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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 미국이 만든 공포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한 탈레반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장악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에서 도망쳐 나오고 있다.

약 20년 전 미국의 침공으로 정권에서 쫓겨난 무장한 이슬람주의 운동이 머지않아 아프가니스탄을 탈환할 듯하다.[이 기사는 8월 8일 발행됐다. 8월 15일 탈레반은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종전을 선언했다.]

199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잔인하고 숨막히고 반동적인 정권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아프가니스탄을 “중세 시대”에서 벗어나게 할 해방 전쟁으로 포장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사회의 본질적 반동성이나 후진성을 보여 주는 세력이 아니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운동과 탈레반 특색의 이슬람주의는 꽤 최근에야 나타난 것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무장 세력들이 냉전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았다면, 1995년 탈레반이 그토록 빠르게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탈레반이 집권하기 전에는 경쟁하는 이슬람주의 조직인 무자헤딘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서로 다투고 있었다.

무자헤딘은 미국에게서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아,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 점령군에 맞서 싸웠다.

소련군에 맞선 저항은 대부분 현지 게릴라 조직과 전사들에 의해 수행됐고, 이들은 어떤 단일한 조직이 아니라 마을과 정착촌을 중심으로 조직돼 있었다.

미국은 각종 무자헤딘들을 지원하는 게 최대 라이벌인 소련에 패배를 안겨 줄 기회가 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소련이 쫓겨나자 경쟁하는 무자헤딘 단체들은 각축을 벌였다. 각 단체 지도자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와 상이한 아프가니스탄 미래상을 갖고 있었다.

탈레반은 이들 모두에 대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탈레반의 단원들과 전투병들은 이웃 나라 파키스탄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인 난민 캠프의 이슬람 신학교에 다니면서 자랐다. 이 학교는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았다. 이 지원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자기네 영향력 하에 두기 위한 것이었다.

이 이슬람 신학교는 아프가니스탄인 대부분이 믿던 이슬람교보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즘과 유사한 교리를 가르쳤다.

승인

파키스탄과 미국의 승인 하에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 진입해서 신속하게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장악했다.

평범한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탈레반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질서와 안전을 제공해 줄 세력으로 보였다.

미국은 탈레반이 안정적인 정부를 꾸려 협상 상대가 돼 주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예컨대, 미국 석유 기업이 아프가니스탄 북서부를 지나가는 송유관을 놓을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탈레반은 그저 미국의 꼭두각시가 아니었다. 탈레반은 미국의 지배와 충돌하는 나름의 이해관계와 사상이 있었다. 또한 탈레반은 미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알카에다 같은 조직을 보호해 줬다.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미국 군 장성들과 전략가들은 전 세계에 미국의 패권을 재천명하고 싶어 했다.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가 미국을 공격했을 때, 미국은 전쟁을 벌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였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미국을 공격하는 자는 누구든 작살날 것임을 보여 주려 했다. 이것은 2년 뒤 이라크 침공으로 가는 길을 닦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해 탈레반을 굴복시키고 친미 정권을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탈레반을 파괴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탈레반은 파키스탄에 지도부를 둔, 분산된 반군 게릴라 네트워크가 됐다.

생존

침공이 초래한 빈곤과 고통, 점령군의 만행에 대한 증오로 많은 아프가니스탄 청년들이 탈레반에 합류했다.

탈레반은 반격할 기회를 제공하는 대안 세력 또는 지하 정부로 여겨졌다. 그저 생계와 생존을 위해 합류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 탈레반은 거의 6만 명의 전업 전사들과 파트타임 조력자들을 육성했다.

이런 회복력으로 탈레반은 어떤 형태로든 아프가니스탄 정부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국 제국주의의 굴욕적인 패배일 뿐 아니라, 미국 제국주의의 직접적 결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