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0월 21일에 열린 노동자연대 주최 온라인 알렉스 캘리니코스 초청 강연, ‘미국 vs 중국, 신냉전?’을 글로 옮긴 것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이다. 주요 저서로는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 《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 등이 있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번역자가 덧붙인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들을 규합하고 있다. 10월 17일 벵골만에서 벌어진 미국·호주·일본·영국의 공동 해상 훈련 ⓒ출처 미 해군

오늘 토론할 주제는 엄청나게 중요하다. 오늘날 세계 정치를 지배하는 쟁점은 세계 양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다.

최근에 미국의 자유주의 학자들이 코로나19 팬데믹에 관한 책 두 권을 냈다. 두 책 모두 미·중 갈등 때문에 국제 협력 노력이 어그러졌으며, 이제 미국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시기와 근본적으로 다른 시기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도널드 트럼프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매사를 트럼프 탓으로 돌리기 쉽지만 ─ 트럼프가 그럴 만한 인물이기는 하다 ─ 이것은 근본적으로 트럼프 탓이 아니다. 트럼프의 후임자 바이든이 트럼프의 강경한 대(對)중국 정책을 계승하는 것을 넘어 더 급진적이 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바이든은 자신의 경제 정책을 정당화할 때 언제나 중국과의 경쟁과 이를 위해 미국 경제를 업그레이드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오늘날 미·중 모두 이 갈등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장한다. 미국 정부는 ‘서구식 자유’ 대 ‘중국식 권위주의’로, 중국 정부는 ‘중국식 공동부유’ 대 ‘쇠락하는 무질서한 신자유주의’로 이 갈등을 포장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일정한 구실을 하기는 하지만, 적대를 낳는 근본적인 요인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으로 본 세계

미·중 갈등을 이해하려면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은 20세기 초에, 당시 열강 간 적대를 이해하기 위해 개발됐다.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가 발전한 결과로 이해한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고 표현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교차하고 융합하는 단계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기업들 간의 경제적 경쟁이 자본주의, 특히 자본 축적을 추동하는 동력임을 보여 줬다.

지정학적 경쟁, 즉 국가 간 경쟁은 수천 년 동안 여러 형태로 존재해 왔다. 하지만 20세기 초 들어 지정학적 경쟁은 자본 축적 경쟁에 종속됐다. 축적이 진행될수록 기업들의 규모는 더 커지고, 그런 기업들은 특정 산업 부문이나 국가 경제 전체를 지배하게 되고, 더 나아가 국제적으로 성장한다. 국제적으로 성장한 그런 기업들은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자국 국가의 지원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하지만 국가도 산업 자본주의에 의존하게 된다. 산업 자본주의가 철도에서 오늘날 탄도미사일에 이르는 전쟁에 필요한 기술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이전의 지주 계급이 지배했던 독일·일본 같은 국가들도 점차 산업 자본주의의 발전을 고취하게 된다.

이렇듯 제국주의는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교차하는 단계다.

하지만 자본주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도 여러 단계를 거친다.

제국주의의 세 단계

첫째 단계는 흔히 고전적 제국주의로 불린다. 이 시기는 대략 1870년에서 1945년까지 이어졌다.

산업 자본주의는 통합된 세계경제를 창출했다. 그러나 그 세계경제는 소수 강대국들이 지배했다. 소수 강대국들은 나머지 세계를 식민지·반(半)식민지로 분할했다.

하지만 강대국들은 서로 경쟁하기도 했다. 당시 가장 중요한 경쟁은 영국과 (다른 두 지배적 자본주의 신흥 강국인) 미국·독일의 경쟁이었다.

이 경쟁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간단히 말해, 영국 지배계급이 독일을 더 큰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벌어진 것이다. 이는 (특히 아시아 상황에 관해서) 지나치게 단순화한 서술이지만, 어쨌든 그 결과로 두 차례 세계대전이 벌어졌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주의는 두 번째 단계로 접어들었다. 나는 이 단계를 초강대국 제국주의라고 일컫는다. 이 단계는 1945~1991년 동안 이어졌다.

이 시기에 세계는 이데올로기적·지정학적으로 경쟁하는 미국과 소련 양국을 필두로 한 양대 진영으로 분할됐다. 두 진영은 군비 경쟁을 벌였다.

그전 시기와의 핵심적 차이는 경쟁이 주로 이데올로기적·지정학적이었다는 것이다.

소련과 소련의 위성국들, 중국, 북한 등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였다.(일부는 아직도 그렇다.) 즉, 이 나라들은 대개 폐쇄적인 국민 경제였고 세계 시장에 통합돼 있지 않았다.

이것은 결국 소련이 붕괴하는 요인이 된다. 미국과의 군비 경쟁을 뒷받침하기에는 소련의 경제가 너무 취약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오늘날에는 미국의 헤게모니에 맞선 도전자가 중국이라는 형태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소련과 달리 중국은 세계 경제에 깊숙이 통합돼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1978년 덩샤오핑 하에서 중국 경제를 세계 시장과 세계 자본에 개방하면서 시작됐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국이자 제조업 상품 수출국이고, 2020년 현재 최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국이기도 하다.

오늘날 중국의 역할을 빼고 세계경제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컨대 현재 영국·미국 등지에서는 물자 부족 현상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본질적으로 이것은 중국에서 뻗어나오는 공급 사슬이 팬데믹으로 인해 교란된 결과다.

미·중 간 적대의 원인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에서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대체 갈등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근본적 이유가 있다.

첫째, 중국은 여전히 많은 면에서 국가자본주의 경제 체제[“시스템”으로도 혼용할 것임]다. 중국의 금융 시스템은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4대 국영은행이 지배한다.

생산 경제도 여전히 국유 기업들이 지배한다. 국가가 온전히 소유하지 않은 기업들도 중국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연줄 관계에 얽혀 있다. 개별 사기업이 국가의 뜻을 거스르려 하면 국가가 재빨리 이를 제압한다. 중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억만장자가 인민군에게 총살당할 수 있는 나라일 것이다.

그래서 중국 자본주의는 세계 2위 자본주의 경제이지만, 서구 자본들이 침투하기에 훨씬 어려운 경제이기도 하다.

둘째, 정치의 구실이다. 이는 특히 중국 통치자들의 목표와 관계 있다. 중국 지배계급은 다른 어느 주요 자본주의 국가 지배계급보다도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이다.

중국 지배계급은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 이래로 구축해 온 동맹 체계 바깥에 있다. 미국은 이 동맹 체계 덕에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을 이끌고 그 국가들에 자기 뜻을 관철할 수 있었다.

중국이 그 체계 바깥에 있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중국 지도부에게는 나름의 제국주의적 목표가 있다. 그 목표가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을 밀어내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는 분명 오늘날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일컬어지는 곳에서 미국을 밀어내려 한다. 또, 중국 지배자들은 중국 재통일을 완수하고(거기에는 대만을 중국에 편입시키는 것이 포함된다),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확보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목표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미국이 제2차세계대전 중 태평양전쟁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지배력을 확보했다고 여기며, 이를 순순히 포기할 생각이 없다.

모순

여기서 모순은 중국의 지정학적 도전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여전히 서구 자본에 매우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월스트리트의 대형 은행들은 중국에서 금융적 기반을 훨씬 탄탄히 다져서 중국의 막대한 예금에 접근하려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현재 중국 정부에 의해 차단됐다. 이는 중국 정부가 자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까 봐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중 간 경제적 상호의존 때문에 양국 간 전쟁이 불가능하다고 봐서는 안 된다.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당시 독일은 영국의 2위 교역국이었다. 또, 독일 자본주의는 차입과 투자를 늘리는 것을 영국 금융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독일은 영국에 경제적·지정학적으로 도전했다. 독일 제조기업들은 영국의 시장을, 어떤 점에서는 영국의 일자리까지 위협했다. 또, 독일의 해군 함대 증강은 영국 제국주의가 힘을 투사하는 주요 수단인 영국의 해군력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중국도 미국에 경제적·지정학적으로 도전하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제조2025’ 계획은 중국 제조업을 기술적으로 향상시키겠다는 것인데, 이는 미국이 첨단기술 부문에서 차지하고 있는 경쟁 우위를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또, 중국은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이것은 주로 미국 해군을 겨냥한 것으로, 미국 해군을 서태평양에서 밀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얼마 전에는 중국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계를 우회할 수 있는 초음속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의 헤게모니는 일단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이는 온갖 방식으로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미·중 갈등의 근원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

그렇다고 미국이 몰락했다는 것은 아니다. 중국측 선전가들은 미국이 돌이킬 수 없이 쇠락하는 중이라고 주장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국은 여전히 명실상부하게 세계 자본주의를 주도하는 국가다. 여기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미국에는 월가(街)가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세계 금융 시스템의 중심이다. 둘째, 애플·페이스북·넷플릭스 등으로 대표되는 첨단기술 부문이다. 셋째, 군사력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했다고 해서 미국의 군사력이 더는 세계 최강이 아니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미국은 중국에 초점을 맞추려고 군사력을 재조정하고 있다. 바이든은 그 전임자들인 오바마·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중국에 집중하기 위해, 중동에 투입한 병력과 중동에서의 공세적 행보를 줄이려 한다.

또, 미국은 자신의 권력의 중요한 원천인 동맹 체계를 재조정하고 있다. 미국이 영국·호주와 핵잠수함 건조 기술 제공 협정인 오커스를 체결한 것은 중국을 더한층 옥죄기 위해 두 서방 동맹국의 해군력을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현재 미·중 어느 쪽도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전쟁이 벌어질 리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제1차세계대전의 기원에 관한 어떤 연구를 보면, 전쟁 발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열강 중 누구도 서로 전쟁을 벌이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중 간 전쟁은 더할 나위 없이 끔찍할 것이다. 인류가 절멸할지도 모른다.

전쟁에는 못 미치더라도 두 나라의 군비 경쟁, 더 일반적으로는 두 나라의 갈등 자체가 어마어마한 자원 낭비다. 우리는 현재 기후 재앙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힐끗 드러난 여러 재앙을 피하려면 세계의 경제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역사적 순간에 있다.

사실, 기후 변화와 팬데믹, 미·중 갈등은 모두 같은 시스템의 산물이다. 자본주의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전쟁을 준비하느라 막대한 자원을 낭비하는 동시에,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환경 파괴의 효과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노동자연대와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그저 특정 전쟁에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환경 파괴 모두를 낳는 이 체제를 제거할 수 있는 운동을 건설하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

발제자의 정리

흥미로운 쟁점이 많이 나왔는데, 모두 답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듯하다. 하지만 몇 가지 일반적 논점을 제시해 보겠다.

신냉전?

먼저, 지금이 신냉전이라는 주장에 관해 말해 보겠다.

현재 미·중 갈등과 냉전기 동·서 갈등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첫째, 중국과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상호의존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다른 자본주의 경제들에 침투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컨대 나는 중국의 페르시아만 연안 진출을 다룬 매우 흥미로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은 페르시아만 연안국들과 중국 사이의 경제적·정치적 연계가 점점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 줬다.

페르시아만 연안국들에게 중국은 거대한 에너지 수출 시장이다. 또, 중국은 돈이 아주 많다.[즉, 그런 나라들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하기도 한다.] 중국은 이런 국가들이 극도로 비민주적이고 잔혹한 군주정이라는 사실에 정치적으로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둘째, 오늘날 미·중 갈등은 냉전기보다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훨씬 덜하다.

셋째, 미·중 갈등은 냉전기보다는 아직 훨씬 덜 위험하다.

냉전기에 미·소 양국의 핵전력은 서로를 상대로 세계적 전면전을 벌일 상시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 전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지만, 미·소 양국이 배후에 있는 끔찍한 대리전들이 벌어졌다. 한국인들에게 한국전쟁에 관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도 그런 대리전이었다.

반면 오늘날 미·중 간에 그런 대리전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

냉전의 유산

그럼에도 미국이 냉전기에 개발한 능력과 수단들은 오늘날 미·중 갈등에도 활용되고 있다.

첫째,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군사 기지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중국이 보유한 해외 군사 기지는 지부티 한 곳뿐이다.

둘째, 미국은 자국 헤게모니를 뒷받침하는 데에 매우 유용한 구실을 한 동맹 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이 동맹 체계를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미국·일본·인도·호주가 모인 쿼드가 있고, 미국·호주·영국이 모인 오커스가 새로 결성됐다. 내가 잘 몰랐던 것인데 ‘5개국 방위협정’(FPDA)이라는 것도 있다. FPDA는 영국이 수에즈운하 동부에서 철수한 1970년대 초에 결성된 것으로, 영국·호주·뉴질랜드·말레이시아·싱가포르가 속해 있다. 중국을 억제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이런 것들이 재가동되는 것이다.

한편,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갈등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독일이 경제적으로 중국과 매우 긴밀히 얽혀 있고 유럽이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에 의존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이 대(對)러시아 안보를 어디에 의존하겠는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에 대한 유럽연합의 전략적 자율성에 대한 온갖 얘기들은 모두 말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오커스 협정을 두고 툴툴거렸지만, 프랑스 전 대통령 드골은 1960년대에 아예 나토를 탈퇴하기도 했었다. 그때에도 큰 충돌은 없었다.

1945년 이후 줄곧 유럽에게 미국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유럽은 미국과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하지만 미국의 보호도 필요로 한다.

한편, 미·중 사이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언사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미국 쪽에서 그렇다. 미국 공화당 내 최대 파벌인 트럼프주의자들은 마치 지금이 1950년대인 양 ‘공산주의 중국’을 비난하는 말을 줄곧 쏟아낸다.

바이든은 좀 더 자제하는 듯하지만 이들과 근본적으로 견해를 달리하지 않는다. 바이든은 이렇게 말한다. ‘21세기는 누구의 세기가 될 것인가? 자유민주주의 미국인가? 귄위주의 중국과 러시아인가?’

냉전기는 서구 지배계급에게 중요한 기억이자, 중국에 맞설 수단을 끌어내는 중요한 원천인 것이다.

진영논리

마지막으로 진영논리에 대해 말해 보겠다. 러시아·중국을 미국에 대항하는 진보적 대안으로 보는 진영논리가 좌파의 문제점이라는 한 동지의 지적에 동의한다.

진영논리는 냉전기의 유산이다. 당시에는 ‘진보적인’ 사회주의 진영이 미국에 대항하고 다른 미래로 나아갈 길을 이끌 것이라는 믿음이 [좌파에] 있었다.

오늘날 이건 웃기는 생각이다. 기업형 조폭을 연상케 하는 푸틴 정권에 대체 어떤 진보성이 있다는 것인가?

중국은 다른 민족을 핍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중국 안에서도 엄청나게 부유한 지배계급과 대다수 가난한 노동 대중 사이의 모순이 어마어마하다. 중국의 정치·경제 전반이 중국의 가난한 노동 대중을 가차없이 옥죄도록 조직돼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제국주의가 시스템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국주의는 강대국 하나가 나머지 국가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는 [강대국들 간의] 경쟁 체제다.

오늘날 미·중 갈등은, 1914년 당시 독일과 영국의 갈등과 마찬가지로, 그런 경쟁 체제의 표현인 것이다.

진영논리는 좌파의 낮은 사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미국에 맞서 강력하고 역동적이어 보이는 국가가 대안이 돼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대안은 세계 노동계급이 체제 자체를 제거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 노동자연대의 회원이 아니라면, 가입하시라. 세계를 근본적으로 더 낫게 변화시키는 투쟁에 동참하시라.