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에 대한 태도 문제를 둘러싸고 민주노동당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박용진 씨(이하 존칭 생략)가 쓴 글 세 편이었다.

첫째는 최우영 납북자가족협의회장을 만나고 쓴 것이다. 이 글에서 박용진은 당이 납북자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주장했다. 진보진영이 이런 문제들을 외면함으로써 우익이 악용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온 ‘다함께’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는 이미 5년 전에 최우영 회장을 만나 인터뷰한 바 있다(〈열린주장과 대안〉 5호).

둘째는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글이다. 여기서 박용진은 “민주노동당 내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가 계속 “불가침 성역”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북한에 대해 자유롭게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것이 당 쇄신의 핵심적 문제인가 여부를 떠나) 지당한 얘기다.

셋째는 대변인에 임명된 뒤에 박용진이 발표한 북한인권 결의안 논평이다. 이 논평에서 그는 “북한 내 개선돼야 할 인권 상황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지만 “북한의 인권문제를 북한붕괴전략 실천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상황에서 이번 결의안은 실질적으로 미국의 불순한 의도에 장단 맞추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대체로 올바른 입장인 이 글들은 북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일부 당원들에 의해 금세 비난의 대상이 됐다. 얄궂게도, 〈조선일보〉가 첫 번째와 두 번째 글을 자기 식대로 인용하자, “박용진 당원은 조선일보 주구가 되려는가”는 공격마저 쏟아졌다. 악마가 성경을 인용했다 해서 성경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는 법인데도 말이다.

납북자 문제와 같은 문제를 거론하는 게 “조중동과 같은 극우세력에게 빌미”를 줄 수 있다며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은 옳지도 않고 사실도 아니다. 조중동이 납북자나 탈북자 문제를 자기들 쟁점인 양 행세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진보진영이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를 회피했기 때문이다.

보수 우익들은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납북자들을 간첩 취급해 온 장본인들이다. 진보진영이 진지하게 납북자나 탈북자 문제에 나선다면 저들의 위선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저들은 이런 상황을 결코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용하려 들지 모르지만 말이다.

물론 조중동 같은 우익에게 빌미를 줄 만한 방식으로 주장해서는 안 되지만, 이것이 우리들 사이에서 토론과 논쟁의 자유를 억압하는 빌미가 돼서도 안 된다. 저들은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무엇이든 이용할 것이고 우리 안의 견해 차이는 저들의 호재일 터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 안의 견해 차이가 풍부하고 깊이 있게 토론되는 것이 쉬쉬 하는 것보다 운동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함께 투쟁하는 속에서 말이다.

북한 사회 비판에 대한 가장 전형적인 비난은 그것을 “제국주의와 협력하자는 주장”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한 당원은 “이북의 사회체제를 인권과 결부지어서 거론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호응하는 이적행위”라고 주장했다.

같은 편에 서 온 동지들을 “제국주의의 첩자”로 모는 것은 스탈린주의 전통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이지만, 민주노동당원 사이에 이런 비난이 마구 오간다면 우호적인 토론이 가능할 수 없다.

북한에 대한 좌파적 비판 세력조차 우익과 함께 도매금으로 싸잡아 제국주의 동조자 또는 우익으로 매도하는 것은 완전한 잘못이다. 북한에 대한 비판 세력 가운데는 ‘다함께’처럼 인권을 빌미로 한 제국주의의 개입에 반대하면서도, 북한의 노동자 민중 자신이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근본적 변혁을 이루기를 바랄 수 있다.

미국은 결코 북한의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문제삼거나 요구하는 항목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미국의 봉쇄 아래 있고 주권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는 개인 인권이 희생될 수도 있다고도 말한다. 심지어는 민주주의나 인권이 부르주아 사회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북한 내에서는 억압을 강화하는 것으로 작용해 왔을 뿐이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북한의 정치범은 최소한 10만 명에 이른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조직할 권리도, 파업을 조직할 권리도 없다. 동성애는 “비정상적인 욕망인 세기말적 동성애”(1989년 12월 22일치 〈로동신문〉)로 낙인 찍혀 박해 대상이다. 이와 같은 억압과 국가 폭력을 옹호할 수는 없다.

북한을 옹호하는 것만이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길은 아니다. 이런 도식에 사로잡히면 진보세력으로서 옹호할 수 없는 것을 옹호하게 되고, 북한 지배 관료의 단기적 이해관계에 맞춰 사회주의관을 수시로 수정해야 하는 곤란에 봉착할 것이다.

우리가 남한 사회에서 끊임없이 던져야 할 질문이 북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어떻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정부의 독단적 결정으로부터 노동자들의 이익을 방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남한 사회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답변이 북한에도 적용될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조직을 건설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연대를 건설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는 당이 새롭게 부상하고 급진화하는 운동과 연관맺는 데서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제국주의에 맞서 한결같이 싸워야 한다. 하지만 더 광범하고 다양한 운동을 설득해 민주노동당 편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민주노동당은 무조건적이고 원칙적이고 일관된 자유의 옹호자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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