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선거 결과는 전 세계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패배였다. 아프리카국민회의(ANC)가 남아공 최초의 다인종 선거에서 압승해 집권한 것은 노동자들이 아주 강력한 인종차별주의 국가도 패퇴시킬 수 있음을 보여 줬다.

ANC는 전국적으로는 63퍼센트 정도 득표했고, 9개 주 가운데 7개 주에서는 압도 다수표를 얻었다. 선거 결과는 오랜 인종분리 체제에 대한 민중의 증오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염원을 보여 줬다.

선거는 또한 극우 부텔레지가 이끄는 잉카타자유당이 나탈 지역 중심부를 제외하면 오직 극소수만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 줬다. 5년 전 서방 정부들은 잉카타자유당이 ANC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잉카타자유당은 전국적으로 단지 몇 퍼센트의 득표밖에 하지 못했다.

ANC는 대중 투쟁이 있었던 곳에서는 압승했다. 투쟁이 뒤덮었던 이전의 홈랜드들1 — 보푸타츠와나, 벤다, 시스케이 같은 지역 — 에서 특히 그랬다. 보푸타츠와나의 수도에서 일하는 노조원 말레카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투표할 권리를 위해 거리에서 싸워 왔다면, 인종분리 체제 지배자들에게 표를 던지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ANC가 방어 위주의 ‘온건한’ 캠페인을 이끌고 파업과 시위를 제한했던 곳에서는 득표율이 다른 곳만 못했다.

국민당은 케이프타운 서부 지역에 있는 본거지에서 체면을 유지했다. 평론가들은 이것이 그 지역의 ‘유색인’(혼혈 인종)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웃한 케이프타운 북부 지역은 “유색인들”의 비율이 서부 지역과 거의 같은데도 ANC가 쉽게 이겼다.

ANC가 서케이프 지역에서 선전하지 못한 것은 1984∼1988년 봉기 기간에 그 지역에서 전투적인 시위를 건설하는 데 실패해, “유색인” 노동자들이 ANC 정부 하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음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잉카타자유당은 콰줄루나탈 지역에서 예상보다 선전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선거 부정 때문이었다. 선거를 주관한 공정선거위원회의 한 내부 보고서는 이렇게 밝혔다. “관찰에 따르면 엠파네니에서는 32개 이상의 비공인 투표소가 설치되어 투표가 진행되고 있었고, 잉카타자유당 실무자들이 선거용 자재들을 치우고 있었으며, 투표자들과 기록원들은 심하게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만약 ANC가 부텔레지에게 그의 힘을 강화시켜 줄 뿐인 타협을 제안하지 않고 부텔레지에 반대하는 대중행동과 시위로 나아갔다면 ANC는 더욱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ANC의 승리는 인종분리 체제에 맞선 승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투쟁의 종결이 아니다. ANC는 인종분리가 아닌 자본주의 경제의 토대 위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운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그들은 흑인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ANC의 경제재건계획

민중은 ANC에 표를 던졌다. ANC가 일자리와 주택과 교육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ANC의 계획들은 그런 염원에 비하면 대단치 않다.

ANC의 경제재건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5년 동안 100만 호의 주택이 건설될 예정이다. 그러나 1년에 20만 호 주택 공급은 단지 새로 생기는 가구들의 수요를 충족하는 데 그치는 것임을 그 계획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최초의 흑인 정부 임기말에도 ANC 공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 사정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백인 인구 전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무주택자 수용소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흑인 인구의 대다수는 여전히 아주 형편없는 시설의 빈민촌에서 거주하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ANC의 계획은 전기‧전화 시설 확대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러한 시설들은 “자가 부담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흑인 가정들은 전기‧전화 담보금을 낼 여유가 없다.

ANC의 계획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사기업들과의 협력에 기초하고 있다. “기업체들이 사회‧경제 변화가 제공하는 새로운 기회들로부터 아주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믿는 경우에만 협력할 것이다.

이것은 ANC가 경제재건계획을 야심이라곤 없는 그렇고 그런 것으로 제한하거나 아니면 남아공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의 반대를 물리칠 준비를 해야 함을 뜻한다. ANC 지도자들이 첫 번째 길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많은 ANC 지지자들은 작은 개선 이상을 원하고 있다.

인종분리정책 지지자들을 그냥 두는 새 정부

ANC가 선거 이전에 동의한 타협안은 이제 ANC의 능력에 제약을 가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

국민당은 이전 권력자들이 선거 후에도 되도록 많은 권력을 유지하는 조치들을 원했다. 그래서 현재 ANC가 비록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지만 ANC의 단독 통치는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5퍼센트 이상 득표한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국민연합 정부”가 출범할 것이다. 정부에 참여하는 모든 정당들은 최고 의사결정 기구들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넬슨 만델라가 임명할 각료 중에는 46년 동안 인종분리정책을 펴 온 국민당의 지도적 인사들도 포함될 것이다. 수천 명의 ANC 회원들을 살해한 국가를 통치해 온 데클레르크는 ANC 지도자들과 나란히 새 정부에 참여했다. 보타(P K Botha)는 인종분리정책 기간 동안 외교 책임을 맡아 인접국들에 대한 살인적인 공격을 일삼던 자인데, ANC 회원들과 함께 외교 정책을 논의하게 됐다.

한 노조원은 “그것은 마치 히틀러가 제2차세계대전 후 독일 재건에 참여하도록 초대받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국민연합 정부는 세기말까지 지속되게 되어 있다. 그다음에는 새 헌법이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새 헌법은 의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ANC는 필요한 의석(3분의 2 이상)을 획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선거 전에 넬슨 만델라는 ANC가 실제로 66퍼센트 이상 득표한다 해도 새 헌법 동의안 가결 시에 국민당과 잉카타자유당을 참여시키겠다고 서약했다.

많은 활동가들은 ANC 지도자들이 이러한 헌법상의 제약을 전적으로 불리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운수일반노조(TGWU)의 한 조합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ANC는 적들과 연립 정부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져다줄 수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만약 ANC가 완전한 권력을 갖는다면, ANC는 자신들과 대중의 요구 사이에서 아무런 방패막이도 갖지 못할 것이다.”

확실히 ANC는 필수불가결한 많은 기본적인 민주적 변화들을 밀어붙이지 않고 있다. 군대와 경찰은 지금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사람들에 의해 운영될 것이다. 새 정부는 인종분리정책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의 살해를 명령하고 잉카타자유당과 공모해 흑인 빈민촌에서 전쟁을 도발한 장성들과 장교들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그러나 ANC가 보안군과 그 법을 일소하지 못하는 것은 헌법 조문 때문이 아니다. ANC는 인종분리정책를 실시했던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부자들과 그 대변자들을 공격하려는 그 어떠한 진지한 시도에도 반대할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쟁은 계속 되고 있다

남아공 노동자들은 실질적인 변화를 얻으려면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ANC의 승리는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증대시킬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경제 재건”을 위해 “평온하고 생산적인 노동” 시기를 갖자고 주장해 온 ANC 지지 노조 지도자들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심지어 개표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임금 체불에 항의해 독립전기위원회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간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노탐 백금광산 소속 골드 필드 광업소의 광원 1만 명도 투표 기간 중에 인종차별 반대, 노조 활동의 자유 보장, 생활수준 개선을 요구하며 2주간 파업을 벌였다. 노동자들은 요구를 담은 리플릿에 이렇게 썼다. “남아공은 민주적 변혁의 전야에 있다. 남아공 정치 기관들의 민주화는 모든 광원들의 노동조건 변화로 나타나야 한다.”

같은 기간에 루스텐버그 부근에 있는 북(北)바포켕 광산 노동자 8000명도 야근 수당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기업주들을 대변하는 신문인 〈비즈니스 데이〉는 남아공 기업들에게 향후 6개월이 힘든 기간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선거에 이르는 동안 회사들이 비공인 파업의 홍수로 가벼운 몸살을 앓았다.”

그 신문은 “많은 기업들이 임금 교섭을 선거 이후로 미루어 왔으므로 향후 6개월에 걸쳐 파업이 분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동자들이 아주 사소한 일을 가지고 파업에 들어갈 것 같다”고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사장들을 공격해 정부로부터 실질적인 개선을 얻어 내려면 바로 이런 투쟁을 해야 한다. 한 금속 노조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투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가 일자리와 집을 원한다면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까지 우리가 얻은 것은 모두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다.”


  1. 홈랜드: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정권이 흑인들을 격리시키려고 만든 괴뢰적 자치 국가다. ‘반투스탄’이라고도 불리며 모두 10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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