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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철회 요구하는 그리스도교 우파:
EBS에서 주디스 버틀러 강연 보고 싶다

9월 21일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서 주디스 버틀러가 강연한다. 주디스 버틀러는 미국의 젠더 이론가이자 퀴어 이론의 주창자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에도 《젠더 트러블》을 비롯한 많은 저서가 번역돼 있다.

9월 21일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서 주디스 버틀러가 강연한다. ⓒ출처 〈EBS〉

그런데 기독교 우파를 중심으로 강연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교회언론회가 9월 6일 강연 철회를 요구하는 논평을 냈고, EBS ‘위대한 수업’ 시청자 게시판에는 수백 개의 강연 반대 글이 올라오고 있다.

주디스 버틀러는 세계적으로 기독교 우파의 공격을 받아 왔다. 2017년 브라질 상파울로를 방문했을 때 기독교 우파들이 반대 청원과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이들은 버틀러가 “젠더 이데올로기”의 선구자이며 “소아성애와 근친상간 지지자”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버틀러가 소아성애 지지자라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가 근친상간에 대한 처벌을 반대한 것은 맞다. 근친상간을 지지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근친상간 자체가 위계적·강제적 관계는 아니기에 문제되지 않는다(근친상간과 근친강간은 구분된다).

사실, 반대자들이 근친상간이네 소아성애네 떠드는 것은 자극적인 표현으로 도덕적 공황을 부추기려는 것이다. 개신교 우파들은 동성애를 반대할 때에도 같은 말을 사용하곤 한다.

주디스 버틀러가 기독교 우파의 표적이 된 핵심적인 이유는 그의 젠더이론이 성소수자 운동에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젠더 트러블

버틀러는 1990년에 출판된 《젠더 트러블》로 명성을 얻었다. 이 책에서 버틀러는 인간의 성별이 고정된 본질의 산물이라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다. 또, 젠더와 섹스를 구별하는 기존 페미니즘의 개념(젠더는 사회적인 성, 섹스는 생물학적 성)도 비판한다. 그는 섹스도 사회적으로 구성됐다고 보면서 젠더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에 문제를 제기한다. (버틀러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와 차이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버틀러의 젠더 이론을 다루진 않겠다.)

이분된 젠더 틀에 모두를 욱여넣는 이 사회에서 버틀러의 이론과 그 함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청량감을 줬다. 버틀러는 그 자신이 레즈비언이고 성소수자 운동을 적극 지지하는 활동가이다. 자긍심행진의 상업화를 공개 비판할 정도로 급진적이다. 또, 미국과 이스라엘을 비판하며 반전운동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지지해 왔다.

버틀러의 젠더 이론은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버틀러의 이론은 기독교 우파의 보수적인 성 관념과 정면 충돌한다.

보수 기독교는 신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다르게 창조했고, 그 차이에 따라 각자의 역할이 있으며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가족을 이뤄야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본다.

그래서 이들이 보기에 버틀러의 이론은 “성의 질서, 결혼, 가정이라는 기본 질서를 부정”하는 “반신론적이며 무신론적 이데올로기”이다. 기독교와 사회를 뒤흔드는 위험천만한 견해로 여긴다.

편협함

그러나 우파의 주장과 달리, 인간의 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며 특정한 성역할과 성적 지향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동성에 끌리거나, 태어난 성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인류 역사 내내 존재해 왔다. 미국 선주민 사회에서는 젠더가 서너 개 있었다. 어떤 사회는 몸이 아니라 하고 있는 일에 따라 젠더를 부여했다.

성에 대한 관념과 태도도 고정된 게 아니다. 역사마다 사회마다 달랐다. 계급 이전 사회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평등했고, 젠더 전환이나 다양한 성적 관계가 차별받지 않았다는 증거가 많다.

계급사회가 등장하면서 여성 차별이 시작됐고, 이와 함께 젠더 전환과 다양한 젠더 표현도 억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성 관념은 오늘날과는 매우 달랐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남성간 성관계가 찬양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보수주의자들이 떠받드는 핵가족도 없었다.

오늘날과 같은 핵가족과 성 고정관념은 불과 100~200년 전 산업 자본주의가 들어서면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이는 건강한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가족을 재건할 지배계급의 필요에서 비롯했다.

이런 필요 때문에 여성은 본성적으로 감성적이고 양육을 하는 데 적합하다는 관념이 교육기관, 대중매체, 교회 등을 통해 확산됐다. 이를 통해 자본가 계급은 노동력 재생산을 개별 가족과 그 안의 여성에게 떠넘기고 어마어마한 돈을 절약한다.

사회의 물질적 조건이 바뀌면 성에 대한 관념도 바뀐다. 사람들이 사회를 자본주의와 완전히 다르게 조직하면, 인간의 성적 관계와 표현도 훨씬 다양해질 것이다.

버틀러는 비록 젠더를 유물론적이고 역사적으로 고찰하진 않지만, 보수주의자들의 편협한 성 관념에 대해 시원한 일격을 가한다.

9월 21일 EBS에서 버틀러의 강연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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