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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어디로 가는가?

11월 13일, 북부동맹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하자 언론들은 일제히 “탈레반 정권이 사실상 붕괴했다”고 보도했다. 메스껍게도 언론들은 북부동맹을 “해방 군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북부동맹의 군벌들은 예외 없이 잔인한 전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의 학살 전력이 너무 끔찍해 미국 군대조차 자신들의 “동맹자”가 잔혹한 학살극을 벌일 것이라고 인정할 정도다. 사실, 미국이 한 달 넘게 아프가니스탄을 맹폭격한 덕분에 북부동맹은 카불로 진격할 수 있었다.

북부동맹의 핵심 사령관 가운데 한 명인 압둘 라시드 도스툼은 아프가니스탄의 소수 종족인 우즈베크계의 군벌이다. 그는 1979년 소련의 침공을 적극 지지했다. 그 뒤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거듭거듭 온갖 세력들과 결탁했다. 한때는 탈레반과도 동맹을 맺었다. 도스툼은 서로 경쟁하고 있는 모든 외국 세력들과 결탁했고 그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 처음에는 러시아를 지지하다 그 다음에는 우즈베키스탄과 이란과 파키스탄과 손을 잡았고 최근에는 터키와 동맹을 맺었다. 1994년에 그는 또 다른 학살자 굴부딘 헤크마티야르와 함께 카불을 완전히 파괴했다. 미국이 후원하는 북부동맹의 군벌 히즈브 이 와흐다트는 포로들에게 가혹하기로 유명하다. 북부동맹의 핵심 군벌 가운데 하나인 라흐민 데와나는 2년 전 상차라크 지역을 점령해 민가를 불태우고 민간인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바바 잘란다르의 군대는 1996년 카불에서 퇴각하면서 포로들의 코와 귀를 잘랐고, 머리를 베어 장대에 꽂아 큰길 가에 세워 뒀다. 아프가니스탄의 전 대통령 부르하누딘 랍바니는 북부동맹의 정치적 지도자다. 부시에게는 당혹스러운 일이겠지만, 오사마 빈 라덴이 1996년에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왔을 때 기꺼이 반겼던 인물이 랍바니였다. 북부동맹이 여성들을 해방시켰다는 주장은 완전한 넌센스다.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은 도스툼 군대를 카불의 여성들을 강간하고 가슴을 도려낸 군대로 기억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북부동맹은 아프가니스탄 내 최대 부족인 파슈툰 족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애초 북부동맹의 카불 입성을 반대했다. 미국은 파슈툰 족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북부동맹 주도의 정부 수립을 우려하는 반면, 북부동맹은 과도 정부 수립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싶어한다. 이 때문에 미국과 북부동맹의 사악한 밀월에 틈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파키스탄 독재 정권은 북부동맹의 아프가니스탄 지배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카불을 점령한 북부동맹 사령관 이스마일 칸의 군대는 이란이 후원하고 있다. 이란은 파키스탄과 인도와 지역 맹주 자리를 놓고 격렬하게 경쟁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과도 정부 수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모순이게도, 부시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신고립주의’를 표방하면서, 당시의 대통령 빌 클린턴이 추진했던 소말리아·아이티·발칸 과도 정부 수립을 비판한 바 있다. 부시의 구상은 코소보에서처럼 수십 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장기적이고 비용이 많이 들고 미래가 불확실한 군사 작전이 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어떻게 발전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북부 동맹이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기는커녕 북부동맹의 카불 점령은 또 다른 내전을 낳을 것이다. 미국의 군사 개입은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더 끔찍한 고통과 공포만을 안겨 줄 뿐이다.

전쟁의 모순들

미국은 “항구적 자유” 작전이라는 거대한 도박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지역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이 전쟁의 전략 목표는 분명할지 모르나, 미국이 그 목표를 성취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부시는 “우리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고 장담했지만, 현 상황에 내재한 특정한 모순들은 부시의 장담을 부질 없는 것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첫째, 부시 동맹은 언제든지 분열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서로 적대하는 나라들을 부시는 정략적 동맹에 끌어들였다. 파키스탄과 인도는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에 있다. 카슈미르를 놓고 언제라도 전쟁에 돌입할 태세다. 미국이 전쟁을 벌이기 하루 전에 이슬람 전사들이 스리나가르에서 대규모 차량 폭탄 테러를 감행해 35명이 사망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된 이래, 파키스탄과 인도 군대는 카슈미르의 “통제선”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 러시아와 그루지야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으나 러시아는 그루지야가 체첸 반군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고 비난한다. 전쟁이 시작된 지 하룻만에 러시아 군대가 체첸 전쟁을 위해 그루지야로 갔다. 그러자 그루지야는 독립국가연합(CIS)에서 탈퇴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리고 지금 러시아가 관할하고 있는 분리 지역인 압카시아를 되찾기 위해 군대를 보냈다. 둘째, 9월 11일의 테러로 잠시 은폐됐던 미국과 “동맹국들” 간의 갈등이 재현될 것 같다. 러시아와 중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에 편승했다. 그러나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을 끌어 내기 위해 “스타 워즈”, 즉 미사일방어(MD) 계획을 포기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부시는 이미 MD를 “반테러 무기”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고 있다. 또, 미국이 수많은 이면 약속을 러시아에 한다고 해서 러시아가 카스피 해의 석유와 송유관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거나 나토(NATO)를 인정할까? 이 또한 그렇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중앙 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입지를 고려해 본다면, 미국은 카스피 해 계획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러시아와 중국은 유라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도전자라는 9월 11일 이전의 역할로 쉽게 되돌아갈 수 있었다. 셋째, 부시의 협력자들 모두 매우 부패하다. 그들은 뇌물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럼즈펠드는 오만의 술탄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11억 2천만 달러짜리 전투기와 그 밖의 다른 무기들을 판매하는 데 동의했다. 또, 파키스탄에 엄청난 달러가 유입돼 파키스탄 중앙은행이 개입해 루피화(파키스탄 화폐)의 환율을 조정해야 했다. 게다가 미국은 10억 달러(1조 3천억 원)의 원조 제공을 약속했다. 흔히 뇌물은 정치적이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미국이 원하는 중앙 아시아의 군사 기지를 제공하는 대가로 체첸 전쟁에 대한 비난을 중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푸틴은 미국을 “이슬람 테러리즘”에 맞선 전투에 뒤늦게 뛰어든 신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체첸에서 “이슬람 테러리즘”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나토의 동진을 중단하거나 지연하라는 압력을 미국에 넣을 것이다.

부시는 “반테러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심지어 매우 억압적인 지배자들, 예컨대 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 같은 자들을 지원해야 한다. 카리모프는 미국에 군사 기지와 군 비행장을 내주는 대가로 미국 정부가 반대파에 대한 억압을 비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7천 명의 정치수들이 있다. 이것이 바로 “정의를 위한 전쟁”의 실상이다. 넷째, 뜨거운 모순들 가운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국과 중동 친미 국가들 간의 밀월 관계에 금이 가고 있다는 점이다.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는 탈레반의 두 주요 후원국들이다. 파키스탄 군사정보국(ISI)이 탈레반을 창조했다. 파키스탄 출신 사회주의자 타리크 알리는 파키스탄 군부 내 급진적 이슬람 소수파인 지하디스의 동조자들이 25∼30퍼센트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ISI의 지시를 받아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게릴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지하디스는 탈레반과 동맹을 맺고 있다. 그래서 독재자 페르베즈 무샤라프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첫 공습이 시작되자마자 잠재적 쿠데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군대를 숙정했다. 그럼에도 대규모 반미·반정부 시위와 아프가니스탄 난민 유입으로 말미암은 불안정성 때문에 무샤라프는 무슬림의 “신성한 달”인 라마단(금식 기도) 전에 전쟁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미국에 요구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내무장관 라이프 왕자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비난했다. 더욱이 빈 라덴이 사우디아라비아 시민권을 박탈당했을지라도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내 지배 계급의 일원이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배 계급 사람들은 알 카에다에 계속 돈을 제공했다. 9월 11일의 비행기 납치범 가운데 지도자가 포함돼 있다면, 그것은 알 카에다의 핵심 간부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아랍 동맹국들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에서 충원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중동의 친서방 정부들을 붕괴시킬 수 있다. 폭격은 즉각 파키스탄과 가자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심지어 부유한 걸프 연안 왕국들에서조차 반미 감정이 강력하다. 걸프 연안 왕국들의 지배자들은 생존을 위해 전적으로 미국의 무기에 의존한다. 쿠웨이트는 1991년 걸프전이 끝날 무렵에 이라크 점령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거의 40만 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했다. 그런데 쿠웨이트에서조차 미국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미국이 빈 라덴과 탈레반을 성공적으로 파괴하는 대가로 무바라크와 사우드 왕가가 몰락한다면 그것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승리가 될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의 샤론은 9월 11일의 테러를 이용해 팔레스타인인들을 계속 공격하고 헤즈볼라(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군대와 게릴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친이란계 급진 이슬람 운동)를 공격하도록 미국 권력자 집단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전쟁에 참가할 경우 미국의 소심한 아랍 동맹국들은 격변에 휩싸일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야세르 아라파트(PLO 의장)와 협상을 재개하라고 이스라엘 정부에 압력을 넣는다. 부시가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 때문에 샤론은 미국의 중동 정책을 히틀러에 대한 1939∼1941년 영국의 유화 정책에 비유했다.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미국은 21세기 최강대국이다. 그런 미국이 9월 11일의 테러로 자존심을 구겼고 심하게 상처받았다. 따라서 적을 가혹하게 보복할 정치적 필요가 미국에게는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자신의 막대한 무기들을 신중하게 선택해 이용해야 한다. 이것은,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미국이 전통적 수단을 이용하지 않는 적들을 상대로 한 “비대칭적인 전쟁”에 개입했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이 적을 무지막지하게 유린하다면 서아시아 지배에 필요한 예민한 동맹 관계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의 확전 경고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적 성공을 얼마간 거두자 부시는 11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자신이 선택한 모든 국가들 또는 집단들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그는 미국이 목표물로 설정한 국가나 집단들과의 전쟁을 거부하는 정부들을 협박했다. “테러를 지원하는 정권들은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 동안 부시 정부 내에서 “온건파”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국무부 장관 콜린 파월도 유엔 총회에서 이라크를 비롯해 다른 나라들로 전쟁을 확대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은 부시 정부를 여러 문제들에 봉착하게 만들 것이다.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을 전복하려면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지상군이 그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1991년 ‘사막의 폭풍’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그런 침공을 허용할 가능성은 없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는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위해 군사 기지를 제공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했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 정권은 사담이 강력하게 통제하는 이라크를 이란 혁명의 확산을 막아 주는 방패막이로 여기고 있다. 한편, 이라크는 지난 몇 년 동안 아랍 세계에서의 고립을 상당히 탈피할 수 있었다. 미국과 영국의 경제 제재와 폭격이 중동 전역에서 커다란 분노를 자아낸 반면, 사담은 늘어난 석유 수익으로 이집트·요르단·아랍에미리트연합 같은 아랍 국가들과의 한때 폐쇄됐던 무역 관계를 복구했다. 사담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과 관련을 맺기도 했는데, 그는 이스라엘 보안군이 살해한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의 가족 모두에게 위로금을 기부했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전면전은 중동 지역에 대격변을 낳을 것이다. 부시의 선택을 협소하게 만드는 다른 문제들도 있다. 매파들이 옹호한 무차별 공격은 오히려 오사마 빈 라덴과 급진 이슬람주의 조직인 알 카에다에 이로울 수도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미국이 이슬람 모두에 적대적이라는 점을 이슬람 세계에 증명하는 셈이 된다. 미국과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시작된 직후 빈 라덴은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조심스럽게 확대했다. 빈 라덴은 ‘이교도’인 미국 군대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둔 때문에 급진화됐다. 그는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아랍 세계의 가장 뜨거운 두 가지 문제, 즉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쟁과 이라크 경제 봉쇄를 제기했다. 빈 라덴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평화를 찾기 전까지는 미국이 결코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아랍인들은 빈 라덴의 이 주장에 공감한다. 〈가디언〉(2001년 10월 9일치.)은 “빈 라덴이 [아랍 세계의] 견해를 양극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논평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은 빈 라덴에게 전쟁의 확대가 이롭다면, 정반대로 미국 정부에는 이 전쟁을 아프가니스탄에 한정하는 것이 이로움을 가리킨다. 그 동안 부시가 무슬림 세계가 아니라 단지 ‘테러리스트들’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애써 강조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는 아프가니스탄 다음에는 이라크로 확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압력을 넣고 있다. 만일 아랍 국가들이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한다면, 미국은 결국 이스라엘과 군사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라크를 상대로 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협력은 정치적 격변을 촉발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1956년 수에즈 전쟁이 중동에서 영국의 이익에 영향을 미친 것만큼이나 미국의 대중동 영향력에 타격을 줄 것이다.

대안을 건설하기

부시의 전쟁은 자본주의의 본질 가운데 매우 중요한 측면을 폭로했다. 1999년 12월 시애틀 시위 이후 세계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은 경제적 목표물(다국적 기업들, IMF와 세계은행과 WTO 같은 국제 기구 등)을 골랐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단순히 경제 체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있다. 자본은 국가 기구와 결탁하고 있고,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군사력에 의존하며,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지정학적 동맹 국가들에 의지한다. 9월 11일 이후의 사태 전개는 신자유주의적 계획을 약화시키는 쪽으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부시는 1천3백억 달러(1백70조 원)에 이르는 세금 감면과 공공 지출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시 행정부는 심각한 경기 후퇴 때문에 케인스 경제학의 기본 강령을 채택해야 했다. 1990년대 동안 재정 적자 극복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흔들리지 않는 경제 신조였다. 재정 긴축을 강조하는 공화당 정부가 미국 경제에 돈을 쏟아붓는 모순된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다른 신자유주의 기둥도 흔들리고 있다. 국제 투기 자본에 대한 토빈세 부과 운동은 세계 화폐량의 절반이 역외 금융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반대에 부딪혔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연합은 테러 자금을 봉쇄하라고 역외 시장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서는 가능한 일이 왜 금융 투기를 억제하고 부의 재분배를 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지금의 반전 운동은 전쟁보다 빨리 시작됐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대중 운동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것은 워싱턴에서 75만 명이 행진해 절정에 올랐던 베트남 반전 운동의 초기와 비교해 봐도 매우 인상적이다. 1965년에 프랑스의 급진 철학자 쟝 폴 사르트르는 미국의 반전 집회에서 연설을 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당시 미국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이 전혀 없어서 반전 연설을 하는 데 “정치적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1968년이 돼서야 거대한 반전 운동이 건설됐다. 미국이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폭격을 개시했던 1965년으로부터 3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지금 반전 운동이 급속하게 성장하는 것은 9월 11일 테러의 뿌리가 매우 깊고 군사 보복이 이슬람 테러리즘의 위험을 제거할 가망성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사태만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정서가 광범하게 퍼져 있음을 반영한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은 10년 동안 자국내 이슬람 반정부 단체들과 ‘더러운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국내에서 패배한 일부 이집트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이 뉴욕과 워싱턴에서 전쟁을 벌였다. 미국이 설령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는 군사적 성공을 거둔다 해서 대중의 비통한 반감마저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시의 전쟁은 세계 도처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반감과 적의를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이런 비통함은 절망을 낳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일부 사람들은 9월 11일의 테러처럼 그릇된 방식으로 야만적 체제의 일부를 파괴하는 쪽으로 이끌릴 수 있다. 그러나 부시의 전쟁에 대한 분노는 거대한 대중 항쟁을 낳을 수도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군대는 팔레스타인에서 이집트를 포함해 아랍 군대를 패퇴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4년 뒤 압둘 낫세르가 주도한 이집트 군인들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낫세르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반제국주의적인 민족주의 정부를 수립했다. 1956년에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은 낫세르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이집트 도시들을 맹폭격했다. 그러자 거대한 분노의 물결이 중동을 휩쓸었다. 1958년 이라크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친영국적인 국왕을 타도했다. 반자본주의 운동의 성장과 부시의 전쟁에 반대하는 저항에서 어렴풋하게 이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지금 미국 제국주의의 야만을 끝장낼 거대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국제주의적 좌파들은 제국주의의 전쟁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을 또한 주장해야 한다. 체제에 대한 도전만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