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금지는 여성을 위험에 빠뜨릴 뿐 텍사스주 주도(州都) 오스틴에서 벌어진 낙태권 지지 시위 ⓒ출처 Evan L'Roy/The Texas Tribune

미국 텍사스주(州)에서 우파가 무지막지한 낙태권 공격을 밀어붙였다.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법이 9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강간·근친상간에 따른 임신도 예외 없이 낙태가 금지됐다.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텍사스 주의회에서 지난 5월 이 법안이 통과됐고, 공화당 소속 텍사스 주지사 그렉 애벗이 법안에 서명했다.

낙태권 옹호 단체인 미국가족계획협회(PP)와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이 법의 효력을 멈춰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연방대법원은 5 대 4로 이를 기각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거치며 연방대법원은 더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트럼프가 대법관 3명을 임명해, 현재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파다.

이토록 이른 시기부터 낙태가 금지되는 것은 미국에서 텍사스주가 처음이다.

‘심장박동법’이라고 불리는 텍사스주의 법은 낙태 금지 시기를 기존 임신 20주에서 6주로 앞당겼다. 임신 6주부터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므로, 이때부터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 낙태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의학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미국 산부인과학회는 “이 단계에서 감지되는 것은 심장이 될 태아 조직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아직 신체가 형성되기 전이라는 것이다.

텍사스주의 법은 낙태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법이다. 임신 6주 전에는 많은 여성이 임신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시민자유연맹은 텍사스주에서 낙태를 하는 여성의 90퍼센트가 임신 6주 이후에 한다고 밝혔다.

또, 이 법에 따르면 낙태를 도운 사람은 누구든(의사, 병원 직원, 상담사, 심지어 병원에 데려다 준 택시 기사까지) 고소될 수 있다.

주정부는 불법 수술을 직접 단속하지 않고, 시민 누구나 불법 낙태와 관련된 이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한다. 병원 등을 상대로 직접 소송을 거는 사람에겐 최소 1만 달러(약 1200만 원)의 포상금까지 지급할 계획이다.

주정부가 단속·기소를 하지 않으면 낙태권 지지자들은 정부를 상대로는 소송할 수 없게 된다. 정부가 교묘하게 법적 책임을 피하면서 낙태 반대론자들의 소송을 적극 지원하려는 것이다.

텍사스주의 법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에 위배된다. 1973년에 나온 이 판결은 임신 22~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다.

미국가족계획협회는 텍사스주의 법이 “시계를 50년 전으로 되돌렸다”고 규탄했다.

이제 텍사스주 여성들은 임신 6주 후 낙태를 하려면 다른 주로 가서 해야 한다. 낙태 선택권을 지지하는 구트마허연구소는 이 거리가 편도로 평균 248마일(약 400킬로미터)이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지난해 텍사스주가 팬데믹 동안 대부분의 낙태 시술을 금지했을 때, 다른 주로 ‘원정 낙태’를 가야 했던 환자의 수는 400퍼센트나 급증했다.

가난하거나 일하는 여성의 경우 낙태 시술을 받기 위해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없다. 낙태를 금지한다고 해서 낙태를 해야 하는 여성의 필요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안전한 낙태를 여성이 쉽게 할 수 없게 만들어 여성을 위험과 고통에 빠뜨릴 뿐이다.

바이든

텍사스주의 낙태 금지법 시행에서 보듯, 민주당 바이든 정부 하에서도 우파의 낙태 반대 운동은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올해 미국의 아이다호·오클라호마·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도 임신 6주 이후 낙태 금지 법안이 통과됐다.(모두 법적 소송이 제기돼 아직 시행되지는 않았다.)

텍사스주뿐 아니라 미국 남부·중서부 20여 개 주에서도 이미 낙태 제한 법안을 마련해, 조만간 후속 조처가 있을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특히 10월에는,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한 미시시피주의 법에 대한 미국 연방대법원 심리가 시작된다.

연방대법원이 이 소송에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판결이 내년 6월까지 나올 것이라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바이든은 텍사스주의 법이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다며 낙태권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를 믿을 수는 없다. 많은 주에서 우파가 낙태를 제한하는 법을 제출했을 때 민주당은 여러 타협을 한 바 있다. 이전 민주당 정부 하에서도 가난한 여성에게 낙태비 지원금이 삭감되는 등 여러 후퇴가 있었다.

낙태권 공격에 진정으로 맞서는 힘은 아래로부터 대중 투쟁에 있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폴란드에서는 정부의 낙태 처벌 강화에 맞서 여성·남성 수십만 명이 대규모 거리 시위를 벌였다. 트럼프 정부 때 미국에서도 낙태권 등의 요구를 내건 대규모 여성 시위가 수차례 일어났다.

텍사스주 등 여러 곳에서 더 거세지는 낙태권 공격에 맞서려면, 바로 그런 아래로부터 저항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