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은 왜 창립됐는가?

UN은 제2차세계대전의 승자들이 세운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창립됐다.

대전 중에 미·영·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국제연합”으로 지칭했다. 그리고 대전이 끝나자 그들은 자기들이 ‘해방시킨’ 인민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세계를 분할하고자 했다.

처칠은 전후 세계 분할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종이 한 장에 낙서해 놓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휘갈겨 쓰여 있다. 소련이 루마니아의 90퍼센트를, 영국은 그리스의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양국은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를 공동 점유한다는 것이다. 처칠은 이 비망록을 스탈린에게 보여 줬다. 스탈린은 “파란색 연필을 집어들더니 크게 체크 표시를 하고는 도로 돌려 줬다. 그걸 결정하는데는 착안하는 데 걸린 시간만큼만이 걸렸던 것이다.” 처칠은 이렇게 적었다.

미리 예상된 이 정확한 거래는 단지 한 장의 종이조각에 불과한 채로 남아 있지만, 그 과정은 연합국 지도자들이 그 순간에 자신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인민들을 얼마나 멸시하고 있었는가를 잘 드러낸다.

전쟁이 끝날 무렵 미국 경제는 매우 강력해서, 미국이 ‘평화’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따라서 UN 본부가 뉴욕에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누가 UN을 지배하는가?

UN 내의 진정한 실세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그 가운데서도 특히 미국이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 점은 1991년 2월 11일, 당시 유엔 사무총장 케야르가 “… 유엔 안보리는 작전이 개시된 뒤에야 미국·영국·프랑스로부터 [걸프] 전쟁 과정을 통고받고 있을 뿐”이라고 불평했던 데서도 드러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미국이 안보리 거부권 행사에 더 큰 책임이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불리한 결의안에 거듭 반대해 왔다.

또, 미국은 약소국 파나마에 대한 자신의 침공(1989년 12월)을 비난하는 UN 결의안에 비토를 놓았다.  전세계에 걸쳐 ― 파나마·니카라과·그레나다·베트남·캄보디아 등지에서 ― 미국의 인권 침해와 국제법 위반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안보리의 다른 회원국들도 미국처럼 자기들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UN을 무시해 버릴 수 있다.

소련이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아프가니스탄·그루지야·아제르바이잔 등지에서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짓밟고 있었을 때 UN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걸프 전쟁의 개시와 거의 동시에, 당시 소련의 관료는 발트해 연안 국가 독립운동을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미국의 공모를 뻔뻔스럽게 얻었다.

다른 안보리 이사국들의 손도 미·소보다 결코 더 깨끗하지 못하다.

영국은 말라야와 키프로스 그리고 아덴(예멘)에서 제국(帝國)을 철수하면서 고문 같은 야수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프랑스 제국도 베트남과 알제리에서 철수할 때 똑같은 짓을 했다. 또한 아프리카의 프랑스 제국은 야만의 극치를 이루는 독재 정부의 형태를 취했다.

중국은 천안문 광장과 티벳트의 비무장 시위대를 탱크로 밀어붙이고 발포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진실인즉, UN이란 그저 두 가지 역할 가운데 하나를 하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주요 열강이 분열돼 있으면, UN은 마비된다. 1991년 1월에 이라크에 대해서 그랬던 것처럼 열강이 서로 합의를 보고 있으면, 초강대국들이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다는 깃발을 UN이 제공한다.

UN은 무슨 짓을 해 왔는가?

UN의 최초 행동은 1947년 팔레스타인을 분할해 이미 30년 전부터 1백만 명의 팔레스타인인과 5만 6천 명의 유대인이 살아 왔던 땅에 이스라엘 국가를 창립한 것이었다. 1940년대 중엽에 유대인 정착자들은 인구의 30퍼센트를 차지했고 토지의 6퍼센트를 소유했다. UN은 그들과 팔레스타인인 둘 다에게 “정의”를 약속했으면서도 이스라엘에 토지의 55퍼센트를 줬다. 이스라엘이 공포 통치를 통해 75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살던 집에서 쫓아내고 토지의 80 퍼센트를 몰수해 버렸을 때 UN은 아무 일도 안 했다.

한국전쟁 때 UN은 미국의 가리개로서 개입했다. 한국전쟁은 미·소가 각자의 대리인인 남한과 북한을 앞세우고 후원하면서 벌인 전쟁이었다. 스탈린은 UN을 보이콧했고, 미군은 15개국의 부대를 거느리고 UN 깃발을 달고 왔다. 그 때 ‘연합군’이라는 외피는 UN 사령관 맥아더 휘하에 2백만 명이 넘는 미 육·해·공군에다가 구색 갖춘 나라들의 4만 군대를 덧붙이는 것으로써 유지됐다.

1956년 UN은 수에즈 운하 문제를 놓고 그 때까지와 다르게 행동했지만, 이바지한 목적은 전과 마찬가지였다. 아랍 민족주의자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수에즈 운하를 장악해 버리자 영·프·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침공했다.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이 때가 그 지역에 대한 영·프의 영향력을 자신의 영향력으로 대체할 기회다 싶어 UN에게 ‘평화유지군’을 보내라고 ‘요청’했다. 그 때의 UN 간섭 이래로 학살 계획안들은 UN에서 조금도 견제당하지 않은 채 차례차례 통과돼 왔다.

인도네시아가 1975년 12월 동티모르를 침공해서 10만 명에서 20여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전체 인구 70만 가운데!)을 학살했을 때 UN은 “개탄”하며 인도네시아에게 그 섬에서 철수하라는 ‘결의안’을 그 뒤 7년 동안 해마다 요청했다. 예고된 살인극이었으므로, 또 UN이 입발림말을 하는 것뿐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인도네시아는 들은 척도 안 했다.

UN을 개혁할 수 있을까?

냉전 질서의 해체를 통해 “신UN질서” 따위를 전망하는 사람들이 진보 진영 내에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는 안 될 것이다. 바로 걸프 전쟁이 이를 입증했다. 미국의 국무부 관리 하나가(그의 이름은 익명으로 보도되었다) 말했듯이, “우리가 UN의 덮개 아래서 움직일수록 그만큼 더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다.” 이것은 진실이다.

이와 관련해 특기할 만한 사실이 있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 창립 대회는 국제연합(UN)의 전신인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을 “자본가들의 신성동맹”이며 “약탈과 착취와 제국주의 반혁명의 연합”이라고 묘사했다.

볼셰비키는 그런 기구들에 적대적이었으므로 그런 것들에 반대하는 것을 코민테른 가입 조건 가운데 하나로서 명시했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소속되고자 하는 정당은 모두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애국주의뿐 아니라 사회 평화주의의 불성실성과 위선의 가면을 벗겨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그럼으로써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를 혁명으로 전복하지 않고는 국제 중재 법원 따위가, 군비 축소 회담 따위가, 국제연맹의 ‘민주적’ 재조직 따위가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을 막을 수는 없으리라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UN이란 그 회원국 모두가 손에 피를 묻힌 기구이다. 그 자들의 행태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대중 항쟁이다.

UN 외교가 아니라 대중 항의 운동이 베트남 전쟁을 끝냈다.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그것만이 끝낼 것이다. 다른 어느 것도 그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