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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개정안:
지배계급을 위한 언론 통제 강화 노력

8월 30일 언론중재법 강행처리 중단을 요구하는 언론단체 기자회견 ⓒ이미진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가 논란 속에 연기됐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9월 27일까지 협의체를 꾸려 논의하기로 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고의,” “악의,”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 등의 모호한 기준으로,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최대 5배), 열람차단청구권, 정정보도 청구 즉시 표시 의무화 등의 처벌과 규제를 대폭 강화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 법원이 개입해 배상액을 최대 5배까지 늘릴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사실상 국가가 명령하는 벌금의 성격(형사)이 있다.

정부·여당은 언론에 대한 대중의 깊은 불신을 이용하고 있다.

사실 그런 불신은 지극히 이해할 만하다. 특종·속보·선정성 경쟁 속에서 ‘아님 말고’ 식 보도가 넘쳐나고, 그로 인해 보통 사람들이 애먼 피해를 본다. 예컨대, 2008년 SBS는 한 휴게소 주인이 지적장애 여성을 감금한 채 일을 시키고 학대했다는 보도를 했다. 이 내용은 사실무근으로 드러나 명예훼손 손해배상 3억 원 판결이 났다.(일명 ‘찐빵소녀 조작 사건’)

게다가 명예훼손 소송 등 법적 구제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는 달리 명예를 회복하거나 보상받을 방법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무고한 개인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돼야 한다.

그러나 언론들의 ‘아님 말고’ 식 보도가 계속되는 것은 법적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한국은 민사 손해배상뿐 아니라 “명예훼손을 활발하게 형사처벌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특정 기간에는 전 세계 명예훼손 징역 건수의 3분의 1에 달할 정도로 많은 수의 징역형이 선고되기도 했다.”(박경신, 《표현·통신의 자유》, 논형, 2013)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터넷임시조치제도(정보통신망법)를 두어 누구나 자신이 싫어하는 글들을 인터넷에서 내릴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네이버와 다음은 2014년 한 해에만 이 제도에 따라 45만 건의 게시물을 삭제했다.

한국은 허위사실뿐 아니라 사실 적시 명예훼손도 처벌할 수 있고, 사실이 아닌 의견을 표명해도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 행정기관(방송통신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그리고 특히 선거관리위원회 등)이 법원을 거치지 않고도 게시물 삭제, 사이트 이용 제한 등 제재를 가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권력층 구제

언론 검열 강화는 평범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대안이 못 되고, 오히려 언론에 대한 징벌 절차를 더 많이, 쉽게 이용하는 것은 지배계급 사람들, 특히 정치적 권력자들이다. 법정 다툼(소송)에 투자할 자원(돈과 인력)이 더 많기 때문이다.

가령 2019년 언론을 상대로 제기된 손배소 중 고위 공직자, 공적 인물, 국가기관 등이 제기한 것은 149건으로 일반인(84건)보다 더 많았다(언론중재위원회).

1989년부터 2006년까지의 통계로도 “국내의 언론사 상대 명예훼손 소송의 주요한 주체는 일반인보다 공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고 “원고의 신분도 대통령, 전직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국회의원, 검사, 군 장성, 도지사, 전직 국가정보원장, 전직 장관, 경찰관 등 거의 모든 공직자들을 망라하고 있[다.](윤성옥, 2007)

2019년 언론 대상 명예훼손 손해배상 승소 건의 절반은 인용액이 500만 원 이하였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 공적 인물, 국가기관, 기업 그리고 언론사만 따지면 평균 인용액은 1800만 원 이상으로 훌쩍 오른다. 특히, 기업이 원고일 경우는 4400만 원 이상까지 치솟았다.

이렇게 일반인과 권력자 사이에 손해배상 인용액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법원이 원고의 사회적 지위와 명망, 수입 수준이 높을수록 명예훼손 피해액도 높게 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징벌적 손해배상(배액배상)제를 도입하면 평범한 사람들보다 권력자들의 손해배상액 인용액은 훨씬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

결국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다면 평범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효과보다는 정부, 기업, 기타 권력자에 대한 비판 보도가 위축되는 효과가 훨씬 커질 것이다.

봉쇄 소송과 위축 효과

설령 정당한 의혹 제기이고 법정에서 최종적으로 무죄로 드러날지라도, 권력자로부터 지난한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

이미 이런 사정을 악용해, 정부나 기업이 자신들에 대한 탐사·폭로 보도에 명예훼손 소송 등을 걸어 시간을 벌고 추가 취재를 위축시키는 사례들이 있다.

예컨대 2019년 언론 대상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에서 고위 공직자의 소송 제기 건수는 63건이었는데, 이 중 원고 승소는 16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언론이 합당한 보도를 하고도 소송을 당하고 재판을 치렀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한 번 소송을 제기하면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사법시스템을 악용해 피고에게 경제적 부담을 안겨서 압박하는 일이 상습적으로 일어난다. 이를 “전략적 봉쇄 소송”(SLAPP)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올해 한국에서도 있었다. 올해 초 쿠팡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과로에 의한 산재와 코로나19 집단 감염 문제를 보도한 언론들에 손해배상 줄소송을 걸어 입막음을 시도한 바 있다.

이번 개정안이 이러한 전략적 봉쇄 소송 가능성을 활짝 열어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소한 부분에서 사실관계 오류가 있어도 전체적으로는 진실인 보도가 있을 수 있다. 의혹 보도 단계에서는 추정과 추론도 허용돼야 한다.

예컨대 쿠팡은 맹추위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핫팩을 고작 1개씩 나눠 줬다고 비판한 보도에 대해 ‘1개가 아니라 2개였다’고 하면서 억대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과연 핫팩 1개 차이를 두고, 쿠팡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폭로한 보도가 진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식이면 하루 성과 할당량을 못 채워 퇴근이 늦어진 노동자들에 대한 보도에 대해, 일찍 할당량을 채우고 정시 퇴근한 노동자가 한 명만 있어도(반증) 허위 보도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반론은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사용자들의 행태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은 어떤 내용을 말하거나 쓰려다가도 민감한 내용이다 싶으면 내심 불안해서 표현하기를 지레 그만둬 버릴 수 있다. 자기 검열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 엘리트의 일부인 언론사 사주와 데스크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평기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수 있다.

‘언론개혁’ 위선에 동조 말자

정부·여당은 그간 진짜로 필요한 개혁 요구들은 외면하고, 드러난 부패 의혹을 틀어막고 호도하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이제는 언론 통제를 강화하는 시도에 “언론개혁’이라는 이름표를 붙인다. 언론중재법에 대한 비판 보도들을 싸잡아 가짜뉴스, 왜곡보도라고 치부하면서 말이다.

민주당 정부는 검찰과 언론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이용해서 비판과 의혹 제기를 억누르려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민주당 측의 정쟁인 것만이 아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노리는 핵심적 효과는 경제적·정치적 위기에 대응하는 지배계급의 지배 강화이다.

언론의 폭로 기능이 약화되고, 사람들이 처벌이 두려워 표현을 꺼리는 분위기가 만연해지는 것은 자본주의 주류 양당을 비롯해 지배계급에 이로운 일이다. 반대로 이들의 거짓말, 막말, 비방 등은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처벌을 피해 나가기 십상이다.

물론 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국민의힘에 친화적인 언론을 겨냥해 이용하고도 싶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도 집권하면 똑같이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

지금 국민의힘이 반대 목청을 높이는 것은 대선 때까지 야당이라는 불리한 처지를 걱정해서이다. 집권하면 그들도 얼마든지 유용하게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사용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언론사 안에서도 평기자들이 언론사주나 편집간부로부터 더 많은 간섭과 압력에 시달리게 만들 것이다. 언론사주의 반대파를 공격하려는 보도는 허용될 테지만, 대기업 등 권력층에 대한 의혹·폭로 보도에 대한 언론사주 측의 통제는 더 강해질 것이 뻔하다. 언론사주 또한 여러 관계로 연결된 지배계급의 일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에 평범한 사람들이 보는 피해를 막는 게 아니라, 지배계급 일반에 대한 의혹·폭로 보도를 막는 효과를 낼 것이다.

따라서 ‘언론개혁’을 내세우는 민주당의 위선적인 행보에 지지를 제공해선 안 된다.

정의당과 언론노조 등은 강행 처리 시도를 옳게도 강력 비판했다.

그러나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언론 자유 사이의 조화 지점을 찾기 위해 민주당에게 국회 특위 등 사회적 합의 기구를 설치하고 좀 더 숙의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김재연 진보당 대선 후보이자 상임대표도 시민의 피해 구제 조치들은 필요하지만 현재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강행 처리”는 안 된다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다.

반면, 최근 〈민중의 소리〉 김도희 기자는 “언론중재법 제정이 언론 자유를 억압한다는 주장은 개연성이 낮[다]”며 법안 통과를 지지하는 취지의 기사를 냈다.(8월 23일자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건 정말 ‘언론 죽이기’ 법일까”) 그들 자신의 우파 비판 보도도 제약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얄궂게도 위선적인 국민의힘이 가장 선명한 개정안 반대 목소리가 됐다.

언론 문제를 해결할 힘은 아래로부터

언론 문제의 해결을 국가의 억압적 힘(검열과 규제)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것이 곧 자본주의 언론의 온갖 무책임(‘아님 말고’식 오보, 반동적 주장 등)을 방치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가짜뉴스 대응책으로서 언론들의 ‘팩트 체크’ 보도가 유행이지만, 자본주의 언론에 내재돼 있는 본질적 특성 때문에 언론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자본주의 언론에 효과적으로 대항하려면 광범한 노동 대중의 능동적인 활동, 행동, 정치적 토론이 고무돼야 한다. 언론 보도와 실제 경험을 스스로 비교해 보고, 기성 언론뿐 아니라 좌파적·급진적인 대안 언론을 탐색하고, 집단적 행동을 통해 보수적인 사상과 억압적인 조건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진실을 스스로 찾고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도 그 자체로 기업이기 때문에 근본적 한계가 명백하다. 하지만 기층 대중의 진실된 정보에 대한 염원과 행동이 활성화돼 지배계급 내에 분열이 일어나고 기성 언론에 대해 불신이 커질 때는 언론이 압력을 받는다.

예컨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두 여중생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한 항의 운동 사례가 있다. 사건 당일은 지방선거 투표일이었고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 직후여서 언론은 외면했다. 그러나 소수의 항의 집회가 꾸준히 열리면서 사건을 알렸고 반년 만에 미군 병사들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기름을 부어 대선 투표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40만 명에 이르는 청년 시위로 발전했다.(미국의 북한 선박 나포로 촉발된 군사적 긴장 고조와 우파가 정권을 탈환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증대 같은 상황이 근저에 있었다.)

수많은 이들을 각성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킨 광주항쟁, 6월항쟁, 7~8월 노동자 대파업도 숱한 국가 탄압과 언론 왜곡에 시달렸다. 그러나 몇몇 저항 역사에 대한 국가와 언론의 정의를 끈질긴 저항으로 결국 바꿔 놓았다.

그런 능동적 활동을 고무·강화하기 위해서 민주당 정부의 언론 통제 시도에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