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관련 민원이 제기되면 당사자 소명과 사실 확인 절차도 없이 교육청이 교사를 형사 고발하고 직위해제 처분을 내리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성교육에 일부 학생이 불쾌감을 느끼면 ‘성희롱’인가?

수업 시간에 성인지교육용 영화 〈억압받는 다수〉를 상영하며 성평등 교육을 했다가 터무니없이 ‘아동 학대’ 혐의로 형사 고발됐던 광주 도덕교사 배이상헌 씨가 광주교육청에 맞서 2년 넘게 싸우며 제기한 질문이다.

형사 고발·직위해제 1년 1개월 만인 2020년 8월 배이상헌 교사는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 따라 불기소됐다.

성평등과 학생 인권을 지지하며 수십 년간 활동해 온 교사를 한순간에 성범죄자로 몰았던 광주교육청은 수사 결과를 수용하고 배이상헌 교사에게 직위해제 기간의 피해에 대해 보상하고 사과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광주교육청은 적반하장 격으로 지난해 말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수사 결과야 어떻든 수업 내용에 ‘학생들이 불쾌감을 느꼈으니 성희롱’이라는 것이었다. 부당한 직위해제 처분에 항의한 활동은 ‘교육공무원의 복종 의무 위반’이자 신고 학생에 대한 ‘2차 가해’라고도 했다.

‘묻지마’ 직위해제

또 다른 부당한 일은 배이상헌 교사가 직위해제 처분 취소 소송에서 1·2심 모두 패배한 것이다. 최근 광주지법의 2심 재판부는 1심에 이어 광주교육청의 직위해제 조처를 옹호하는 결정을 내렸다.

해당 재판부는 “국가공무원법상 직위해제처분에 앞서 공무원에게 의견 제출의 기회를 부여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광주교육청의 직위해제 조처가 ‘위법’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교육청이 제대로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성비위 혐의가 제기되면 교육청 등의 국가기관이 공무원에게 사실 확인 없이 무조건 직위해제처분을 내리는 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결정은 지극히 권위주의적인 데다 계급 차별적이다. 교사 같은 공무원 노동자에게는 성비위 혐의가 제기되면 사실 확인 과정도 없이 고발되고 직위가 해제되지만, 고위 공무원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1심 재판부는 직위해제가 “일시적인 인사 조치”이므로 교원지위법이 보장하는 절차(교원의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해 교원에 대한 민원 등을 조사할 때 교원에게 소명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내용)가 요구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직위해제는 징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판단은 직위해제가 교사에게 실질적인 징계로 작용한다는 점을 무시하는 오판이다. 직위해제 기간에 교사는 학생들과 떨어진 채 수업도 하지 못하고, 월급도 대폭 깎이고, 인사 기록으로도 남는다.

보수적 성관념

1·2심 재판부 모두 10대 대상 성교육에 보수적 시각을 뚜렷이 드러냈다. 〈억압받는 다수〉 영화에 노출과 욕설이 나와서 중학생에게 적합하지 않았다며 이 영상을 튼 수업은 ‘성희롱’이라는 교육청의 주장을 지지했다. 해당 영화는 여성과 남성의 처지를 뒤바꿔 여성 차별의 현실을 고민해 보자는 취지일 뿐,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내용이 전혀 아닌데도 말이다.

보수적 성관념을 지지하는 이런 판결은 한국의 공교육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도덕주의에 도전하는 성교육·성평등 수업이 성범죄로 규정되면 어떤 교사가 학교 수업에서 성 문제를 다루려 하겠는가?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형사고발, 직위해제, 정직 등은 한국의 공교육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억압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최근 교육부 소청심사위가 배이상헌 교사가 제기한 정직 3개월 징계 결정 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한 것도 마찬가지다. (교육부 산하 소청심사위가 교육부 방침과 충돌하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소청심사위의 심의는 대체로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배이상헌 교사는 정직 3개월 징계 결정 처분 취소를 위해 이제 행정소송을 제기하려 한다.

전교조 집행부는 대의원대회의 결정을 외면하고 배이상헌 교사의 투쟁을 지원하는 것을 기피하는 태도를 취해 왔다.

소명과 사실 확인 절차도 밟지 않은 직위해제 조처와 형사고발, 수사기관의 무혐의 결정도 무시한 중징계. 이런 억압적인 교육 행정에 전교조가 반대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저항의 역사적 전통이 퇴색하고, 경제주의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