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기 전에 “언론중재법 개정 반대한다 ④: 기성 언론은 국가의 견제자가 아니다”를 읽으시오.

징벌적 손해배상제처럼 국가의 검열 권한을 강화하는 방식은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고 오히려 위험하다.

국가는 서로 갈등하는 이해관계와 편견들, 강자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 존재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계급으로 나뉘어 계급 차별이 구조화된 사회에서, 그러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지배 계급의 지배를 위한 억압 기구이다.

법을 해석하고 최종 적용하는 법원도 막강한 국가 권력의 일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관들도 결코 법원 바깥 사회, 특히 정치·경제 권력 관계와 분리된 존재들이 아니다.

그래서 법원의 처벌은 흔히 부자나 고위 정치인의 대형 범죄에는 가볍고, 가난한 사람의 생계형 범죄에는 무겁다.

뇌물이나 서민 상대 사기로 축적해 유죄로 구속됐다가 근래에 풀려난 재벌들(롯데 신동빈, 삼성 이재용, 부영 이중근)의 공통점은 모두 2심에서 2년 6개월형을 받았다는 것이다. 죄질과 상관없이 똑같은 형량을 보면, 재벌을 위한 양형 기준표가 따로 있는 듯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처럼 판사들이 권력과 유착하거나 부패에 연루되는 일도 많다. 최종 유무죄 판단 권한이 법원에 있으니, 지금까지 드러난 법원 부패도 아마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법원은 언론 못지않게 대중의 신뢰를 못 받는 기관이다. 예컨대 2020년 언론 신뢰도는 21퍼센트였는데 법원에 대한 신뢰도도 겨우 41퍼센트였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그것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또는 상황도 존재한다. 규제해 봐야 소용 없다고 해서 언론의 무책임에 당하기만 할 수도 없다.

어떤 경우는 이기기도 한다. 법과 법원이 ‘만인 앞에 공명정대’를 표방하는 만큼 어느 정도는 법 적용을 무사공평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력도 받는다. 특히 운동이나 지지 여론이 강력하면 반영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 때문에 권력자들보다는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대체로 불리하게 작용하지만, 불가피함이나 특수한 경우의 예외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국가를 강화하고 그것을 지렛대 삼아 언론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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