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기 전에 “[독자편지] 김준효 기자의 ‘‘점거하라’ 운동 10년 - 오늘날의 교훈’ 기사를 읽고”를 읽으시오.

질문 감사합니다. 질문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점거하라’ 운동 이후 좌파 개혁주의 정치인과 정당들이 부상하는 과정에서 레닌주의와 레닌주의 당 모델에 대한 첨예한 공격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점거하라’ 운동과 그 여파를 다루면서 함께 살펴보는 것이 유익했을 것입니다.

 

‘점거하라’ 운동은 2008년 경제 위기가 낳은 쓰라림과 이후 주요 정부들이 시행한 긴축 정책 등을 토양 삼아 성장했습니다. 이 체제의 운영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은 구제하지 않는 데 대한 반감이 주된 동력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제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이 운동에서 반체제 정서는 나라마다 강도는 달랐지만 ‘반(反)정치’로 표현됐습니다.

‘반정치’는 정치로부터 독립적인 운동이 기성 정당들의 타락에서 자유로울 것이고, 또한 운동이 맞닥뜨린 정치적 문제의 해결책을 운동이 스스로 찾을 수 있다는(운동주의) 낭만적인 생각입니다.

이는 권력을 잡지 않고도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자율주의 사상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사회 변화의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정당들은 혁명적 정당일지라도 대중 운동에 기껏해야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해롭습니다.

‘반정치’는 주류 정당들에 대한 광범한 반감에서 출발했지만, 종종 혁명적 좌파를 포함한 노동계급 기반 정치와 정당들을 거부하는 것으로도 표현됐습니다. 이는 특히 운동이 분출하기 직전, 노조가 청년들을 배신하는 합의를 정부와 맺은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 운동에서 두드러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반정치’는 잘못된 교훈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점거하라’ 운동의 핵심 촉매였던 이집트의 사례를 봅시다. 2011~2012년 경험이 미숙한 젊은 이집트 혁명가들은 광장 점거와 거리 투쟁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봤고, 그래서 정치 권력 문제를 비롯한 혁명의 전략 문제를 회피했습니다.

결과는 재앙이었습니다. 2011년 혁명으로 몰아낸 무바라크와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군 장성 엘시시가 기회를 잡고 반혁명 공세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집권한 무르시의 무슬림형제단, 그 밖의 자유주의·스탈린주의·민족주의 정당들의 오류와 배신을 극복하려면 노동계급의 독립적 전략과 조직이 중요했는데도 말입니다. 당시 이집트에도 혁명적 좌파인 혁명적사회주의단체(RS)가 있었지만, 이런 흐름을 바꾸기에는 아직 작고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이집트 혁명의 패배는 ‘점거하라’ 운동의 국제적인 부양력이 퇴조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시기에 미국과 유럽에서 광장 점거 운동이 퇴조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커다란 운동들은 일련의 전략 논쟁과 운동의 혁신을 퇴적물로 남기곤 합니다. 제 기사에서 설명했듯이, 점거하라 운동은 각종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들의 부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좌파적 개혁주의 부상 과정에서 이른바 레닌주의 논쟁이 벌어졌던 것이 맞습니다.

이런 상황 전개를 이해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을 함께 보는 것이 유용합니다.

첫째, 1980년대 이래 수십 년 동안 특히 미국과 서유럽에서 노동계급의 투쟁 수위가 낮았습니다. 투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총력 파업은 매우 중요한 사례입니다) 노동계급이 지속적으로 계급적 힘을 발휘한 시기는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노동계급의 힘을 강조하기보다는 ‘노동계급은 끝났다’는 식의 주장이 더 득세했습니다.

노동계급 투쟁의 수위가 비교적 낮았던 스페인에서 반(反)정치가 특히 강력하고 수위가 비교적 높았던 그리스에서는 좀 덜 강력했던 것은 이와 연관이 있습니다.(그러나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둘째, 자본에 맞서 노동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던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잇달아 배신했습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지지하고, 위기 상황에서 직접 노동계급을 공격했습니다. 토니 블레어의 영국 노동당, 스페인 사회당(PSOE)이 그 전형적 사례입니다. 이에 대한 반감 때문에 노동계급에 기반한 정치 운동이 의심을 샀습니다.

셋째, 2011년의 대중 운동뿐 아니라 그 이전 시기의 대중 운동, 즉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엽까지 두드러졌던 이라크전쟁 반대 운동 및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반대 운동과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에도 여러 차례 국제적으로 대단한 거리 운동들이 분출했지만 결국 전쟁을 막지 못했고, 돌파구를 열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도 주류 사회민주주의의 왼쪽에서 급진 좌파가 등장했지만, 이들 역시 위기를 맞았습니다. 당시 혁명적 좌파들과 동맹을 맺고 주류 사회민주주의의 대안을 자임했던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정치인들은 더 온건한 개혁주의 전략으로 회귀했습니다.(관련 기사 〈맞불〉 64호 ‘시련에 처한 유럽의 급진 좌파 정당들’)

당시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은 거리 운동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그 운동이 노동계급의 심화한 계급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것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어떤 전략이어야 하는가

광장 점거나 거리 시위는 대중에게 저항할 자신감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운동이 자신의 정치적 요구를 실현하기에 불충분합니다. 이 사회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지배자·권력자들에게서 힘을 빼앗아 와야 합니다. 여기서 ‘어떻게’, 즉 전략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레닌주의자들은 그러기 위해서 노동계급이 파업 등으로 계급 고유의 힘을 발휘해 지배계급의 권력의 원천인 이윤과 경제 권력에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궁극적 목표는 지배계급의 가장 효과적인 정치조직인 자본주의 국가를 대체할 노동계급의 국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일관되게 고무해 체제를 뛰어넘는 방향으로 이끌려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인 레닌주의 정당이 필요합니다.

이런 전략은 체제와 저항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고 자본주의 국가를 ‘인수’해서 개혁을 제공한다는 개혁주의 전략과 충돌합니다. 자본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로 나아간다는, 이런 전략의 좌파적 버전과도 충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자본주의적 국가와 타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레닌주의적 좌파는 당시 긴축 정책 등을 철회시키려면 사회의 위기가 심각했기 때문에 노동자 투쟁이 더 전투적으로 전진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국가를 이용하려 헛되이 애쓰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고 봤죠.

이런 논쟁은 그리스에서 좌파 개혁주의 정당 시리자가 부상하고 집권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시리자의 부상은, 2012년 이후 그리스에서 여러 좌파들이 범좌파 정당으로 결집해 개혁주의 정부를 수립한다는 전략을 국제적으로 고무했습니다. 급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좌파 정당이 집권하면 실제로 개혁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리스의 레닌주의적 좌파인 사회주의노동자당(이하 SEK)은 이런 전략이 자본주의 국가(와 체제)로부터 받는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에서 이 전략에 반대하고, 시리자로부터 독립적인 더 좌파적인 세력을 건설하려 노력했습니다.

이런 노력은 범좌파 정당 건설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됐습니다.(관련 논쟁은 그리스 SEK의 활동가 소티리스 콘토야니스가 ‘그리스의 좌파들 ─ 시리자, 공산당, SEK, 안타르시아’라는 방한 강연에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이런 비난은 세계의 레닌주의적 정당 일반에 대한 공격으로 확산됐고, 그리스에 뒤이어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 레닌주의적 좌파들이 잇달아 공격받았습니다.(때로 그런 공격과 위기는 미국 국제사회주의단체(ISO)의 사례처럼 내부 정치의 문제와 결합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심대한 위기 상황에서 일관된 반자본주의 전략을 제시하는 레닌주의 좌파들이 잇달아 어려움을 겪는 일견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레닌주의적 좌파는 앞서 말한 바, 즉 노동계급 투쟁이 지속적, 계급적으로 부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전략 논쟁에서 주도력을 쥐지 못했습니다.

특히 2010년대 초중반의 논쟁은 적잖은 혁명적 좌파들이 자신의 혁명적 전략을 포기하고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들로 합류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들은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포함한 기성 정당들의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고, 이제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마찬가지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위기가 중첩되고 첨예해지는 상황에서 체제 내에서 약속한 개혁조차 실현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관련 기사 본지 376호 ‘서구 사회민주주의 몰락하다’)

이런 사태 전개는 다시금 혁명적 전략의 중요성을 보여 줍니다. ‘점거하라’ 운동과 그 이후에서 얻어야 하는 교훈은, 체제 내 점진적 개혁이 아니라 체제 자체에 맞서기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레닌주의 전략이 유효하다는 것이고, 그 전략을 실행할 주체 형성을 위한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 관련 기사들을 함께 보면, 당시 논쟁을 이해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